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링크: https://arca.live/b/umamusume/54810301

2편 링크: https://arca.live/b/umamusume/54933262

 

 

창문 밖에서 테이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트레이너, 거기서 기다려? 나 지금 갈게.”

 

테이오가 창문 밖에 있으니 도망이라도 쳐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역시 숨어있는 게 정답인 것 같다. 2000m도 달리는 테이오한테서 내가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다.

 

“트레이너. 창문 열어둬서 고마워.”

 

창문을 열어둔 게 왜 고맙다는 건지 그 이유를 나는 곧 알게 됐다.

 

“하나, 둘, 셋.”

 

덜그럭

테이오가 카운트를 세자 창문에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트레이너. 문을 잠근다고 해서 내가 못 들어갈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무슨 소리가 들린다. 걸어오는 소리다. 그리고 이 소리는 창문 밖에서 들리는 소리이지만 어딘가로 향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혹시 벽을 타고 있는 거야?”

 

믿기지 않았다. 보통은 문을 잠근다면 포기하기 마련인데 창문에 줄을 연결한다니. 제정신으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행동이다. 

 

“트레이너. 내가 온다고 했지.”

 

나는 순간 숨을 멈췄다. 우마무스매의 청력은 인간보다 예민하기 때문에 숨소리라도 들리면 들켜버리기 때문이다.

 

“트레이너. 어딨어?”

 

집 안에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테이오가 나를 찾고 있다.

 

“아하, 이거 숨바꼭질이구나? 그럼 잘 숨어.”

 

테이오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나를 찾으러 온다.

 

“트레이너. 혹시 집 안에 있어? 지금 나오면 아무 짓도 안 할게.”

 

거짓말이 분명하다.

 

“진짜야. 약속할게.”

 

대답을 할 생각은 없지만 조금이라도 말소리가 새어나갈 까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제발 테이오. 모른 채하고 지나가줘.’

 

마음 속 바램이 테이오에게 닿았던 건지 테이오는 금방 나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트레이너. 진짜 없어?

 

테이오는 재미없고 지루한걸 싫어하는 아이였지. 그래서 인내심이 금방 바닥을 보였나 보다.

 

“설마 그 사이에 밖으로 나간 거야? 트레이너, 술래잡기에 자신 있나 보네.”

 

(덜그럭 덜그럭, 끼익 쾅)

뭔가 찾는 소리와 현관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테이오가 뭐를 찾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드디어 내 집에서 나간 것 같다. 그래도 난 움직이지 않았다. 혹시 함정일 수 있으니까. 그렇게 몇 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내 집에선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함정 같은 것이 아니라 테이오가 정말 나갔나 보다.

 

“휴, 다행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불안한 마음에 옷장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당연하지만 테이오는 보이지 않았다.

 

“집까지 찾아오다니. 테이오는 정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나는 옷장에서 나오고 방에서 나가기 위해 오른쪽으로 돌아봤다. 그리고 거기에는 테이오가 기분 좋은 표정으로 헤실헤실 웃으면서 뒷짐을 지고 서있었다. 

 

“트레이너. 역시 여기었구나. 기다리느라 힘들었어. 정말 도망친 건 아닐까? 하고 이번 숨바꼭질은 내 승리네?”

 

테이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아까 분명 나가는 소리를 들었는데? 역시 함정이 맞았어. 잠깐만이라도 가만히 있으면 심심하다고 놀자고 하던 테이오가 몇 분이고 가만히 나를 기다렸다는 게 말이나 되는 건가?

 

“테이오. 왜 아직 여기...”

 

“트레이너. 왜 아까 문 안 열어 준거야?”

 

테이오가 내 말을 끊었다.

 

“넌 미쳤어. 내가 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집까지 쫓아오다니. 이건 범죄야. 만약 루돌프가 이걸 안다면 널 어떻게 생각할까?”

 

“’회장’? ‘회장’은 이제 필요 없어. 트레이너가 그랬잖아. ‘황제’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황제’를 뛰어 넘는 ‘제왕’이 되자고 했잖아. 그러고는 생각했어. 물론 트레이너를 만나게 해주고, 트레이너의 소중함을 알려준 건 ‘회장이지만 ‘회장’은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그 여자는 이제 방해물이야.”

 

테이오는 뒷짐 지고 있던 손을 보였다. 테이오의 작은 손에는 내가 쓰던 망치가 있었다. 보통은 벽에 못을 박거나 할 때 쓰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한 흉기다.

 

“그러니까 트레이너. 나랑 결혼해줄래? 트레이너는 모르겠지만 우리 집 꽤나 돈 많거든.”

 

“테이오. 혹시 그게 무슨 말이야.” 

 

평소라면 심장이 두근거리는 청혼멘트겠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건 협박이다. 대답을 잘못한다면 그 망치로 무엇이 부숴질 줄은 대강 예상이 갔지만, 나는 이 청혼을 받을 수는 없다.

 

“만약 트레이너가 받아주지 않는다면, 이 망치로 내 다리를 내려칠 거야.”

 

나를 죽이려기 보다 자신의 다리를 부숴버리겠다니. 정말로 지능적인 아이다. 두렵다. 어떤 대답을 해야지 테이오를 막을 수 있을까.

 

“테이오. 나.. 나는..”

 

“역시 트레이너는 내가 싫었구나.”

 

테이오의 손이 움직인다. 안 된다. 테이오의 다리는 이미 잦은 부상으로 더 이상의 골절이 생긴다면 걸을 수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테이오, 안돼!”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테이오가 자신의 다리를 내려치려던 망치가 내 오른손으로 날아왔다. 피한다면 피할 수 있겠지만 내가 피한다면 테이오는 우마무스메로서의 모든 것을 내려놔야 했다.

 

(빠그작)

 

나는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 테이오의 망치는 결국 내 오른손을 분쇄해버렸다. 너무나도 큰 고통인지 오히려 내 오른손의 모든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았다. 

 

“테이오, 아무리 그래도 우마무스메인 네가 다리를 포기하겠다니. 네 다리 지금도 무리하고 있는데 소중히 다뤄줘. 나를 생각해서라도.”

 

나는 테이오를 책망하기보다 위로해줬다. 이런 일을 벌일 정도면 테이오가 정신적으로 힘들어한힘들 뜻일 테니.

 

“아아… 트레이너 미안해…”

 

테이오가 바닥에 주저 앉으며 흐느껴 울고 있다.

 

“트레이너는 마지막까지 나를 지켜줬는데. 나는 오히려 트레이너를 헤치고 말았어. 나는.. 나는….”

 

테이오는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았다. 테이오의 여러 감정이 교차하고 있는지 심장소리가 내 귀에 들릴 정도로 테이오의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다. 

 

“트레이너.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테이오는 방금 헤실헤실 웃던 얼굴과는 달리 눈물을 심하게 흘리며 울상이 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테이오. 넌 상당히 흥분한 상태야. 일단은 진정하고 우리 대화로 이 문제를 해결해보자. 응?”

 

“하아. 하아.”

 

“테이오. 듣고 있는 거 맞지?”

 

테이오가 숨을 심하게 헐떡인다. 마치 먹잇감을 눈 앞에 두고 있는 한 마리의 암사자처럼 굶주림을 참으려 하는 모습이었다.

 

“트레이너. 미안!”

 

테이오가 나를 밀쳐서 바닥에 눕혔다.

 

“테이오, 지금 이게 뭐하는…”

 

테이오가 나에게 강제로 입맞춤을 시도했다. 

 

“읍?!”

 

“푸하아. 트레이너가 자꾸 내 마음을 안 받아주니까 이렇게 되는거야.”

 

이번에는 내 입 안에서 부드러운 무언가가 느껴졌다. 나는 테이오를 내 위에서 때어내려고 노력했지만 우마무스메의 힘을 감당할 순 없었다. 우마무스메는 인간보다 폐활량도 상당한지, 나는 숨이 막혀져 가는데도 테이오는 힘든 기색조차 없다.

 

“트레이너. 그럼 이제 우리 우마뾰이할래?”

 

테이오가 내 숨이 멎기 전에 입을 때줬지만 우마뾰이라니. 내가 들었던 말 중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단어였다. 나보다 8살이나 어린 우마무스메와 우마뾰이를 한다면 내 사회적 체면은 물론이고 내 몸이 버틸 수 없을 것이다.

 

“부탁할게. 테이오, 그것만은 참아줘. 지금 내 상태를 봐. 진짜로 죽을지도 몰라.”

 

나는 테이오에게 애걸해봤지만 너무나도 흥분한 테이오에겐 내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결국 테이오의 작은 몸에 나의 것이 들어갔다. 정말 비좁고 가벼운 그녀의 몸이 흔들릴 때마다 내 수명이 몇 년씩 단축되는 것 같았다. 내 체력은 한계였다.

 

“테이오, 이제 그만.”

 

“안돼♡ 트레이너. 이제 막 시작이라구♡”

 

테이오는 오히려 보란 듯이 허리를 더 격렬하게 흔들기 시작했고 나는 그만 기절을 하고 말았다.

 

 

 

 

“테이오!”

내가 소리를 치며 잠에서 깨자 낯선 천장이 나를 반겼다. 유럽풍의 방에 창문은 엄청나게 커다랬고 그 밖에는 정원과 레이스장 같은 것이 보였다. 그리고 내 오른팔에 수갑이 차져있었다.

 

“수갑? 그럼 혹시 여기는.”

 

내가 상황정리를 하고 있었을 때 내가 있던 방에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문에선 익숙한 실루엣이 들어오고 있었다.

 

“트레이너. 잘 잤어? 우리 집에 온걸 환영해.”

 

나는 내 오른팔을 들여 보였다.

 

“혹시 내 오른손에 이 수갑 뭔지 알려줄 수 있니?”

 

“이번에 내가 트레이너의 오른손을 부숴버렸잖아. 내 주치의한테 물어봤는데 치료하는데 꽤 걸리거나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하더라구. 그래서 안정을 취하게 하기 위해 걸어둔 거야.”

 

테이오는 마치 나를 위해 수갑을 차둔 것처럼 얘기했다. 혹시 잘못이라는걸 알기나 하는 걸까?

 

“테이오. 난 치료 같은 건 필요 없으니까. 빨리 트레센으로 돌아가야 해.. 곧 국화상이 개최된단 말이야.”

 

“괜찮아.”

 

테이오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냐하면 트레이너. 우리 둘 다 은퇴해버렸거든.”

 

갑자기 은퇴라니 무슨 소리인가. 중앙 최고의 트레이너가 되겠다는 내 꿈은, ‘황제’를 뛰어넘겠다는 테이오의 꿈은, 어떻게 된다는 것인지. 믿기지 않는 말이었다.

 

“테이오. 너 그럼 클래식 무패삼관은 포기하는 거야?”

 

“응! 옛날에 나라면 모르겠지만 지금부터 내 꿈은 트레이너와 행복한 삶을 사는 거니까. 그런 시답잖은 레이스는 필요 없어. 무엇보다 결혼한 유부녀가 레이스에 나갈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유부녀라니. 너 혹시? 아니지. 아니라고 말해줘.”

 

“트레이너는 자고 있느라 몰랐겠지만 우린 어제부터 결혼한 사이야.”

 

이건 말도 안돼. 내 의사는 상관 없이 갑자기 결혼이라고?

 

“테이오. 결혼이라는 건 인생에 단 한 번뿐인 소중한 기회야. 너도 그래야 할거고 나도 좀 더 성숙한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 우리 지금이라도 이혼하자.”

 

이혼이라는 얘기를 들은 테이오는 나를 끌어 안았다.

 

“테이오. 네가 애교를 부린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야.”

 

테이오는 나를 끌어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내 늑골과 척추를 부술 작정이다.

 

“트레이너는 내가 그렇게까지 싫은 거야? 나를 사랑하지 않는 트레이너는 필요 없어.”

 

이러다간 정말로 죽고 만다. 나는 살기 위해 하면 안됐을 단 한 마디를 내 입에서 꺼내고 말았다.

 

“사랑해.”

 

“정말로 사랑해?”

 

“테이오를 당연히 사랑하고 말고.”

 

테이오는 자신이 원하는 말을 듣고 나서야 다시 웃는 얼굴을 보여주었다. 테이오는 뭔가 신나 보이는 표정이었다.

 

“테이오. 무슨 좋은 일 있어?”

 

“나와 트레이너의 아기가 기대돼서.”

 

“벌써 임신한 거야?”

 

“아니, 아직이야. 트레이너.”

 

내가 기절한 사이에 사고가 일어난 건가 싶었지만 다행히도 그런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트레이너…”

 

테이오는 다시 옷 매무새를 헝클고 내가 누워있는 침대에 올라왔다.

 

“아이가 생길 때까지 노력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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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현생이 바빠서 많이 늦고 내용이 전보다 노잼이다. 다른 괴문서는 더 바빠질 예정이라서 가을 전까지 나올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빨리 가져와 볼게. 항상 재밌게 봐줘서 고맙다. 

궁금한거나 이해 안되는 거는 댓글로 물어봐줘라.
오타 및 설정오류 지적, 훈수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