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갤에 썼던 거 여기도 올림

매울 수 있음
업한거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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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지로 파머의 트레이너이다.

메지로 파머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우마무스메다.

나에게 있어 그녀는 나를 보듬어주는 큰 누나 같은 존재.

나는 메지로 파머를 사모하고 있다. 

나는 메지로 파머를 사랑한다.

죽을 정도로 사랑한다.

파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던지 할 각오가 되어 있다.

파머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파머는 내 마음을 알아줄까?





내 이름은 메지로 파머.

나는 트레이너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

감정 기복이 조금 심하고 때때론 조금 이상하게 행동하고는 하지만 평소와는 다른 모습에 매력을 느끼곤 한다. 아마도 나한테만 보여주는 거겠지...

트레이너는 세상에서 제일 좋다. 최고로 좋다! 나를 위해서 어떤 거라도 해주니까.

트레이너는 공허한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졌다고 생각한 나를 끌어올려 준 소중한 사람. 그런 트레이너를 사랑 안 하는 게 더 이상하다.

트레이너와 함께라면 분명 맥퀸 정도는 아니더라도 나름 우수한 성적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근데도 세상은 트레이너를 좀 좋지 않게 생각하는 거 같다. 막 '파머한테 다른 트레이너가 붙었으면 진작에 삼관 땀' 이라던가 '파머야 니 트레이너만 바꿔도 커리어에 꽃길 핀다' 처럼 트레이너를 비하한다.

트레이너는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 잘못한 게 있다면 다 내 탓인데.






여름 합숙 도중 다리에 이상함을 느꼈다. 트레이닝 좀 열심히 했다고 근육통이라도 생긴 걸까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갔다.

트레이너가 내게 무언가 이상이라도 있냐 물어봤다. 트레이너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 문제 없다고, 괜찮다고 답했다.

버스에서 내려 걷는 도중 전에 이상했던 바로 그 부위가 찌르는 듯이 아팠다. 제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식은땀이 줄줄 나고 눈물이 찔끔 나왔다.

아픈 다리를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 다음 일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파머가 부상입었다. 내가 막았었더라면, 내가 제지했었더라면, 내가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분명히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재활하려면 적어도 몇 개월은 걸린다. 재활에 성공하더라도 다시 원래의 주력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앞날이 아직 창창하던 우마무스메의 인생을 망쳐버렸다.

전부 내 잘못이다.

모두 나를 싫어한다. 나를 미워한다. 나보고 인간미만의 쓰레기라고들 한다. 나보고 자살하라고 종용한다.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전부 내 잘못이니까. 나는 쓰레기니까. 나는 죽어야만 하는 사람... 아니다, 너는 사람도 못 될 놈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래도 파머에게 이런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참고 그녀에게 헌신하자.






트레이너가 이상하다. 골절도 나았는데 중상에서도 이겼는데 계속 힘이 빠져 있는 것만 같다.

나 때문에 그러는 걸까...? 내가 골절당하고 나서 세간이 트레이너를 더더욱 물어뜯은 건 사실이다. 내가 그때 사실대로 답했으면 트레이너가 그렇게 되진 않았겠지.

돌이켜보면 내 잘못이나 다름없다. 

트레이너가 슬프면 나도 슬프다. 소중한 사람이 자기 때문에 슬퍼하는데 아무렇지도 않을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다음 중상에서 한 번 더 이겨서 북돋아 주자!






결과는 11착.

참패했다.

분명 내 탓이겠지. 나 때문이다.

그래도 한 가지 얻은 건 있었다. 결승선을 통과할 때 그녀의 절망한 얼굴이다.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강렬한 기억이다.

나 이런 취향이였구나...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린 주제에 이딴 취향이나 가진 나...

인간 이하의 쓰레기 새끼






트레이너한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해줄 테니까 기운 좀 내달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조심스레 머리에 커피를 붓게 해달라고 부탁해왔다.

트레이너는 분명 그런 일들을 겪고 난 뒤에 마음의 상처를 입고 머리에 뭔가 문제가 생긴 거 같다.

나만 아니었어도 트레이너가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니까. 나는 거절할 권리가 없다.






파머가 뭐든지 해준다고 했다.

마침 마시던 커피가 눈에 들어왔다.

머리에다 커피를 붓게 해달라고 했다.

허락받았다. 파머는 마조히스트라도 되는 걸까?

텀블러를 천천히 기울였다. 미지근한 구정물이 따라 나오더니 바닥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한다.

액체는 얼마 가지 않아 한 사람의 머리에 닿았다.

주르륵주르륵. 커피가 머리를 타고 얼굴에 흐른다. 눈 밑을 따라 흐르는 눈물같이.

주르륵주르륵. 커피가 하늘빛 교복을 적신다. 쏟아지는 눈물에 젖은 것처럼.

주르륵주르륵. 눈에서 투명한 물이 흘러내린다. 얼굴에 남아있던 커피 얼룩을 씻어내려는 듯이.

고개 숙이고 눈물 흘리던 그녀는 기뻐하는 나를 보더니 내심 웃어 보였다.






트레이너가 텀블러를 내 머리 위로 집어 들었다.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다. 속죄의 액체가 낙하한다.

내 정수리에 닿았다. 미지근한 커피가 머릿결을 타고 흐르더니 얼굴에 도달했다.

가느다란 하양 은하수를 타고서, 감은 눈을 지나고, 볼을 횡단해 마침내 턱에 도달한 커피 방울은 맥없이 바닥으로 추락한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내 교복에까지 닿아 검은색 자국을 남긴다. 

순간 눈에서 수정 같은 비애의 감정이 새어 나왔다.

나는 왜 울고 있는 걸까. 나는 그저 내 불찰에 대해 속죄하려는 것뿐인데.

트레이너는 좀 괜찮아졌을까 하고 문득 그를 올려다본다.

미소 짓고 있었다.

환하게, 기쁘다는 듯이 미소 짓고 있었다.

그 일이 생기고 나서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표정이다.

트레이너가 웃어줬다.

너무너무 기뻤다.

이렇게라도 그 사람이 행복할 수 있으면 그거로 족하다.

환희의 수정 방울이 쏟아져 내린다. 나도 그를 따라 미소 지어 준다.






트레이너가 좀 나아진 거 같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힘내서 열심히 트레이닝한 뒤에 타라카즈카 기념에서 이겨 보이고 말 거다!

트레이너랑 나는 서로를 신뢰하고 있다. 서로가 침울해하면 북돋아 주고 격려해준다.

타카라즈카 기념에서 반드시 이겨서 트레이너는 잘못한 게 없다고 증명해 보일 거다!






트레이너가 나아져 보이는 것도 결국엔 일시적인 거였는지 다시 침울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알고 있는, 트레이너를 북돋아 줄 방법은 하나뿐이다.

냉소바를 먹는 도중에 나에게 부어달라고. 그렇게 부탁했다. 

트레이너는 우물쭈물하더니 알겠다고 답해줬다.

이런 일을 해줄 사람은, 이런 일을 부탁할 만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트레이너뿐이다. 

나는 트레이너를 사랑하니까, 트레이너는 내 꺼니까, 나는 트레이너를 사랑하니까.

이렇게라도 트레이너가 기뻐할 수만 있다면 나는 그거로 족하다.

설령 그 방법이 옳든 그르든 간에라도.






요즘 들어 일찍 곯아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루의 절반 가까이 침대에서 보내니 생활 패턴이 정상적으로 될 리가 없다.

신기하게도 그렇게나 오래 자는데 피로가 풀리질 않는다. 인체는 정말 신비히다.

아무래도 최근 행적을 파머한테 들켜버린 모양이다. 나에게 냉소바을 부어달라고 부탁해 왔다.

이게 정말 도의적으로 올바른 행위인지 의구심이 든다.

너는 이 행위가 도덕적으로 정당한 행위이며 사회적으로 용인될 행동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다

알겠다고 말하자 파머가 방긋방긋 웃었다.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같이 외출해서 함께 식당에 들어갔다. 이래서야 마치 데이트라도 하는 것 같다.

주변에서 나를 보고 수군대는 것 같았지만 기분 탓이겠지. 파머랑 오손도손 대화하다 보니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은 날아갔다.

자리에 앉고 냉소바 2인분을 시킨다.

조신하게 오물오물 면발을 씹는 파머는 최고로 귀엽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평소처럼 격려의 말을 듣고 먹던 그릇을 손에 쥐었다.

단숨에 추악한 욕망의 농축액을 그녀의 얼굴에 부었다.

정말 보기 좋은 몰골이었다. 머리는 축축이 젖고, 입고 나온 옷에서는 국물이 뚝뚝 떨어지고, 온몸에 면과 고명이 붙어있었다.

파머는... 눈물 흘리며 웃고 있었다.






거리를 걷는데 트레이너한테 나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였다. 트레이너랑 대화하는 거로 어떻게든 흘려넘겼다.

그래도 가게에서 그러는 건 어쩔 수 없이 트레이너의 귀로 흘러 들어갔을 거다. 그 사람들이 정말로 미웠다.

트레이너가 냉소바 2인분을 시켰다. 트레이너는 어느 쪽 그릇을 나한테 부을까?

이거 생각보다 맛있다. 솔직히 말하면 트레이너가 나한테 붓지 말고 다 먹어줬으면 좋겠다. 그럴 정도로 맛있다.

트레이너가 심호흡하더니 자신의 그릇을 손으로 쥐었다. 자기가 먹던 그릇이니까... 분명 트레이너의 타액이 들어있겠지.

차가운 액체의 감촉이 내 피부를 감싼다. 트레이너가 먹던 면이 달라붙었다.

옷이 축축해졌다. 트레이너가 마시던 국물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사고기관을 덮친다.

뚝뚝하고 떨어지는 액체의 소리가 기분 나쁜 적막감을 채워간다.

수치심에 눈물 흘렸다. 그래도 행복하다. 이런 걸 해준 걸 넘어서 내게 트레이너의 침까지 선사해주었다.

행복했다.

속옷이 젖은 이유가 국물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체액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서로 행복하니까, 그거로 됐다.

그거로 된 거다.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타카라즈카 기념 당일

트레이너와 나는 연인관계를 맺었다.

내 쪽에서 먼저 고백했는데, 듣기로는 트레이너도 같은 날에 고백하려 했다고 한다.

우리 둘은 천생연분이 틀림없다.

기필코 이겨서, 트레이너가 욕먹지 않게 할 거다!






9번 인기였지만 멋있게 1착을 차지했다. 

이거로 트레이너에게 가는 비난도 조금이나마 줄어들었겠지.

지하 마도를 지나 대기실로 간다.

거기에는 사랑하는 그 남자가 눈물 흘리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다가가 정열적으로 입을 맞춘다. 영겁과도 같은 쾌락의 시간이 지나고 우리 둘은 헐떡이며 서로를 끌어안는다.

트레이너가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다정하게 등을 쓰다듬어 줬다.






타카라즈카 기념에서 이기긴 했지만 천황상 가을에서는 17착으로 참패.

변명의 여지조차 없다.

트레이너를 욕보이고 말았다.

아리마 기념을 기필코 이겨서 만회하자.

메지로 파머는 할 수 있다... 사랑하는 트레이너도 있는데... 할 수 있다...





이제 내가 파머에게 무언갈 붓는 것은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마시던 물에, 커피에, 내 침 등등... 거기에 이번엔 내 인자즙을 뿌려달라 부탁받았다...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수 있을 거 같지는 않다. 승낙했다.

파머가 문을 잠그더니 슬금슬금 나에게 다가왔다.

벨트를 풀고 내 하의를 벗긴다.

빳빳하게 우마닷치한 인자봉이 드러났다.






코를 인자봉에 파묻고 그이의 체취를 탐닉한다. 취할 것만 같다. 맡기만 해도 하복부가 큥큥거리는것 만 같다.

일단 끄트머리를 앙 하고 물었다. 한 손으론 인자봉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인자주머니를 주무른다.

교토 경기장의 요도의 언덕을 뒤쪽의 로프를 잡고 천천히 등반한다. 정상에 올랐으면 땅을 몇 번 콕콕 자극하고 다시 로프를 타고 하산한다.  

끄트머리와 기둥의 경계 부위를 곡선의 소믈리에처럼 햩는다.

다시 한번 등산과 하산을 반복한다. 교토 경기장을 완주한 내 혀는 인자봉에서 위닝런을 펼친다.

나는 주목의 무희. 재주껏 핑크빛 점막 위에서 무도회를 즐긴다.

왼손으론 인자주머니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가 가볍게 어루만졌다. 촉감이 오묘해서 재밌다.

오른손으론 인자봉을 쓰윽쓰윽 문질렀다. 피가 양껏 들어찬 그의 인자봉은 손을 대기만 해도 따뜻한게 느껴져 그이가 나를 보고 이렇게나 흥분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손가락으로 뒤편의 튀어나온 부분을 가볍게 위쪽으로 문지른다. 정상에서 점성 있는 지하수가 지표면으로 올라와 내 혓바닥에 맻힌다.

몇 분쯤 지났을까, 슬슬 가슴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상의를 벗고 메지로 가문의 다른 우마무스메에게도 지지 않는 나름 풍만한 아기쿠쿠를 보여줬다.

인자봉이 더 껄떡이는게 느껴졌다. 이참에 아기쿠쿠지지대의 후크를 풀고 아무 것으로도 가려지지 않은 자연 그 상태의 아기쿠쿠까지 보인다.

남자의 뾰이즙이 흘러넘치는 것만 같다. 인자봉을 내 침으로 잘 코팅한 후에 아기쿠쿠 사이에 꽂는다.

손으로 느꼈던 흥분감이 아기쿠쿠로는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뜨거운 핫팩을 사이에 끼운 것만 같다.

나를 보고 이렇게나 흥분해줬다. 애인이 나에게 보일 수 있는 반응중에 당연 최고가 아닐까 생각한다.

인자봉이 엄청 단단해지더니 부들부들 떨었다. 곧 가는구나 하고 직감했다.

조심스레 인자봉을 빼고 머리를 숙였다.

머리에 잘 조준하고 인자봉을 빠르게 흔든다.




 

처음 인자즙을 뿌려달라 부탁받았을 때는 이렇게까지 해줄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기껏해야 손 정도 써주겠지 하던 내 상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런 파머의 모습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몸을 부들부들 떨며 인자즙을 냈다

새하얀 사랑의 증거가 파머의 머리를 뒤엎었다. 정말 대단한 광경이었다.

파머가 하의를 벗고선 나를 바닥에 눕혀두고 올라탔다.

큰일났다. 나는 지금 콘돔도 무엇도 가지고 있지 않다. 파머에게 절박하게 호소했다.

파머도 내 진심을 알아줬을까... 이번에는 물러났다.






트레이너가 나를 만류했다. 지금 뾰이는 제발 하지 말아 달라고, 너를 임신시키기는 아직 싫다고.

트레이너가 행복하기만 하다면 다 상관없는데. 나 따위 우마무스메는 그냥 뾰이인형으로 삼아서 쓰다가 버려도 되는데.

그런데도 트레이너는 나 따위를 존중해준다. 지켜준다. 아껴준다.

트레이너, 정말 정말로 사랑해.

당신을 위해서라면 내 목숨 따위는 바칠 수 있어.

당신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게.

내겐 당신밖에 없어.

아까 한 짓 때문에 나를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제발...

부탁이야...

나를 버리지 말아줘...





    
순조롭게 트레이닝하며 아리마 기념을 향해 준비를 다졌다.

이번 아리마 기념을 이기면 파머는 이제 그랑프리 우마무스메가 된다.

분명 쉽지는 않을 거다. 그래도 파머는 타카라즈카 기념을 이긴 어엿한 G1 우마무스메다. 승리의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가능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파머가 쓰러졌다.

파머는 아리마 기념에 출주했다.

파머의 다리에 붕대가 감겨있었다.

파머는 마장에 생긴 움푹 팬 구멍을 밟았다.

너는 파머를 죽였다

파머가 쓰러졌다.

파머의 다리에서는 선홍빛 피가 줄줄 흘렀다.

파머의 다리에 붉은색으로 덮인 뼈가 있었다.

파머는 바닥에 부자연스럽게 추락해 기절했다.

너가 파머를 죽였다

파머가 쓰러졌다.

파머는...

파머의...

파머는...

너 때문에 파머가 죽어버렸다, 전부 네 탓이다 

내가 잘못 한거다. 전부, 전부 다.


너 따위 쓰레기는 살아갈 가치가 없다

싫다. 아직은 싫다. 죽더라도 적어도 사랑하는 연인과 같이하고 싶다.






나는 아리마 기념에 출전했었다.

천황상에서 참패한 것을 만회하고자, 트레이너를 욕보이지 않고자 꼭 우숭하리라 마음먹었다.

언제나처럼 최선두에서 폭도주하며 달리고 있었다. 이번 나카야마 경기장은 불량마장이였다.

달리다가 발을 헛디딘듯한 느낌이 들었다. 구덩이 같은걸 밟은 거 같았다.

찰나의 순간 균형을 잃었다. 어떻게든 다시 균형 잡아보려 발버둥 쳐본다.

실패했다. 내 몸은 지면으로 다가간다.

무릎부터 땅과 격돌했다. 저번에 골절되어서 약해졌던 쪽인 다리가 먼저, 그 다음에 멀쩡한 다리 순이었다.

핏빛 지지대가 살갗을 찢고 세상에 자기 모습을 보인다.

다음 일은 기억나지 않는다.

일어나보니 병실 안이었다.

꼴에 메지로 가문의 아가씨라는 걸까. 나름 번지르르한 1인실이었다.






다행히도 목숨은 부지했다. 역설적으로 다리가 충격을 스프링처럼 흡수해 준 덕분에 상체에는 비교적 충격이 덜했고, 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다리 두 쪽 전부 붙어있긴 하지만 나는 이제 두 번 다시는 달릴 수 없다. 몸 자체가 달리는 걸 거부하는 데다 행여나 진짜로 달리기라도 했다간 그 부위가 또 그렇게 되고 말 거다.

사랑하는 사람을 욕보이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그이를 실망시켰다. 그가 어떤 비방 비난을 받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전부 내가 자초한 일이다. 

내가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분명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개를 돌려 내 옆에 앉아있는 트레이너를 바라본다. 핸드폰을 좀 보더니 이내 식은땀을 흘리며 의자 팔걸이를 부여잡으며 오열하고 있었다.

내 탓인 게 틀림없다. 나 때문에 트레이너가 저렇게 됐다.

뭐라도 해 주자.






파머의 병실에서 사과를 깎다 시간이나 확인하려고 폰을 꺼내 들었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고 했다. SNS를 확인해봤다.

아직도 세상은 그 사고를 잊지 않았다. 그 아리마 기념이니 TV로도 생중계되었을 것이고, 전국에 알려졌을 것이다.

SNS는 나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했다.

'좆병신같은 트레이너때문에 멀쩡한 우마무스메 하나의 인생이 짓밟혔다' 라던가 전부 너때문이야 '그런거 해놓고서 뻔뻔하게 살아있는거 역겹지 않음? 빨리 살자나 해라' 같은 자살 종용도 많았다.

자살하는 게 어때? 너 어차피 하는 거 좆도 없잖아 라고 병실 안 모두가 내게 공격해온다

귀를 막아도, 무슨 짓을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뇌 속으로 직접 쑤셔 넣는다 


저 사람들이 맞다. 너는 자살해야만 한다 

나는 자살해야만 한다. 그 사실을 깨닫자 머릿속이 햐얘졌다. 나를 공격하던 목소리도 잦아들었다. 귀에선 이명이 들리고, 몸은 빳빳하게 굳고, 등에선 식은땀이 옷을 적시고,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파머가 나를 끌어안았다.

눈물 흘리며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고 있었다. 나도 같이 안아준다.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어댔다.






파머가 나에게 제안을 한 개 해왔다.

레이스는 꽤 나갔고 G1 레이스에서도 이긴 적이 있어서 상금이 나름 있으니까, 그거로 도망가자는 거다.

트레센 학원으로부터도, 레이스로부터도, 메지로의 이름으로부터.

나로서는 다른 대안은 생각나지 않는다. 나쁜 생각들이 내 머리를 갉아 먹고 있었다.

파머가 미소 지었다. 그 눈에서 이전에 약간이나마 있었던 생기는 찾을 수 없었다.






수개월이 지나고 파머는 퇴원했다.

이전의 맏언니 같았던 파머는 더 이상 없다.

이제는 그저 매사 불안해하고 자기 탓만 하는 다리병신 우마무스메일 뿐이다.

파머와 약속한 대로 도심 외각에 있는 단독주택에서 머무르고 있다.

서로 뭘 할 처지가 아닌 터라 끼니는 대충 때워 먹고 있다.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길 14일째.

파머가 커터칼로 손목을 긋는 걸 봤다.

나도 똑같은 짓을 하던 참이라 내 손목을 보여줬다.

이런 짓 할 거면 같이 하자고 물어봤다.

흔쾌히 승낙받았다.

무릎 위에 앉으라고 속삭였다.

그녀가 사뿐히 내 위에 걸터앉았다.

한 손으로 파머의 왼 손목을 잡고 다른 한쪽으로는 파머가 쓰던 커터칼을 쥐었다.

금속 빛 칼날이 파머의 부드러운 피부를 가른다. 피가 송골송골 맻힌다. 몇초가 지나자 붉은색 사랑의 액체가 흘러나왔다.

파머에게 돌아서 내 쪽을 바라봐달라고 부탁했다. 내 머리를 파머의 왼 손목에 갖다대고 선홍빛 포도 주스를 남김없이 햩아먹는다.






이제 내 차례다.

한 손으로 트레이너의 왼 손목을 잡고 다른 한손으로 그가 쥐고 있던 커터칼을 든다.

피부가 갈라지고 피가 송골송골 맻힌다. 몇초가 지나자 붉은색 사랑의 액체가 흘러나왔다.

트레이너의 손목 쪽으로 머리를 갖다대고 흘러나온 피를 남김없이 햩아먹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서로 손목을 교차해 상처로 상처를 쓰다듬었다.







너무나도 침울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트레이너가 어떤 심정이었을지 지금은 이해가 된다.

그리고, 그이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도.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나 같은 우마무스메에게 더 이상 희망 따위는 없다.

있을 리가 없다. 나는 죽어 마땅한 존재니까. 내가 이 모든 것을 자초했으니까.

죽고 싶어졌다.

적어도 죽기 전에 사랑하는 그 사람이 행복해하는 걸 단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었다.






커피를 부어도 괜찮을까? 라고 물었다.






그이가 그때 내게 커피를 붓고서 처음으로 기쁘게 웃어주었다.

당연히 괜찮다.






그렇지만 우리 집에선 커피 한 잔조차 끓일 수 없다. 마시던 생수라도 괜찮으려나?






상관없을 거다. 밖에 나가기는 싫으니까.






생수병을 파머의 머리에 쏟았다. 투명한 구정물이 따라 나오더니 바닥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한다.

액체는 얼마 가지 않아 한 사람의 머리에 닿았다.

주르륵주르륵. 물이 머리를 타고 얼굴에 흐른다. 수도 없이 흘렸던 눈물같이.

주르륵주르륵. 물이 상의를 적시고 손목에까지 다다랐다. 핏자국을 씻어내려는 것처럼.

주르륵주르륵. 눈에서 수정구슬이 흘러내린다. 받아왔던 고통을 내보내려는 듯이.

고개 숙이고 눈물 흘리던 그녀는 내심 미소 지은 나를 보더니 기뻐하며 웃어 보였다.






트레이너가 물병를 내 머리 위로 집어들었다.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다. 소망의 액체가 낙하한다.

내 정수리에 닿았다. 미지근한 물이 머릿결을 타고 흐르더니 얼굴에 도달했다.

가느다란 하양 은하수를 타고서, 감은 눈을 지나고, 초췌한 볼을 횡단해 마침내 턱에 도달한 물방울은 맥없이 바닥으로 추락한다.

순간 눈에서 수정같은 감정이 새어나왔다.

나는 왜 울고 있는 걸까. 나는 그저 내 마지막 소원을 이루고 있는 것뿐인데.

트레이너는 좀 괜찮아졌을까 하고 문득 그를 올려다본다.

미소 짓고 있었다.

트레이너가 웃어줬다.

너무너무 기뼜다.

이렇게라도 그 사람이 행복할 수 있으면 그거로 족하다.

환희의 수정방울이 쏟아져내린다. 나도 그를 따라 웃어 보인다.


















마지막으로 트레이너한테 부탁을 하나 하고 싶었다.

이왕 죽는김에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죽고 싶었다.

보잘것없는 나의 보잘것없는 하찮은 요구였다.

혼자서 죽는 건 싫었다. 고독은 싫었다.

그래서 이런 이기적인 요구를 했다.

트레이너는 비애의 감정을 쏟아내며 응해줬다.

마지막 포옹을 했다.

트레이너는 잠시 주저하더니 이내 마음을 다잡고 내 목에 칼을 갖다 댔다.

키스해달라고 했다. 인생 마지막 키스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달콤했다. 영겁과도 같은 쾌락의 시간이 지나고 우리 둘은 헐떡이며 서로를 끌어안는다.

나는 마지막 힘을 다해 사랑한다고 전했다.

안녕, 이 세상. 

안녕, 사랑하는 트레이너.







파머가 자살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손에 '자살'했다.

나는 살인자.

사람을 죽인 살인자.

다리를 한 번 씹어먹어 보고 싶었다

통탄의 유리 수정이 둑 터진 댐처럼 주체할 수 없이 쏟아져나왔다.

내가 사랑하는 메지로 파머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나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고 죽어버렸다. 내가 죽여버렸다.

다리를 한번 먹어보고 싶었다

파머의 얼굴에 남아있던 눈물을 손으로 닦아준다.

다리를 한 번 먹어보자

다리를 먹자

파머의 하의를 벗기고 허벅지를 한입 물었다.

허벅지가 맞기는 할까? 눈물 때문에 앞이 가려서 제대로 판별하기 어렵다.

살점을 뜯고 천천히 씹는다.

메지로 파머가 눈앞에 보였다.

눈을 감고 그저 웃으면서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나는 사랑하는 메지로 파머의 시체를 뜯어먹었다.

바닥에 누워있는 메지로 파머는 슬픈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걸 본 나는 바닥에 쓰러져 비탄의 웅덩이를 만들어냈다.

메지로 파머, 정말로 미안하지만 나도 더 이상 못 견딜 거 같아. 나도 따라갈게. 정말 미안했어. 다음 생에서는 탈 없이 행복하게 살자.

그녀가 들고 있던 칼을 쥐고 가슴에 내리꽂았다.

메지로 파머, 사랑하는 그대, 그리고 이 세상에게. 작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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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부호 없이 끝나는 말은 환각
원래는 테이오였던게 어떤 말붕이가 파머한테 커피 붓고싶다한거 보고 바꿈


갤에서 개추비율 2:1 찍었는데 챈에선 비추 몇개나 박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