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가독성이 개같이 멸망했다는 피드백이 많아서 가독성 늘려봤음.



하루 우라라

[하루 우라라 힘내라(ハルウララがんばる)] - 한섭 [하루 우라라 파이팅]

원본이 되는 레이스는 없음. 아니 어쩌면 우라라의 113전 레이스 전부일지도 모름. 고유 칭호 조건은 "팬 수를 55만 명 이상으로 만든다."임.


우라라는 96년 태어난 일명 00세대임. 동기로는 티엠 오페라 오, 어드마이어 베가, 나리타 톱 로드, 메이쇼 도토 등이 있음. 다만 우라라는 지방 경마장인 고치 경마장에서 평생을 보냈고 저 위 넷은 중앙에서 활약하다 보니 우라라를 마주칠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음. 우라라가 한창 경주마로써의 생을 보내던 00년대 일본에는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리는 버블 사태가 한참 진행되고 있었음. 버블이 뭔지 모르는 어린 말붕이들을 위해 설명해주자면, 간단히 말해 경제가 붕괴되어서 아무것도 못하는 거임. 그런 와중 우라라는 일본인에게 "연패가 계속됨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달리는 말"로 소개되어, 전 일본에서 인기를 끌게 되었음.


오구리 이후로 중앙이든 지방이든 경마장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몰랐었지만, 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하자 우라라가 있던 고치 경마장도 파산 직전의 상태까지 갔음. 하지만 그런 시대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달렸던 우라라를 보고 사람들은 "자살을 생각했었다가 우라라를 보고 마음을 돌렸다", "루저의 별"이라며 띄워주기 시작했음. 무려 당대 일본 총리였던 코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까지 "이기는 걸 보고싶었다"고 나중에 회고하기도 했을 정도로, 우라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인기는 엄청났음.


그런 와중 106번째 경기였던 "YS 더비 조키 특별"에서는 우라라가 그 전설의 기수 타케 유타카를 안장에 태우고 달리게 됨. 하지만 단순히 우라라를 이기게 해주자는 취지에서 일본 최고의 기수를 데려왔다는 겉 스토리와는 다르게 뒷이야기는 차라리 안 듣는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복잡하고 냉정함.


비록 우라라의 조교사나 구무원들만큼은 "우라라를 절대로 이기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지만, 그 주위 사람들은 "우라라는 절대로 이기면 안된다"라고 말해왔다고 함. 하지만 이는 냉혹한 승부의 세계이자 이기지 못하는 말들의 최후를 아는 경마업계의 사람들에게 볼 때 하루 우라라는 마치 모욕과도 같은 존재였다는 평이었음. "팬덤빨, 언론빨 여론빨로 살아남는 똥말을 보면 기분이 나쁘다, 말이나 기수나 미친듯이 노력했는데도 은퇴해서 도축당하는 말들에게 미안하지도 않냐."는 말을 듣기까지도 함.


물론 우라라의 잘못은 없고, 경마업계 사람들의 생각처럼 이기려고 노력을 하기는 했던 우라라 관계자들 또한 잘못이 없음. 하지만 그 주위 사람들이 우라라는 이기면 안된다는 평을 남기는 게 경마업계의 빈축과 반발을 샀고 때문에 우라라는 경마업계에서 눈엣가시같은 존재가 되었음.


이런 와중에 특별히 초대받아 우라라를 타게 된 타케 유타카 기수도 상당한 불쾌감을 표했음. 애초에 거절할 생각이었다가도 1만 3천명이라는 의례적인 수의 관객이 몰려들자 그제서야 그래 한 번 타주자 라고 생각했다고 함. 우라라를 탄 이후에도 타케 유타카는 "브레이크도 가속도 뭣도 듣질 않는 말","얘도 앞으로 나가긴 하는구나"라는 참혹한 평을 내림.


무엇보다 타케 유타카가 빡쳤던 이유는, 이게 우라라의 라스트 런, 은퇴전이라는 구라를 쳐서 초대했기 때문임. 다들 아시다시피 우라라는 총 113전을 뛰었고, 이 경기는 106전째였기에 앞으로 7경기를 더 뛰고 은퇴함. 타케 유타카는 그나마 생각이 약간은 바뀐 건지 이미지 관리를 하는 건지, 시간이 지나 05년에 했던 인터뷰에서는 "그 정도로 사람을 부르고 광시곡에 휩싸기에 하는 우라라는, 다른 의미로의 명마라고 부를 만하다."고 좋은 평가를 내렸음.


그렇게 04년 우라라의 마주가 안자이 미호코라는 사람에게 넘어가고 05년 3월을 기점으로 은퇴를 발표하게 됨. 우라라의 조교사는 우라라가 고치 경마장에서 은퇴전을 치르기를 원했지만, 안자이 미호코는 마주가 자기이니 자기 말을 들으라며 우라라를 도치기 현으로 이송시켰다고 함. 그렇게 우라라는 자기 동생인 오노조미도오리가 우승한 04년 8월 3일 경기 "하루 우라라 챌린지"에서 5착을 찍고 고치 경마장에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됨.


05년 3월 은퇴 예정이었던 우라라는 은퇴전도, 은퇴식도 마주의 "우라라 건강상의 문제"라는 답변에 의해 계속 거부당했고 결국 치바에 있는 마사 팜이라는 목장에 맡겨짐. 문제는 이 안자이 미호코라는 인물이 말을 맡겼을 때 내는 예탁료인 월 8만 엔 (90만 원 상당)조차 중간부터 내지 않고 런해버렸다는 점. 때문에 마사 팜에서도 우라라를 도축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팬들에게 기부금이라도 모으려고 소식을 알림. 그렇게 행적이 묘연하던 우라라가 마사 팜에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된 팬들은 기부금은 물론, "하루 우라라의 모임"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주기적으로 우라라와 마사 팜의 다른 말들을 후원하고 있음.


113전 0승 113패라는 기록을 남기고서 은퇴한 루저의 별 우라라였지만 그럼에도 엄청난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지금도 잘 살아가고 우마무스메에도 나와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음. 고유 칭호 조건이 "팬 수를 55만명 이상 모은다."인 이유가 바로 이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