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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그날 오전을 보냈다.


“그때 슬쩍 돌아누웠어야 하는데.”


노팬티 무릎베개? 오우쉣 이거 못 막거든요.

그러나 당시의 나는 고개만 돌리면 보물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후회해봐야 어쩔 수 없는 일.

침착함을 되찾은 나는 문득 의문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니 내가 그때 트레이너 제안을 거절했으면 이 팬티는 어떻게 되는 거지?”


카페는 내가 일어나고 나서야 나에게 트레이너 제안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팬티를 넣은 건 그보다 전, 내가 기절해있을 때가 아닌가?

팬티까지 넣어놨는데 내가 제안을 거절했으면?


“…… 거절하면 미투, 승낙하면 선물이었던 건가?”


깨닫고 나니 오싹했다.

이거 아무것도 모르는 사이에 암살당할 뻔 한 거 아닌가?


“으음, 이대로 앉아있어 봐야 일도 손에 안 잡히고. 이참에 타키온 트레이너 씨나 만나봐야겠다.”


카페의 일도 있었지만 사실 개인적으로도 좀 궁금한 사람이었다.

어떻게 살아있는지부터 어떻게 살아있는 건지까지.

이세계 전생에 귀신까지 보고 나니 사후세계에 대한 관심이 스멀스멀 솟아올랐다.

전문 스위퍼한테 암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지금 내 상황을 생각해보면 나는 좀 더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했다.


“팀 타키온 부실은 여기인 것 같은데.”


똑똑똑!


“계세요?”


내 노크에 잠시 안에서 우당탕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 뭐하는 건가 모르모트 군! 시험관을 깨부수다니!’

‘뭐라고? 온몸이 빛나고 있어서 눈앞이 안 보여? 그럼 어쩔 수 없군. 내가 손을 잡아줄 테니 꼭 잡고 따라오게나.’

‘흐음, 손을 잡는 것만으로는 위험한 것 같군. 팔짱을 끼는 게 좋겠어.’

‘아앗, 숨결이 귓가에 닿아서…….’


이러다 문 열어주는데 한참 걸리겠다 생각한 나는 그냥 거침없이 문을 열어젖혔다.

타키온네 부실은 예상대로 운동부 부실이 아니라 연구실로 꾸며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아그네스 타키온이 자기 트레이너에게 딱 달라붙어 끈적대고 있었다.

키 차이로 인해 우마무스메 특유의 큰 귀에 바람이 닿았는지 아주 온몸을 배배 꼬고 난리가 난 상태였다.


“도-모 타키온 앤드 타키온 트레이너 상. 야요이 트레이너입니다.”


타키온 트레이너는 눈앞이 안 보이는 상태에서도 반짝임을 이용한 모스부호로 아이사츠를 해왔다.

아이사츠는 실로 중요하다. 우사기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다행히 내 통번역능력은 모스부호도 번역해주었기에 나는 그와 대화가 가능했다.


“실은 제가 맨해튼 카페에게 트레이너가 되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반짝!(허허... 거짓말?)


“아니, 진짭니다. 어쨌든 빨리 계약을 이전해주십쇼.”


반짝반짝!(예, 대신에 나중에 다른 말 하지 마세요.)


타키온 트레이너는 이미 들은 바가 있는지 내가 바로 그 트레이너였냐며 흔쾌히 카페의 트레이너 자리를 넘겨주었다.

그러면서 결국 자신을 이해해줄 사람을 만나 잘 되었다며 카페의 일을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모습이 참으로 순수한 사람 같았다.


반짝반짝반짝!


“아유 뭘요. 제게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나저나 실례지만…… 왜 빛나고 계십니까?”


반짝!


“약을 먹어서 빛나는 건데 왜 옷까지……?”


반짝반짝 반 짜라작작 반짝짝!


“헉! 그럼 혹시 남는 약 좀 있습니까?”


이건 생존 트레이닝에 활용할 수 있으리라!

그에게서 약효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들은 나는 마녀의 암살에 대비하기 위해 남은 약을 받아 챙겼다.

그러는 사이 수업시간에 당당히 수업을 째고 연구실에 틀어박혀있던 아그네스 타키온은 흥미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카페의 ‘친구’를 볼 수 있는 눈이라. 혹시 내게 자네의 눈을 연구할 수 있게…….”

“제 트레이너에게 무슨 짓을 하시려는 건가요. 타키온 씨.”


끼앾!

나는 소리 없이 다가와 등 뒤에서 나타난 카페를 발견하곤 펄쩍 뛰어올랐다.


“카페? 지금 수업시간 아니니?”

“감기에 걸린 것 같다고 하고 잠시 나왔어요. 그러다가 트레이너 씨의 냄새를 따라 여기까지 왔고요.”

“내가 그렇게 냄새나?”

“그야 씻지도 못하고 외박하셨잖아요? 저와 단둘이.”


카페는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잡고 과시하듯이 타키온을 바라보았다.

아무튼 틀린 말은 안 했다.

타키온 트레이너는 그 말에 홍등가 불빛처럼 새빨갛게 반짝였고, 타키온은 입을 떡 벌리고 있다가 사사삭 달려와선 카페에게 속삭였다.


‘나중에 어떻게 했는지 방법 좀 가르쳐주게.’

‘제 트레이너 씨에게 관심 끄겠다고 약속하신다면요.’


거래는 순식간에 성사되었다.

카페는 나중까지 기다릴 것 없이 나를 사로잡은 방법을 바로 타키온에게 보여주었다.


“슬슬 제 팬티 좀 돌려주실래요? 이러다 정말로 감기 걸릴 것 같아서요.”

“자, 여기.”


카페의 말에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안주머니에서 팬티를 꺼내주자 타키온과 타키온 트레이너의 눈이 격렬히 흔들렸다.


“저어 카페 양? 그게 거기에 왜 있는 건가?”


옆에서 손발을 덜덜 떨든 말든 카페는 아무렇지 않게 그 자리에서 받아든 팬티를 입었다.

팬티를 올리는 과정에서 치맛자락 아래로 슬쩍 보인 엉덩이는 과연 중상급이었다.

나는 충격과 공포로 덜덜 떠는 저 두 사람과는 달리 침착하게 생각했다.


‘오늘은 팬티스타킹이 아니라 그냥 스타킹이었군.’


아니면 갈아 신은 걸까? 일부러 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갈아 신은 거면 좋겠다.

그럼 나한테 엉덩이를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까지 했다는 거잖아.

생각만 해도 직업만족도가 상승하는 기분이었다.


“자, 그럼 갈까요.”


카페는 내 손을 잡아끌었고,

친구는 울먹이는 눈빛으로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


“부우우~ 나만 있으면 된다고 했으면서!”


카페와의 계약사실을 들은 야요이는 단박에 이사장에서 그냥 야요이가 되어버렸다.


“한 명 더 들인다고 네 훈련을 안 봐주겠다는 게 아니잖아. 애초에 시간도 남아도는데다 다른 팀원이 있는 편이 네 훈련에도 유리하다구?”

“하지만, 하지만……!”


이대로 귀여운 떼를 쓰는 야요이를 좀 더 구경해도 좋겠지만, 그랬다간 후폭풍이 커질 것 같았으므로 나는 슬슬 그녀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만하고 일어나렴. 카페가 곤란해 하잖니.”

“또 내가 아니라 다른 아이 눈치만 보고!”

“무슨 소리니. 너를 위해 하는 말이란다?”


이건 진짜였다.


“카페도 네가 이사장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그렇게까지 연기할 필요는 없어.”

“그…… 친구가 돌아다니다 옷 갈아입으시는 장면을 보고 말해줬거든요.”


그 말에 야요이는 저게 사실이냐는 듯이 나를 돌아보았고,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할복! 지금 당장 자결을!”


이후, 나는 어디선가 식칼을 물고 온 고양이를 말리기 위해 진땀을 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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