전편 : 1편


트레센 학원 트레이너에게 가장 큰 난관이 있다.

바로 첫 번째 수업이다.


신입 트레이너이기에 학원의 숨겨진 비밀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들은 것이 있다.


'첫 날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하면 끝이야.'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신입 트레이너의 최초 팀원의 구성은 팀이 없는 아이들 중에서 무작위로 배정된다.

무작위로 배정된 아이들을 통해 매년 새로운 팀을 생긴다.

그리고 신입 트레이너는 이 아이들을 이끈다. 명목상으로는.


진실은, 팀을 계속해서 이끌어 나갈 수 있을 지는 학교에서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인기 없는 트레이너가 되어 학생 수가 0명인 팀이 되어버리면. 트레이너로서의 역할은 끝난다.


트레이너를 할 수 없는 트레이너는.

팀의 강제적 해체 후 트레센 학원의 경비나, 소사 아저씨가 되는 것이 비일비재했다.



수많은 우마무스메들.

그에 비해 극도로 제한되어 있는 명예의 전당.


모든 아이들은 최고가 된 자신을 꿈꿀 것이며,

트레이너는 최고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만약 첫 날, 강한 인상을 주지 않고 신뢰를 얻지 못해버린다면. 

학생 수는 0명이 되어버릴 수도 있고 모든 것은 끝난다.



귀와 꼬리는 감출 수는 있지만 여자가 되어버린 내 모습은 감추기 어려웠다.

그래서 우마무스메가 아닌 인간 여성으로 자신을 소개하기로 했다.


"반갑습니다. 새로 부임한 트레이너입니다. <여성 트레이너>로서 당신들을 지도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나에게 배정된 든든한 네 명의 학생들.

이들 또한 신입생이었고, 신입 오리엔테이션을 생각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정확히 말한다면, 우마무스메가 된 <지금의 나>가 아닌 <인간 남자였을 때 나> 였지만.

간단한 소개에서 이들은 극도로 나에게 호감을 보였었지.


"출석을 부르겠습니다. 임피리얼 탈리스."

"..."


"프라임 시즌."

"..."


"그리드 홀로."

"..."


새로 결성한 팀 암살자는 조용한 집단이었다.

내가 이름을 호명해도 고개를 까닥 끄덕이기만 할 뿐, 별다른 리액션이 없었다.

설마 성대가 없어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겠지?


"마지막으로... 서든 어택."

"트레이너. 난 이 팀을 빠져나가야겠어."


서든어택이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며 입을 열었다.

학생들이 벙어리가 아니었던 것은 다행이지만.

첫 날부터 좋지 않은 징조다.


"응?"


의외로 순진해 보이는 얼굴을 한 그녀는 팩트로 비수를 꽂았다.


"이런 허접한 팀과 함께하기 싫다네."


-드르륵.


부실 문을 열고 떠나는 그녀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더했다.


"그거 아나? 난 사실 트레이너가 마음에 들었었네." 


서든 어택은 교실을 떠나며 말했다.

왜 내가 마음에 들었었는지는 그녀가 떠난 이상 영영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두고 보자. 그녀가 허접한지 이 팀이 허접한지 결과가 말해 줄 것이다.




***


그녀가 떠난 부실은 조용했다.

이 분위기를 전환할 필요성이 있다.

본격적인 첫 수업인 만큼. 서로 친해지는 것을 목표로 하자.


"그럼, 우리 팀은 레이스에서 일착을 하는 것을 목표로..."


"잠시만요."

"응?"


서두를 꺼내기 전에 그들 중 누군가가 내 말을 막았다.

하지만 여긴 여학교다. 이 정도의 돌발 행동은 감수 해야지.


"원래 오시기로 했던 잘생긴 오빠 트레이너 분은 어디 가셨나요?"

"응?"


이들과 만나고 몇 분 안되는 이 시간 동안, 나는 몇 번이나 응 이라는 대사를 말하는 걸까?


"오리엔테이션 때 만났던 오빠 말이에요!"

"이사장 비서님께 듣기로는.. 오빠 트레이너에게 무슨 일이 생기셨다고 들었는데.."

"대체 수업 맞죠? 내일 부터는 그 분이 오실 수 있는 거죠?"

"..."


학생들의 반발은 극심했다.

우마무스메가 된 나도 나름 외모로는 꿀리지 않는다고 자부하지만.

트레센 학원에서는 남자 트레이너가 더 중요한 것이었을까?

나는 참지 못하고 물어 볼 수 밖에 없었다.


"그... 혹시 트레이너가 남자인거와 여자인 것은 큰 차이가 있는거니...?"

"그럼요!"


바로 대답하는 누군가. 그리드 홀로였나..?

미안하다. 얼굴이 다들 비슷해서 솔직히 모르겠어.


"트레이너씨. 생각해 보세요."

"트레센 학원은, 매년 입학생은 들어오는데 졸업생은 없어요."

"<졸업>할 때까지 평생 학창 생활을 보내야 하는 학생들은..."

"트레이너의 역할은 단순한 트레이닝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해요."

"저희들은 여성 트레이너와 계속 함께 할 자신이 없어요."


그냥 넘어 갈 수 없어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설득했다.

너희들은 괴조를 이길 수도, 일본 총대장을 이길 수도, 황제를 이길 수도 있는 뛰어난 역량을 가진 학생들이야.

다시 한 번 생각을 해 보면 안되겠니?


하지만 내 혼신을 다한 설득은 무용지물이었다.


레전드 레이스가 끝나버렸기 떄문일까?

이 아이들의 눈빛에서 더 이상 목표를 찾을 수 없었다.


- 드르륵


거칠게 열리는 부실 문과 떠나는 3명의 아이들.

나는 나가는 이들을 붙잡을 수 없었다.




***


텅 빈 교실에는 고요함이 흐른다.


".... 끝났다..."


트레이너를 목표로 했던 나.

그리고... 우마무스메가 되어버린 나.

이제는 대체 뭘 하고 살아야 하는 걸까?


- 드르륵


뒷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들어온다.

역시 아이들이 나를 배신 할 수 없다.

이것 저것 생각해보고 다시 돌아온 것이겠지.


약간의 기대감과 함께 고개를 들었으나, 내 눈에 비친 우마무스메는 처음 보는 아이였다.

먼가 얼빵해 보이는데...?


"안녕하세요! 스페셜 위크입니다!"


나는 재빠른 동작과 함께 달려가서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이대로 학생을 섭외하면 되는 거야! 한 명부터 시작하면 문제 없어!


내 재빠른 반응속도 때문이었을까?

스페셜 위크라는 아이는 당황한 눈치였다.

일단 진정하고. 진정하고...

섭외를 시도했다.


"흠흠. 스페셜 위크라고 했지? 여기 팀에 들어올래? 일본 최강을 만들어 주마!"


느껴진다.

스페셜 위크라는 아이에게서 커다란 동요심이.

내 말에 무언가를 느낀 듯.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내게 말했다.



"혹시 스즈카 있는 팀...?"

"아니? 없는데..."

"안녕히 계세요!!"


그녀는 떠났다.







***


혹시 모를 기대감에.

비어있는 부실을 너무 오랜 시간 지키고 있었다.

붉은 빛이 감도는 학교.


내일부터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평생 트레이너를 목표로 했던 나는. 

이제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하지?


관사로 들어가는 길.

석양만 바라보며 멍하니 길을 따라 걷는다.

그러다 학교 내 관엽 식물 옆을 지나던 중.

무언가와 부딪혔다.


"끼악!"

-쿠당탕


난 충격에 의해 넘어져 버렸고, 계집애 처럼 가냘픈 비명을 질러버렸다.


"아구구... 아파라..."

"아앗! 여장남자 트레이너! 으응...? 남장여자 트레이너? 괜찮아?"


강한 충격으로 인해 복장이 흐트러져 버렸다.

모자가 날아가 버렸어.


이미 목표는 잃어버렸지만, 

흐트러진 짐 사이로,

무의식적으로 날아가 버린 모자를 주워 쓰기 위해 움직였지만, 모자는 보이지 않았다.


"이거 찾아? 트레이너?"


내 검은색 중절모를 든 핑크머리카락의 우마무스메.

동그랗고 커다란 눈을 한 귀여운 아이.


그 아이의 시선이 향한 곳.

옷 밖으로 살짝 삐져나온, 내 검은 색 꼬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