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센에서 남자 트레이너로서 살아간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성욕이 왕성한 어린 우마무스메들은 담당 트레이너가 남자일 경우 제대로 통제되질 않는다.


물론 내 담당들은 지금까지 별 문제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의심받지 않기 위해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고, 여성용 향수를 뿌리는 등 선천적으로 작은 체구를 활용해서 여자처럼 행동하고 다녔으니까.




'우마무스메란 위험한 종족들이란다. 트레이너가 되고싶다면, 최대한 네가 남자라는 사실은 들키지 않는 편이 좋아. 자칫 잘못했다간 그대로 애아빠가 되어버리는 수가 있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너무 걱정하신다고 생각했다. 그야, 정작 그렇게 말씀하셨던 아버지는 우마무스메인 어머니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계셨으니까.


하지만 방심하지 않는다. 


트레센에서 홀로 우마무스메들을 맡던 트레이너들이 하나같이 영 좋지 못한 꼴을 당한 것도 사실이니까.




일례로, 무수한 G1 우승을 이끌어 냈던 와다 류지 씨는 모두의 축하 속에서 은퇴했었다. 


행복한 결말이라고 할 수 있겠지. 


담당 우마무스메들이 전부 임신한 상태였다는 것만 빼면!


나중에 듣자하니, 트레이너가 은퇴할 기미가 보이자 일제히 선이 끊어져 버려 트레이너를 집단 뾰이 해버렸다나.


트레센에서는 차마 남자 트레이너가 담당들에게 돌려 먹혔다는 사실을 어떻게든 숨기려 했지만... 암만 그래봤자 사람들도 눈치가 있지. 무슨 일이 터졌는지 정도야 다들 알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트레센의 트레이너는 주로 여자가 하는 편이다. 


포텐셜을 온전히 발휘시킬 순 없어도, 서로의 감정선을 건들 일도 없으니까.


게다가 3년 동안 갖은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달리기에 집중해야할 시기에 팀 트레이너가 남자라면, 심한 경우 팀원 간의 치정문제로 번져나갈 수도 있다.


그렇기에 아버지께서는 한사코 큰 돈을 벌기 위해 트레이너가 되겠다는 나를 뜯어 말리신 거겠지.


...가끔씩 아버지가 어머니를 두려워 하는걸 보면, 음. 조금 꺼림직하긴 하지만.


그래도 모처럼의 직장이다. 큰 돈을 버는 직업인만큼 앞으로도 이 아이들과 함께 열심히 일할 생각이다.




"좋아! 오늘은 여기까지!"




장거리 준비를 위한 스태미너 트레이닝 시간. 끝없이 터프 위를 내달리던 담당들이 목소리를 듣고 달려왔다.


아무리 기능성이 들어간 옷이라지만 저런 얇은 옷을 입은채 무한정 뛰는 그녀들을 보면, 확실히 우마무스메란 종족은 보통 내기가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왓쇼이! 어느새 내 앞으로 달려온 첫 번째 담당, 키타산 블랙이 힘차게 외쳤다. 웃음기가 가득한 미소와 흔들리는 꼬리는 쉴 수 있다는 생각에 몹시 들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와와~... 역시 키타산 양은 빠르네요~!"




그리고 뒤이어 달려오며 한껏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내 곁에 서는 두 번째 담당, 마치카네 탄호이저까지.


두 사람 모두, 부족한 신입 트레이너의 스카웃을 선뜻 받아준 착한 아이들이다.




"여기 물이야. 둘 다 오늘도 고생했어!"




오늘도 순조롭게 진행된 장거리 훈련에 기분좋게 웃으며 물을 건넸다. 




물을 건네받은 키타산이 덧붙인 말만 아니었다면, 참 좋았을텐데.




"고마워요! 그런데 탄호이저 씨, 트레이너 님 왠지 남상이지 않나요?"




물을 마시며 내 머리에 한 손을 얹은채 살살 쓰다듬던 키타산의 한 마디에, 문득 간담이 서늘해졌다. 


설마 알아챈건가? 


일부러 트레센에서는 옷도 안벗었는데...?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내 모습은 누가 봐도 여자아이 그 자체였다.


길게 자라있는 갈색 머리카락, 앳된 외모, 눈앞에 있는 키타산보다 머리하나쯤 작은 키까지. 누가 나같은 사람을 남자라고 생각할까.


침착하자. 단순한 농담일 것이다.




"그게 ㅁ, 무슨 소리니? 애들아..."


"저는 트레이너 님이 여자든 남자든 신경 안씁니닷! 저같은 평범한 우마무스메의 미승리전도 한 번에 통과시켜준, 고마운 은인이니까요......"




탄호이저는 그렇게 말하며 뭉! 소리와 함께 내게 머리를 내밀었다. 역시 탄호이저 밖에 없어! 


고마운 마음에 머리를 잔뜩 헝클어주자 탄호이저의 귀가 잔뜩 파닥였다.




"흐응~ 그런가요? 우선 샤워나 하러 가죠!"




묘한 표정으로 돌아서는 키타산. 


어물쩡 넘어가긴 했지만...이대로 보내도 괜찮은걸까?


역시 안되겠다. 미리 물어봐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




함께 샤워실로 향하는 둘을 불러세웠다.




"저기... 애들아. 궁금한게 있는데......"


"네? 뭔가요?"


"뭉!"




여전히 발랄하게 방긋 웃어 보이며 내게 돌아서는 그녀들. 천천히 숨을 들이쉰 다음, 그녀들을 향해 한 마디를 내뱉었다.




"만약에 내가... 남자라면 어떻할거야?"




잠시, 둘의 시선이 의아한 듯 내쪽으로 와닿았다. 


왜 그런걸 묻느냐는듯한 의아함이 가득한 시선.


어깨를 한 번 으쓱한 키타산은, 내 질문에 답해 주었다.




"까놓고 말해서, 트레이너 님이 남자였으면 진작에 개따먹어 버렸을 것 같아요!"


"흐므흐므, 같은 동성이니 그럴 순 없지만요~"


"노, 농담도..."


"흐응... 얍!"




키타산은 다가와서 나를 번쩍 들더니 그대로 와락 끌어안았다. 갑자기 부드러운 가슴골 사이에 안겨버리니 나도 모르게 으븝-하고 실없는 소리를 내버렸다.




"그렇죠, 농담이니까요 트레이너 님!... 노옹~담...히힛."




어쩐지 요염하게 들리는 웃음소리를 흘리며, 키타산은 나를 제 품에 끌어안은 채 머리를 쓰다듬어 댔다.


...내가 남자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런거겠지. 품속에서 맡아지는 이성의 향기에 조금 두근거린다.


언제나처럼 천진난만하게 나를 바닥에 내려놓는 키타산. 


방금 전에 농담이라고 했으니까, 괜찮은 거 겠지? 


키타산은 어딘가 만족스러운 기색을 보이며 방실방실 웃어 대고만 있었다.




"그런데 트레이너 님, 그 묵직한 건 뭐에요? 혹시 뭐 맛난거라도 숨기고 계신건가요?"




탄호이저가 내 바짓춤을 가리키며 우후후, 하고 웃었다. 


그래. 맛난 당근이지. 


물려버리면 내 인생도 호로록 먹혀 버리는 당근.




"아무것도 아니야...!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어서 가자!"




애써 이상해지는 분위기를 무마시키며 담당들을 이끌었다.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다. 




여기서 더 이야기했다간 무슨 일이 터질지도 몰라!




최대한 여성스럽게 걷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혹시나 모를 의심을 덜어내본다. 


만약 내가 남자라는 걸, 그것도 여자마냥 곱상할 뿐인 남자라는 걸 이 아이들이 알아 차리면......




"정말이지, 트레이너 님이 남자셨다면 더 좋았을텐데요!"


"그러게나 말이에요~"




둘의 대화에 걷는 속도를 올렸다.


내 꿈은 고향으로 내려가서, 참하고 얌전한 인간여자와 결혼하는 거니까. 


우마무스메 아래에 깔려서 평생 애만들기만 하는 것 따위 딱 질색이니까...!




그 꿈을 위해서라도, 앞으로 남은 3년 간 그녀들을 철저히 속이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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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다리 트레이너 3편 올리기 전에 먼저 올림

몇몇 단편은 추후 시리즈로 연재될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