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베르 골드 시티





“갑자기 왜 찾아온거야.”


“...”



침대에 누으라는 베가의 요청을 거절하고 온 부엌.


부엌에서 베가는 자연스럽게 냉장고를 열고 우유와 달걀을 꺼내고 있었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 잘 알고 있는, 무척이나 주부스러운 모습이었다.





“이유가 필요해?”


“...필요하지, 우리 사이가 그런 사이는 아니잖아.”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이인데?”




태연하게 엄청난 소리를 해놓고 베가는 우유를 끓이더니, 한 번 채에 걸러 따르고는 홍차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달걀은 어디에 갔나 했더니, 다른 전기레인지에서 계란말이가 되어 약불로 익혀지고 있었다.


...베가의 요리를 구경하는 사이에, 베가는 티스푼으로 홍차와 우유를 섞어 만든 밀크티를 저으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베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처럼 물음표라도 띄운듯한 표정을 한 채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담당과 트레이너 사이?”


“...그것도 맞긴 하지만.”




어드마이어 베가는 반박하지 않은 채로, 자연스럽게 나에게 머그컵을 내밀었다.


머그컵에는 완벽하게 내 취향의 비율로 끓여진 밀크티가 있었다.


나 또한 아주 자연스럽게 밀크티를 홀짝거리며 마시기 시작했다.





“보통의 담당이랑 트레이너는, 이런 식으로 집에 찾아오지 않잖아, 당신도 잘 알고 있잖아?.”


“...그 말대로긴 해.”


“...뭐, 당신이 푹신푹신에 대해 잘 모르니까 이런 관계가 됐지만.”




그렇다.


어드마이어 베가가 최소 1주일에 한 번은 우리 집에 찾아오게 된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다.


예전에, 베가의 요청(본인은 요청이 아니라 내가 끌고 갔다고 주장함)에 따라 백화점에 쇼핑을 나갔을 때...





‘잠깐 트레이너, 이 이불은 혹시...’



이 말과 함께, 30분을 넘게 많은 이불과 매트릭스를 노려보며 비교하던 베가에게, 나는 무심코 말해버렸다.



‘어차피 침구류는 거기서 거기 아니야?’





이 말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내 알못 발언에 눈이 돌아간 베가를 설득하고 진정시키다보니, 베가는 ‘이렇게 된 이상 몸으로 갚아줘야겠어!’ 라며 나를 질질 끌고 갔고.


....주변에서 엄청난 오해를 샀지만, 어쩌저찌하다보니 그녀는 내 집으로 오게 되었다.


베가가 푹신푹신의 장점을 설명하다보니, 자기가 직접 푹신푹신한 환경을 만들어주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 담당들 중에서는 어드마이어 베가가 첫 번째로 우리 집에 방문했다. 도베르가 아니라.


...그리고 찾아온지도 꽤 오래되어서, 이렇게 간단한 가사도 해주게 되었다.


과거를 떠올리다보니, 베가는 어느새 간단한 야식인 계란말이를 가져왔다.





“야식은 이걸로 참아. 너무 많이 먹는 것도 안 좋아.”


“...술은?”


“안돼.”


“....베가의 계란말이는 안주로 딱인데.”


“...그럼 한 잔만 해.”


“고마워.”




우울한 표정 잠깐이면, 이렇게 베가는 용서해준다.


내가하면서도 미안한 감정이 든다. 베가는 나쁜 남자에게 걸리면 안될텐데.


베가는 내 본가에서 보내준 작은 사케 병을 꺼냈다.


...아니, 저건 또 어디서 알은거지?


내 시선을 보고 살짝 웃은 베가는, 자연스럽게 술을 따라주며 말해주었다.





“..어머님이 알려주셨는데?”


“어머님이라니, 언제부터 그렇게 불렀....”


“당신, 보내는 걸 잊은 편지가 있었잖아. 내가 대신 보내주다보니 그렇게 됐어.”


“...아, 그때였나.”





..괜찮은걸까. 이거. 호칭에 태클을 걸지 않아도 되는걸까.


어쩐지 베가에게 코가 꿰인 것 같다.


지금도 달달하고 부드러운 계란말이에 어울리는 사케. 그리고 속을 달래는 달달한 밀크티.


어쩐지 위장도 사로잡히고 주변도 사로잡히고 나도 사로잡힌 것 같다.


그래도 계란말이가 맛있으니까 가만히 있기로 했다.





“...당신.”


“...응? 왜?”


“....별 건 아닌데, 하나 질문해도 될까.”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는 태도로 식사를 즐기고 있던 와중, 베가가 우물쭈물하면서 질문해왔다.


보나마나 별 것 없는 질문이겠....






“당신, 여자 친구 생겼어?”


“푸우우우---”






사케가 분무기처럼 뿜어져나왔다.


요즘 들어 부모님이 결혼 재촉을 안한다 싶었더니, 베가와 연락해서 그런거구나~ 했다.


하지만 꼭 재촉하는 사람이 있어야 했는지, 베가가 그런 말을 해왔다.





“갑,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니, 내가 없는 사이에 본 적도 없는 물건이 늘어서.”


“본 적도 없는 물건..?”





요즘 피곤해서 집 청소를 대충하긴 했다.


그래서 베가가 청소기를 돌리고 있던걸까.


내 의문스러운 대답에, 베가는 조용히 다시 질문했다.





“여성용 화장품, 엄청 늘었어.”


“...?”


“요즘 여자들 많이 왔나봐?”


“.......아, 오긴 했네.”




주로 도베르와 시티가.


둘은 서로가 경쟁하듯이 교차로 방문했다.


점점 오고 가는 주기가 짧아지는 손님방은, 도베르와 시티가 서로가 청소하고 갔다고 건드리지 말라고 했지만...


둘이서 기지로 만들고 있었구나, 어쩐지 짐을 잔뜩 들고 집에 오더니...


내 대답에 베가의 시선이 불안해졌다. 우물쭈물거리면서 홍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옷이랑 속옷도.”


“그그그.. 그것까지 가지고 왔다고? 걔네들이?”


“...역시 많은 여자들이 왔구나, 사이즈가 다 다르긴 했지만, 아니길 바랬어.”





베가가 씁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은데.






“미안, 앞으로는 찾아오지 않을게.”


“잠깐. 베가!”


“...왜, 당신에게는 내가 방해잖아. ‘그녀들’이 있으니까 당신은...”


“그, 그게 아니야!”


“이 이상 나를 비참하게 하지 말아...”







“아니라니까!”


라고 외치며, 나는 나가려는 베가를 다급하게 뒤에서 끌어안았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베가가 금방 나갈 것 같아서, 붙잡아버리긴 했지만..


이렇게 끌어안자 베가의 옆얼굴에서 살짝 웃는 얼굴이 보였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찾아 왔다고 하는 얘들은 여자 친구가 아니야. 베가.”


“...”


“나는 아직까지 여자 친구가 없었고, 한동안도 없을거야, 너네들을 신경써야하니까.”


“...”


“그리고 왔다고 하는 얘들은, 골드 시티랑 메지로 도베르야. ...아마 내 집을 기지처럼 쓰고 싶었던 것 같아.”


“...”


“...어, 그러니까. 앞으로 안 찾아온다고는 하지 말아줘. 부탁이야.”


“알겠어.”





엥,


갑자기 베가가, 엄청 쿨하게 내 팔을 뿌리치더니 다시 부엌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아까까지 마시던 녹차를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어벙벙해진 나는, 멍-하니 베가를 지켜보았고.


그런 내 표정을 보던 그녀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모를 줄 알았어? 최근 걔네들이랑 엄청 가깝게 지내더니. 옷이나 향수 향을 확인해보면, 걔네들 것이라는 건 금방 알 수 있었어.”


“...아니, 그래도 혹시나 했지.”


“...정말, 걔네들이 연인은 아니겠지만, 꽁냥거리는 것도 적당히 해줘.”


“그..그래?”


“나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러지 못하지만, 팀이 아닌 사람이 있을 때는 자제해줘.”


“알고 있어. ...걔들도 알고 있을거야.”


“정말로?”


“....아마도.”





베가의 시선을 피하면서, 나는 마지막 사케를 마셨다.


얼마 남지 않은 계란말이와, 거의 마셔가는 밀크티.


몸이 피곤해서 그랬는지, 취기가 알딸딸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젓가락을 깨작거리면서 계란말이를 괴롭히고 있자니, 베가가 말을 걸었다.





“..당신. 걔네들을 어떻게 생각해?”


“... 골드 시티랑 도베르?”


“응, 걔네들이 당신에게 느끼는 감정이 단순한 애정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잖아?”


“....알고 있지. 대충은.”





아무리 모쏠아다 트레이너여도, 하렘러브코메디 히로인처럼 다가오는 둘을 상대하다보면, 둘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는 금방 알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니, 걔들은 이성보다는... 아무래도 가족 같지.”


“구체적으로는?”


“딸이나 조카?”


“걔네들이 들으면 상처받을거야.”


“잘 알고 있어, 그래서 굳이 말 안할거고.”


“..그래, 알면 다행이고.”




깨작거리던 계란 말이의 마지막 조각을 겨우 집어 든다.


그리고 입에 넣으려는 순간...





“그럼 나는?”





어드마이어 베가가, 계란말이를 손으로 집었다.


그리고 나에게 고개를 내민다. 훨씬 가까워진 거리에, 베가의 반짝거리는 눈동자가 눈 앞에 보인다.


숨 막히는 순간에, 베가는 이어서 천천히 계란말이를 내려 놓으면서 말한다.





“당신, 종종 말했잖아. 내가 가장 어른스럽다고.”


“...”


“그래서 상담도 많이 했잖아. 사담도 많이 했잖아.”


“...”


“당신의 어머님도, 나 같은 며느리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고.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당신의 가사일을 해주고 있어.”


“...”


“그러니까 물을게, 당신에게 있어서 나는, 골드 시티와 메지로 도베르와 다르게 보여? ...아니면, 나 또한 당신에게 이성으로 보이지 않는, 그런 평범한 여자 중 하나일 뿐이야.”


“평범하지는...”


“피하려고 하지마!”





베가가, 컵을 쾅 내려 놓는다.


그녀와 내가 같이 샀던 고양이 무늬의 머그컵이 흔들린다.


대답하려던 내 말문이 막히고, 베가는 계속해서 격정된 목소리로 말한다.





“대답해.”


“...”


“....나는, 걔네들과 같냐고. 당신의 연인이, 결코 될 수 없냐고.”





...아무래도, 이제는 대답해야 할 것 같다.


나는 미루고 싶었다. 나 스스로도 어떤 식으로 대답할지 몰라 망설였기 때문에.


하지만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겠지. 이 이상 끄는 것도 베가에게 실례다.


나는 결의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 아무래도 베가도 내 마음을 알아줬는지,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겨우 입을 떼어, 그녀에게 말했다.





“베가, 나는. 너를....”






띵동.


현관문의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트레이너, 나야. 문 열어.’


‘.....나도 왔어, 빨리 열어.’





베가의 시선이 날카로워지고,


나 자신도, 형용할 수 없는 불안한 느낌이 든다.


반응할 틈도 없이, 베가가 현관문 앞으로 달려간다.


나는 그녀를 막으려고 했지만, 베가가 내 예상보다 훨씬 빨랐고―





“너희들, 돌아가.”


“.....뭐야, 너는 왜 여기에 있어?”


“.......트레이너? 이 시간에, 단둘이서 있었어?”




셋이서, 현관문 앞에서 미친듯이 시선을 교환을 하기 시작했다.


가장 원하지 않은 아수라장이, 벌어지기 직전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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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 생각 안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