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날이 좋은 날이라고, 아버지의 장례가 치러지는 장례식장으로 걸어가는 길을 비추는 햇볕은 따스하기만 했다.


그저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지병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고, 나이도 갓 마흔에 접어들었었으니, 꽤 급하게 간 요절인 셈이었다.


"..하."


내 입가에서는 울음은커녕, 웃음만 튀어나왔다. 누가 나의 모습과 생각을 보고 듣는다면 '불효자라느니. 인면수심이라느니.' 그런 말을 할지도 모르겠으나, 나의 생각속에서 내 아버지란 사람은 죽어 마땅한 사람이었으니까.


내가 어릴 적에. 나와 어머니를 버리고 명문가의 여자와 재혼한 쓰레기 같은 사람이었으니까.


"아아아-""으흐흑..."


장례식장에 들어서자, 나를 맞이하는 것은 사람들의 울음소리와 곡소리였다. 


그래도 가는 사람이 명문가의 남편이라고, 꽤 많은 사람이 있었기에 슬쩍 인파 사이에 끼어들어 식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여기에, 이름 부탁드립니다."


"예."


챙겨왔던 부조금 봉투를 부조함에 넣으며 방명록에 이름을 쓰고 돌아서자, 뒤편에서 방명록을 관리하던 이가 살짝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옆에 걸려있던 국화꽃 한 송이를 챙겨 들고, 그대로 신발을 벗어 무리지은 사람들 사이에 적당히 껴서 빈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


그렇게 사람들과 함께 걸음을 옮기며, 이윽고 나는 아버지의 영정 앞에 섰다.


무리지은 국화꽃 사이에서 웃는 얼굴로 남은 사진이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그것은 그저 사진에 불과한 것임을 알지만. 마치 아버지가 '이제야 와줬느냐.' 라고 반기는듯, 아니면 비웃는듯한 아리송한 느낌이 들었다.


그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손에 들린 국화꽃을 놓을까.' 고민하다가, 이내 옆에 사람들이 절하는 것을 따라 나도 함께 절하였다. 


"후우..."


손에 들렸던 국화꽃이 괜히 절하는 중에 상할까. 국화꽃은 조심스레 옆 빈자리에 내려놓았다. 


절을 마친 사람들이 다시 걸음을 되돌려 좁은 빈소를 빠져나가며 아는 이와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그제야 국화꽃을 다시 잡아들고 아버지의 영정을 향해 몇 걸음 다가가 늦은 헌화를 마쳤다.


"이걸로 끝입니다... 아버지."


말 그대로, 이것으로 아버지와의 연은 다 끝난 셈이었다. 


나를 버리고, 어머니를 버렸던 아버지. 


무엇 때문인지 모를 이유로, 그리고 딱히 알고싶지도 않은 이유로 명문가와 결혼을 택했던 아버지.


그러면서도, 꼴에 아비라는 명목으로 연락 몇 번을 하면서 자신의 죄책감을 지우는 것에 급급했던 추하디추한 아버지.


그런 아버지와의 연은 이것으로 완전히 끝이 난 셈이었다.


솔직히 생각하면, 아버지에게 이런 장례식은 너무나도 후했다. 조문객도 많고, 장례식장은 화려하다.


어머니의 장례식은 너무나도 쓸쓸하고 외로워, 그때 빈소를 지키던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 자체보다 어머니를 찾아주는 사람이 손에 꼽음에 눈물 흘렸었으니까.


그렇기에, 지금 나는 이 장레식을 부러워하며 또한 질투한다. 이런 것은 아버지 같은 사람이 아니라, 어머니를 위한 장례식이어야 했을 테니까.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마음을 품는다 한들 이미 죽은 이를 향해 품는 날카로운 마음은 나만 상처입힐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래, 애초에 아버지와 연을 완전히 끊겠다는 생각으로 찾아왔던 장례식이 아니었던가. 그냥 가는 길만큼은 고히 보내주자. 설령 그 상대가 나를 만든 사람이자 힘들게 만든 사람이여도 말이다.


"....오랜만이구나."


하지만, 아버지와의 연은 끊어졌다고 해도, 아버지가 만들어버린 연은 끊어지지 않은 것과 같았다. 


내가 절을 할 때부터 느끼고 있던 시선, 그 시선의 주인이 어느새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고 있었으니.


"저에게 말 걸지 마십시오. 당신과는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너무 쌀쌀맞구나. 이런 자리인데도 말이지." 


"이런 자리에 찾아온 건. 일말의 남은 연이라도, 완전히 끝내기 위해서 온 겁니다."


나와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가 재혼한 여자. 


"...너무하구나."


그녀는 마치 자신에게 내가 심하게 대한다는 듯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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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아버지는 중앙 트레센의 트레이너였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담당마 중 하나였고, 어느 날 두 분이 눈이 맞아 나를 가지게 되어 결혼했었다.


성인과 학생의 만남. 살짝 위험한 만남이긴 하지만, 그렇기에 어느 정도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펼쳐져 봄 직했다. 

  

내가 태어나서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날 때까진 그러하였다.


적어도, 눈앞의 이 여자가 아버지의 담당마로 들어와서는 아버지를 유혹하기 전까진 그랬을 거다.


아버지는 베테랑 트레이너로서 레이스 명문가의 여식을 담당하게 되었음에, 그녀에게 혼신의 노력을 쏟아내었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우리가족은 점차 뒷전이 되어갔다. 


그렇게 며칠, 몇 달, 몇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아버지의 노력이 단순히 노력만 쏟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알게 된 것은, 밤늦게 이혼소장을 든 채로 홀로 울고 있는 어머니를 보았을 때였다. 


내가 초등학교를 막 졸업했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했다. 빠르게 시작한 사랑은 빠르게 식어버린 것이었을까. 


내가 어려서 사리 분별이 어렵긴 해도, 아예 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아버지가 어머니를 버리고 새살림을 차리려 한다는 것은 알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어머니를 택했다. 적어도 아버지는 자기가 원해서 가정을 찢어낸 것이었지만, 어머니는 가정을 지키고 싶어 하셨으니까.


그런 어머니에게서 나까지 떠나버리면, 어머니는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만약 내가 어머니에게 남는다면 아버지가 마음을 고쳐먹고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결국 통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머니를 택한 나에게 아버지는 쓸쓸한 얼굴을 내보이며 돌아서서, 자신의 새로운 아내의 곁으로 향했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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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머니를 택하여 어머니와 같이 살게 되기는 하였지만, 아버지와 연을 끊고 살았던 것은 아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균열을 몹시도 크고 넓어, 서로의 연락을 끊고 살았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나의 존재로 아버지를 되찾아 올 수 있지 않을까.', 어린 마음에 '그래도 아버지가 보고 싶다.' 하는 이유로 아버지와 종종 연락하고 지내었다.

 

아버지도 나의 그런 연락을 받아주었고, 때때로는 자신이 직접 연락하곤 했었다. 만나서 맛있는 것을 먹자고 하는 식으로 불러내는 날도 종종 있었다.


그런 만남과 연락이 끝나게 된 것은, 아버지가 나와 만나는 날에 '어머니로 생각해주면 안 되겠니?' 라는 말을 꺼내며 자기 옆에 제 새로운 아내를 데려왔던 날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가증스럽고 역겨워서, 토할 것 같다는 느낌을 간신히 참으며 욕을 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왔었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 이후로 아버지가 몇 번 집을 찾아온다거나, 연락을 해왔었다.


나는 그때마다 아버지를 내쫓고, 연락은 차단해버림으로 응수했다.


아버지 옆에서 행복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던 그 여자와, 본래 그 여자의 자리에 있어야 했을 어머니의 모습이 겹치니 참을 수 없었다.


본래 그 자리에 있어야 했을 어머니는 아버지가 떠나간 충격에 점차 시름시름 앓더니,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침대에서 일어서지 못하게되셨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잠들었던 어느 날 밤 동안. 어머니는 영원히 잠들어버렸다.


제 짝이 자신을 버리고 간 충격 속에서도, 홀로 나를 키우신 분의 끝으로는 온당치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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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너무하는구나. 그이와 닮은 얼굴로, 어찌 이리도 쌀쌀맞을까. "


"당신이 한 일을 생각하면, 당신은 이 정도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비키십시오. 이제 갈 거니까."


"...."


할말이 없었는지, 이내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로 제 입을 닫아걸었다. 그녀의 머리 위에는, 그녀가 상심했다는 것을 표현하듯이 귀가 축 내려앉아 있었다.


어느새 사람이 가득했던 좁은 빈소에는 나와 그녀만이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위해 자리를 비켜준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향내와 내게 가까이 서있는 그녀에게서 나는 분내에 코가 아릿하여, 그리고 일을 끝마쳤음에 빨리 걸음을 옮겨 나가려던 찰나...


"...잠깐만."


"..읏.. 놓으십시오."


무언가에 붙잡힌 팔에 걸음을 멈춰 섰다. 


고개를 돌리자, 제 손으로 내 팔을 붙잡은 채로 이를 보이는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역시 이렇게 보내는 것은, 마음에 안 들어."


"당신과 나는 아무런 관계도 아닙니다. 뭐 어머니라고 불러주기라도 바라는 겁니까?"


"...."


그녀는 더 이상의 말없이, 그저 내 팔을 잡은 손을 제 몸으로 끌고 갈 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끌어 당겨진 내 팔은...


"..뭐..?"


"...흐훗..."


그녀의 상복 가슴께에 맞닿아. 얇은 상복너머의 그 살결에 쓰담어지고 있었다.


"정말로. 그이와 닮았는데 말이야..."


언젠가 아버지를 바라보았었을 회색빛 눈동자가, 이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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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론이 이상하게 길어지는 버릇이 있어요.


내가 쓰고싶었던 것은 자기 가족 버리고 라모누와 결혼한 트레이너가 죽고, 장레식장에 찾아온 트레이너의 아들을 유혹하는 라모누였는데 정작 그 내용은 몇줄 되지도 않고 서론만 존나게 길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