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스가 끝났지만 폭우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결승전에 겨우 도달한 우마무스메들이 숨을 헐떡이며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무릎을 잡고 서 있었다. 결과가 나오기 전에 자리를 떠난 트레이너들로 관객석은 무척이나 한적했다.


 자신의 가능성을 트레이너들에게 선보이는 선발 레이스. .


 메지로 가문의 비밀병기, 메지로 가문의 아가씨. 그렇게 불리며 기대했던 것에 한참이나 못 미치는 결과에 사람들은 맥퀸에 대한 관심을 지워내고 있었다. ‘당연히’ 승리를 해야했다.


 다만, 어떻게, 몇 마신 차이로, 어떤 기술로 압도적인 승리를 쟁취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 ‘겨우’ 혹은 ‘아주 위험하게’ 승리했다면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주기에는 충분한 일이었다.


 다만, 메지로 맥퀸은 ‘아주 위험하게, 아슬아슬하게’ 승리조차하지 못 했다. 트레이너들의 기대를 무너뜨린 것처럼 그녀에게 다가가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이 무대의 주인공은 당연히 메지로 맥퀸이라 생각했엇지만,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아이네스 후진이 진정한 주인공이 되어 트레이너들의 구애를 받고 있었다.


 낯선 관심에 당황한 듯 손사레를 치며 꾸벅꾸벅 인사를 하는 후진의 모습에 트레이너들의 평가는 자연스레 올라갈 수 없었고,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의 팀에 넣기 위해 여러 제안을 제시하는 목소리를 높여갔다.


 메지로 맥퀸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자신 대신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우마무스메를 흘깃 바라보고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발이 푹푹 빠지는 잔디를 지나 경기장 밖으로 향했다.


 “멋진 경기였어.”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맥퀸의 귀가 그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한다. 맥퀸은 부르르 떨리는 입꼬리에 애써 힘을 준 채로,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우아하게 고개를 돌렸다.


 우선은 그가 입은 복장이 눈에 들어왔다. 청남색의 정장 수트. 레이스에 저런 복장을 입고 온다면 승부복을 입은 우마무스메이거나, 아니면 트레이너였다.


 정장 상의, 단추를 잠그는 왼쪽 부분에만 내려오는 흰색 줄무늬는 너무 딱딱하게 느껴지지도, 그렇다고 가벼워 보이지도 않은. 그 사이를 절충한 것처럼 보이는 복장이었다. 맥퀸은 


 푸른빛이 도는 검은 눈동자는 사람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묘한 인력이 있었다. 맥퀸은 그 눈동자를 멍하니 보았다. 무슨 대답을 할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잊어버렸다.


 “트레이너인가요?” 

 “그래, 트레센 학원에 소속된 트레이너지. 지나치다 한 번쯤은 봤을 지도 몰라.”


 그가 건네준 명함을 받았다. 맥퀸은 이사장 직인이 찍혀 있는 명함을 보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도… 실망했나요.”


 트레이너는 머리카락 색과 똑같이 닮은 연보라빛 눈동자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히려 감동했지. 아주 멋졌어..”

 “감동….”


 맥퀸은 입안에서 맴도는 그의 말을 따라 중얼거리며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트레센의 공식 트레이너라면 트레이닝을 원하는 우마무스메들이 줄을 설 터. 졸전이라고 표현해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경기를 치룬 자신에게 이렇게 찾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트레이너를 구했나?”


 맥퀸은 고개를 저었다. 7착. 보통 우마무스메라고 해도 이런 성적이었으면 트레이너를 구하기 힘들 확률이 높았다. 메지로 가문의 이름을 앞글자에 넣고 있는 맥퀸의 경우는 아예 불가능할지도 몰랐다.


 메지로라는 이름의 무게를 감당해야하지만, 자신이 보여준 퍼포먼스는 그 무게를 감당할 가치조차 없는 그런 결과였으니까.


 “감동이라… 비꼬는 것인가요?”

 “아니, 진심이야. 그 이를 악물고 뻗었던 다리, 결승점에 다다랐을 때에도 땅을 밀어내고 앞으로 가는 그 다리, 그 근성, 그 분한 마음. 다른 트레이너들은 못본 것 같지만. 나는 확실히 봤으니까. 말하는 거야.”

 

 맥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그녀의 귀는 여전히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에 트레이너는 실망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너라면 할 수 있다. 너라면 이길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믿어. 재능이 있어.”


 구애와 같이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남성의 모습에 맥퀸은 저도 모르게 한 발자국 물러섰다. 겨우 ‘코’차이로 승리한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는데, 이 남성은 무엇일까.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나는 네 가능성을 봤어. 2000m 폭우, 진창이나 다름 없는 경기장에서 계속해서 달리는 모습을 계속 눈에 담았어..”


 맥퀸의 고개가 슬쩍 움직여 트레이너를 보았다. 그는 잔뜩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성의 모습에 긴장한 듯 두 발자국 뒤로 물러선다.


 “2200m였으면 더 앞에 있었겠지. 오늘 같이 달린 우마무스메들이었다면 5착으로 마무리했을 레이스였어..”


 맥퀸은 다시 고개를 돌려 청년의 눈을 보았다. 트레센의 트레이너라고 하기에는 젊은, 아니 어렸다. 자신보다 한참이나 연상이겠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트레센의 트레이너들과 비교하자면 그러했다.


 “2500m 였으면 이이네스 후진과 비슷했을 테고.”

 “...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표정.”


 트레이너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분하다는 그 표정, 이게 아니라는 그 표정, 마치 커다란 족쇄를 발목에 달린 듯한 그 표정.”


 맥퀸은 아무런 말도 없이 자신 앞에 선 트레이너를 노려보았다. 불만이 가득해 보이는, 자신에 대해서 잘난듯 떠드는 그 모습에 눈을 떼지 않앗다.


 “3200m 였다면, 지금의 몸상태라도 아이네스 후진을 가볍게 이겼겠지..”


  3200m, 메지로가의 비원. 텐노상을 직접 언급하는 그 이야기에 맥퀸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트레이너는 웃지 않았다.


  “선발레이스에서 7착, 그런 이야기를 논하기에는 절망적인 성적인데. 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시다니, 광오하시네요 트레이너. 당신은 제가 텐노상을 거머쥘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그 한치도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트레이너의 모습에 맥퀸은 심호흡을 하듯이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었다. 경계심이 가득한 그 눈동자는 자신 앞에 선 트레이너를 올곧게 보고 있었다.


 그리고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전보다 한껏 날카로워진 눈으로, 살이 에는 것 같은 차가운 눈동자가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과 함께 해야겠다는 조건이 붙겠군요. 이야기는 잘 들었습니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다음 선발 레이스를 준비해야해서요. 안녕히 계세요.”


 불쾌하다는 듯이 그녀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등을 돌렸다. 


 “아니, 내가 없더라도. 맥퀸은 할 수 있어.”


다만, 뒤에서 이어지는 목소리에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맥퀸은 웅얼거리듯이 입술을 달싹였다.


 “진심으로….”


 그녀는 다시 등을 돌려 트레이너를 보았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래,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


 맥퀸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그저 입을 가리고 옅게 웃을 뿐이었다.


 “가문에는 전설이라고 불렸던 트레이너들이 많아요. 현역으로 뛰고 있는 이들도 있지요. 제 기록을 관리하고, 제 성장치를 일일이 수치화해서 확인하는 이들이 있답니다. 그런 사람들도 텐노상 우승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합니다.”


 맥퀸은 자신보다 한참이나 큰 트레이너를 올려다 보며 그렇게 이야기했다. 직접 그녀를 앞에 두고 있는 그는 왜인지 모르게 그녀가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츠키상은 가장 빠른 우마무스메가, 더비는 가장 운이 좋은 우마무스메가, 킷카상은 가장 강한 우마무스메가 우승한다.라는 말이있지요. 그러면 텐노 상은 어떤 우마무스메가 우승을 할까요?”

 “메지로 맥퀸이라는 우마무스메겠지.”


 맥퀸은 웃었다. 기뻐보인다기보다는, 허탈한 것처럼 보였다.


 “당신은 저에게 ‘어떤’ 것을 보았길래 그런 말을 하시는 건가요.”

 “보랏빛 바람. 결코 멈추지 않는 바람. 결국 바람은 결국 저 너머로 도달한다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너와 함께 텐노상의 우승을 보고 싶다, 메지로 맥퀸. 함께 하자.”


 맥퀸은 자신 앞에 선 트레이너를 보았다. 서정적인 비유였다. 그는 마치 허락을 구하듯이 자신에게 손을 뻗었다.


 “비과학적이고, 논리적이지 않고, 감정적이네요. 그런 이야기를 했다가는, 당신의 트레이닝을 받으러 오는 우마무스메들도 죄다 떨어져 나갈지도 몰라요…  하지만 믿어보고 싶네요. 트레이너.”


 메지로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무어라 설명하기 힘든 그런 감정에 자신에게 손을 뻗는 트레이너의 손을 잡았다.




/////


 항암치료 중인 말붕쿤의 회복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