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지로 라모누 이 보지년아!”


왜 이런 말이 나왔는지 따지자면 한도끝도 없지만 메지로 라모누의 직전 발언을 들어보자.


“시시한 사람. 누가 그러라고 강요라도 하던가요? 스스로 한 선택 아닌가요?”


그리고 라모누가 이렇게 말하게 만든 트레이너의 직전 발언은 다음과 같았다.


“어떻게 네 하고 싶은 대로, 솔직한 대로만 사냐. 최소한 그 필터링 없는 말이라도 조심하라고. 나도 네 기분 맞춰주려고 엄청 노력하고 있단 말야.”


간략하게 요약하면 트레이너는 사회생활의 일환으로 라모누의 비위를 맞춰주는 데 지쳐버렸다.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 뭘 어떻게 해도 라모누에게 그는 시시한 사람이고, 천박한 사람이고,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었다. 라모누는 가혹할 정도로 스트레이트하고 엄격했고, 그런 자신을 바꿀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었다.


트레이너는 자기 노력을 조금만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서운함을 표현하려고 했지만, 격앙된 감정 탓에, 또 다시 들린 ‘시시한 사람’이라는 말 탓에 본심이 조금 격하게 표출된 것이다.



아무튼 그 일갈을 들어버린 라모누는 어떤가 하면, 언제나처럼 팔짱을 낀 채로 말없이 서서 트레이너를 응시하고 있었다. 평온하다고 할까, 아예 듣지도 않은 것처럼 달라진 게 없다. 놀라움도, 모욕감도, 수치심도 없는 무반응. 오히려 트레이너 쪽이 놀라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잠시 동안을 팔짱을 끼고 대치하던 라모누가 침묵을 깨고 말했다.


“그래서요?”


“뭐?”


“네. 보지년이예요. 그래서요? 부르셨으면 어서 다음 내용을 말씀하세요.”


말문이 막혀버린 트레이너가 궁색하게 다음 대답을 쥐어짜냈다.


“그, 그게, 나는 널 모욕하려고......”


“어떤 모욕감이나 수치심도 느낄 수 없었는데요. 단순히 비하적인 표현을 썼기 때문에 모욕을 당했을 거라 생각하신 건가요? 하지만 제가 여성기를 가지고 있는 이상, 단순한 사실 적시 아닌가요?


굳이 따지면 제가 당신을 트레이너 놈이라 부른 정도 느낌이겠네요. 제가 여성기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당신은 트레이너 배지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 라모누가 덧붙였다.


“하지만 대상의 일부 특성으로 대상 전체를 지칭하는 것 같은 호칭은 그리 좋지 않네요. 그렇게 대상의 전체 속성을 일부로 환원시킨다면, 거기 가려 보이지 않는 일면들을 간과하게 되어버리니까요. 그렇지요?”


“그, 그러네......미안.”


자기도 모르게 위압감을 느끼고 사과의 말을 건네는 트레이너, 라모누는 거기다 대고 흥, 하고 짧은 비웃음 소리를 냈다.


“시시한 사람.”


따지고보면 저 발언이 원인이었단 걸 상기하고 트레이너가 발끈했다. 그걸 막듯이 라모누가 말을 잇는다.


“하지만 날것 그대로의 당신을 볼 수 있었어요. 트레이너 배지 보유자라는 일부 특성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당신의 일면.”


“응?”


“앞으로도 가감없이 보여줘도 좋아요. 어중간하게 숨기는 것보다 오히려 그 편이 낫지 않나요? 어차피 저는 항상 그러고 있었으니까요.”


트레이너실과 학원이 뒤집어지고 계약해지에 소송까지 당할 법한 발언을 하고도 오히려 승인받았다는 사실이 트레이너를 벙찌게 만들었다. 자신이 스트레이트한 만큼 남의 스트레이트함에도 관대한 것일까?


생각해보면 누구도 라모누를 그렇게 대하지 않는다. 모두가 절로 고개를 숙이거나, 절로 존대하거나, 우러르는 반응 뿐. 그러니 자신에게 욕설을 내뱉은 그에게 호기심이 동하기라도 한 것일까?


멍하니 서 생각에 잠긴 트레이너를 보고 라모누는 혀를 찼다.


“아까까지의 기세는 어디 갔나요? 절 모욕해 보시겠다면서요?”


오히려 도발을 해오는 것 같은 투였다. 네가 할 수 있으면 해봐라는 식으로, 표정없는 라모누의 얼굴이 비웃는 것처럼 느껴져 트레이너의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서 정말 모욕감을 느끼게 만들면 정말로 밥그릇이 날아가는 거 아닐까, 하는 일말의 망설임이 있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도 없다. 이젠 정말 알량한 자존심 싸움이다. 굽히면, 또 시시한 사람이란 말을 들으면 뺨이라도 치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게 될 것이다.


“됐어. 그런 말을 듣고도 모욕이라 여기지 않는 년을 어떻게 모욕해. 빡통년이.”


“빡......?”


툭 던지듯 내뱉은 트레이너의 말에 라모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뜻이죠?”


“대가리가 멍청한 사람을 말하는 거야.”


“아하. 흠. 이게 파리피 언어인가 하는 그거인가요? 파머가 쓰는?”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건가 싶어 트레이너가 경악한다. 파리피 언어라고 했다가 나중에 바깥에서 쓸까봐 덜컥 무서워진 그는 여러 번 고개를 저어 부정했다.


“아니야. 비속어야.”


“알았어요. 기억해둘게요.”


라모누가 돌아서서 나가고, 대화는 그렇게 흐지부지 끝났다. 차라리 다행이라 여기면서 트레이너가 한숨을 쉬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종이 울렸다. 점심시간이었다. 아직 오후 트레이닝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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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오후 트레이닝은 스태미너 훈련이었다. 가장 거북한 시기에 가장 거북한 복장을 하고 마주쳐야 한다니, 트레이너는 머리를 감싸쥐었지만 훈련 메뉴를 함부로 수정할 수는 없다. 속으로 욕하면서 수영장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수영복을 입은 라모누가 저쪽에서부터 걸어오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87이 아닌 것 같은 미친 재산세, 아무리 봐도 학생이 아닌 것 같은 농익은 보디라인이 학교 수영복이라는 모순된 그릇에 담겨 살랑살랑 걸어오고 있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모욕과 가혹한 발언을 들으면서도 트레이너가 라모누에게 맞추려 노력했던 이유......


물론 달리기다. 달리기가 1순위인데, 근소하게, 대충 코차이 정도로 라모누가 가진 여성으로서의 매력이 2순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무튼 트레이너의 취향이 우마무스메가 되면 저런 모습이겠거니 싶은, 괜히 메지로의 지보라 불리는 게 아닌 모습이었다.


‘하 씨발, 지보라고 하니까 괜히 아까 생각나네.’


“그나저나 이쁘긴 존나게도 이뻐요. 암만 화가 나도 저걸 보면 용서가 된다니까. 내가 얼빠는 아닌데......”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 라모누의 귀가 살짝 반응한 것 같이 보였다. 우마무스메의 예민한 청각, 하지만 여기는 수영장이다. 옆에서 훈련중인 팀도 있다. 들었을 리가 없다. 절대로, 이 작은 중얼거림을 들었을 리가 없다.


고 트레이너는 바랐지만 다가온 라모누의 반응을 보아하니 현실은 매정한 모양이다.


“당신.”


“뭐, 뭔데.”


“우선, 얼빠가 무슨 뜻이죠?”


“얼굴에만 관심있는 빠(돌/순이).”


“흠......뭐, 그래요. 알았어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찌푸려진 눈썹, 이 자리가 불편해 죽겠다는 듯한 눈빛, 차가운 시선이 트레이너를 훑는다.


“얼빠는 아니지만, 우마무스메를 그런 식으로 보고 있었단 말이군요?”


“아니, 소리 좀 줄여.”


“떳떳하지 못한 말이기 때문인가요? 여러가지 당신의 시시한 부정적인 감정을 치유받는 한 순간의 유희 쯤으로 보고 있다, 틀린가요?”


시선이 쏠리는 걸 느끼고 트레이너는 현기증이 났다. 인간의 사회적 동물이라는데, 사회적인 자신이 지금 죽어버리는 걸 느꼈다. 계약 해지고 나발이고 자신이 트레이너 배지를 내려놔야 할 지도 모른다. 어떤 수군거림을 듣고 살아가게 될 지, 귀향해서 라멘집이나 열어야 하나 오만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그 오만가지 생각은 한 가지 감정, 자포자기가 되어 그의 입을 나불거리게 했다.


“틀렸어. 이 년아.”


“흥. 어떤 점이요?”


“다른 우마무스메엔 관심 없다고. 네 얘기 한 거야. 네가 존나 이쁘고 꼴려서 화난 것도 잊어버린다고.”


라모누의 눈이 일순 조금 커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차라리 수습하는 게 낫지 않았나 생각하면서도 ‘네 년도 놀라움을 느끼기는 하는구나?’ 하는 느낌에 기세가 오른 트레이너가 다시 한 번 악셀을 세게 밟는다.


“맘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우마뾰이 해버리고 싶을 정도라고. 알아?”


그 급발진 발언에 수영장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몇 팀 있던 우마무스메들이 수영을 멈춰버리고 노골적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동료 트레이너들이 얼굴을 감싸쥐고, 진정 불쌍한 사람을 보는 눈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라모누가 오른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뾰이......?”


“그래. 왜, 뾰이가 뭔지도 모르냐?”


라모누는 한동안 말없이 서서, 손가락을 옆 머리에 짚었다가 턱을 괴었다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고민하더니 팔짱을 끼고 결론을 내렸다.


“시시한 사람.”


“뭐?”


“역시 시시한 사람이네요. 당신. 우마뾰이라니, 은어잖아요? 그런 식으로 위닝 라이브의 이름에 먹칠하면서 돌려말하는 게 부끄럽지 않나요?”


화내는 포인트가 이상하다는 말도 못하고 서 있던 트레이너였으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속에 있는 말 다 쏟아내고 죽자는 생각으로 일갈했다.


“오냐. 알았다. 빠구리 함 뜨자 썅년아.”


“빠.....?”


또 처음 듣는 단어인 건지 라모누가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문맥으로 대충 파악했는지 평온해진다.


“왜요?”


“왜냐니?”


“제가 왜 당신과 성행위를 해야 하는지 묻는 거예요.”


“그럼, 안할 이유라도 있냐? 어?”


사실 산더미만큼 있다. 하지만 한도까지 악셀만 밟기로 결정한 트레이너는 적반하장으로 나가는 이외 선택지를 지워버린 상태였다. 그 기백이 라모누에게 닿은 것인지 그녀가 조금 당황해서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한참을 생각한다. 주위에서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다이와 스칼렛은 트레이너를 데리고 나가버렸다. 영원처럼 긴 시간이 지나 라모누가 눈을 떴다.


“그렇네요.”


“뭐?”


“딱히 안할 이유가 없단 뜻이예요.”


오히려 트레이너가 몸을 움찔하며 놀랐다. 정말로 하나도 이유를 못 찾았단 말인가? 이제 어느 쪽이 미친 건지 모르겠다. 그냥 온 세상이 사실 자신을 대상으로 한 몰카가 아닐까? 싶은 트레이너의 주의를 끌듯 라모누가 꼬리를 한 번 휙 휘둘렀다.


“하지만, 한 가지 확인할 게 있어요.”


“뭐, 뭔데.”


라모누의 주둥아리에서 어떤 폭탄이 터질지 불안해하는 심정으로, 트레이너가 목소리를 떨었다.


“일반적으로 성행위는 번식을 위한 행동이예요. 하지만 고도로 발달한 고등동물들은 사교 목적으로 성행위를 하기도 하죠. 트레이너 씨가 말하는 건 어느 쪽인가요?”


“하? 당연히 후자 아니냐?”


“당연히? 그게 당연할 이유가 있나요?”


“없.......지.”


라모누가 한숨을 쉬었다.


“시시한 사람. 어쨌거나 오늘 밤에, 기사를 대기시켜 놓을 테니 제대로 피임도구를 챙겨 오세요.”


“......아, 알았어.”


“할 말은 그게 끝인가요? 중요하지 않은 일로 더 트레이닝을 지체하고 싶진 않은데요.”


“없어.”


“그럼 시작하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스태미너 트레이닝이 시작되었다. 어느새 수영장도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아무도 없어져서, 오히려 넓은 공간을 편안하게 점유하고 트레이닝에 집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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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를 마치고, 트레이너는 잔뜩 긴장해서 복장 선택부터 애를 먹었다. 적당한 캐주얼 정장을 차려입고 거울을 확인해 보는데, 기사가 출발했다는 라모누의 LANE이 와 있었다. 허겁지겁 준비물을 챙겨 차에 타니, 메지로 저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걸 느끼면서 트레이너는 기사의 안내를 받아 라모누의 방까지 갔다. 문이 열리고, 천개가 달린 비취색 침대 위에 검은 네글리제를 입은 라모누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복장이나 장소를 빼면 평소랑 다를 것도 없는, 뚱해보이기까지 하는 표정이었다.


“.......”


그녀는 말이 없었다. 등 뒤에서 문이 닫히고, 트레이너가 쭈뼛쭈뼛 침대를 향해 다가갔다. 뭐라 말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평범한 저녁 인사라든지, 밥은 먹었느냐, 자율훈련은 했느냐, 여러가지 말이 떠올랐지만 대답이 들리는 것 같아 다물어버렸다.


“계속 거기 서 있을 건가요?”


“아, 아니.”


그는 의자를 빼 앉으려다가, 왜 여기까지 와서 자신이 의자에 앉아야 하나 싶어 라모누의 옆에 털썩 앉아버렸다. 푹신한 침대의 느낌도 좋았지만, 앉으면서 살짝 스친 그녀의 감촉이 생소할 정도로 따뜻했다. 돌아보니 감흥 없는 회색눈이 그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정말 확실해요? 저, 아직 고등학생인데요?”


“아, 그랬지.”


트레이너가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용기를 쥐어짜 평온한 척 대답했다.


“가끔 잊어버려.”


“전혀 상관 없다는 거네요. 알았어요.”


그녀가 눈을 감았다. 긴 속눈썹이 눈 아래 미인점에 내려앉을 듯이, 살포시 날개를 접었다.


“좋으실 대로.”



트레이너는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냅다 재산세에 손을 대기로 했다. 그의 손가락이 파묻히는 듯한 감촉, 남자라면 모를 수가 없고 잊을 수도 없고, 수만 군중 속에서도 구별해낼 수 있는 감촉이 그의 촉각신경을 덮쳤다.


“우, 우왓.”


자기도 모르게 꼴사나운 소리를 내자, 라모누의 눈이 천천히 열렸다.


“왜 그러시죠?”


“아, 아니......너무 부드러운 것 같아서.”


그녀의 인상이 험악하게 찌그러졌다.


“부드러운 것 ‘같다?’”


그녀의 손이 찰싹, 하고 그의 손을 쳐냈다.


“시시한 사람. 실제로 만지고 있으면서 자기 감상 하나도 에둘러 표현하는 건가요?”


“그, 그게.”


“그런 애매하고 어중간한 표현으로 절 모욕할 셈인가요? 제 가슴은 실제로 부드러워요.”


“그렇지......알고 있었어.”


라모누는 그를 한번 째려보더니 기분을 진정시키려는 듯이 깊은 숨을 내쉬면서 다시 눈을 감았다.


“난 시시한 사람이 싫어요.”



조금 다급한 것처럼 손이 라모누의 위를 돌아다녔다. 라모누는 의외로 순순히 그의 터치를 받아들이다가, 조심스럽게 침대에 몸을 눕혔다. 스르륵, 하고 천이 스치는 소리가 고요한 밤 공기 속에 크게 들려 야릇했다. 트레이너 쪽은 벌써 숨이 가쁜 것만 같다. 우마무스메와 병주라도 하고 온 것 같았다. 조금 다급하게 준비해온 인자 커버를 꺼내들었다. 라모누가 거기 맞춰 천천히 게이트 인을 준비했다.


잠시 뒤, 1두 게이트 인이 완료되었다.


그리고 잠시 뒤, 게이트가 열리고 인자가 좋은 스타트를 보여버렸다.


“......”


라모누의 눈이 뜨였다. 아무 말 없이, 아무 감정도 없는 눈으로, 짧은 신음을 내고 굳어버린 트레이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식은땀을 흘리는 것 같은, 일이 뭔가 잘못됐다고 느낀 트레이너의 표정을 살폈다.


“끝인가요?”


“.......이번이 처음이라 그랬어.”


“저도 처음인데요.”


궁색한 변명을 막아버리면서, 라모누가 조용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사교 목적이라면서, 오히려 당신에 대한 친애도가 떨어질 것만 같네요.”


“어쩔 수 없었다고.”


트레이너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짧게 말했다. 적반하장, 적반하장, 이라고 속으로 되뇌이면서.


“네가 몸은 부드럽고 안은 꽉 조여서 어쩔 수가 없었다고.”


“그 말은 칭찬인가요?”


“......그래.”


“이해했어요.”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조절할 수 있을 거라고.”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가 그 말에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왜 메이크 데뷔를 전력으로 하지 않고 미승리전을 분발한다고들 하는 건지......”


천천히 베개 위에 몸을 누이면서 라모누가 물었다.


“아무튼 만족하신 것 같으니 먼저 자겠어요. 내일도 트레이닝이 있으니. 그쪽을 소홀히 할 수 없으니까.”


“아, 알았어. 나는 그러면......”


“당신도 자야죠. 트레이닝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라모누가 옆 자리의 베개를 툭 쳤다. 어떤 목적이든 동침한다는 건 한 침대에서 자는 걸 말하는 것이라 부연하고는 자기 쪽의 무드등을 켜고 눈을 감았다.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트레이너는 당연하지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자기 옆에서 자고 있는 놀라운 존재감 탓에 몇 번이나 뒤척이다가 차라리 일을 하는게 낫겠다 싶어 상체를 일으켰다. 노트북은 소리 때문에 힘들지만 태블릿 정도라면 조작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하고 침대에서 나오려다, 라모누의 무드등이 있는 작은 테이블 위에 놓인 노트를 발견했다.


스케줄러 정도의 크기, 펜이 꽂혀 있다. 트레이너가 그걸 집어온 건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됐다. 도저히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저런 가혹하고 인간미가 적은 우마무스메는 어떤 생각을 하고 살까. 어떤 메모를 남길까. 하다못해 무엇을 중요하다 여길까 하는 호기심이었다.


들키지 않게 조용히 노트를 집어와 펼치자, 첫 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빡통 : 머리가, 특히 지능이 아둔한 사람을 이름. 유의어 - 빡대가리


얼빠 : 본질이 아닌 얼굴만을 보는 사람. 얼굴 빠순/돌이의 준말.


빠구리 : 성행위의 비속어.



브라이트에게 네글리제 빌리기



첫 경험 망치지 않는 방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