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모트 군!"




콰앙 ㅡ !




큰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오래된 문은 힘차게 열려, 벽에 부딪히고, 다시 같은 기세로 닫히려고 했다. 시끄러운 소음에 피로한 눈을 끔뻑이며 힘겹게 눈을 뜬다.


6월.


올 초여름은 유난히 더운 느낌이다. 


아직 장마가 시작될까 말까 하는 시기인데도... 더 이상 움직이고 싶지 않을 정도의 열기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냥 일이고 나발이고 집에 가서 에어컨이 켜진 방에 앉아 시원한 주스 한 잔과 함께 하염없이 뒹굴거리고 싶다.


그러나 지금 들어온 연구원 차림의 미소녀, 아그네스 타키온은 그런 극락으로의 전속 전진을 하려는 나를 놓아주지 않고 있다.




"...슬슬 오겠거니 생각하긴 했는데, 또 실험하는 거야?"


"흐응? 오늘따라 모르모트 군 답지않게 내키지 않는 듯한 태도인 걸."


"덥기도 하고…"




소파에 누운 채로 늘어지게 대답하자, 타키온의 하하핫...! 하는 호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아그네스 타키온. 


트레센 트레이너로 취직하고 첫 번째로 담당하게 된 우마무스메.


빛을 반사하며 반짝이는 갈색 머리칼, 심연처럼 짙은 붉은 눈동자. 특징적인 외모를 가진 그녀는 트레센에서도 소문난 미모의 우마무스메다.


그러나 저런 야릇한 겉모습과 달리 타키온은 꽤 남자 같은 성격이다. 아까처럼 문을 여는 것도 거칠고, 이런저런 잔소리를 해도 적당히 흘려 듣는데다, 제멋대로 일정을 강요하기도 한다.


그렇다. 


"오늘은 보여줄 것이 있으니 퇴근하지 말게나" 하고 통보받은 것이 내가 트레이너실의 익힌 찜닭이 되면서까지 퇴근길에 오르지 못하는 이유다.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슥 둘러본다.


트레이너의 업무 공간이 되어야할 트레이너실은 이미 아그네스 타키온의 실험실이 되어있었다. 


'불안정한 다리를 과학으로 극복할 수 있다', 라...


처음 그녀의 사연을 들었을 땐 나 역시 진심을 다해 물심양면으로 도왔지만, 최근에 와서는 타키온의 여러 가지 이상한 실험을 당하며 그녀의 유희대로 놀아나는 느낌 밖에 들지 않는다.


와다 선배를 꼬시려는 티엠 오페라 오의 부탁을 들어준 시점부터 뭔가 쌔하긴 했다만.


얼핏 들어보니 재작년도 작년에도 트레이너가 있었지만 전부 다 계약 해지가 가능한 일 년 사이에 그만둔 것 같다. 


하긴, 제정신이라면 밥도 안먹고 실험에 미쳐사는 것도 모자라서 트레이너를 조수처럼 부리는데 몸에서 빛까지 내뿜게 만들면 때려치는게 당연하다.




솔직히 더운 건 둘째로 그녀의 실험에는 그다지 어울리고 싶지 않다.


근 1년 동안 겪어온 아그네스 타키온의 실험은 바보와 천재 사이의 어딘가에 끼어 있는 것들 뿐. 그조차도 하나같이 달리기와 관련있는 실험도 아니었다.


얼마 전 반중력 부유장치 시험기라고 해서 건네받은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공 모양의 물건은, 확실히 몸이 뜨긴 했지만 몇 분 만에 산산조각이 났다.


물 속에서도 멀쩡히 숨쉴 수 있다는 마스크는 놀랍게도 정말로 물 속에서 평소처럼 숨을 쉴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발명품이었다.


다만 물 속이 아닌 물 밖에서 마스크를 쓰자 갑자기 입 안으로 대량의 물이 들어왔었다.


SF 소설에나 나올 법 한 물건들을 개발하고 이상한 부분에서 망가지거나 오작동이 일어나는 실험의 연속.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겁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계약서에 도장까지 찍어버린 나는 앞으로 남은 2년 간은 그녀에게서 도망칠 수 없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이번 실험도 재빨리 처리하기로 결심했다.




"이번 발명품은 그... 헬멧 같은 거야?"




소파에서 일어나 보니 타키온은 머리에 큰 헬멧 같은 것을 쓴 체 오른손에 헤드폰을 들고 있었다.


둘 다 투명한 커버 속에 잘 모르는 전자회로 같은 것이 많이 들어 있는 듯 했다. 자세히 보니 두 개의 꼭대기끼리 가는 전선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헬멧은 빨강, 헤드폰은 파란색으로, 헤드폰은 둘째 치고 헬멧은 일반적인 것과는 다른 "기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괜히 귀찮다는 이유로 와, 정말 궁금하네! 같은 맹한 반응을 하면 양 볼을 불룩하게 부풀리며 언짢은 기분을 드러내기 때문에, 나름 진심을 담아 궁금증을 드러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타키온이 그 훌륭한 가슴을 내밀며 말했다.




"이건 VR기기를 통한 기억 체험 장치일세!"


"기억 체험...?"


"정확히는 누군가가 가진 기억을 다른 사람이 추체험(追体験)할 수 있는 기기라네. 지금 쓰고 있는 이 헬멧은 머릿속에서 기억을 읽어서 영상화 하는 장치고, 이 헤드폰을 낀다면 내 기억을 사용자의 뇌에 직접 전달해서 내가 했던 모든 경험을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거지. 마치 영상처럼 말일세!"




타키온은 깔깔 웃으며 "요약하면"이라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시점을 바꿀 수는 없지만 일인칭 시점에서 본 것이나 들은 것, 닿은 것 등의 감각을 그대로 체험할 수 있는 발명품일세. 담당 우마무스메와 트레이너가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꿈의 장치인 셈이지! 어떤가?!"




의기양양한 표정의 타키온이 에헴-! 하며 허리에 손을 얹었다. 


솔직히... 수상하다. 영상을 일인칭 시점에서 입체적으로 보는 것, 그런 기술이 세간에 퍼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재벌이라는 사토노 가문조차 시각과 청각의 구현 만으로 한계에 부딪쳤는데, 사람의 기억을 영상으로 출력시키는 것도 모자라 시청각은 커녕 오감 모두를 느낄 수 있는 걸 혼자 개발했다고? 


일류 연구원 수십명이 뭉쳐도 불가능한 일을 단기간에 개인이 해냈을 리 없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아그네스 타키온이다. 


골프공만 한 크기의 구체를 들면 몸이 허공에 붕 뜨는 실험도, 물 속에서 지상처럼 똑같이 호흡할 수 있는 실험도 상식적으로는 분명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 어서 써 보게나! 기억 속에서 내게 말하고 싶을 땐 강하게 생각하면 된다네!"




타키온이 내 눈 앞에서 헤드폰을 휙휙 흔들어댔다. 그 열정에 헛웃음을 내뱉으며 그것을 받아들었다.


뭐, 어쨌든 실험이 끝나기 전까지 타키온은 절대 퇴근을 허락해 주지 않는다. 만약 그녀의 말대로 기억을 추체험할 수 있다는게 사실이라면 나름 흥미롭기도 하고.


다 좋으니 저번처럼  헤드폰이 갑자기 폭발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나무아미타불.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받아든 헤드폰을 머리에 쓰고 양쪽 귀에 갖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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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은 픽시x의 "이 야설이 굉장하다! 20년 3월 어워드 데일리 TOP 30"에 들었던 [그녀의 기억속으로]라는 제목의 야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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