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이 괴문서에서는 계단 청소를 하지 않습니다. 계단 청소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열람에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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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너희가 무슨 어둠의 자식들이냐~.”


모 팀의 팀 트레이너실에 들어오자마자 커튼을 걷고 불을 켜면서 치프 트레이너가 말했다. 나이는 이제 50줄 접어들었지만 고생을 좀 해서 실제보다 5살 정도 들어보인다. 아내는 우마무스메였다고 하는데, 어쩌면 그것 때문에 더 들어보이는 걸지도 모른다. 그나마 죽지 않은 건 아내가 먼저 갔기 때문이라고, 이제는 반 농담도 던질 줄 아는 나이.


“아아악! 치프 트레이너! 뭐하시는 거예요! 비디오 분석 중인데!”


어둠에 익숙해졌던 동공이 갑작스럽게 들이친 산뜻한 여름 광채에 구워지는 듯한 날카로운 느낌에 서브 트레이너는 몸을 불판 위 오징어처럼 꼬아대며 외쳤다.


“비디오 분석을 뭐 이렇게 캄캄하게 해놓고 해? 필름 인화라도 하는 줄 알겠네 그냥.”


필름 카메라는 빈티지 좋아하는 특이취향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서브 트레이너가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하면서 치프 트레이너는 창문을 가리켰다.


“공기는 왜 이렇게 탁하냐? 거기 창문 좀 열어라.”


“에어컨 틀었잖아요.”


“환기를 좀 해가면서 틀어야지, 사시사철 그러고 지내면 병 걸려 임마.”


창문은 자기 손으로 안 열어도 에어컨은 자기 손으로 끄는 치프 트레이너의 뒷모습에 원망 섞인 시선을 보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서브 트레이너, 수련중인 몸은 거역하는 법을 모른다. 툴툴대면서 창문을 열고 있자니 치프 트레이너가 책상을 딱딱 치면서 말했다.


“그, 여기 트레이너실에서 좀 올라가면 옥상 가는 계단 있잖냐.”


어느 회사를 가든 나이 좀 있고 직급 좀 있는 베테랑들이 좋아하는 것이 있다. 청소, 위생, 정리정돈. 어지간한 블랙기업 뺨치는 트레센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트레이너들도 예외는 없다. 


“좀 치우고 정리하고 좀 살자. 내가 쉬지 말자고 하냐? 할일 다 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절도있게 쉬잔 말야.”


“아니, 그래서 일하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거기 계단을 갈 일이 뭐가 있다고. 우리 담당도 아니잖아요.”


“이 녀석아. 주인 의식이 있어야지. 그렇게 네 일 내 일 나누고 가르고 정없이 굴 거야? 뭐든지 내가 할 일이다 생각하고 해야 시간도 잘가고 일도 즐거운 거야. 자료는 내가 정리해둘 테니까 가서 계단 좀 쓸고닦고 하고 와라.”


더 항변해도 소용이 없다는 걸 아는 서브 트레이너는 한숨을 쉬면서 꾸벅 인사를 하고 트레이너실을 나섰다. 청소도구함에서 빗자루와 쓰레받이를 꺼냈다. 트레센 학원에 청소부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럼 청소는 누가 하는가? 청소부? 아니다. NO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이 한다. 이 경우에는 서브 트레이너다.




“......이익......”


투덜거리면서 서브 트레이너가 계단을 오르는데 위쪽 멀리서 작지만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간......가니......얼가니.....이이익!”


놀라 경악하는 듯한 목소리가 확 들렸다가 꿈에서 깬 것처럼 멎었다.


“뭐여.”


서브 트레이너는 누가 있나? 싶어서 난간 위를 올려다봤지만 당연히 시야각이 나올 리가 없다. 바보짓을 한 것에 머리를 긁적이면서 올라가는 동안에도 뭔가 규칙적으로 박수를 치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렸다. 조금 더 가까워지자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란스럽다.


“복도에서 뛰면 안되는 것도 모르나. 어떤 자식인지 얼굴이나 보고 싶네.”


그의 혼잣말을 삼여신께서 들으신 건지, 옥상으로 오르는 마지막 한 층을 올라가던 그는 내려오던 에어 그루브와 그녀의 트레이너와 마주쳤다. 어색하게 고개를 꾸벅 숙여 서로 인사를 한다. 어쩐지 두 사람의 얼굴이 붉다. 날이 더워서 그런지 땀이 좀 많이 났다.


“안녕하세요. 옥상에 계셨나요?”


“예, 예. 뭐, 비슷합니다.”


“.......”


에어 그루브는 어쩐지 자신 없는 얼굴로 서브 트레이너가 든 빗자루와 자신의 담당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치마자락을 꼭 쥐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에어 그루브의 트레이너가 물었다.


“계단 청소 하시나요?”


“예, 치프 트레이너께서 시키셔서......”


그 말에 어째선지 화색이 도는 에어 그루브 트레이너, 담당의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웃는다.


“베롯?!”


“오, 마침 잘 됐네요. 저희도 하려고 했는데 도구가 없던 참이거든요. 그치? 그루브?”


“......베로?”


“그렇지? 여제님?”


영문 모를 소리를 하면서 생전 처음보는 바보같은 표정을 짓던 에어 그루브는, 트레이너의 얼굴을 한참을 빤히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을 다 이해하진 못한 것처럼도 보였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되는데요, 선배님.”


“얘가 청소로 스트레스를 푸는 편이라서요. 게다가 학생회기도 하니까, 일할 기회를 주십사고.”


옥상 올라가는 계단 청소가 무슨 특권이라고 부탁하는 걸 막겠나. 서브 트레이너는 빗자루를 건네면서 땡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예, 바쁘신데 빨리 가보세요. 우린 다시 올라가자, 그루브.”


“으으, 응. 얼가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에어 그루브, 평소와는 많이 달랐지만, 청소가 면제된 기쁨 탓에 서브 트레이너는 크게 신경쓰지 않고 돌아선다. 어쩐지 뒤에서 등을 때리는 소리라기에는 좀 두툼한 찰싹 소리가 났지만 알 바 아니라는 듯 이어폰을 끼고 돌아간다. 커피나 한 잔 느긋하게 마시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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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 그루브와 그녀의 트레이너는 계단을 천천히 올라와, 먼지와 머리카락, 꼬리털, 뭔지 모를 털들과 그 사이에서 구르는 고무 풍선같은 것들을 슥슥 쓸어담았다.


“어떤 놈들인지, 진짜 드럽게도 쓴다. 그렇지 않아? 베로쨩?”


“우, 우우, 우리도 쓰는 게 좋지 않을까......? 베로쨩 아직 학생이구......”


“......에어 그루브.”


빗자루를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트레이너가 표정을 굳히자, 불에 덴 것처럼 놀라는 에어 그루브, 아니 베로쨩.


“네, 녜헤?”


“아니지......”


트레이너가 사전에 합의해둔 세이프 워드를 꺼낸다.


“야지년아.”


그제서야 에어 그루브가 여제로서의 모습을 되찾는다.


“......뭐, 뭐냐. 네놈, 그런 표정은 짓지 않기로 약속했잖나.”


“그렇게 날 나쁜 놈을 만들고 싶어?”


“그, 그런 말도 하지 않기로 약속했잖나.”


“그랬지. 그치만 누가 보면 내가 쓰레기인줄 알거 아니냐.”


“쓰레기?”


에어 그루브가 그의 팔을 꼭 안아오면서, 혀를 길게 빼 귓볼을 가볍게 핥았다.


“그럼 내가 치워야겠네?”


“진짜, 오늘 여제의 지팡이 한 번 제대로 휘둘러야겠다.”


“한 번만?”


“토 달지 말고.”


쿵, 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에어 그루브의 양 팔이 구속되어 벽에 몰아붙여진다. 단순 완력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게 마냥 싫지만은 않은지 그녀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다. 어디까지 눈화장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얼굴이 붉어져 있다.


“빠, 빨리......와 줘.”


“누구 좋으라고......”


양 팔을 한 손에 잡아 구속하고  트레이너는 느긋하게 얼굴을 그녀의 목 쪽으로 가져간다. 긴장되는 만큼 흥분되는 공기, 안 그래도 더운 여름에 뭐하는 짓인가 싶을 무렵 여제의 귀가 쫑긋거렸다. 이를 악물면서 트레이너를 밀어냈다.


“하. 오늘 진짜 짜증나네......”


“왜, 누가 와?”


“너도 곧 들을 거야.”



잠시 후, 청소를 진행중이던 에어 그루브와 트레이너의 아래, 요란한 발소리들이 들리더니 꺾어지는 계단 난간을 돌아 붉은 트윈테일이 우아한 호선을 그리면서 날렸다. 채찍같은 그 긴 머리의 주인은 계단 아래로 쏘아붙이면서도, 덧니를 드러내면서 어쩐지 즐거운 웃음을 짓고 있다.


“빨리 안 오면 더 도망간다?”


그리고 바삐 그녀를 추적해 올라온 발소리가 계단을 둘 셋 뛰어넘어 오더니, 트레이너 재킷을 입은 남자가 팔을 벌리고 뛰어와 트윈테일의 우마무스메를 끌어안는다. 풍만한 1착주머니가 눌릴 만큼 긴밀한 허그, 낄낄 웃으면서 서로 잡았네 잡혔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던 둘은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져든다. 그 입구는 서로의 입술, 계단을 무슨 탱고라도 추는 것처럼 손을 꼭 잡고 츄츄 스텝을 밟으면서 오르던 둘이 비명을 지르기 10초 전이었다.



“다이와 스칼렛! 부끄럽지도 않은 게냐!”


“서, 서서서서, 선배......”


“너 진짜,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구나.”


“선배님......”


두 쌍의 트레이너와 우마무스메가 일방적으로 훈계하고 훈계듣는 시간, 물론 양 쪽 다 찔리는 구석이 있어서 극단적으로 기세가 갈렸다. 한숨을 쉬던 에어 그루브가 팔짱을 끼고 묻는다.


“둘이 뭘 하려고 했지?”


“그, 그그, 그게......”


“뭘 하려고 했냐고 물었다.”


“그, 그으으으.....뾰, 뾰......”


“조용히 해라!”


말하라고 윽박질러놓고 이제와서 빽 소리치는 여제, 거의 울기 직전인 다이와 스칼렛과 그녀의 손을 꼭 붙들고 달래주려는 트레이너. 잠시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고민하던 에어 그루브가 계단 아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내려다보는 커플에게, 이번에는 입술로 검지를 가져가면서 싱긋 웃었다.


“조용히, 하란, 말이다. 이해했지?”


“아하.”


그래서 조용히 했다.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계단은 슥슥 쓸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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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이놈 자식, 어찌나 뺀질~뺀질대는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계단 청소 상태를 굳이 점검하러 올라온 치프 트레이너가 논슬립 테이프를 검지로 슥 문질러 먼지가 묻어나는지 확인하면서 혀를 쯧쯧 찼다.


“걸레질도 안해두고, 어디 사라진 거야. 이 놈의 자식을 그냥......”


“치프 트레이너 님! 제가 할게요!”


팀의 믿음직스러운 언니 포지션인 담당 우마무스메가 대걸레를 가지고 와서 청소를 시작한다. 치프가 뒷짐을 지고 한숨을 쉰다.


“너는 왜 시키지도 않은 걸 어떻게 알고 왔대.”


“헤헤. 치프 트레이너 님께서 하시는 생각은 대충 알거든요.”


“아무튼 고맙다. 네가 서브 트레이너보다 나아. 학급위원장은 뭔가 다르네.”


“과찬이세요! 기대에 부응하는 게 제 일인걸요.”


싹싹 바닥을 청소하는 짧은 금발의 우마무스메를 대견하다는 듯이 바라보면서, 치프 트레이너는 웃었다.


“거기까지 해. 그냥 시마이 치자.”


“엥, 더 할 곳이 남았는데요.”


“그냥 가. 너도 바쁜데 붙잡아두기 미안해서 그렇다.”


“전 괜찮은 걸요......”


생긋, 화사한 여름 햇살처럼 웃으면서 그녀가 대답했다.


“치프 트레이너 님이랑 있는 시간도 좋아하구요.”


“이 녀석, 이런 아저씨랑 있는 시간이 뭐가 좋다고.”


“헤헤......아버지 같거든요.”


“녀석. 하긴, 나도 너보단 좀 어리지만 딸이 있긴 하다. 그래서 그런가, 나도......”


딸그락, 하고 대걸레 자루가 바닥에 그대로 떨어져내렸다. 어느새 계단으로 내려가는 경로를 막아 서서, 그 우마무스메는 환하게 웃으면서 양 팔을 벌렸다.








“그러니까, 좀만 더 같이 있어도 좋을 것 같은데요?”


“어...... 탑 로드야? 나리타 탑 로드?”


“이 계단 말이예요......학생들 사이에서는 나름 연애 스팟으로 유명하거든요?”


“그, 그래?”


“여기로 절 데려오셨다는 건, 유혹하시려는 거 맞죠? 아내 분이 안 계셔서, 많이 외로우셨던 거죠?”


“이, 이 녀석아. 더위를 먹었냐? 갑자기 왜 이래.”


“더위를 먹었......하긴, 좀 덥긴 하네요......”


교복 가슴께의 커다란 리본 매듭이 풀어지고, 축구력이 가득 담긴 텔스타 두 개가 자연스러운 곡선을 그리며 늘어진 것이 보인다. 치프 트레이너의 목소리가 떨린다. 자신에게 해당사항이 없을 거라 믿었던 일이 일어나자, 그의 머리가 판에 박힌 말을 찍어낸다.


“나, 나같은, 아내랑 사별한 홀애비를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어디 있을까요오......?”


틀렸다. 장난스럽지만, 한없이 진지한 눈빛이, 몸이 가까이 붙어왔다. 여름의 더위와는 또 다른 열기가 가까이 눌려온다. 약간 산뜻하고 달짝지근한 향이 났다. 치프 트레이너는 마지막 희망을 담아 호소한다.


“이, 인석아. 그만 두렴. 나는 네 아버지뻘......”


“아버지 같은 분이죠.”


더욱 가까이 몸을 붙이면서 나리타 탑 로드는 고개를 들어, 그의 목에 입을 맞췄다.


“하지만 A같은 B라는 비유는, 마치 A처럼 한 없이 가깝단 뜻이지, A라는 뜻이 아니니까요.”


“왜, 왜, 모범생인 건 알긴 했는데.......”


“곧 맛있는 걸 먹으면, 치프 트레이너 님이 좋아하는 말투도 나올 거예요.”


후후, 웃으면서 나리타 탑 로드는 등 뒤로 손을 감아 잘 먹겠다는 합장을 한다. 그리고, 결국은 그녀에게 거스르기 어려운 나약한 아저씨를 올려다본다.


“보아하니, 제가 부응해야 할 기대가 있는 모양인데요? 솔직하게 말씀해 보시겠어요?”


“너, 너는 딸 같은 아이......”


“아하.”


벨트 뒷부분을 양 손으로 잡아 비틀어 찢어버리면서, 그녀는 키득 웃었다.


“그런 취향도 굉장히 굉장해요.”



치프 트레이너가 원하는 대로 계단은 빗자루질이 되었고, 이제 물청소도 하게 될 것이다. 오늘도 트레센은 잘 굴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