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 머리야..."




지끈거리는 두통과 함께 눈이 떠진다.


간만에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다행히 낯선 천장이 아닌 익숙한 천장이 보이는 걸 보니 키타산이 제대로 데려다 준 모양이다.


그런데, 내가 키타산한테 집 주소를 알려준 적이 있었나?




...뭐. 그 녀석은 유능하니까. 어련히 잘 찾았겠지.


일하시는 아주머니도 아직 출근 안한 것 같으니, 잠이나 더 잘까.


마저 잠을 자기 위해 그대로 침대에 누워 고개를 돌렸다.




윤기나는 흑발과 쫑긋거리는 귀가 보였다.




......?




어딘가 익숙한 뒷모습.




슬쩍 내려간 이불 아래로 가녀린 어깨선이 숨결에 따라 위아래로 움직였다.




불길함에 휩싸이는 마음을 애써 죽이며 이불을 들춰낸다.




...설마.




이불 안에는 익숙한 우마무스메의 뒷태가 보였다.


태어난 모습 그대로의 키타산. 


엉덩이와 꼬리 근처엔 진득하게 굳어있는 하얀 액체가 흘러내린 모양 그대로 묻어있었다.




좆됐다. 


진짜 좆됐다.


담당을 떨쳐내도 모자랄 판에, 술에 취해 사고를 친 것 같다...!




"흐으으응~...!"


"!!!"




기분 좋은 기지개와 함께 잠에서 깨어나려 하는 키타산.


눈치채기 전에 서둘러 몸을 뒤척이며 눈을 감았다.




"...트레이너 님..."




여자 아이의 잠긴 목소리가 들려온다. 애정이 가득 실린 그 음성에, 나도 모르게 목울대가 움직였다.




오지 마라, 오지 마라, 오지 마라...!




완전히 몸을 돌린 키타산이 침대를 뒤척이며 내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정면을 보며 누워 있는 내 상체에 가녀린 팔이 감겨온다.


뻣뻣하게 굳은 팔뚝 너머로 키타산의 커다란 가슴이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어제는... 정말 대단했어요...♡"




뭐가 대단했다는건데, 씨발...!




내가 자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키타산은 내게 바짝 붙어서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고 체향을 맡았다.


목을 간지럽히는 키타산의 숨결과 내 얼굴을 수시로 두드리며 파닥거리는 키타산의 귀. 한쪽 다리에 휘감겨오는 꼬리.


간지러운 나머지 실수로 웃음이 나올 것 같다.




"흐응... 트레이너 니임...♡"




다시금 내 가슴 팍에 머리를 기댄 키타산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특출난 노래 실력답게 그 자체로도 듣기 좋은 미성이었지만, 지금의 내겐 그 무엇보다 섬뜩한 소리였다.




"헤헤..."




어딘가 헤픈 웃음을 흘리며 나를 꽉 끌어안는 키타산. 안 씻고 잔 탓에 냄새가 날텐데도, 키타산은 나를 끌어안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살랑살랑 간질거리는 머리카락이 느껴짐과 동시에, 키타산의 손가락이 내 쇄골을 타고 내려가는 것이 느껴진다.


쇄골을 타고 흐르는 가느다란 손가락은 가슴팍을 지나, 배꼽을 간질이더니, 그 아래로...




"아, 안돼!"




황급히 눈을 뜨며 키타산의 손을 붙잡는다. 


그러자 놀란 눈이 된 키타산이 이윽고 내 손에 깍지를 끼우며 미소지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트레이너 님♡"




곧바로 내게 팔짱을 끼며 고개를 들어 올려보는 키타산. 


눈꼬리는 반달로 휘어있어, 어쩐지 소녀가 아닌 성숙한 여인처럼 느껴졌다.


이대로 페이스에 말리면 안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내게 달라붙은 키타산을 밀어내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아앗?!"




두 손으로 눈을 가리며 부끄러워하는 키타산.


그제서야 내가 알몸으로 일어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으아아...!




급한 마음에 침대 밑에 널부러진 옷을 서둘러 입고 화장실로 도망쳤다.


화장실 거울로 대충이나마 몸단장을 마친다. 


그래, 우선은 자리에서 떠나는거다. 


쓰레기라 불러도 좋다. 지금 상태로는 실수만 할 뿐이다. 


여기서 나가는게 먼저다...!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자 이불을 끌어올린 키타산이 보였다. 이불로도 다 가리지 못한 그녀의 가슴골이 보여서, 황급히 키타산에게서 눈을 뗐다.




"해장하고 가시는게 어떤가요, 트레이너 님...?"


"아, 아니. 내가 지금 좀 바빠서."




서로 친한 사이도 아니었는데 동침한 것도 모자라서 해장까지 하고 가라고? 


장난하는거냐...!


이빨을 짓이기며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어머, 우리 아들. 이제 일어났니? 며늘아가는?"


"어, 어머니...?"


"이 사람아. 아직 결혼도 안했는데 무슨 며늘아가야? 흠, 흠..."


"아버지...?"


"허허, 괜찮습니다. 우리 키타산도 아드님을 정말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사부로 씨?!"




거실에는 간만에 뵙는 부모님과, 전 날 키타산의 집에서 만났던 키타지마 사부로 씨가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이게, 무슨...?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불안감에 온 몸이 떨려온다.




"아이고, 얘가 아직도 술이 덜 깼나 보네. 그럴 줄 알고 아주머니께 해장 해달라고 이거저거 시켜놨다. 며늘아가! 너두 얼른 나오렴!"


"왓쇼이~!"




어느새 말끔히 차려입고 나온 키타산. 구겨진 옷에 초췌한 내 모습과 달리, 키타산의 컨디션은 그 어느 때보다 절호조로 보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어머님!"


"어머, 얘 좀 봐요. 벌써부터 어머님이래요~!"


"에헤헤... 이제 익숙해져야 하니까요!"


"결혼은 커녕 연애 한 번 안해본 아들이었는데, 이런 참한 아이를 데리고 있을 줄은..."


"전부 아드님이 잘나신 덕이죠. 덕분에 저도 키타산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겠습니다."




분명 초면일텐데도 부모님과 살갑게 이야기하는 키타산과,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사부로 씨.




"아들! 너도 얼른 여기 앉아서 말 좀 해봐!"


"그래, 대체 우리 딸과는 어찌 만난겐가?"




결국 웃는 상으로 호의를 베푸는 어르신들께, 나는 반항할 생각도 못한 체 자리에 앉고 말았다.


통통 점프하며 내 곁에 앉아 나를 끌어안는 키타산을 허망하게 내려다보며-


나는 뒤늦게 술 마신 남자들이 으레 하는 결심을 했다.




내가 또 술 마시면, 개다.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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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후일담은 오전 내로 쓰겠음


침대에서 일어나 도망치는 트레이너의 모습 (상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