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유난히도 더운 여름이었다. 더트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스프링 쿨러가 물을 뿌리던 오후, 파인 모션은 살가운 얼굴로 트레이너에게 다가와 온천 여행권을 건네줬었다. 


"네 이놈, 토요일에 아무것도 안 하는 거 다 알고 있다." 


트레이너는 반박할 수 없었다. 본국으로 소환되기까지 고작 몇 주가 남은 시점, 그리고 그녀의 본국 소환을 기점으로 한 라스트 런에서 듀랜달에게 두 번이나 패배하며 그녀의 홀가분한 마무리와 함께 URA를 나오며 그저 졸업을 기다릴 뿐이었기 때문이다. 


"네~이~놈~" 


멍 때리며 앞으로 그녀와 무엇을 할지에 대해 고민뿐이었던 트레이너의 뒤로, 부드러운 머리칼이 코 끝을 간지럽혔다. 말랑한 감촉, 매끈한 피부가 트레이너의 목에 닿으며 그녀의 향기가 트레이너에게 퍼져만 갔다. 


"네~이~놈!" 


살짝, 아주 살짝 트레이너의 목을 꽈악 껴안으며 파인 모션은 트레이너에게 남다른 애정을 표했다. 본디 그녀의 행동을 봤노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암살각을 재던 닌자 같은 SP무리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자 트레이너는 파인 모션의 새하얀 팔뚝에 손을 얹으며 입을 열었다. 


"저기 파인..." 


"힘들 땐, 쉬어도 괜찮으니까.. 굳이 내 눈치 보지 말고 나와 함께 가주었으면 좋겠어." 


트레이너의 귓가에 속삭이듯 울리는 파인 모션의 달콤한 목소리가 트레이너의 입을 막았다. 이내 의자를 돌리며 파인 모션은 맑게 반짝이는 눈동자로 트레이너를 응시했다. 왕가의 여식이라기엔 한 없이 순수한 표정에 눌린 트레이너는 그녀의 손 끝에 잡혀있는 온천여행권을 한 장 꺼내 들었다. 


사실상 트레이너는 그녀와 함께 온천 여행에 가기로 약속했다. 


"야호~"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고귀한 눈웃음을 짓는 파인 모션을 보면서 트레이너는 짧게 미소 지었다. 듀랜달에게 패배한 직후 파인 모션은 홀가분해 보였지만 너무나도 공허해 보였다. 


어째서? 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저 수험이 끝난 학생이 입학까지 뭘 할지 고민하는, 고작 그 정도일 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은퇴 후 그녀와 지내던 트레이너는 그것이 이유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녀를 공허하게 만든 것일까, 앞으로 몇 주 밖에 더 볼 수 없는 파인 모션을 눈앞에 두고 트레이너는 계속해서 생각에 잠겼었다. 자신의 첫 파트너이자 대미를 장식한 '동료'라고 생각했던 파인 모션을 향해 다른 감정이 생겨나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 채. 


파인 모션은 온천여행권을 트레이너에게 준 다음 날부터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트레이너는 시험기간이기에 자신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왠지 모를 섭섭함과 걱정을 느끼고 있었다. 맡겨진 일도 있거니와, 그의 안에 있던 파인 모션을 향한 개인적인 감정 또한 있기 때문이었다.


"조용하네."


SP도 피콜로 플레이어도 보이지 않는 진짜로 조용해진 사무실, 에어컨 소리와 우마무스메들의 함성, 그리고 종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목재 공간 안에서 트레이너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앞으로 그녀가 떠난 뒤 다른 우마무스메를 영입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은퇴할까, 이 참에 교사 자격증을 추가로 취득해서 교육계의 일을 이어나가 볼까 하는 거품뿐인 상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저, 그런 생각뿐이었다. 


한 여름의 매미 소리만큼 거창하고 시끄럽지만, 짧고 덧없는 생각에 사로잡힌 트레이너의 시간은 한 없이 빨려 들어가며 어느샌가 시간은 토요일을 가리키고 있었다. 




... 

.. 





[토요일 온천 여관 정류소] 


"네 이놈~ 왜 이렇게 늦은 것인지 설명해주지 않으면 삐질 거야!" 


"미안, 지하철을 두 번이나 놓쳐서 버스를 놓친.. 것도 있지만 네가 3시간이나 일찍 온 거 알고 있지?" 


"후훗~ 그렇지만 아침 점심 저녁의 온천욕을 즐겨보고 싶었는걸?" 


평민이라면 기겁을 했을 트레센에서 목적지까지 할증 붙은 콜택시 타기로 가볍게 새벽에 도착했던 파인 모션은 윤기 나는 왕가의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트레이너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아..! 맞아, 트레이너 혹여나 미행이 잡히진 않았겠지?" 


트레이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SP와 피콜로 플레이어의 눈치조차 볼 수 없도록 비밀리에 합의된 이 즐거운 밀회를 위해서 파인 모션은 시험공부와 합숙을 핑계로 그녀들을 강제 휴무 시켰다. 


3년간 그다지 큰 사건에 휘말리지도 않았거니와 트레이너가 파인 모션을 지킬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녀들의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이런 재밌는 일을 계획할 수 있던 것이다.







"이건 우리들 만의 '비밀' 이니까?" 


검지 손가락을 슬쩍 올리며 은은한 미소를 짓는 파인모션의 뺨을 지나 상냥한 바람이 지나갔다. 


나뭇잎들이 흔들리며 시원한 소리를 퍼트리고, 틈틈이 비치는 햇빛에 비친 파인 모션의 입술이 보석처럼 반짝였다. 훤히 드러난 가녀린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 땀이 흘러 반짝이는 목덜미, 바람에 살짝 들어 올려진 원피스의 틈으로 스쳐 보였던 새하얗게 뻗은 각선미가 트레이너의 눈에 아른거렸다. 


트레이너는 입을 우물 거렸다. 뇌가 정지되어 말을 못 했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눈이 멀었다고 스스로도 느끼며 고개를 털더니 트레이너는 평정심을 유지하며 말했다. 


"에휴, 어련하시겠습니까 공주전하." 


"후후후, 그렇다면 짐을 기다리게 한 벌로 짐을 끌도록 하여라~" 


알록달록 예쁜 캔배지가 여기저기 붙은 케리어를 트레이너에게 들이밀며 트레이너를 앞질러 걸어갔다. 


오르막길을 슬리퍼로 터벅터벅 걸어 올라가며 감출 수 없는 꼬리의 움직임이 지금 그녀의 감정을 표현해 주는 듯했다. 트레이너는 그저 산보하든 여유롭게 오르막길을 가는 우마무스메의 뒤를 죽을 둥 살 둥 뛰어 따라잡아갈 뿐이었다. 


어째서 자신이 파인모션의 감정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 자신의 눈에 파인 모션이 밟히는지는 깨닫지 못한 채. 



... 

.. 




"허억, 헉... 도착. 했..." 


"흐음, 트레이너 예전 보다 몸이 더 약해진 것 같지 않아?" 


땀방울이 뺨을 타고 줄줄 흐르는 트레이너와 다르게, 그를 내려보며 여유롭다는 듯한 미소가 돋보이는 파인 모션의 홍조 띤 뺨이 반짝이고 있었다. 


"넌.. 우마무스메잖아..." 


"흐흥~ 잘 모르겠지롱~" 


여관의 앞에 도착한 트레이너의 손에 깍지를 끼며 파인모션은 순식간에 여관입구까지 들어왔다. 


그녀의 앞 연로한 우마무스메의 귀를 쫑긋거리던 여관장의 인사와 함께 트레이너는 예약된 이름을 불렀다. 


"라멘짱좋아라는 이름으로 예약했습니다." 


순간 파인 모션의 꼬리가 바짝 솟으며 트레이너에게 뒷발길질을 했다. 


"뭣!" 


물론 정강이 뼈가 나갈 정도로 험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한 통증을 느낀 트레이너가 정강이를 잡고 쓰러질 정도로는 충분했다.

"후훗, 금실이 좋으시네요." 


"정말~" 


여관장은 수첩을 쓱 넘기더니 두 사람을 위아래로 훑으며 입을 열었다. 


"일반 룸 둘로 되어 있습니다만..." 


"네? 네." 


통증에서 벗어난 트레이너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답했다. 


"일반 룸 둘이면 스위트 룸과 같은 가격인데, 업그레이드해드릴까요?" 


"네? 그건 합방..." 


"식사도 좀 더 다양하게 나온답니다." 


"정말요!?" 


두 손을 꽉 쥐며 귀가 쫑긋 솟은 파인 모션은 흐뭇한 미소로 트레이너를 붙잡았다. 방방 뛰며 트레이너에게 간절하게 호소하는 그 보석 같은 눈동자에 한 번 매료된 남자는, 그녀의 애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하아..." 


"후훗, 그렇다면 일반 룸 두 개에서 스위트 룸으로 변경해 드리겠습니다." 


눈가에 주름이 그윽한 여관장의 눈웃음 아래로 그녀의 시선은 트레이너의 다리를 감고 있는 파인 모션의 꼬리를 향해있었다. 애당초 두 사람은 누가 봐도 트레이너와 학생, 하지만 그녀의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적극적인 행동에 그 노파는 무언가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것일 수 도 있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트레이너와 파인 모션을 안내한 뒤 여관장은 조용히 사라졌다. 


"와~ 어떤 음식이 나올까!? 닭새우? 큼지막한 전골? 다양한 초밥?! 아니면~ 맛있는 라멘이려나?" 


즐거움에 사로잡힌 파인 모션은 노래를 부르며 케리어의 짐을 하나 둘 풀기 시작했다. 


"아까 케리어를 들면서 느낀 건데, 그거 1박 2일 치 짐이 아닌 것 같아." 


"아, 그런가? 사실 나.. 이런 도움 없는 배낭여행 처음이라서! 조금 설레서 이것저것 준비해 왔어." 


컵 라멘, 주전자, 포트, 건조 메시드 포테이토, 온갖 비상식량과 잠옷, 그리고 가장 눈에 띄는 건 침낭이었다. 


"애벌레 놀이라도 하려고?" 


순간 파인모션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숙녀에게 실례네 트레이너, 첫 여행이면 실수할 수 도 있지 뭐." 


궁시렁거리며 침낭을 힘으로 접어 케리어에 넣은 파인 모션은 이대 쭉쭉, 기지개를 켠 다음 원피스의 어깨끈을 훌렁 벗어 내렸다. 


"그렇다면 아침 온천은 어떤 맛인지 체험해 볼까?"


"저.. 저기 파인! 파인 모션!" 


트레이너는 고개를 돌리며 급히 소리쳤다. 


"응? 왜 그래?" 


원피스의 어깨 끈이 내려가며 그녀의 가슴골이 확실하게 트레이너의 눈에 맺혔었다.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 트레이너의 귓불을 보며 의문을 품을 파인 모션은 질문했다. 


"일단, 일단 나도 남자라는 것을 생각하고 그.. 왕족의 품위를 지켜줬으면 좋겠어." 


"그게 왜..." 


새빨갛게 물든 트레이너의 얼굴을 내려본 파인 모션은 자신의 옷차림을 거울로 바라보았다. 


어깨 끈이 풀어진 만큼 원피스가 흘러내려버려, 땀에 젖어 묘한 밀착감을 보이는 흰색의 속옷과 여성성의 상징인 가슴라인이 여실 없이 보이고 있었다. 


그제야 트레이너가 한 말의 뜻을 이해한 파인 모션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미.. 미안해!" 


두 손으로 급급히 몸을 가리며 귀가 앞으로 접힌 파인 모션은 고개만 휙 돌리며 트레이너를 노려보았다. 


"봐.. 봤어?" 


"미안." 


"네 이놈, 변태..." 


"미안." 


"이제 부정도 안 하는 것이냐?" 


"미안..." 


이후 정적이 찾아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후다닥 몸을 가린 파인 모션은 이내 몸을 피해 프라이빗 노천탕으로 달려갔다. 


"먼저 갈게~!!" 


파인 모션의 기척이 사라지자 그제야 새빨갛게 물든 뺨을 툭툭 치며 트레이너는 뜨거워진 이마를 짚었다. 


"뭘 두근거리고 있는 거야 멍청아.. 공주님이라고." 


트레이너는 옷을 벗으며 궁시렁 거렸다. 


"그저 소원이야.. 난 소원을 들어주는 거야.. 어떠한 감정도 섞여선 안된다고." 


그게 교사와 학생의 약속이라고, 사실상 성인이 되었을지언정 아직 트레센의 학생인 파인 모션, 그것도 한 나라의 공주를 상대로 감히 품을 감정이 아니라 스스로 채찍질하며 트레이너는 다시금 그녀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죽이며 움직였다.


또옥, 똑, 물방울 소리가 나는 한 여름의 온천이라니 정신 나갈 것 같은 발상에 혀를 내두르며 트레이너는 몸을 씻고 난 뒤 수건을 푼 체 온천물에 몸을 담갔다. 


햇빛이 뜨겁다, 증기도 뜨겁다, 물도 뜨거웠다. 


그야말로 삼중 나생문에 고통을 받으며 트레이너는 약재와 유황의 향기를 마시며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 


"어라? 트레이너?" 


파인 모션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이게 아닌데.' 


트레이너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몸을 획 돌렸다. 


"왜.. 왜 여깄는 거야? 여탕은.. 아." 


트레이너가 있는 곳은 스위트 룸의 프라이빗 온천이다. 애당초 남녀 탕이 있지도 않을뿐더러 기본이 혼욕인 장소인 것이다. 


"나 들어갈게?" 


어째서 자신보다 먼저 들어갔던 파인 모션이 자신보다 늦게 왔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일국의 공주이자 자신의 제자이자 미인인 파인 모션이 트레이너의 옆에 들러붙었다는 것. 


이것은 상상이상으로 트레이너에게 강한 인내심을 시험하였다. 


어금니가 부서질 듯 깨물며 생각하기를 포기한 트레이너의 옆으로 장난기 가득한 표정의 파인 모션이 트레이너의 어깨를 툭툭 치며 장난쳤다. 


"후후,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야~" 


트레이너가 반응하지 않자 파인 모션은 몸을 일으켰다. 첨벙첨벙 트레이너에게 가까이 오더니.. 


"잠깐! 파인!!!" 


그대로 트레이너의 다리 틈 사이로 앉아버렸다. 


"어?" 


트레이너는 이제 망했다는 생각뿐이었다. 


"이 감촉..." 


"..." 


등에 무언가가 닿는 느낌에 고개를 돌린 트레이너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설마..." 


트레이너는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제자이자 파트너이자 왕녀인 파인모션에게 욕정 했다는 것을 들킨 이상 트레이너에게 남은 것은 죽음, 혹은 그와 동등한 무언가였을 것이다. 


트레이너는 눈을 질끈 감았다. 


"사형은 최대한 안 아플 걸로 해줘." 


"흐흐흐, 어떻게 할까?" 


"전기의자만은 용서해 줘."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파인 모션은 고개를 돌렸다. 


"용서해 줄게." 


"응?" 


"트레이너에게는 내가 여자로 보인다는 거잖아? 이만큼이나 흥분할 정도로?"


"어, 어어?" 


"차라리.. 이대로 '사랑'해버려도 괜찮았을 텐데..."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며 파인모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파인?" 


몸을 부둥켜안은 체, 머리의 절반을 온천수에 넣으며 부글부글, 게거품을 부는 파인 모션을 내려다보며 그녀의 어두운 모습이 보였다. 


"혹시, 무슨 일 있었니?" 


"후후.. 아니, 그냥.. 사실 나 있잖아? 트레이너가 나를 좋아한다는 거.. 진작에 알고 있었어." 


"뭐?" 


살며시 파인모션의 꼬리가 트레이너의 발목을 감쌌다. 


"그대로.. 졸업하고 나서 그대로 사귀어버려도, 혹은 결혼해도 재밌을 꺼라 생각했어.. 아바마마도 인정했는 걸." 


"아버님이면.. 국왕께서?" 


"응, 그래서 나.. 사실 트레이너, 너와 함께 라멘집을 차리는 꿈을 꿔본 적 있어.. 항상 뜬 구름이었지만 화목하고 직장인들로 가득 차 바쁜 가운데 귀여운 아들 딸 이랑 같이.. 당신이랑 같이..." 


"파인, 울고 있는 거야?"


"나 있잖아? 불임이래.. 아이를 가질 수 없어서... 아바마마가 그저 아량을 베풀어 준 것뿐이라는 걸 알고 나서 나 달리기에 집중할 수 없었어.. 티는 내지 않고 있었는데 하하, 결과로 들켜버렸지 뭐야?" 


"파인..." 


"이상하네, 나 지금 고백성공 한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슬픈 걸까? 트레이너, 너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나눌 수 있게 되었는데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픈 걸까?" 


트레이너는 그런 그런 눈물이 맺힌 파인 모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자신이 고민해 왔던 감정이, 고민이 바보 같아질 정도로 그녀는 마음의 짐을 안고 있었다. 그녀에 대한 감정들에, 의문들에 빠져있던 자신이 멍청하다고 느끼며 트레이너는 파인 모션의 가녀린 어깨를 잡고선 그대로 끌어안았다. 


어느샌가 하늘은 어두컴컴해지기 시작했고, 하늘엔 적란운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그녀를 위해 대신 울어주듯, 하늘에선 빗방울이 툭툭 떨어지기 시작했다. 


"트레이너, 나는 앞으로 어떡해야 할까?" 


눈물에 젖어 반짝이는 호박색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트레이너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미안, 미안해.. 혼자 고민하게 만들어서." 


"트레이너?" 


"세상 누구보다 네가 좋았는데.. 그저 고민만 하고 눈치만 보고 있었어.. 용기 없이 말이야." 


트레이너는 조용히 파인모션의 머리를 끌어안아 자신의 가슴팍에 안았다. 


따스한 고동과 열가 파인 모션의 마음을 따듯하게 적셔주었다. 


"네가 하고 싶은 건, 지금 파인 모션이 하고 싶은 건 뭐야?" 


"당신과, 좀 더 가까워지고 싶어.. 남은 시간만큼 더욱 길게." 


트레이너는 두 손으로 파인 모션의 뺨을 잡고, 그윽하게 내려보며 대답했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말괄량이 공주님." 


"네 이놈..." 


트레이너는 조심스레 눈을 감는 파인 모션과 입술을 맞췄다. 3년 동안 억눌러왔던 욕망만큼, 생명력을 발산하며 영롱하게 빛났던 만큼, 더욱 진하고 깊게 키스를 하며 트레이너는 자신의 멍청했던 고민들에 대해 후회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이젠 트레이너가 아니다, 자신은 사랑하는 연인의 꿈을 이뤄주는 존재, 그렇게 생각하며 파인 모션의 어깨를 부서질 듯이 강하게 끌어안았다. 


"음, 츕.. 쯉.. 후.. 네 이놈..." 


혀를 섞으며 뭔가 내면의 욕구가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한 파인 모션의 녹아내린 표정에 트레이너는 더 이상 멈출 수 없었고, 파인 모션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어느새 젖은 몸을 닦아낸 두 사람은 서로 진정한 모습으로 서로를 응시하며 끊임없이 끌어안고 서로의 피부를, 향기를 음미하고 나누며 입술을 포갰다. 


침구에 조심스레 파인 모션을 눕히며 트레이너는 한 손으로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방금까지 울었던 탓에 눈가가 붉어진 파인 모션의 이마를 훑어주면서 트레이너는 반대손을 서서히 아래로 내리며 그녀에게 환희를 가져다주었다. 서서히 몸을 농락하듯 움직이는 트레이너의 손놀림에 허리가 들썩이며 숨이 서서히 거칠어지기 시작한 파인 모션은 이내 가녀린 두 다리로 조심스럽게 트레이너의 허리를 끌어 자신의 안으로 당겼다. 


두 사람은 서로가 처음이었지만 왠지 모를 운명적인 것을 느꼈다. 서로가 서로에게 환희와 기쁨을 주기 위해 헐떡이고, 몸을 움직였다. 그저 땀방울만이 파인 모션의 비음과 함께 이리저리 떨어지며 고독한 스위트 룸을 달콤하게 채워갔다. 


"아.. 앗, 앗.. 트레이너..." 


"파인 모션, 사랑해.. 내 모든 인생으로 널 행복하게 만들어줄게." 


"나도, 비록 당신의 아이를 낳을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당신이 허락한다면 신부가 될게..."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이며 파인 모션은 자신의 뱃속을 서서히 채워가는 충족감과 기쁨에 허리가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사랑해 파인!!" 


"응.. 응! 트레이너엇..!!" 


트레이너의 갈비뼈가 으스러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격정적인 쾌락에 젖은 파인 모션은 두 다리로 트레이너의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었다. 두 손을 깍지 낀 체 입술을 부딪히며 트레이너와 파인 모션은 황홀경에 빠져 거칠어짐 숨소리와 터질 듯이 쿵쾅거리는 심장 박동 만이 방안에 울리고 있었다. 


몸을 살짝 돌린 파인 모션은 이내 왼손으로 트레이너와 깍지를 낀 체 오른손으로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만약.. 생긴다면 좋겠지만..." 


"아이가 있든 없든, 난 너와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사람일 거야." 


트레이너의 말에 눈을 휘둥그레 뜨며 파인 모션은 미소를 보였다. 


"후훗, 네 이놈~ 제법이구나."


두 사람은 그렇게 땀범벅이 된 몸을 씻어내며 다시 격정적인 쾌락에 몸을 맡겼다. 수 없이 살을 부딪히고 몸을 밀착하고 헐떡이며 서로가 서로에게 느꼈던 것이 단순히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었다는 것을 상기하며 두 사람의 사랑이 격정적으로 불타던 즈음, SP들은 트레이너와 파인 모션의 행방을 알아냈지만 둘의 침대가 부서질 듯한 거친 뾰이 소리에 섣불리 문을 열지 못한 채 기다리고 있었고, 두 사람의 아침 점심 저녁에 걸친 십 수차례의 뾰이를 넘어, 그녀에게 찾아온 SP들과 피콜로 플레이어는 그녀에게 의사의 오진으로 인한 기열찐빠가 일어났고, 파인 모션에게 불임이나 이상증세는 없다는 것을 전해 들었으니 여간 기합이 아니었다. 


결국 졸업식에 파인 모션을 데리러 본국에서 트레센까지 행차한 아바마마에게 졸업 선물로 초음파 사진과 결혼 반지를 보여버리자 기쁨에 정신머리가 나가버리셨으니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라이라이 차차차 헤이빠빠리빠










미안하다 고작 이정도 쓰는게 내 한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