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검지손가락 끝에서 작고 검은 구체, 그러니까 블랙홀이 하나 스르르 하고 나타납니다.


곧이어 책상에 떨어진 먼지를 마치 청소기처럼 후루룩 소리와 함께 빨아들이며 그 위를 맴도네요.


이 블랙홀을 만들고 조종하는 건 제 트레이너 님입니다.


아, 제 소개가 늦었네요.


전 맨해튼 카페에요.


그리고 저기 자리에 앉아 있는 건 제 트레이너.


이분은 외계인입니다.





트레이너 씨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뭔가 이질적인 느낌이 없진 않았습니다.


분명 사람이 맞는데 주변의 분위기가, 그리고 제 '친구'가 눈앞의 존재가 인간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제 예감은 적중했습니다.


함께 수족관에 갔던 날, 트레이너 씨를 끌고 간 존재들이 공중에 열린 웜홀 안으로 빨려들어 가는 걸 목격하고 말았으니까요.


영들의 찢어지는 비명에도 트레이너 씨는 별 대수롭지 않은 듯 그것을 닫아 버렸습니다.


“트.. 트레이너 씨..?”


“응? 아, 카페..”


“바, 방금 그건..”


“봤구나..”


마치 공포영화의 클리셰 같은 대사를 하며 그분은 제게 천천히 다가왔습니다.


저도 이차원으로 사라져 버리는 걸까요?


하지만 트레이너 씨는 방긋 웃으며 괜찮냐고 역으로 물어보셨습니다.


그리곤 밖으로 데리고 나가 한적한 곳에서 정체를 밝혔습니다.





트레이너 씨는 지금으로부터 수 년 전,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 별에서 날아왔습니다.


지구에 도착한 후에는 의태할 대상이 필요해서 주변을 둘러보던 중 그 근처에서 자살을 시도하던 한 남자의 얼굴을 카피했다고 합니다.


카피한 후에는 죽였냐고 물어봤더니 빚 때문에 자살하려던 사정을 듣고 얼굴을 바꿔서 도망가게 해 줬다네요.


그 남자의 삶을 대신 살게 된 트레이너 씨는 생각보다 일이 수월했다고 밝혔습니다.


무연고자에 지인도 없어서 바뀐 것을 눈치채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머리가 좋은 덕분에 트레이너 시험도 딱 일주일 공부하고 패스했다고도 했고요.


왜 하필 트레이너가 됐냐고 물어봤더니 관찰을 위해서라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도 말씀하셨어요.


‘내가 인간이건 외계인이건 네 트레이너인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고요.





“트레이너 씨, 빗자루나 책상 청소기 쓰세요..”


“그래도 난 블랙홀이 더 편한걸.”


다시 돌아와 현재, 전 블랙홀 안으로 쓰레기를 던져 넣는 트레이너 씨에게 잔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뭐랄까, 블랙홀에 웜홀, 형상 변환 등등의 엄청난 능력을 꼭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사람이 터득한 것 같아요.


에어그루브 선배가 보면 분명 얼간이라 부르면서 등짝을 한 대 세게 때렸을 거 같습니다.


블랙홀을 닫고 나자 이번엔 커피메이커 쪽으로 발을 옮기는 트레이너 씨.


“잠깐만요, 제가 내릴게요.”


“나도 맛있게 내릴 줄 아는데.”


“커피는 제가 더 잘 타요.”


입을 삐죽이는 트레이너 씨에게 전 단호하게 말합니다.


커피는 누구보다도 제가 일가견이 있으니까요.


더운 여름날이어서 이번엔 특제 아이스커피를 준비합니다.


콧노래를 부르며 컵에 얼음을 넣고 커피를 부은 후, 트레이너 씨에게 한 잔을 건넵니다.


“짠, 할까요.”


“짠.”


얼음이 부딪히는 까랑까랑한 소리와 함께 우리는 소파에서 커피를 마십니다.


시원함도 잠시, 더운 나머지 얼음이 금방 녹아 버렸네요.


“딱!”


트레이너 씨가 손가락을 튕기자 제 컵에 다시 얼음이 채워집니다.


“얼음도 만드실 줄 아세요?”


“아니, 그냥 냉동실에 있는 거 웜홀로 가져온거야.”


처음에 트레이너 씨의 능력들을 봤을 땐 정말 신기했지만 요즘엔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워낙에 자주 써서 감흥이 없어졌다고 할까요..


다시 시원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전 트레이너 씨의 어깨에 머리를 기댑니다.


“음?”


“조금만 이러고 있어도.. 괜찮죠?”


“얼마든지.”


어깨를 흔쾌히 내어 주곤 트레이닝 자료를 찬찬히 읽는 트레이너 씨.


생활엔 대충이어도 일할 때 만큼은 남부러울 것 없이 정말로 멋진 분이에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전 그만 스르르 잠이 들었습니다.





‘자고 있네..’


트레이너는 어느샌가 잠든 카페의 얼굴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이렇게 자면 불편하겠지, 하고 생각하며 그는 배게와 담요 등을 아공간에서 꺼내 카페에게 덮어 주었다.


새근새근 자는 카페의 얼굴을 바라보며 트레이너는 피식 웃었다.


“사람 일은 모른다더니..”


그가 트레센의 트레이너가 된 이유는 딱 하나.


우마무스메라는 종을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다른 우주에서 관측된 ‘말’이라는 동물과 유사한 특징이 있지만 그 외에는 인간과의 유사성이 더 높은 종족.


단순한 호기심에 트레이너가 되었고, 옆에 귀신이 붙어 있다는 특이한 점에 카페를 맡았다.


하지만 함께하면 할수록, 이상한 감정이 그의 마음속에 계속 자라났다.


머지않아 그는 그것이 사랑이라 부르는 감정임을 깨달았다.


원래 살던 별에선 느끼지 못했던, 정말로 특이한 감정.


그에겐 얼마든지 카페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자신처럼 장생할 수 있도록 만들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가 카페에게 느끼는 사랑은,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보다 훨씬 더 큰 것이었으니까.


그녀와 더 길게, 이 지구에서 함께하고 싶었으니까.


언젠가는 능력을 전부 포기하고 완전한 인간이 되려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


조금 더, 그녀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고 싶었으니까.


맨해튼 카페라는, 검지만 밝게 빛나는 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