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문서] 트레이너 따먹으려는 키타산 이야기(上) 

[괴문서] 트레이너 따먹으려는 키타산 이야기(中) 

[괴문서] 트레이너 따먹으려는 키타산 이야기(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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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아이를 어떻게 생각하나?"


자리에 앉자마자, 키타산의 아버님이 꺼내신 말은 그것이었다.


"그냥 단순하게 말해보게. 그동안 길지는 않지만 짧지도 않은 시간을 같이 보낸 사이가 아니던가. 그동안 느낀 감정이 있으리라고 생각하는데."


잔잔하게 가라앉은 듯한 시선이 내게로 향한다. 키타산의 아버님은 내가 답할 말을 기다리는 듯. 술도 채 따라지지 않은 술잔을 매만지며 나를 바라보았다.


"...질문의 의도를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좋은 아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답은 단지 그뿐인가? 이미 우리 딸아이가 마음을 밝혔다고 들었네만. 그러면 내 물음이 어떠한 것을 묻는 것인지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네. 부디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주게나."


"...."


물음에 대한 답변이 오답인 듯이 재차 되묻자, 나는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물음이 무엇을 묻는지는 알고 있으며, 또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미 키타산의 마음을 거절했기에. 그리고 내가 거절한 것을 알고 있음에도. 다시 묻는 것에 무엇이라 답해야 할지 확신이 들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거절한 이유.... 키타쨩이 말 안했겠지...?'


...적어도 눈치로 봐서는 키타산이 아버지에게 내 거절 사유를 말하지는 않은 것 같다. 


혹여 이런 분에게 내가 그런 이유로 거절했다고 말했다가는... '나와 내 딸을 능멸하는 것이냐!'라면서 나를 드럼통에 태워 콘크리트를 들이붓고는 도쿄만 한가운데에 던져버릴 것만 같다.



내가 침묵하자 키타산의 아버님은 술잔을 매만지던 손을 내리더니, 이윽고 옷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작은 갑에서 사진으로 보이는 것들을 꺼냈다.


그러고는 잠시 그 사진들을 바라보더니, 손을 뻗어 탁자 너머의 나에게 내밀었다.


"받게나."


"이것은?"


이내 그 사진들을 내 손에 받아 살펴보자. 키타산의 아버님이 건네주신 사진들이 어떤 사진들인지 알 수 있었다.


"내 가족사진들일세. 나와 내 딸아이... 그리고 먼저 떠나간 내 아내와의 사진...이지."


"...."


키타산의 아버님에게 분명 소중할 사진들. 혹여나 구겨질까 조심스레 손가락을 움직이며 한 장 한 장을 넘겨보았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나와 내 아내가 만난 것은 내가 젊은 적은커녕 중년에 접어들었을 때였다네. 마흔이 다 넘어서야 사랑을 만났었지."


그 말대로. 사진 속의 키타산의 아버님은 지금보다야 젊었으나, 이미 주름살이 잡히기 시작한 중년으로 보였다.


그리고...


"키타산의 어머님께서는... 몹시 젊으셨군요."


"맞네. 내가 사랑이고 뭐고 모른 채로 아저씨가 되어가던 나이였건만. 늦깎이에 찾은 사랑이, 만난 그녀가 몹시나 아름답더군. 내가 생각해도 내가 우습기 그지없어."


사진 속 키타산 아버님의 옆. 키타산과 닯은 화사하게 웃고 있는 여성은 모습은 많이 쳐줘봐야 내 나이 쯤으로 보였다.


"우스울 정도로 웃음이 나고. 어리숙한 바보 같은 사랑이었는데. 그녀는 나를 무시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답해주었었다네. 그저 근처 꽃집에서 사 들고 갔던 꽃다발 하나 받아 들고는 좋다고 웃어주었던 사람이었지."


넘겨 보는 사진. 꽃다발 하나를 서로 맞잡은 채로 웃고 있는 두 사람. 


"...다들 날 보고 욕하더군. '도둑도 이런 도둑이 없다.'라면서 웃으면서들 욕했었어."


다시 넘겨 보는 사진. 결혼식장으로 보이는 곳에서 서로 껴안은 채로 웃고 있는 두 사람.


또다시 넘겨 보는 사진. 지친 표정으로 포대기에 싸인 아기를 안아 든 채로 웃고 있는 키타산의 어머니와 그 옆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웃는 키타산의 아버님.


하나하나를 기록하고 추억을 담아내듯이 찍혀있는 사진들. 



그리고 사진은, 고작 몇 장이 채 남지 않았었다.


"...아까 말씀하신 대로라면.. 그.. 키타산의 어머님께서는..."


"...먼저 갔다네. 나이도 젊은 사람이 어찌 나보다 먼저 갔는지..."


그 말을 끝낸 키타산의 아버님은 감정이 복받쳐 올라 눈물이 배어 나온 듯. 손으로 눈을 훔치며 말을 이었다.


"우리 딸아이는 어머니의 얼굴을 직접 본 적이 없다네. 고작 아기였을 때야 보고 말았으니... 아내는  딸아이를 낳고 나서 시름시름 앓더니, 딸아이가 아기 티를 벗어 던질 때쯤 세상을 떠났지."


병색이 완연한 얼굴임에도, 아직 아기인 키타산을 안고 웃으며 찍은 사진.


오늘은 이 정도로 자랐다는 듯이 비교하며 찍은 사진.


기어다니기 시작한 키타산을 보고 화들짝 놀란 듯이 같이 찍은 사진.


그리고 마지막. 


병실로 보이는 곳의 침대에 누워있음에도, 조금이나마 자란 키타산을 꼭 안은 채로 가냘프게나마 웃음 지으면서 찍은 사진. 


그 사진이 마지막 사진이었다.



나는 그 사진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다시 손을 뻗어 키타산의 아버님에게 돌려드렸다.


다시금 사진을 돌려받은 키타산의 아버님은 그 사진을 손에 쥔 채로 다시 추억과 기억을 되새기듯 바라보다가, 이내 사진을 꺼냈던 작은 갑안에 다시 넣었다.


"좋은 여자였다네. 나 같은 사람을 만나지 않았으면 더 오래 살면서 행복하게 살았을지도 모르지. 그게 몹시 죄스러워."


"...."


"그래서 아내에게 해주지 못한 만큼, 부족했을 만큼. 내 딸아이에게 더 노력하기로 다짐했네. 딸아이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이루어주고 싶다고. 그것이 먼저 떠난 아내에게 바치는 내 추모의 일부라고."


그 말을 끝낸 키타산의 아버님은 눈을 감았다 뜨더니. 이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자네에게 부탁하네. 내 딸아이의 마음을 부디 무시하진 말아 주게. 아직 어린 나이에 품은 마음이더라도, 지금 그 아이는 진심일 테니."


"저..그게..."


"나이 차이 때문인가? 나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자네 눈앞에 있는 이는 마흔 넘어서는 고작 스무 살 먹은 아가씨를 좋아해서 결혼했던 하찮은 남자일세. 자네의 나이가 서른은 넘겼는가? 우리 딸아이는 내후년이면 스물이 되네. 고작 10살 차이도 나지 않으니, 나이에 너무 연연하지 말아 주게나."


'아니. 나이 문제가 맞긴 한데. 그런 나이의 문제가 아닙니다!'


"적어도 잠깐만이라도 그 아이의 마음에 답해주게. 아주 잠깐만의 어울림이라도 괜찮아. 그 아이가 스스로 마음을 정리하거나, 자네가 그 마음을 받아줄 생각이 들 정도의 시간이라도 부탁함세.


"...."


적어도 키타산이 내 거절 사유에 대한 비밀을 지켜준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아니면 이런 이야기를 하진 않으셨을 테니까.


그렇게... 키타산의 아버님이 말씀과 부탁을 반복한 지 몇 분 지났을까.


"-이 정도로 말했으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 한 것 같네."


"...예. 잘 들었습니다."


잘 들으려고 노력했지만. 키타산의 아버님의 말씀이 너무 많으시다보니... 


솔직히 키타산의 마음을 받아달라는 애원에 가까운 부탁이라던가. 사랑에 있어서 나이 차이의 덧없음이라던가. 키타산의 자랑에 대한 말이 가득했었다는 것 말고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나의 생각을 키타산의 아버님은 아는지 모르는지 한숨을 살짝 내쉬더니, 이내 음식이 가득한 탁자를 내려다보며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되었네...나이가 많아지니 말이 너무 길어진 것 같으니... 음식이 다 식겠어."


"...예."


무거운 이야기를 연달아 들은 터라 속에 음식이 넘어갈까 의문스러웠으나, 일단은 키타산의 아버님 말에 따라 눈앞의 탁자에 시선을 향하려던 순간.


/ 똑똑- /


등 뒤에 내가 들어왔던 미닫이문을 조심스레 두드리는 소리가 조용한 방안을 울렸다.


"누구...?"


고개를 돌려 등 뒤의 문을 보려 하는 순간. 


"...들어오려무나."


그 미닫이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답하듯. 키타산의 아버님이 나지막이 소리내어 말했다.


그러자, 미닫이문이 조심스레 열리며- 


"....♪"


"...키타쨩-?"


조금 화려해 보이는 기모노를 입은 키타산이 옅게 미소 지으며 들어왔다.


"어째서..?"


"내가 미리 불러두었다네. 이리 와서... 네 트레이너 옆에 앉으려무나."


이내 조신하게 한 걸음씩 옮겨 다가온 키타산은 살포시 내 옆에 앉더니, 이내 술병을 들어 술잔에 따랐다.


"일단 서로 술 한 잔씩 들지. 맛 좋은 술이니 맘껏 마시게. 취하는 것은 걱정하지 말게나. 어차피 우리 집에서 자고 갈 예정이 아니던가."


"저 그게 제가 술을 잘하지 못하는지라..."


"걱정하지 말고 들게. 못 해도 괜찮으니."


나의 말을 들을 생각은 없으신 듯. 이내 술이 채워진 잔을 손에 들어 올리며 마실 것을 재촉하시는 모습에 나는 거부치 못하고 술을 입에 대었다. 


살짝 달지만 동시에 무척 독한 술인듯. 한 잔을 마시자마자 눈앞이 팽 도는듯한 느낌이 들어 순간 뒤로 넘어질 뻔하였으나, 옆에 앉아있던 키타산이 손을 뻗어 받쳐준 덕택에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괜찮으세요?"


"아.. 고마워. 키타쨩."


"....♪"


고맙다는 말이 부끄러운 듯이 말없이 눈웃음으로 살짝 답해준 키타산은 이내...


내가 비운 빈 술잔에 다시금 술을 따랐다.


'...키타쨩?'


방금 비운 술잔에 다시 술을 따르는 키타산의 모습에 술이 들어간 정신이 놀라 제자리를 찾는 듯해서 속으로 침음성을 삼켰으나, 이내 그런 침음성조차 맞은편의 키타산의 아버님의 말씀을 듣자 사라졌다.


"술이 꽤 입맛에 맞는 것 같으이. 그럼 다시 한 잔-"


"앗- 알겠습니다...?"


....


"음식도 좀 들게나. 우리 집의 요리도 나름 어디 가서 꿀리지는 않으니. 그럼 다시 또 한 잔-"


"예... 딸꾹-"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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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술 한 잔이 한잔, 두잔, 세잔이 반복되자. 나는 인사불성으로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와는 반대로 키타산의 아버님은 얼굴빛이 조금 붉게 변한 것을 빼면, 전혀 취하지 않은 듯한 모습으로 연신 뭐라고 말씀을 이어가셨다.


"그래서.... 어떤가? ....분명 괜찮을.... 자네라면.....이해하겠지?"


"네..딸꾹-! 그렇습니다...."


흐릿한 시야와 먹먹한 귓속으로 무언가의 말씀하시는 것이 보이고 들리기야 했으나, 나는 몹시 취하여 중간중간이 끊기듯이 들려오는 말소리에 그저 긍정의 말을 반복하며 답할 뿐. 


옆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잡아주고 있는 키타산의 손길이 없었다면, 금방 뒤로 넘어져 그대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


눈을 감았다 뜨는 것조차 힘겨워. 한 번 눈을 감으면 잠시 기절한 듯이 감고 있다가 들려오는 말소리에 퍼뜩 눈을 뜨는 것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눈을 한동안 감아. 깜빡 잠시 잠들었을까...


"...슬슬 데려가려무나."


"...네... 감사합니다. 아버지."


"...좋은 밤 보내려무나..."


'무언가 음습할 듯한 이야기가 들린 것 같은데... 아닌가.... 아... 그냥 자고 싶어...'


그러다가 잠시 후...



/ 짝짝-! / 


"읏?!"


귓가에 울리는 박수소리가 나를 깨웠다.


그렇게 눈을 뜨자, 눈앞에 보이는 것은 나를 빤히 바라보고있는 키타산과 그 아버님.


"아- 죄송합니다. 제가 깜빡...딸꾹-"


같이 식사하고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잠들었다는 생각에 퍼뜩 사과부터 건네려했으나, 몸을 잠식한 술기운이 딸꾹질로 방해했다.


그런 사과임에도 불구하고, 키타산의 아버님은 웃음을 터트리시더니...


"하하하... 괜찮네. 술이 약하다는 말은 아까도 들었었으니. 계속 마실 것을 재촉한 내 잘못이지. 미안하네. 어느정도 배를 채운 것 같으니 이만 일어나고 이야기는 내일 다시 함세." 


"에- 딸꾹- 감사합니다..."


이내 취한 와중에도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조심스레 내려두고. 인사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앗-?!"


"조심하세요!"


-려던 찰나. 술기운에 잠식된 다리가 비틀거리더니, 이내 균형을 잃고 넘어지려고 하였다.


"휴... 이번에는 더 위험하셨어요."


"으으... 또 고마워... 키타쨩--"


"...방에 돌아가실 때까지 부축해 드릴게요."


"항상 고마워어...."


이내 나는 타산의 손이 이끄는 대로 팔을 키타산의 어깨에 올렸다. 그러자 키타산의 한 팔이 내 허리를 감아 안듯이 잡아 곧게 세웠다.


"...그럼. 갈게요-"


"...좋은 소식 기원하마."


무언가 가족끼리의 인사인 걸까. 살짝 고개돌려 자신의 아버지와 인사를 주고받은 키타산은 이내 나를 끌고 복도로 나와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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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타산에게 의지하여 끌리듯이 걸음을 옮기며, 아까 걸어왔던 복도를 되돌아간다.


아까 지나왔던 건물 사이를 이어주던 복도에 접어들자, 활짝 열린 미닫이문 너머로 어슴푸레한 빛이 비치는 정원이 보인다.


그 정원의 연못에는 밝고 둥그스름한 보름달 하나가 비치고 있다. 


그 연못에 비친 보름달이 아름다워 보여서, 이내 비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한 시선이 술에 취해 갈팡질팡하면서도 하늘을 향한다.


그러자...


"달이 아름다운 밤이네요~"


마침 내가 보고 있던 것을 키타산도 같이 보고 있던 듯. 키타산은 내게 그렇게 말해왔다.


"...그러게...딸꾹-"


"에헤헤.. 엄청 취하셨어요."


"...키타쨩이 술을 너무 많이 따라줬어..."


"후후... 죄송해요. 실수했어요."


"으응....괜찮아..."


그런 하잘 것없는 말을 계속 나누며 얼마나 계속 걸었을까. 


갑작스레 키타산의 걸음이 멈추어, 끌려가던 나의 걸음도 덩달아 멈춰 섰다.


"으음...키타쨩?"


갑작스레 멈춘 걸음에 의아해진 나는 살짝 고개를 들어 옆의 키타산을 살폈다.


"...."


키타산의 시선은 어딘가를 바라보며 그대로 멈춰 있었다. 


그 시선을 나의 시선으로 쫓자. 키타산이 바라보는 어딘가가 아까 이야기했던 보름달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달을 향해 시선을 향하던 눈동자 아래의 입가가 살짝 우물거리더니...


"트레이너 씨."


갑작스레 나를 부르는 말을 꺼냈다. 


"응....? 키타쨩?"


"물어볼 것이 있어요... 술 때문에 멍하신 와중에 죄송하지만..."


무언가 꾹 참았다가, 말하지 않으려고 했다가, 가까스로 꺼내는 듯한 말투로. 


"앞으로도, 저랑 저런 달을 같이 봐주실래요?"


라는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제 옆에는 트레이너 씨가 있고. 트레이너 씨 옆에는 제가 있고...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그렇게 말이에요."


"...."


그 말에 다시금 달을 바라보았다. 무척 아름답고 예쁘고...밝은 달.


보고 있자니, 계속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달. 


그저 술기운 때문이 아니라, 진짜로 아름답게 느껴져서.


그래서...


"좋지..."


"...네. 저도 좋아요."


나의 긍정하는 답에 키타산은 다시금 답하듯 긍정의 답을 내놓았다. 그러고는...


"에... 같이 달 구경하자고 한 거 아니었어?"


 "후후! 나중에라도, 훨씬 나중에라도 같이 볼 수 있으니까. 지금은 다른 것에 집중하러 가죠!"


지금 이 자리까지 오던 길에 나를 부축하던 걸음보다 더욱 빠르게 가려는 것일까. 키타산은 나를 거의 들고 가듯이 움직이며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우웁. 키타쨩 - 나 속이 이상..."


"죄송해요! 지금은 저도 급해서!"


나는 흥분한 듯이 크게 말하는 키타산에게 들린 채로 옮겨져, 나는 어느새 내가 잠들 방의 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키타산은 방의 미닫이문을 한 손으로 드르륵 열더니, 이내 조명을 켜지 않아 어두컴컴한 와중에도 달빛에 의지해 나를 조심스레 이부자리 위에 눕혔다.


바닥에 깔린 두터운 이불의 감촉이 포근해서 몹시 기분이 좋아. 조금 전까지 느끼고 있던 메슥거림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키타산은...


"키타쨩...뭐 해...?"


"헤헤... 주무실때는 그 옷은 답답하실 테니까. 살짝 벗겨드리고 있어요."


"으응... 그렇구나..."


내 옷을 하나하나 벗겨주고 있었다. 


'응...뭔가 이상한데.... 괜찮겠지....'


입고 있던 옷이 조금 거추장스럽다고는 느끼고 있었으니. 잘 때는 벗고 자도 괜찮을 것이라고 나는 납득했다. 


거추장스러웠던 옷이 내의만 남긴 채로 벗겨지자. 이내 편안해진 옷차림과 몸을 누인 이부자리의 편안함이 더해져 금방이라도 잠들 것만 같다.


그런데...


"키타쨩...은 키타쨩의 방으로 안 가?"


"오늘은 여기서 자려구요."


"으응...?"


이윽고 내 옷을 벗겨내었던 키타산은 이내 제 옷도 천천히 벗어버리기 시작했다.


"아....?"


"....♪"


달빛이 비치는 와중에, 키타산은 나에게 보란 듯이 천천히 제 옷을 벗어 내린다.


"키타쨩...?"


술에 취해 멍한 정신으로도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끼어 계속 키타산을 부르지만. 키타산은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내 말소리가 들릴 떄마다 살짝 미소지으며 웃음을 흘린다.


"읏..."


이내 안에 있던 속옷이 드러날 정도로 키타산이 옷을 벗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감았으나, 조금 전까지 머릿속에 자리한 채로 눈을 감기를 기다리던 잠기운은 어디론가 사라져 나를 꿈속으로 도피하지도 못하게 하였다.


/ 사라락- 사라락- / 


눈을 감아 키타산의 모습을 눈에 담는 것은 피했으나.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귓가에 옷을 벗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 옷을 벗는 사라락 소리가 이어지는 만큼. 내 심장소리도 두근거리며 커져갔다.


그리고. 그 옷을 벗는 사라락 소리가 끝이 났을까.


나는 조심스레 눈을 떴다. 잠시 깜빡 잠들어서 이상한 것을 보고 들은 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를 품으며.


"....아-!"


그러나, 내가 눈을 뜨고 바라보는 그 앞에는 키타산이 모든 옷을 내던진 채. 


태초의 모습을 자랑하는 듯이 살결을 드러내며 달빛의 푸른빛과 대조되는 붉은 빛의 눈동자를 반짝이며...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트레이너 씨..."


나의 눈이 그 눈동자와 마주치자. 키타산은 그렇게 나를 부르며 쓰러지듯이 몸을 나에게 겹쳐왔다.


부드러운, 그러나 내가 원했던 크기의 그것은 아닌 것이 내 맨살에 닿자 내 이성과는 반대로 심장은 더더욱 크게 뛰었다.


"좋아해요... 트레이너 씨도 지금 저를 좋아하고 계시잖아요... 그렇죠...?"


키타산은 살짝 간지럽히듯이 내 내의의 아래로 손을 살짝 집어넣어 내의를 벗기며 손끝으로 맨살을 희롱하기 시작했다.


"읏....이런 건..."


"괜찮아요... 그냥 본능에 맡겨주세요... 그저, 제가 이끄는 대로..."


그렇게 희롱하는 매혹적인 손길에. 맨살에 맞닿는 풍만한 마유통의 감촉에. 서로의 겹친 다리 사이에.


그 모든 것에 느껴지는 흥분에.


"이렇게... 커지셨으면서... 제가 커진 것은 싫다니. 말이 안 되잖아요."


"읏...아아...."


이내 답답해질 정도로 크게 자라난 것을 담고 있던 속옷이 키타산의 손길에 잡아 내려가고...


"후흐...."


이상야릇한 신음을 흘리며 천천히 몸을 움직여 그것을 제 속에 내담는 키타산에 의해서...




나는 그렇게---


"아..."


"응...♥"


천천히 내 어린 취향과의 작별을 고하게 되었다.



보름달이 참 밝게도 뜬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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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조절 실패. 다른 것들은 3000자 내외였으나 여기에서 길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