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과 트레이너는 닮는다.


처음부터 비슷한 사람들끼리 끌려 만나는 경우도 있고, 정반대였던 사람들끼리 닮아가는 경우도 있다.


나의 경우는 전자다. 지금 서류들을 보면서 컴퓨터로 작업하고 있는 남자가 내 트레이너다.


색이 빠져가는 염색된 천연 파마, 날카로우면서 큰 눈, 다부진 어깨와 체격.


마치 아이돌스러운 외형이다. 그것도 짐승미 넘치는.


나는 현역 모델이니까,  정말로 우리 둘은 닮았을지도 모른다.





“시티, 무슨일이야.”





하지만,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의 외형이 싫다는 건 아니다. 기왕 오래 볼 얼굴이면 잘생긴 편이 좋지.


하지만 문제는, ‘나에게만’ 잘생긴 얼굴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그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별로, 아무일도 아니야.”


“···그래.”


“전혀 아니라는 얼굴이네. 당신.”


“뭐야, 이런식으로 넘어갈 생각 아니였어? 시티?”


“그건 당신의 희망이겠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내 마음이잖아?”


“그래, 그럼 네 마음대로 해. 뭔가 할 말이라도 있어?”





이렇게 되버렸으니, 묻고 싶었던 걸 질문할까.


트레이너의 여러 언행을 보면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었던 것을 질문했다.





“당신, 여자랑 사귄 경험 있지?”




보통이라면 여기서 당황하겠지,


하지만 그는 나를 닮아서 선수였다.


이런 질문에는 익숙하다는 듯한 태도로, 그는 피식 웃더니 대답했다.


여전히 재수 없는 표정이다.




“아니라고 하면 믿을거야?”


“아니. 당신의 외모로 경험 없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그럼 애초에 물을 필요가 없잖아.”


“됐으니까 대답해.”




트레이너가 내 말을 모두 듣고는, 마시던 머그컵을 내려 놓는다.


해외 영화에서나 볼 법한, 절도 있는 움직임.


피로에 절인 듯한 움직임이 멈추자, 퇴폐미 넘치는 목소리로 그는 말했다.


섞여 나오는 한숨 소리는, 마치 익숙한 질문을 들어 지친 것 같다는 소리였다.




“근데, 그건 왜 물어?”


“...하아?”


“내가 연인이 있는 경험이 너의 트레이닝에 영향이 가?”


“···.”


“왜, 대답하기 곤란해?”




대답하기 싫다.


내가 그를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이 느낄까봐, 질척이는 것처럼 느낄까봐.


나는 망설였다. 어떻게 대답해야 그에게 들키지 않으면서, 대답까지 들을 수 있을까.


솔직하게 말하면, 지는 것 같았다. 저렇게 뻔뻔하게 웃는 미소가 열 받았다.


열이 받으면서도, 저런 표정도 잘생겼다고 느끼는 내 머리가 싫었다.


나는 겨우 참은 끝에 적당한 변명거리를 꺼내기 위해 입을 열었다.




“...사실은.”


“여자친구라면 있었어.”




변명을 털어내기 직전. 그가 갑자기 대답했다.


나 혼자 생각도 많이하고, 열도 올랐다는 사실이, 굉장히 열받았다.


겨우 마음 속으로 심호흡하고, 나는 그에게 다시 질문했다.




“....후우, 얼마나.”


“글쎄, 몇 번일거라 생각해?”


“언제까지 그딴 식으로 대답할거야?”


“네가 못 참기 직전까지.”




주먹을 꽉 쥐다가, 귀엽게 웃고 있는 그를 보니까 힘이 스르륵 풀렸다.


외모가 깡패라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저런 뻔한 수에 휘둘리는 게 싫었다.


내 주먹을 슬쩍 보던 트레이너가, 다시 컴퓨터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짧은 만남이나 썸까지 모두 세면 나도 잘 몰라, 오래 사귄 건... 3명 정도.”


“뒤의 이야기는 둘째치고, 앞은 뭔데? 당신, 혹시 클럽이라도 다녔던거야?”


“굳이?”


“...굳이,라. 당신도 참 재수없네.”


“나도 잘 알아. 평생 그런 소리를 듣고 자랐는 걸.”




별 일 아니라는 것처럼, 그는 키보드를 계속 쳤다.


나도 때때로 저런 대답을 하기도 하는데, 저렇게 보였을 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나빴다.


거울 치료가 이런 느낌이겠지. 나는 그가 타준 커피를 마시며 나는 저딴식으로 대답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


커피 한 모금을 천천히 음미한 나는, 그에게 이어서 질문했다.




“...그 중에서, 첫 번쨰로 만난 여자는?”


“내 첫사랑? 중학교때 만났어, 한 2년 만났나?”


“···.”




기분이 나쁘네.


왜 기분이 나쁘냐고?


...글쎄, 나도 잘 모르겠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속사포로 이어 말했다.




“걔가 고백했어, 어릴 적부터 대충 알던 사이였지.”


“···.”


“그리고 어느날, 의견이 안 맞아서 헤어졌어. 다 그런식이잖아?.”


“···구체적으로는?”


“ ‘너는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아.’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었지, 무슨 느낌인지 알겠지?”


“뭔지 알겠네,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었어?”


“어디까지 갔을 거라 생각해?”


“...너.”


“너를 화나게 할 생각은 아니야, 순수하게 네가 어떤 여자인지 궁금해서 그래.”




왠지 대답하기 싫었지만, 그의 눈빛이, 그의 표정이, 어느새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그가.


나에게 대답을 강요했다. 턱을 괴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는 방의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에게 힌트를 요구했다.




“..언제 사귀었어?”


“중학교 2학년때 사귀어서, 졸업식에 헤어졌어.”


“그럼 키스는 했겠네.”


“어, 여름 방학을 둘이서 보낼 때.”




...구체적인 대답에, 문득 그 광경을 상상해버렸다.


그리고 화가 났다. 왜?


왜 화가 났을까, 라는 점을 곰곰히 생각해보았지만,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의 그의 능글거리는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어딘가 그에게서 놀아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나는 표정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그럼, 다 했겠네?”


“다 했다니?”


“다 아는 사람들끼리 왜 그래? 더 직설적으로 말해줘?”




이렇게까지 성난 듯이 말하니, 그가 내 표정을 살펴보았다.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한 나와, 입을 다물고 나를 관찰하는 그의 시선이 마주친다.


내 표정을 보고 무언가를 생각했는지, 그가 지루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이쯤만 하고 정답을 말해줄게, 정답은.. 아니야.”


“의외네, 소꿉친구인 여자 아이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을 것 같은데.”


“말이 심하네, 나는 그런 쓰레기는 아니라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쓰레기인 거 알지?”


“아닌 사람도 있지, 예를 들면 나 같은 사람이 그렇고.”


“시끄러워.”




그리고 다시, 열불이 난 속을 달래기 위해 커피를 마신다.


부드러운 커피의 향내음이 마음을 안정시켜주었다.




“한 잔 더 내려줘?”


“...응.”


“대신 카페인은 줄일게, 일도 마침 다 끝났어. 이제 돌아가서 쉬어.”




그리고 조용히, 그는 커피를 내린다.


그의 정장을 입은 뒷태가, 눈에 들어온다.


슬쩍 보이는 옆 얼굴은, 커피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역시 얼굴이 깡패라는 옛말은 틀림이 없었다.


뺀질거리고 재수없는 소리만 하는 내 트레이너도, 저런 때에는 멋져 보이니까.


나만 볼 수 있는 얼굴이라면 참 좋을텐데.


그런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당신, 마스크라도 쓸 생각은 없어?”


“들었던 제안이네, 유감스럽게도 없어.”


“헤에, 이유는?”


“검은색의 멋드러진 마스크를 껴고 갔었는데, 어디 아이돌이 우리 동네에서 여자를 몰래 만나고 다닌다고 동네에 소문이 나더라.”


“..뭔지 알 것 같아, 연예인 마스크. 라고 했던가. 해외에서 유행했던 것 같은데.”


“맞아, 그리고 말이야...”





탁.


내 앞에 커피를 내려 놓은 그가,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수 센치만 그가 앞으로 가면, 그의 입술이 내 얼굴에 닿을 거리.


그의 숨소리가 피부에 닿는다. 그의 눈빛이 나를 고요히 바라본다.


사락거리는 머리카락 소리가 귀에 지나가길 수 초, 그가 다른 손으로 내 턱을 잡으며 말했다.




“그 말을 했던 연인은 나를 독점하고 싶어서 그런 제안을 했어. 너는 왜 그런 질문을 했어? 골드 시티.”



...역시 너무 뻔했으려나.


나는 당황하지도 얼굴을 붉히지도 않았다.


우리 둘은 프로니까, 이런 일로 당황하거나 먼저 무너지지 않는다.




“글쎄? 어떨거라 생각해, 당신(아나타)은?”


“...뭐야, 유부녀 코스프레?”


“어머? 그렇게 느껴졌어? 아직 우리는 그런 사이 아닌데.”


“내 얼굴에 손은 올리면서 할 말은 아니였는데, 게다가 당신(아나타)라... 평소에는 그렇게 안 부르잖아.”




지금 우리 모습을 바깥에서 본다면, 다정한 커플로 보일까.


거리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둘이서,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까.


반대로 뒤집혀서 보이는 그의 얼굴을 보고, 나는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그래서, 싫었어?”


“까칠하지만 천 년에 한 번 태어날 법한 미녀인 아내라, 나는 싫지 않아. 너는?”


“남 속 뒤집는 걸 좋아하지만 얼굴은 잘생긴 남편이면, 나 같은 여자에게 딱 어울릴 것 같은데.”


“한 마디를 지지 않네.”


“당신(안타)도.”





그리고, 서로가 말을 멈춘다.


고요한 초저녁의 시간에, 우리 둘은 조용히 시선을 마주한다.


서로의 얼굴을 평가라도 하듯이, 지긋하게 바라본다.


이런 식으로 시작했던 만남이었지, 서로가 ‘그래도 얼굴은 괜찮으니까’ 같은 느낌으로 시작했던 계약이다.


서로가 외모만 믿고 활동하는, 그런 꼴불견인 사람이 아니라는 건,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었지.


그도 나와 비슷한 추억을 떠올렸는지, 눈빛이 살짝 아련하게 바뀌었다.


그의 눈빛을 보자, 나는 아까까지 나누었던 질문이 떠올랐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그에게 질문했다.





“당신의 연인 중에, 나 같은 사람은 없었어?”


“···없었지, 우마무스메도 없었고, 너 같은 외모의 여자도 없었어.”


“그럼, 내 성격과 비슷한 사람은?”


“하, 네 성격과 내가 사귀었던 사람의 성격이랑 비교하면, 걔들은 천사였지.”


“애초에 나 같은 성격의 여자랑은, 사귈 생각도 안 했을 거잖아?”


“정확히 알고 있네. 그래서 나는, 너 같은 여자랑 사귄 적 없어.”


“···.”


“···.”




침묵이 흐른다.


그리고, 내가 먼저 말한다.


그가 말하기 전에, 한 걸음 더 빨리.




“당신이 왜, 만났던 여자들이랑 사귀고도 오래 안 갔는지 알아?”


“···왜?”


“그야 뻔하지. 네 첫사랑이 정확히 봤어, 너는 걔들과 사는 세상이 달라. 미녀와 야수는 상상 속의 이야기지 현실이 아니야. 미녀도 야수도 사는 세상이 다르니 이어질 수 없어, 양쪽이 서로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미녀와 야수에서, 나는 어느 쪽이라고 생각해?”


“스스로를 미녀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외모가 아무리 빼어나도 성격이 삐둘어져 있으면 추녀야.”


“하, 그래. 네 말대로라면 짐승은 나는 마음이 미녀인 사람만 쫓고 있었다는 거네. 나를 위해 모든 걸 포기할 미녀를. 정작 나는 아무 것도 포기 안 할 주제에.”


“정확해. 그래서 깊어질수록 서로 맞닿지 않는거야. 짐승은 짐승끼리 만나야지, 구체적으로는, 어딘가 하자가 있는 사람끼리.”


“···그리고 마침 내 눈 앞에, 히스테리 뿐이지만 솔직해지면 귀여운 아가씨가 있네.”


“..내 눈에도, 아는 건 외모를 써먹는 방법 밖에 모르는, 아무 것도 모르는 아저씨가 있고.”


“아저씨라니, 아직도 오빠 소리를...”


“이런 무드에서 할 말은 아니잖아, 닥치고 있어.”


“....그래, 누가 이기겠니 너를.”




...담당과 트레이너는 닮는다.


처음부터 비슷한 사람들끼리 끌려 만나는 경우도 있고, 정반대였던 사람들끼리 닮아가는 경우도 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떨까, 서로가 자기 밖에 몰랐던 사람들끼리 만나, 이제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걸까.


우리는 언젠가, 삐뚤어지지 않은 어른이 되는 걸까, 아니면 이대로 살아가게 되는 걸까.


그의 눈 앞에 있는 나는,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을까.


어쩌면, 아직도 귀찮고 질척이는 여자, 그대로 있을지도 모른다. 방금도 따갑게 질책하기만 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무거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트레이너, 나는..”




그러자, 이번에는 그가 나에게 말했다.




“시티, 가만히 있어.”


“···.”


“지금은, 이대로 있자.”


“···그럴까.”


“응,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비춰질지,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자.”


“·····그래.”


“나는, 지금 품에 있을 사람이 필요해. 나와 비슷한 처지의, 누구보다도 나를 잘 이해해줄 여자가 필요해.”


“·····나도 어쩌면, 이런 나라도 품어줄 남자가 필요할지도.”


“..그래, 고마워.”


“별 말씀을.”





그리고 우리는, 쇼파에서 통금시간까지 껴안고 있었다.


그가 내려 놓은 커피가, 싸늘하게 식을 때까지.


계속.






***





“왜 착하게 굴지 않는거야?”


“···.”


“당신도 잘 알고 있잖아, 입 다물고 웃고만 있어도 반은 가는거, 꼭 그렇게 재수없게 말해야해?”





잠깐동안, 서로가 연약한 모습을 공유하고.


통금 시간이 다가와 그가 나를 배웅하는 길에서, 나는 물어보았다.


아무리 나라도, 어느 정도는 착한 사람임을 직장과 학교에서 보여준다.


그러나 그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위선조차도 행하지 않았고, 선행조차도 몰래몰래 하였다.


내 질문에, 그는 잡고 있던 내 손을 만지며 말했다.





“재수 없다고, 들은 적이 있어서.”


“....하아? 그건 늘 듣는 소리잖아.”


“다르지, 내가 꼴려서 하고 싶은 일하면서 재수 없다고 듣는거랑, 꾸역꾸역 착한 짓을 하고 가면을 쓰면서 재수 없다는 소리를 듣는거, 뭐가 좋아?”


“···.”


“그리고 너도 알듯이, 짐승 새끼가 사람 짓을 한다고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니까. 나는 본성이 쓰레기인 새끼라서, 쓰레기 짓을 안 하면 죽을거야.”


“···그래, 알겠어. 당신을 고쳐 쓰려고 했던 내 잘못이지.”





내가 투덜거리면서 남은 손에 주머니를 넣자,


그가 빠르게, 내 반대편 손마저 잡고는, 나에게 다가와, 내 입술을 훔쳤다.


내가 놀랄 틈새도 없이, 그는 입술을 떼고 나에게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 그게 좋잖아? 내 성격을 알면, 누구도 나와 사귀려고 안 할거니까, 너 같은 여자를 빼고.”


“.....이런다고 내가 좋아할 줄 알아?”


“...풋, 그래. 미안하네.”


“..시,시끄러워, 그렇게 보지마, 창피하니까.”





그리고 우리는, 그대로 각자의 기숙사로 돌아갔다.


머지 않아, 우마스타에 우리 둘이 손을 잡고 야경을 거니는 사진이 올라왔다.


누가봐도 외견만큼은 선남 선녀인, 짐승들의 사진이었다.


그걸 조용히 바라보던 나는, 그 사진을 그에게도 보내고, 그대로 잠에 들었다.


...그리고 서로가 동시에, 그 사진을 배경 화면으로 쓰게되었음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