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으... 후으--"


모의 레이스용 트랙의 골을 지나쳐, 한껏 거칠어진 숨을 몰아 내쉬며, 달리던 다리를 천천히 멈춰 세운다.


그리고 이내 멈춰서서, 허리를 살짝 굽히고 숨을 가다듬는다.


달리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단둘뿐이었던 모의 레이스.



...내 뒤를 쫓아오는 사람의 기척은 없다.


당연한 일이다. 뒤쫓는 것은 상대가 아닌, 나였으니까.




"...흠-"


...숨을 가다듬다가 이내 앞에 보이는 두 다리에, 그리고 귓가에 선명하게 들려오는 코웃음 같은 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다.






이윽고 나와 눈 마주치는, 같잖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한 쌍의 붉은빛 눈동자.


...지금까지 몇 번이고 보았던. 자신이 항상 위이자 앞이라고 말하는 듯한 그 붉은빛의 눈동자 한 쌍.



"으..."


그 눈동자가 바라보는 눈빛에, 마음속에서 사뭇 피어오르는, 원망이나 열등감이라고 할 만한 감정들을 다독이며 감춰보려고 하지만...


"----!"


'그것밖에 안 돼?'라고 묻는 듯한 눈초리에, 나도 모르게 감추려던 감정을 눈동자에 담아 내쏟는다.



"...."


상대는, 그런 내 눈동자를 읽는 듯이 바라보다가...


"흥-"


또다시, 코웃음 소리를 내며 시선을 거두곤. 이내 등을 돌렸다.


두려워서 도망친다거나 하는 것이 아닌, 그저 귀찮아서, 상대하기에 하찮아서... 그러한 마음이 분명하게 느껴지는 발걸음으로.



그렇게, 젠틸돈나는 나를 트랙 위에 남겨두곤 아무렴 상관없다는 듯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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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르시나! 괜찮아? 어디 다친 거야?"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트레이너 씨가 걱정하며 달려왔다.



"...괜찮아... 어디 다치거나 한 건 아니니까..."


다치거나 한 것은 없다.


숨도 이미 충분히 가다듬어서, 더 이상 숨차지도 않다.



"흐으..."


...그렇지만, 마음은 아프다.


여왕의 이름을 거는 G1급의 레이스도, 중상도, 하다못해 오픈 급의 레이스도 아닌, 단지 모의레이스에 불과함에도.


그 모의레이스조차 이전의 다른 레이스들과 마찬가지로 그 한 번을 이기질 못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이 아프다.



...트레이너 씨에게 부탁해서 병주 트레이닝이라는 얍삽한 명목으로 신청한 모의 레이스.


분명하게 '내가 널 이겨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담겨있다는 것임을 뻔히 알았음에도, 젠틸돈나는 거절하거나 하는 일 없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저 자신과 나의 실력 차를 보여주듯이 이겼다.



그리고는, 나와 자신의 격차는 달라질 것 없다는 듯이. 계속해서 덤벼오는 게 귀찮다는 듯이.


나를 비웃는 것이 아닌, 귀찮다는 듯이 코웃음치면서 떠났다.



...그것이 못내 마음에 아프다.


호적수나 숙적 같은 것이 아닌, 귀찮게 계속해서 달려드는 날파리를 대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계속 생각에 잠겨있었을까.


트레이너 씨가 걱정스러운 음색으로 말하는 말이 귓가에 들어왔다.



"저기, 비르시나? 조금 쉬지 않을래?"


"...."


"여기서 계속 이러고 있으면 조금 그러니까..."


"...그래."



기껏해야, 한 번 더 진 것뿐이다. 그저 그뿐인 일이다.


상대가 나를 숙적이고 뭐고 아닌 귀찮은 것으로 본다고 해도. 다시 도전하고, 이겨서, 무시할 수 없게 만들면 되는 일이다.



'음울한 생각이 아니라, 다시 도전할 생각을 하자.'


그렇게 생각한 나는 이내 트레이너 씨의 손을 붙잡았다.



"에-?"


그렇게 갑작스레 손을 붙잡자, 트레이너 씨는 내가 손을 붙잡는 것을 예상치 못해 얼이 빠진듯. 바람빠지는 소리를 냈다.



"쉬러 가자. 조금, 기분 전환으로."


"어-어? 어, 그래-"


이윽고, 나는 트레이너 씨의 손을 붙잡은 그대로 걸음을 떼었다.


트레이너 씨는 내 걱정이 가시고. 이윽고 다소 불안한 듯한 눈치로 답했지만. 그렇다고 한들 트레이너 씨의 손을 붙잡은 내손은 아무런 변화 없이. 그저 그대로 붙잡고 있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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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기숙사에 들러 흙먼지를 씻어내고, 입고 있던 체육복을 갈아입었다.


짧은 시간 후. 기숙사에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트레이너 씨는 불안한 눈치로 물었다.


"저기, 비르시나? 어디로 가고 싶어? 외출이라면-"


"-외출이 아니야."



불안한 눈치로 묻던 트레이너 씨의 말을 자르고, 단답으로 답한 나는 이내 다시금 말을 이었다.



"...트레이너 룸으로 가자. 오늘은 [그걸]할 거니까."


"뭐--? 그렇지만..."


"할 거야."


"...알았어."



이내 트레이너 씨는 자신이 느끼던 불안감이 현실로 드러났다는 듯이 반발하려는 듯한 말을 꺼내려 했으나, 그러한 반발은 이내 단호한 내 말에 좌절감 섞인 응답으로 바뀌었다.


나는 다시금 트레이너 씨의 손을 붙잡고. 트레이너 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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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트레이너 씨의 손을 꼭 붙잡은 채로 도착한 트레이너 룸.


이윽고 나는 붙잡고 있던 트레이너 씨의 손을 풀어주고. 소파에 조심스레 걸터앉았다.


"이리로- 와-"


그리고, 아직도 마땅치않은 표정을 한 채로 소파에 앉지 않고 서 있는 트레이너 씨를 향해, 같이 소파에 앉자는 듯이 재촉한다.



"저기...비르시나, 그래도 이건 좀..."


"...안해줄거야?"


"나는....그게..."


"...부탁이야."


"...."



이내 트레이너 씨는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소파에, 내 옆자리에 걸터앉는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저 옆자리에 앉는 것만으로, 충분한 일이 아니다.



"누워줘."


이윽고 내 입에서는 부탁이 아닌, 아이를 어르는 듯한 어조의 말이 흘러나온다.



"...."


그렇지만, 트레이너 씨는 그것만큼은 정말로 하기 싫은 듯. 몸을 살짝 움찔 떨면서 앉은 그대로 살짝 눈길만을 내게 향한다.


꼭 해야 하겠냐고 묻는 듯한 눈길.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만둘 생각은 없다.


"누워."


조금 전보다 조금 더 단호하게 어르는 듯한 어조.


그리고 이어서 트레이너 씨의 허리를 한 손으로 감싸 쥐어 눕히려는 듯이 살짝 힘을 주자. 이윽고 트레이너 씨는 옅은 숨소리와 함께 몸을 뉘이기 시작했다.



...나를 향해서.



이내 쓰러지듯이 몸을 뉘이는 트레이너 씨의 머리를 천천히 손으로 받쳐. 그 머리가 내 허벅지 위로 내려 놓아, 그리고 그 얼굴이 나를 바라볼 수 있도록 맞춰준다.


이윽고, 꿈뻑이며 나를 바라보는 눈과 살포시 시선을 마주치고. 이내 머리카락을 살포시 쓰다듬으며 말한다.



"우우~ 우리아가~ 엄마가 그렇게 좋아요~? 우르르~ 까꿍~"


그렇게, 나는 트레이너 씨를...



아니, [우리 아가]를..


마구마구 귀여워해주면서, 마음속에 쌓인 응어리들을 풀어낸다.



"...."


나를 바라보는 우리 아가의 시선에, 한순간 회한과 좌절, 이루말할 수 없는 듯한 감정이 스쳐지나가지만. 그것도 이내 한순간일뿐.


이미 시작한 일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받아들이기 시작하며, 천천히 내가 바라는 귀여움과 애정을 담아가기 시작한다.



"우으아~마마-"


이윽고 모성애를 재촉하는 소리를 내면서, 우리 아가는 귀여운 어리광을 부리기 시작했다.



"후후~♥ 엄마는 어디 안간답니다~"


이내 나는 그런 말을 하면서, 귀여운 우리 아가를 쓰다듬고. 젖을 물리는 시늉을 하며 한껏 기분을 풀어내었다.



살포시 가슴에 와닿는 따듯한 감촉에,


다시금 젠틸돈나를 이기기위해 노력할 수 있는 힘이 차오르는 듯해서, 정말로- 행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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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분위기 변경.


뾰이라도 할 줄 알았서?


응애. 나도 아가놀이 하고 싶어 응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