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문질문질.


“으음…….”


간질간질.


“으읏, 응? 어어?”


묘한 감각에 눈을 뜬 나는 눈앞의 광경에 사고가 정지했다.

잘못 봤나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떠도 똑같은 광경.

비몽사몽한 뇌로 열심히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나는 소파에서 맨해튼 카페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는 상태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카페?”

“일어나셨군요. 복도에서 기절하셔서 어쩔 수 없이 사무실로 옮겨왔답니다.”


그제야 야밤에 있었던 일을 떠올린 나는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 그건 고마운데 아까부터 왜 내 귀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거야?”

“아, 사람 귀는 처음이라 저도 모르게 그만.”


카페는 그렇게 말하며 내 앞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손이 머리를 쓸어 넘기는 가운데 교복 소매 아래로 삐져나온 이너셔츠의 프릴이 코를 간질였다.

실크의 부드러운 감촉.

햇볕에 잘 말리고 곱게 다린 뽀송뽀송함.

그리고 몸에 배인 은은한 커피향까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해가 뜨고 있잖아? 미안, 나 때문에 밤새 계속 여기 있었던 거야?”

“괜찮아요. 제 책임도 있으니까…….”

“어?”


뜬금없는 책임론에 내가 의문을 표하자 카페는 곧장 본론을 꺼내들었다.


“그때 그 비명. 트레이너 씨도 보이는 거죠? 이 아이가.”


그렇게 말하며 카페가 가리킨 곳에는 그녀를 똑 닮은 한 우마무스메가 내 의자에 앉아있었다.


‘아니, 그 반대겠지.’


저 녀석이 카페를 닮은 게 아니다.

카페가 저 녀석을 닮은 거다.

선데이 사일런스.

당황할 필요는 없다.

저 유령마가 카페와 붙어 다닌다는 사실쯤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근데 왜 보이냐 시발?’


이유라고 할 만 한 건 하나밖에 없었다.

나도 한번 죽어서 이 세계에 떨어진 몸.

커신 경력자라서 커신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하면 딱히 이상할 것도 없었다.

사실 귀신보다 이세계 전생이 더 무서운 거 아니겠나.

이쪽은 몸까지 가진 귀신이랑 다를 게 없는 건데.


“역시 보이시는군요. 죄송해요. 아까는 이 아이가 한밤중에 이 사무실에만 불이 켜져 있기에 살펴보러 간 거였거든요.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어요.”

“기숙사 통금이 걸린 야밤에 너는 또 왜 밖에 있었던 건데?”

“이 아이가 요즘 트레센 내에 사람들을 해코지하는 나쁜 아이들이 돌아다닌다고 해서…….”


그러니까 카페는 친구랑 같이 트레센에서 싸우자 귀신아를 찍고 있었다는 뜻이다.

미친 그게 뭐야 나 좀 무서워지려고 해.

내가 슬쩍 뒷걸음질 치려 하자 카페는 황급히 내 옷깃을 붙잡았다.

그리고 이어진 말은 내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은 것이었다.


“저기…… 트레이너 씨!”

“어어, 왜?”

“제 전속 트레이너가 되어주시지 않겠어요?”

“응?”


이해할 수 없는 소리였다.

트레센에 온 뒤,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네임드 말딸들의 전속계약 현황을 파악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때 확인한 바로는 네임드 말딸들은 전부 이미 트레이너가 있는 상태였다.

그것 때문에 야요이를 노린 거니까 이건 확실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구나. 넌 이미 담당 트레이너가 있지 않니?”

“……! 이미 저에 대해 찾아보셨던 건가요? 그렇다면 설명이 빠르겠네요. 저와 타키온 씨가 같은 팀에 소속되어 있는 것도 아시나요?”


카페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와 함께 달려온 저는 트레센에 입학한 뒤에도 저 아이와 둘이서 훈련을 계속해나갔답니다. 그러나 아무리 빠른 우마무스메라도 담당 트레이너가 없다면 레이스에 나갈 수가 없죠. 그때 제게 이름을 빌려주신 것이 타키온 트레이너셨어요.”

“그렇게 레이스에 나갈 수 있게 된 이후로도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훈련은 저 아이와 함께했답니다. 타키온 트레이너 씨는 안 그래도 타키온 씨의 연구에 어울려주느라 늘 바쁘시니까요.”

“그러니까 제게 이미 트레이너가 있다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요. 제가 정식 트레이너를 구하게 되면 그 분도 흔쾌히 명의를 넘겨주실 테니까요.”


그러니까 자긴 친구를 롤모델이자 트레이너삼아 살아왔는데 그것만으로는 레이스에 나갈 수 없으니 평소 친분이 있던 타키온 트레이너의 이름만 빌리고 있는 거라는 소리였다.


“무슨 소리를 하는진 알겠는데 그렇다고 나한테 트레이너를 해달라고 하는 이유는 뭐야?”

“그야 당신은 저 아이를 볼 수 있으니까요.”


‘친구’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저 아이는 제 훌륭한 롤모델이 되어주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트레이너로서의 능력을 갖춘 건 아니에요.”


평생을 찾아왔던, 그러나 결국 만날 수 없을 거라 포기했던 자신과 같은 눈을 가진 사람.


“제게는 전문적인 트레이너가 필요해요. 그것도 제 친구를 볼 수 있어서 그걸 바탕으로 저를 훈련시켜 줄 수 있는 능력 있는 트레이너가.”


어쩌면 이 우주에서 단 하나뿐일지도 모르는 사람.

그런 사람이 마침 중앙 트레센의 트레이너로 부임해 자신과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운명 같은 만남.

절대로 놓칠 수 없었다.


“…… 네 친구를 보는 건 둘째 치고 내가 능력 있는 건 어떻게 확신하고?”

“외람되지만 주무시는 동안 책상 위의 자료들을 조금 읽어봤답니다. 전문 트레이너가 아닌 일개 우마무스메일 뿐인 제가 봐도 상당히 인상적이더군요.”


그 말에 나는 내심 뜨끔했다.

내가 모아놓은 자료들은 스테이터스를 볼 수 있는 치트키를 이용해 수많은 말들을 분석해놓은 자료였으니까.

그것들은 첨단장비로 계측한 그 어떤 값비싼 데이터보다도 정확한 자료들이었다.

카페는 이어서 양손으로 내 손을 꼭 쥐며 말했다.


“부디, 제 트레이너가 되어주세요.”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이 제안을 받아들였을 때의 장점과 단점.

그리고 내가 정말로 이 아이를 책임져줄 수 있는가 하는 고민까지.


“알았어. 나도 담당이 하나뿐이라 한가한 참이었고. 네가 원한다면 너 하나쯤은 봐줄 수 있어.”

“정말요?”


그 말에 카페의 표정은 눈에 띄게 밝아졌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녀는 아직 고등부 1학년생에 불과했다.

성인남성을 붙잡고 중요한 부탁을 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으리라.


“그래도 일단은 타키온 트레이너 씨도 만나보고, 너도 내가 야요이랑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 결정하자고.”

“네!”


카페의 꼬리가 기분 좋은 듯 위로 일어서서 살랑살랑 흔들렸다.


“커피 좋아하세요? 방금 일어나셔서 아직 졸리실 텐데 제가 잠 깰 수 있게 커피라도 타드릴게요.”

“사무실에는 믹스커피밖에 없는데?”

“그거라도 괜찮아요.”


카페는 내가 간밤에 SS를 쫓기 위해 집어던진 커피믹스를 들고 물을 받기 위해 사무실을 나섰다.

덕분에 SS와 단둘이 사무실에 남게 된 나는 어색하게 그쪽을 바라봤다.

SS는 내 시선을 받고는 칫 하며 고개를 돌렸다.


[흥, 거절한다면 씹어먹으려 했다만.]

“뭐야 시발, 말도 할 수 있었어?”


생각해보니 원래 트레센 악령들이 우우우 거리면서 소리도 내고 그랬던 것 같긴 하다.

근데 난 그게 왜 들리냐.

이것도 커신이 보이는 거랑 같은 이유인가?

아니면…….


“통번역 치트능력이 커신 말도 통역해주나……?”


어쩌면 이 치트능력.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대단한 능력일지도?


“자, 여기 커피요.”

“응, 고마워. 그런데 밤새 돌봐준 사람한테 이런 말 하긴 좀 그렇긴 한데 너 여기 있어도 괜찮아? 외박했다고 기숙사에 난리가 나 있다던가 하는 거 아냐?”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슬슬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이따가 다시 올게요.”

“알았어. 얼른 들어가 봐.”


카페가 꾸벅 인사하고 사무실을 떠나자 SS도 입술을 삐죽이며 그 뒤를 따랐다.

잠시 소파에 앉아 모닝커피를 즐기던 나는 빈 종이컵을 들고 일어나 내 책상으로 향했다.


“이번엔 어쩔 수 없었지만 앞으로는 이 자료들이 어디 유출되지 않게 잘 정리해둬야겠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책상 위의 자료들을 하나로 모아 열쇠로 잠글 수 있는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는 서랍 안에 있는 물체를 발견하고 그대로 정지했다.


“…… 허?”


검은 레이스로 장식된 고급스러운 실크 팬티.

당연한 소리지만 내가 서랍에 집어넣은 건 아니었다.


“어젯밤에 작업할 때도 이런 건 없었는데.”


그렇다면 기절해있던 동안 누군가가 여기에 넣어뒀다는 뜻.

또한 내가 기절해있는 동안 여기에 있었던 건 맨해튼 카페뿐이었다.


“담당마를 잘못 받은 것 같은데.”


나는 말없이 새로운 학생의 선물을 품속에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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