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어서 저 새끼를 도쿄 만 앞바다에 공구리 쳐버려!”

“…… 저기 트레이너 씨?”


키타산 블랙은 등 뒤에 숨은 스윕 토쇼의 외침에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한껏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키타산을 맞이했다.


“응? 무슨 일이니?”

“트레이너 씨가 스윕 짱한테 나쁜 말을 했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나쁜 말? 그게 무슨 소리니?”


다행히 키타산 블랙은 저 야다야다랑은 다르게 앞뒤 분별이 있는 친구였다.

가슴팍의 음란주머니도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쯧쯧, 이래서 앞뒤분별도 안 되는 면세 말딸은 안 된다니까.


“스윕이랑은 수업 시간에 바깥에서 만나 땡땡이치고 있는 걸 주의 줬을 뿐이란다.”


나는 입에 침을 바르고 거짓말했다.

양심의 가책은 없었다.

그런 게 있으면 애초에 필살마법을 안 썼지.


“역시 그런 거죠? 어휴, 어쩐지.”


키타산은 이미 스위삐의 땡깡에 당한 게 많았는지 의심 없이 내 말을 믿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 보는 트레이너가 대뜸 욕하고 튀었다는 스위삐의 주장보다는 내 말이 훨씬 그럴듯할 테니까.

다만 뒤에서 이 대화를 듣고 있던 본인은 막장드라마 속 악역의 개소리에 넋이 나간 주인공 엄마마냥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뒷목을 잡고 있었다.


“이, 이 거짓말쟁이!”

“그럼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설명이라도 해보겠니? 혹시 내가 나도 모르게 말을 잘못했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사과할게.”

“그야 아, 아, 아씨…….”


스위삐는 차마 롤링 센세의 필살주문을 직접 말하진 못하고 분통만 터뜨렸다.

나는 거기에 쐐기를 박아주었다.


“그것 보렴.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설명도 못 하면서 나쁜 말을 했다고 주장하다니. 아무리 주의를 받아서 심기가 불편해도 거짓말은 하면 안 된단다.”

“억, 억…….”


내 말에 스위삐는 아주 얼굴이 새빨게져서 숨이 넘어가려고 했다.

역시 롤링 센세의 필살주문.

아바다케다브라처럼 상대를 곱게 죽여주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 상처를 입혀 상대의 정신을 좀먹어가는 끔찍한 기술이었다.

나는 그런 스위삐를 내버려두고 키타산의 손을 잡았다.


“너도 고생이 많구나. 키타산이라고 했지? 유망주라고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앗, 네네.”

“혹시 방학에 계획이 어떻게 되니?”

“저어는 팀 합숙을 가기로 예정되어있는데요…….”

“팀이라면 스피카? 테이오랑 같은 팀이랬지?”


이 세계의 키타산과 사토노는 애니메이션과 같이 테이오와 맥퀸을 동경하는 애들이었다.

덕분에 트레센에 들어온 직후, 팀 스피카에 가입했다는 소식을 확인한 바 있었다.


“오키노 트레이너라면 팀 인원수가 많으니까 이번에도 학원 공인 합숙소려나? 그쪽이랑 얘기해봐야겠네.”

“오키노 트레이너랑 친하세요?”

“그야 그 양반은 맨날 술을 마시러 돌아다니다보면 마주칠 수밖에 없으니까.”


오키노 씨도 키류인 못지않은 네임드 트레이너였기에 몇 번쯤 엉덩이를 들이밀고 합석한 적이 있었다.

결론적으론 고루시 보유자랑 잘못 엮였다간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술자리에서만 만나는 사이로 남았었다.


‘스피카는 리길이랑 쌍으로 다 해먹는 대형 팀이지. 한번 말붙여보긴 해야겠네.’


그 인간 행실을 생각하면 책잡을 구석은 얼마든지 있으리라.

대충 야요이를 통해 교류합숙 할거야? 감봉할거야? 협박하면 같이 합숙훈련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 그럼 다음에 보자. 스윕 너도 앞으로는 마음에 안 든다고 거짓말하고 다니면 안 된다?”

“맞아 스윕 짱. 빨리 트레이너 씨한테 사과하고 우리도 밥 먹으러 가자.”


그 말에 스위삐는 사약 마신 장희빈처럼 두 눈을 부릅떴지만, 결국 등짝을 잡고 누르는 키타산에 의해 내게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크큭, 멍청한 우마무스메 같으니. 내게 대든 벌이니 달게 받아라.’


감사합니다 롤링 센세.

당신은 제 영웅이에요.


*


“사람들 앞에선 잘 넘기긴 했지만 언제 미친 스위삐가 습격해올 지 모르니 한동안 돌아다닐 때 조심해야겠군.”


어차피 현실에서 건너온 나는 이쪽 세계의 과거가 텅텅 비어있었다.

덕분에 집으로 돌아가도 할 일이 없었으므로 기숙사 통금 시간까지 사무실에서 컴퓨터나 하다가 조용해지면 퇴근하기로 했다.


“자, 그럼 오늘도 서일본 말붕이들한테 기만질이나 해볼까.”


인간관계 리셋 덕분에 현실에 친구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늘어난 갤질.

그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건 중앙 트레센 소속 트레이너로서 김치국 말붕이들에게 기만질을 하는 것이었다.


“님들 비와 대가리 실물로 봄? 실물로 보면 존1나큼.”


우마무스메가 실존하는 이 세계에서도 한국은 경마의 규모가 작았다.

이유는 간단.

북한의 존재로 인해 신체능력이 뛰어난 우마무스메들은 징집 대상이었기 때문.

심지어 이 세계의 상무대에는 6.25전쟁의 영웅인 겁 없는 우마무스메 아사히의 동상도 세워져있을 정도.

덕분에 본격화가 조져지는 중요한 시기를 날려먹어 레이스 자체가 흥하지 못했다.

대신 우마무스메들의 격투기가 발전했는데, 이쪽은 꽤나 월클이었으나 너무 인싸 문화에 가까웠다.

레이스를 좋아하는 씹덕 말붕이들은 이 세계에서도 일뽕일 수밖에 없는 슬픈 운명인 것.

다시 말해 현지의 트레이너인 내가 놀려먹기 딱 좋은 놈들이라는 뜻이었다.


“솔직히 루돌프보다 자기가 사복 패션센스 더 좋을 것 같으면 개1추ㅋㅋㅋ.”


대충 학원 내에서 찍은 사진들로 달달하게 념글을 받아먹은 나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해도 졌는데 슬슬 퇴근해보실까?”


기지개를 편 나는 깜깜해진 창밖을 바라봤다가 한 우마무스메와 눈이 마주쳤다.

여기 3층인데.


“아이에에에엣!!! 말딸! 말딸!!! 왜????”


고개를 돌렸는데 갑자기 어두워진 창문에 새까만 말이 달라붙어있으니 아무리 나라도 급성 URS(Uma Reality Shock) 발작으로 계집애처럼 비명을 질러댈 수밖에 없었다.


“커신아!! 물럿거라!!!”


충격에 휩싸인 나는 황급히 손에 잡히는 커피믹스를 집어던졌다.

커신이라면 물체를 통과할 테니 알아서 그 안에 있는 내용물에 부딪히겠지.

믹스 가루에 나트륨이 얼마나 들어있는진 몰라도 조금은 소금 뿌린 효과가 들지 않을까?

물론 나는 커피믹스를 던져놓고 그 결과를 확인하는 대신 황급히 문을 박차고 밖으로 역돌격했다.

그리고는 계단에서 급정거했다.


다다다닥!


누군가가 밑에서부터 빠르게 뛰어올라오는 발소리.

아무리 봐도 인간의 발소리라 생각하기에는 너무 빠른 그 이질적인 소리에 나는 본능적으로 역역돌격을 시작했다.

반대편 계단을 향해 복도를 달리면서 슬쩍 뒤를 보니 아까 창밖에서 보였던 커신과 똑같이 생긴 말딸이 어느새 계단을 다 올라 이쪽을 쫓아오고 있었다.


“끼에에에에에…… 엑? 카페?”

“괜찮으세요? 갑자기 비명소리가……!”


문득 어둠속에서 슬쩍 드러난 그 얼굴이 낯익다 싶은 순간, 나는 눈앞에서 튀어나온 두 번째 카페를 발견하곤 다시 비명을 질렀다.


“끼야아아악!”


그래. 뒤에 있는 게 카페면 앞에 있는 이 유령은 SS겠지.

근데 시발 밤중에 갑자기 새까만 녀석이 눈앞에 튀어나오면 놀라겠냐고 안 놀라겠냐고.

그러니까 내가 대차게 넘어져서 기절한 건 다 내가 쫄보라서 그런 게 아니다.

누구나 이런 상황에 처하면 똑같을 것이다.


“으윽, 두부외상만은 안 된다……!”


나는 깜짝 놀라 쓰러진 나에게 달려오는 카페를 바라보며 정신을 잃었다.


-------------------
트레센 슬렌더 어벤져스가 하나둘 모여드는 중

겁없는 우마무스메 아사히는 말붕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이분
https://namu.wiki/w/%EB%A0%88%ED%81%B4%EB%A6%AC%EC%8A%A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