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정말 최면에 걸리신 거에요...?"


'애초에 그런 종이쪼가리 한 장으로 최면이 걸리겠냐.'




트레이닝을 끝마친 후, 사쿠라 치요노 오는 뜬금없이 나를 불러 최면에 대한 화두를 꺼내들었다.


후쿠키타루에게 신기한 부적을 받았는데, 시험할 대상이 없다나 뭐라나.


그렇게 말했던 치요노는 지금 내 눈 앞에서 부적을 살랑살랑 흔들며 반응을 살피고 있다.


청아한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이대로 내가 최면에 걸린 척을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내심 궁금해졌다.


치요노의 물음에도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멍하니 서있자 그녀가 슬며시 거리를 좁혀온다.




"지, 진짜죠? 어, 그러니까, 뭘 시켜야......"




순진하게 꼬리를 흔들며 어찌할 줄 모르는 치요노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금방이라도 입꼬리가 경련을 일으킬 것 같다.


치요노는 자그마한 목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한참이나 내 주변을 맴돌았다.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흘리던 치요노가 퍼뜩 고개를 들어올리며 나를 바라봤다.


보기 좋은 적발의 머리카락이 몸짓에 맞춰 흔들리고, 내쪽을 향해 귀가 쫑긋 일어섰다.




"트레이너 님...?"


"응."


"손, 손을 내밀어 보실래요?"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치요노의 앞으로 내밀었다.


곧이어 놀란듯 눈을 크게 뜬 치요노가 가녀린 두 손으로 내 손을 감쌌다.




"되게 딱딱하고, 큰 손이에요......"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내 귀에 진득히 들러붙는, 질척이는 목소리였다.


치요노는 엄지 손가락으로 내 손등을 천천히 쓰다듬다 제 얼굴에 가져다댔다.


그제야 나는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눈치챘다.




"따뜻하고, 좋은 향기가 나서... 이러면 안 되는데, 나쁜 아이인데...! 어쩌죠...? 트레이너 님의 손이 너무... 죄, 죄송해요!"




치요노는 내 손을 꽉, 붙들고 제 볼에 살살 부벼대기 시작했다.


이윽고 몽롱하게 가라앉은 하늘빛 눈동자가 총기를 되찾음과 동시에 내 손을 놓아주었다. 치요노는 벌겋게 달아오른 제 뺨을 감싸곤 발을 동동 굴렀다.


남들은 알지 못하는 성벽이라도 있는걸까.


그러고보니 전부터 가끔씩 날 붙잡고 냄새를 맡아대곤 했었는데.


아직은 그러려니, 하고 넘기기로 했다.




"어... 음... 트, 트레이너 님!"


"응."




드디어 무엇이든 일단 시키기로 마음 먹은 것인지 결연한 의지가 돋보이는 치요노. 


나 역시 들끓어오르는 감정들을 하나 둘 가라앉히고 대답했다. 


그리고, 양 손을 감싸쥔 치요노가 입술을 달싹였다.




"저, 저랑 같이 산책해 주세요...!"




...뭐?


아니, 이건 좀.






다음날 맞이한 아침은 전혀 상쾌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최면을 빌미 삼아 사쿠라 치요노 오와 하루종일 산책했으니까.




'트, 트레이너 님은 산책을 한 게 아니라... 어, 그러니까... 꿈! 꿈을 꾼거에요! 네, 저와 함께 산책하는 꿈이요......'




치요노의 저 한 마디를 듣고 나서야 바보같은 최면 행세를 그만둘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정해진 수면 패턴으로는 도저히 피로를 모두 씻어낼 수 없었다.


반면 업무 시간 내내 골골대는 나와는 달리 치요노의 컨디션은 절호조. 온 몸의 기운이 넘쳐난다는듯 내 앞에서 꼬리를 살랑대고 있었다.


차라리 진짜 최면에 걸렸으면 정신이라도 멀쩡할텐데, 설마 산책을 하자고 할 줄은.


치요노 답다고 해야 할지, 어리다고 해야 할지.


내가 출근했을 때부터 치요노는 수시로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한 차례 쓸어내린 후, 치요노에게 슬쩍 시선을 던졌다.


아니나 다를까, 나와 시선이 얽힌 치요노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야, 치요노?"




보다못한 내가 먼저 운을 떼니 치요노가 미안해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귀를 추욱 늘어뜨리며 올려다 보았다.




"오늘따라 엄청 피곤해 보이셔서요......"




너 때문이잖냐.


나는 힘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긴, 치요노는 철썩 같이 내가 최면에 당했다고 믿고 있으니까. 힘들어하는 내 모습이 걱정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나는 파르르, 의도적으로 입꼬리를 떨며 말했다.




"있잖아 치요노, 꿈을 꿨는데. 글쎄, 너랑 하루종일 산책을 하는 꿈을 꿨지 뭐냐. 분명 꿈일텐데 왜 이렇게 피곤할까."


"아앗, 그, 그러게요... 어, 오늘은 날씨가 안 좋으니까요! 그러니까, 오늘은 산책 안해도 괜찮아요! 네, 으으..."


"고마워."




거짓말을 할 거면 말이라도 더듬질 말던가.


치요노는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채 뒷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듯, 곧바로 푸른 눈동자를 빛내며 귀를 잔뜩 치켜세우더니 내 품에 달려들어왔다.


니가 무슨 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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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지 못했던 괴문서들 모두 완결 내보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