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동생의 발걸음은 날씨가 점점 더워지고 나서 뚝 끊겼다.

그대로 집중트레이닝에 들어간 것인지 합숙까지 쭉 달릴 예정이라 몇 달 정도 집에 못 올 것이라 우리에게 전했다.

동생이 안 오는 만큼 내 마음의 평화도 돌아왔다.

조금 허전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우리 남매의 거리감은 이게 맞다.



반장은 나를 놀릴 때 종종 오빠라고 불렀지만 동생이 다녀간 이후론 그런 일이 없어졌다.

오히려 예전보다 멀어진 느낌이다.

1년 꿇었다고 커밍아웃 하고서도 나름 친하게 지냈는데 이제와서 그러니 섭섭하다.

설마 진짜 나를 시스콤으로 오해하고 있는 건가 싶어서 억울하기도 하다.

오해를 풀어보려고 했지만,


"아니, 그건 그냥 내가 헷갈린거고 그냥... 어..."

"뭔데?"

"음... 내가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반장은 계속 말을 돌렸다.

일단 그런 오해를 해서 날 피하는 건 아니라고 하는데 그럼 적어도 그 이유는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결국 반장과의 관계는 딱히 나아지질 않고 흐지부지, 흐리멍텅, 애매모호, 그냥 그런 상태가 되었다.

난 점심을 먹고 그냥 멍하니 여자애들과 떠드는 반장을 보고 있었다.


"행님, 표정이 와 그러는 급니까? 완전 은짢아서 주방에 쳐들어가는 고든램지 같소잉~."

"..."

"행님, 와 그라는 급니까?"

"...형님소리는 포기할테니까 제발 그 이상한 말투라도 안 쓰면 안 되겠니?"


난 오타쿠 녀석한테 내 상황을 대충 설명했다.


"와, 그 쭉빵한 누님이 동생이었어요?"

"너도 봤어?"

"형님 매대에 있을 시간인데 돌아다니길래 도망쳤냐고 물어보려다 데이트 중인 것 같길래 그냥 있었지."


얘도 데이트타령이다.

그렇게 다정해보였나?

내 기억엔 그냥 적당히 돌아다닌 기억 뿐인데 다른 사람 눈엔 그렇게 보이는 건가?


"반장도 그 소리를 하던데 나랑 동생이 그렇게 친해보였냐?"

"친해보였다기보단..."

"보단?"

"여자 쪽에서 엄청 따르는 것 같던데?"


이건 또 무슨 소리지?


"그래서 여자친구인가 했더니 여동생이라 그랬구나..."

"..."

"형님 집에선 엄청 좋은 오빠인가봐요?"


난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좋은 오빠라곤 생각하진 않으니까.

조금씩 노력하곤 있지만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다.


"이건 진짜 형님을 형님이라 불러야 될 것 같은데?"

"...몸매만 보고 들이대면 어디 하나 부러질 수도 있는데 괜찮겠냐?"

"오~ 동생 꽤 끔찍하게 생각하시나 봐요?"

"아니 걔가 널 그렇게 만들거라고."


장담하건데 얼굴이면 뼈가 주저 앉는 안와골절, 팔다리면 아예 무도가들의 배트 격파 시연처럼 두쪽이 날 것이다.

애초에 모델들도 거들떠 보질 않았던 애가 얘라고 쳐다볼까 싶다.

얘가 처남이 되는 것도 좀...


"넌 걔 근육이 ㅈ으로 보이니?"

"막상 그렇게 근육질은 아닌 것 같던데요?"

"겉으로 보이는 것들이 전부가 아니야, 걔 뛰는 모습이 얼마나 살벌한데."

"뛰어요? 육상선수?"


또 생각없이 뱉을 뻔 했다.


"아닌가, 혹시 우마무스메?"


감도 좋은 새끼.


"암튼 허튼 생각하지 마라."


녀석은 내 말도 듣지 않고 계속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난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같이 이야기하다가 또 뭔가를 뱉어버릴까봐, 반장이면 몰라도 얘한테는 조심해야한다.



반을 나왔지만 갈 곳이 없어 그대로 교정이나 한 바퀴 돌기로 했다.

나온 김에 머리 속을 정리할까 했다.

동생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내가 밀어내고 있을 뿐 동생은 계속 다가오려고 했다.

평범하게 말을 걸어보려고 하기도 했고, 걱정이 있어보이면 먼저 물어봐주고, 동생은 계속 노력했다.

내가 문제였지.

그런 동생의 노력이 남들 눈에 브라콤으로 보일 정도로 애처로워 보인다면 그건 양심에 찔리기도 한다.

아마 반장도 동생보고 브라콤이라고 다짜고짜 말하면 괜히 상황이 이상해질테니까 말을 삼킨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동생을 싫어한 적은 있어도 동생이 날 싫어한 적은 딱히...

아니구나 한 번 심하게 말한 적이 있긴 했지...

근데 그것도 거슬러올라가면 내가 원인이었고 내가 잘못이었다.

진짜 이제라도, 늦었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이젠 좋은 오빠가 되어야할 것 같다.

그런데 뭘 해야할까?

지난 번에도 다짐은 했던 것 같은데 결국 지금까지 제자리 걸음이었다.

다짐에서 끝낼게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했으면 뭐라도 해야한다.

현장응원이라도 가야하나?

분명 동생 다음 일정이...

아, 개선문.

...

되는 게 없네.


10화 이내로 끝낸다고 했었는데 왜 벌써 20화?

이거 혹시 만우절 거짓말임?

2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