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다.

사람이 죽으면 먼저 간 사랑하는 사람이 마중 나온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난 그 행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


나는 죄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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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내가 사랑하는.... 오라버니...랑 좀 더 재밌는... 추억을 쌓고 싶었는데.....

단 둘이서... 해보고 싶었던 것도... 많았는데.... 이렇게 되네...


오라버니랑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이것저것 다... 하고 싶었는데.... 말이야...

울지 마.... 잘 생긴 얼굴 망가지잖아.... 오라버니... 잘못이 아니니까.... 절대... 오라버니... 잘못... 이....아니니까....


아.... 이제 졸린다.... 고마워.... 오라버니....


못난 내 곁에 계속 있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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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사는 거 같지 않다.

그 날 이후 시간이 정지된 것만 같다.


"이럴거면 때려쳐! 너 말고 여기 다닐 사람은 많아!"


"왜 우린 저런 사람만 들어오는 걸까...."


그 날 이후 트레이너 일을 그만두고 여러 일을 하기 시작했지만 모두 일머리도 없는 나에게 원망 섞인 말만 한다.

전에 일했던 곳이 트레센이라고 해서 나에게 건 기대가 큰 거겠지.

결국 난 오늘도 배게에 수건을 깐 채 잠을 청한다.

눈물로 잠을 지새울 게 뻔하니까. 축축한 배게에서 자는 건 질색이니까.


기댈 곳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서러운 것인지 몰랐다.


그렇다고 부모님한테 기대고 싶지 않다. 지금 내 사정을 얘기하고 싶지 않다.

부모님 나름대로 신경 쓸 일들이 잔뜩 있을텐데 나까지 짊어지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이건 내가 짊어가야 할 내 문제이니까.


만약 그녀만 있었더라면...

그녀와 함께한 추억들이 스쳐지나간다.


"트레이너... 트레이너를... 오라버니라 불러도 돼??"


첫 만남.


"오라버니 덕분에... 라이스...! 1착했어...! 고마워! 오라버니!"

첫 1착.


그리고.



"오라버니. 라이스... 1착하지 말 걸 그랬나 봐... 아무도 좋아하질 않아... 모두 나를 원망해...."


처음 내게 보여줬던 그녀의 나약한 모습까지.



모두 어제 일처럼 생생하기만 하다.

그녀가 내 곁을 영원히 떠난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만약...."


만에 하나.


"네 말을 들었더라면 미래가 바뀌었을까?"


넌 그 때 컨디션이 최저라는 이유로 레이스에 나가길 꺼려했었지.


하지만 난 중요한 레이스다, 지든 이기든 신경 안 쓸테니 이 레이스 끝나고 네가 원하는 걸 잔뜩 하자는 약속을 하니 넌 그제서야 웃으며 참가했지.


그 결과.


"쓰러졌다!! 라이스 샤워! 쓰러졌다!! 라이스 샤워!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정신차려! 넌 여기서 쓰러지면 안 되는 거 잘 알잖아!"


무릎에서 피가 쉴새없이 뿜어져 나오고
내 손도, 내 옷도 그녀의 피로 물들어가지만,

포기하지말라고, 죽지 말라고 그녀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지만,


의사가 말 없이 내 손에 주사기를 쥐어준다.


아마 현실을 받아드리라는 거겠지.


사실 우린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의사도, 나도, 심지어 그녀도.


개방골절로 살아남은 우마무스메는 단 한 명도 없다는 걸.


그리고 개방골절은.



"나.... 아직 버틸 수 있어... 오라버니...."


살아있는 게 더 고통스러울 정도로 끔찍한 고통을 초래한다는 걸.


그 날을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나온다.

고통을 부여잡고, 견뎌내면서 그녀는 마지막까지 날 잘못 없다고 해줬으니까.

그녀는 마지막까지 날 원망하지 않았으니까.


오늘 밤도 서럽게 지새우겠구나 라고 생각할 때 온 몸에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다.

눈물로 아렸던 눈가가 따뜻한 온기로 채워져진다.

오늘 밤은 따뜻하게 보내라는 듯이.

서럽게 울지 말라는 듯이.

이 차가운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듯이.


얼마만일까. 잘 때 이렇게 웃으며 잔 날이.



****



"너 나가서 할 거 없지? 더 할래?"


눈물로 잠을 지새우는 일이 많이 줄었다.

설령 눈물로 잠을 지새운다 해도 예전과 달리 따뜻한 온기가 내 온몸을 감싸준다.

그리고 일 못 한다고 구박한 사람들에게서, 모두에게서, 인정 받게 됐다.


이렇게 계약 연장을 제안 받았으니까.


그래봤자 좀 띨띨하지만 성실하고 착한 청년 같은 이미지겠지만.


그래도 적응됐다 한들 고되고 피곤한 건 여전한 지 침대에 뻗자마자 바로 잠이 온다.


이번엔 인형처럼, 양처럼 몽실몽실, 푹신푹신한 온기를 느끼면서.


어째서일까. 전부터 느꼈던 이 온기가 익숙하기만 하다.

어디서 많이 느껴본걸까.




****




...사실 오라버니도 알고 있지?

오라버니가 잘 때마다... 라이스가 곁에 있어준다는 걸.


모른다고? 모를 리가. 그럼 이렇게 웃으며 잘 리가 없는 걸.


오라버니는 이 목소리가 닿지 않겠지만...
라이스... 정말로 괜찮아.

오히려 미안해. 오라버니는 라이스가 가장 힘들 때 곁에 있어줬는데 라이스는 그러지 못 했어.

그러니 더 이상 자책하지 마. 죄인이라 몰아세우지 마.

죄인은 나니까.

그 때는 라이스가 잘못한 거야.

라이스가 무리하지 않게 달렸더라면 오라버니랑 이별할 일은 없을거라 생각해.

하지만 그러지 못 했어. 조금만 무리하면 1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


그러니 이제 오라버니 자신을 용서해줘.


오라버니를 아주 많이 사랑한 라이스를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사랑한다면 말이야....


그리고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여줘.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줘.


오라버니 옆에 다른 여성 분이 있어도 되니까....


그 대신 명심해! 오라버니를 가장 먼저 사랑한 건 라이스라는 걸 말야.

그리고 우리 둘이 만나게 되면 그 때 못 했던 일을 다시 하자.

그러니 기다리고 있을게.


그렇다고 너무 빨리 오지 마. 천천히, 아주 천천히 와.

라이스는 항상 있었던 자리에 있을 거니까.



*****



역시나 너였구나. 어쩐지 너무 익숙하더라.

고마워. 가장 힘들 때 내 곁에 있어줘서.

그리고 넌 네 목소리가 닿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데 그건 틀렸어.


꿈 속인데도 이렇게 또렷하게 기억이 나는 걸?


고마워. 날 용서해줘서. 원망 섞인 말 한 마디를 안 해줘서.



그리고 고마워. 나를 사랑해줘서.


그러고보니 넌 그렇게 말했지.

다른 여성한테 가도 되니 행복하게 살라고.


바-보. 인생에 있어 여자는 한 명으로 족해.

그리고 이제 불행하게 살라고 해도 못 살아.

알고 있어. 지금 이 순간에도 내 곁에 있다는 걸.


과거에 내가 너에게 쳐진 모습만 보였던 건 네가 내 곁을 떠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네가 날 용서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야.


그러니 행복하게 사는 모습 잔뜩 보여줄테니까 기대하고 있어.


그리고 네 말대로 아주 천천히 갈 테니까  너무 느리게 온다고 뭐라 하지마라.

"그럼 다음에 또 올게."


그녀의 묘비에 가볍게 입을 맞춘다.
언젠가 그녀와 입맞춤하는 날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