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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스 샤워가 맥퀸을 제압해 신기록을 세우며 결승선을 통과했던 1993년의 천황상 봄


그 후로 아직 2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경마계의 흐름은 빠르다


그때 그 시절, 함께 잔디밭을 뜨겁게 달구며 경쟁했던 경주마들 중


다시 요도의 코스로 돌아온 말은 라이스 샤워 단 한마리 뿐이었다


1995년 4월 23일 제111회 천황상 봄



신기하게도 라이스 샤워는 2년전과 같은 3번 게이트를 배정받았다


기수는 레이스 중 알아보기 쉽게 게이트마다 다른 색의 모자를 쓰게 되는데


2-3의 모자 색은 검정


2년 전에는 그 색 때문에 라이스 샤워의 자객이라는 이미지가 한층 더 강했었다


그리고 올해도 마토바는 또다시 그때와 같은 검은 모자를 쓰고 라이스 샤워의 등에 앉게 됐다


그 라이스 샤워에게도 이 2년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젊었을 시절의 용맹함은 남지 않았다


살기에 가까운 기백도 느껴지지 않는다


어느덧 노병이 된 이 검은 베테랑은 그저 투쟁심을 속에 숨기고 담담하게 때를 기다리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리운 봄의 요도 코스를 보고 이제 자신이 3200m라는 장거리를 뛸 것을 알았던 것인가


아니면 과거 이 요도의 무대에서 사투를 벌였던 라이벌들의 잔상을 곱씹고 있는 것인가


패독을 걸을 때도 라이스 샤워는 전혀 동요가 없었다


그저 앞으로 펼쳐질 길고 긴 레이스를 위해 체력을 온존시키고 있는 듯 했다


라이스 샤워는 분명 알고 있었다


자신은 이미 전장에서 싸우는 수말로서의 전성기가 지났다는 것을


이미 체력은 젊은 말들에게는 못 당한다는 것을


하지만 라이스 샤워에게는 다른 말에겐 없는 풍부한 경험이 있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수많은 시련으로 단련된 강인한 정신력이 있다


그것을 사용할 높은 지능 또한 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이 이길 수 있을 것 인가


벌써 5년째 경주마로서 잔디밭을 달려온 라이스 샤워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다






천황상은 엄선된 최고의 말들만이 나갈 수 있는 최고봉의 레이스


여기에 출마하는 모든 말은 여러 방면에서 공평하게 취급된다


근량은 수말 58kg, 암말 56kg으로 통일


거기에는 승부에 의도적으로 조작을 하는 핸디캡은 존재하지 않는다


58kg은 확실히 작은 몸집의 라이스 샤워에게 부담이 가는 근량


근량의 무게에 짓눌려 굴복했던 교토 기념의 60kg과의 차이는 불과 2kg


닛케이상의 59kg의 차이는 그보다 1kg 더 적은 단 1kg


사람으로 따지면 식사 한끼 분 정도 되는 그 작은 차이에


라이스 샤워가 「달릴 수 있을지 없을지」를 가르는 한계점이 존재했다


이러한 작은 요소들이 모여 결국엔 승패를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게이트를 들어가기 전 빙글빙글 돌 때도


라이스 샤워는 결코 쓸데없이 달리려 하지 않았다


그 경보와 같은 가벼운 달리기에는 단순히 몸을 데우는 필요 최소한도의 움직임만이 있을 뿐


마토바는 바람에 나부끼는 검정색 갈기에 살며시 손을 가져다 댔다


라이스는 모든걸 알고 있었다


「파트너」


그래, 파트너다


처음엔 단순히 한 명의 기수와 한 마리의 경주마로서 같이 레이스에 출마할 뿐인 사이였다


하지만 어느새 둘 사이에는 특별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애정에 가까운 감정을 느낀 적도 있었다


그 기백에 눌려 두려움을 느낀 적도 있었다


어떤 때는, 말인 그에게 인간인 자신이 존경심을 느낀 적도 있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마토바의 인생에서 라이스 샤워는 둘 도 없는 파트너가 되어있었다


마토바는 그 스토익한 프로다움으로 유명한 기수


언제나 말의 능력을 100%까지 끌어내는데 힘쓴다


그런 마토바가 없었다면 아마 라이스 샤워라는 경주마는 존재하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반대로 라이스 샤워 없이도 마토바는 없었다


라이스 샤워 역시 마토바와 동등 혹은 그 이상으로 프로페셔널한 경주마


파트너로서 이보다 더 의지가 되는 존재는 없다


「이인삼각」


둘은 둘이기에 하나가 될 수 있는 존재였다


운명의 시간이 다가온다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할 일은 모두 끝마쳤다


해보자


우리 둘의 가능성을 시험해보자


우리라면 분명 도전하는 입장이 아닌 도전을 받는 입장이다


결전의 시간이다


게이트로 향하는 둘의 가슴을 요도의 바람이 따듯하게 어루만지며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홀수번 대의 게이트 번호부터 말들이 차례로 게이트에 들어간다


가장 먼저 들어간 것은 1번의 에어 더블린



3번인 라이스 샤워는 그 다음이다


이후 총 18두의 말이 다 들어오기까지, 꽤 시간이 남는다


그 짧다면 짧은 시간이 말의 정신상태에 미묘한 영향을 준다


의욕이 너무 넘치는 말들은 쓸데없이 게이트 안에서 날뛰다 체력과 기력을 소모하기도 한다


기백이 너무 없는 말은 반대로 기다리는 동안 전의가 식어버려 스타트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짝수번의 끝번대를 뽑은 말이 유리하다는 말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라이스 샤워에 한해, 그런 걱정은 전혀 없었다


언제나처럼 게이트에 들어가 조용히 스타트를 기다린다


그리고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해 자신의 안에 쌓아 둔 기백을 최고조로 높이며 호흡을 조절해 나간다


가슴의 고동이 점점 강해진다


그리고 게이트 입장이 끝났다는 걸 눈치채면 그 움직임도 멎는다





완벽한 스타트


아그네스 퍼레이드가 선두로 나간 가운데 라이스 샤워는 그 뒤인 2번째 위치를 점했다


하지만 메이쇼우 레그넘키소지 골드인터 러너등이 그를 제치고 나아간다


초반의 선두 쟁탈전을 가져간 것은 크리스탈 케이


마토바와 라이스 샤워는 무리하지 않았다


앞을 가고 싶은 말들은 마음대로 앞을 가게 한다


1바퀴째의 3코너 까지는 8,9번째 위치까지 내려가서 다렸다


이번 천황상은「주연 부재」라 불리던 레이스


당일의 평가는 크게 나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인기를 얻었던 것은 에어 더블린, 인터 러너하기노 리얼킹


라이스 샤워는 4번 인기를 받았다


하지만 경마에서 인기가 실력을 나타내는 절대적 척도는 아니다


마크할만한 말이 없다는 것은 마토바 뿐 아니라 다른 기수에게도 통용되는 상황이었다





전반은 크리스탈 케이가 5,6마신 차로 도주하는 가운데


각 기수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며 달리는 양상이 전개되었다






첫 4코너를 빠져나왔을 때 에어 더블린이 적극적으로 4,5번째 위치까지 올라온다


이 날의 마장 상태는 전날부터 내린 비로 꽤나 무겁고 거칠어진 상태


너무 후방으로 내려가면 마지막 직선에서 제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마토바도 그에 이어 6번째 위치까지 포지션을 회복한다


하지만 이로서 다른 기수들의 목표가 정해지게 되었다


선두의 크리스탈 케이와 그 뒤의 키소지 골드는 언젠가 그 힘이 다 할터


레이스의 전개는 이제 3번째 위치의 인터 러너, 그 뒤의 에어 더블린


그리고 이 요도 3200m에서 압도적인 실적을 자랑하는 라이스 샤워가 중심이 될게 뻔했다


후방에서 쫓던 스테이지 챔프, 하기노 리얼킹, 야시마 소블린은 이 시점에서 노골적으로 앞을 가는 세 마리를 마크하기 시작했다


최후방의 야마닌 드리머까지의 거리가 불과 5,6 마신인 근접전


거기에 꽤나 슬로우한 페이스


전개를 읽어보자면 마지막 직선에서의 제치기 승부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마장은 그 제치기 위한 다리가 무거워지는 중마장


어떤 판단을 내릴지 승부를 걸 타이밍을 찾기 힘든 레이스가 되었다


스탠드석 앞을 지나면서 마군은 더더욱 굳어져서 1코너로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 에어 더불린이 움직여 2번째 위치로 올라가고자 한다


그리고 이것을 계기로 각 말들의 위치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너무 일찍 승부를 걸면 진다


승부를 걸 타이밍이 늦어지면 기회를 놓치고 진다


모든 기수들에게 신중한 판단이 강요되는 시간이 흘러갔다









결국 에어 더블린이 2번째 위치까지 올라갔고


3코너에 채 도착하기 전 키소지 골드가 또다시 에어 더블린을 제친다


그때였다


마토바와 라이스 샤워의 안에서 무언가가 번뜩였다


승부를 건다면 지금이다


라이스 샤워가 앞으로 치고 나갈 움직임을 보인것과


마토바가 「가라」는 신호를 보낸건 동시였다


「둘」이 여기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은 체구의 검은 말이 목을 낮게 숙이고 보폭을 넓힌다






에어 더블린을 제친다


3번째 위치




키소지 골드를 제친다


2번째 위치






하지만 아직 멈추지 않는다


그대로 선두를 빼앗고 3코너를 들어간다


1번째 위치


선두


카와시마 구무원은 이걸 구무원실 밖의 스탠드 구석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라이스 샤워와 가장 긴 시간을 함께 공유한 남자였다


그 일거수 일투족을 보기만 해도 라이스 샤워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까지 이해할 수 있는 구무원이었다


라이스가 스스로 움직였다…


카와시마는 그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이즈카도 스탠드에서 이 모습을 보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라이스 샤워는 선행 그룹에서 마지막 코너에 들어가 직선에서 상대를 제치는 경마를 해왔다


그 이외의 방법으로는 2살 때 이외엔 단 1번도 승리를 거머쥔 적이 없었다


그런 라이스 샤워가 3코너에서 벌써부터 선두에 섰다


설마…


마토바는, 라이스 샤워는 대체 무슨 생각인거지


이이즈카는 그 믿기 힘든 광경을 망연히 바라볼 수 밖에는 없었다



마토바도 물론 지금까지 빠른 타이밍에 선두에 서게 되면 그다지 좋은 결과가 안 나왔다는걸 알고 있다


하지만 선두에 「서게 된 것」이 아니다


마토바와 라이스 샤워


이 둘이 스스로의 의지로 선두에 「선 것」이었다


위험 부담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


지금까지 시도해서 성공해본 적이 없는 전술


일생일대의 도박수는 이미 던져졌다


만약 패배한다면 무슨 소리를 듣게 될지 모른다


명백한 기승 미스라며 비난 받을게 뻔했다


3200m의 레이스를 3코너의 입구에서부터 선두에 선다는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작전이었다


하지만 마토바는


자신과 라이스 샤워의 직감을 믿었다


마토바의 머릿속에는 1년전 닛케이상 때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지금과 똑같이 3코너에서 선두에 서 골 직전에서 스테이지 챔프에게 코 하나 차이로 제쳐졌던 레이스


그 때의 스테이지 챔프는 「엄청난 호각」을 사용했었다


하지만 오늘 요도의 잔디는 물을 잔뜩 머금은 중마장


그 어떤 귀신과도 같은 다리를 갖은 말이라도 쫓아올 수 없을 테다





마토바와 라이스 샤워에게 유발되듯이 먼저 인터 러너가 움직였다


단숨에 몇 마리나 되는 말을 제치고 2번째 위치로 쫓는다


한 박자 늦게 모든 기수가 승부수를 던지기 시작했다


표적은 단 한두


겁도 없이 벌써부터 선두에 선 라이스 샤워


하지만 라이스 샤워는 의연히 선두를 지켜냈다


3코너부터 시작되는 급경사의 내리막


그곳을 마치 강을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막힘없이 질주했다


올 테면 와봐라


이 자리 (선두)는 절대 내주지 않겠다




스탠드에서 울려 퍼지는 함성이 한층 더 커진다


라이스 샤워는 뒤따라오는 말들을 이끌 듯이 드디어 마지막 코스를 돌았다


남은건 400m


후열의 말들과의 차이가





2마신


3마신


벌어져 간다


후지테레비 계열의 전국방송에서 언제나의 스기모토 아나운서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과거 미호노 부르봉의 3관을 응원하고


메지로 맥퀸에게 「올해만은 한번 더」라며 편파적인 해설을 했던 그 스기모토 아나운서


「자, 라이스 샤워 선두다. 이야, 역시 이 말은 강한건가」


「라이스 샤워 선두다, 라이스 샤워 선두!」


하지만 지금 들려오는 그 목소리에는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전혀 예상도 못한 일을 마주했을 때와 같은, 마치 경탄과도 같은 감정의 울림이었다


미호노 부르봉, 메지로 맥퀸을 쓰러트리고


그 후 한때 재.기 불가라는 판정을 받았던 라이스 샤워가


지금 요도의 직선을 선두로 달리고 있는 것이다


남은건 400m,


300m


200m…


마토바의 20년 이상 기수 생활 중에서도 이 때만큼 마지막 직선이 길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인터 러너가 쫓아온다


에어 더블린도 쫓아온다


후방에서는 역시 하기노 리얼킹이다


바깥에서는 마군을 뚫고 호각을 뽐내며 등장하는 스테이지 챔프도 있다


앞으로 100m


하지만 여기서 갑자기 라이스 샤워의 다리가 급격히 무거워진다


후열 집단과의 차이가 좁혀지기 시작했다


마토바가 왼팔을 휘둘렀다


채찍이 날아든다


골은 이제 눈앞이다


어떻게든 버텨만 주거라


스테이지 챔프를 타고 있던 에비나마 사요시 기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채찍을 휘두르는 손에 힘이 담긴다


하기노 리얼킹도 제쳤다





남은건 라이스 샤워 뿐이다


라이스 샤워는 경합에 강한 말


나란히 달린다면 그리 쉽게 제치게 해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에비나마는 코스의 바깥쪽을 달린다


라이스 샤워와 꽤나 거리가 벌어져 있는 곳을 달렸다


이거라면, 스테이지 챔프라면 제칠 수 있다


앞으로 수 m


마토바의 시야 끄트머리에 스테이지 챔프가 들어왔다


마지막 채찍이 휘둘러진다


함성이 울려 퍼진다








두 마리가 거의 동시에


결승선을 통과했다


승리인가 패배인가


마토바는 저도 모르게 에비나마를 바라보았다


에비나마는 자신만만하게 승리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설마…


하지만 높은 위치에 있는 방송석에서 이 모든 사투를 지켜보던 스기모토 아나운서는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전황을 보고 있었다


「이야, 해냈다, 해냈다 라이스 샤워!」


「아마도, 아마도 메지로 맥퀸과 미호노 부르봉도 기뻐하고 있을테죠」


「라이스 샤워, 오늘은 해냈다---」


물론 경마장에 있던 마토바에게는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는 전광판을 올려다 보았다


그곳에서 나오고 있었던 영상은


자신과, 엉망진창으로 지쳐 있는 파트너, 라이스 샤워의 모습


이긴건, 우리들이었다


함성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은 우선 가장 먼저 자신의 감사의 마음을 라이스 샤워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정말 잘해주었다


마음속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해주었다


라이스 샤워는 체력이고 정신력이고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걸 쏟아내며 싸워주었다


마토바는 그 목을 언제나처럼 담담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라이스 샤워는 화려하게 복귀를 끝마쳤다


일본 최장거리 G1 천황상 봄 제패


기록은 3분 19초 9


2년전 자신이 세운 기록인 3분 17초 1에는 도저히 못 미치는 기록이었지만


사력을 다해 잔디밭을 구르는 그 모습은 2년전 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보는 사람에 감동을 주었다


그렇다.


「우리」는 확실히 감동했다


겨우 경마에 불과하지만


단순히 말이 달리는 것 뿐인 오락에 불과하지만


한 마리의 작은 검은 말이 자신의 능력을 한계까지 끌어내어 도전하는 그 모습에


우리 인간은 잊어가고 있던 「싸움을 향한 의지」를 다시 기억해낼 수 있었다


레이스 후의 표창식에서 한 인터뷰에서


쿠리바야시 이쿠코 오너 부인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언젠가는 부활해 줄 거라 믿고 있었습니다. G1을 두번이나 우승했었지만, 오늘만큼 감동한 적은 없었습니다」


「정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쁩니다. 감개무량합니다」


킷카상에서는 미호노 부르봉을 이겼다


2년전 천황상에서는 메지로 맥퀸을 이겼다


하지만 오늘의 천황상은 지금까지의 레이스와는 갖는 의미가 달랐다


오늘 라이스 샤워는 자기자신을 이겼다


이 천황상에서의 승리는 라이스 샤워라는 말에 대한 인식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라이스 샤워는 역시 스테이어였다


3000m를 넘는 레이스에서만큼은 그 누구도 쫓아올 수 없는 특이한 마라톤 선수이다


이미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모두가 알게 된 기정 사실이었다


라이스 샤워는 천황상 봄에서 2번째 우승을 쟁취하는 것으로서 그 실력을 모두에게 재인정 받은 것이다


평론가인 오오카와 케이지로는 라이스 샤워에게 「헤비 스테이어」라는 명언을 남겨주었다



천황상에서 이긴 후의 라이스 샤워의 모습은 평범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지쳐있어서 표창식에서는 서있는게 한계일 정도로 자신의 모든걸 소모하며 달렸던 것이다


과연 말이란 동물은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의 육체적 한계를 여기까지 몰아붙일 수 있는 존재인가


누구나 전력을 다해 뛰다 보면 고통스러워지는 순간이 온다


멈춰 서거나 다리를 늦추고 걷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를 악 물고 스스로에게 채찍질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어주는 것은 지금까지 만들어온 육체적 능력과


그것을 뛰어넘는, 고통을 인내하는 정신력일 것이다


역시 라이스 샤워는 그 정신력이 최대의 무기이자 장점인 말이었다





1월 17일의 한신 대지진으로 인해


올해의 타카라즈카 기념은 교토 경마장에서 열리게 되었다


운명이란 이 얼마나 얄궂은가


지금까지 3번의 G1 우승을 하며 라이스 샤워는 단 한번도 「주인공」으로 불린 적이 없었다


하지만 4월 23일 천황상 봄에서의 부활극은 팬들의 가슴 속에 필요 이상으로 선명한 인상을 남겼던 것 같다


타카라즈카 기념에 출마하는 선출마는 일반의 인기투표로 뽑히게 된다


라이스 샤워가 받은 표는 10만 5779표


타카라즈카 기념 투표 1위였다


지금까지 검은 자객, 관동에서 온 자객, 검은 반역자, 불길한 검은말 등으로 불리며


「악역」이었던 라이스 샤워가


드디어 악역이 아닌 「주인공」


즉 모두가 우승을 응원하는 「히어로」가 됐다는 뜻이다


경주마 생활 5년차, 지나온 레이스는 총 24전


드디어 라이스 샤워는 대중들의 응원을 받는 주연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관계자들의 심정은 오히려 복잡했다


라이스 샤워는 아직 천황상의 피로가 남아있었다


원래라면 도저히 출마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2년전에도 타카라즈카 기념의 출마권을 얻었었지만 그 때도 마찬가지로 천황상의 피로 때문에 회피를 했었다


이번에도 가능하다면 다이토우 목장으로 보내 휴양을 시켜줄 계획이었다


그런 찰나에 받은 팬 투표 1위


팬이 있어야 존재하는 프로 스포츠인 경마


그곳에서 주역으로 뽑힌 라이스 샤워가 부상을 입은 것도 아닌데 휴양을 이유로 출마를 회피할 수는 없었다


만약 무리하게 밀어붙인다면 되려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거기에 이번 타카라즈카 기념은 「지진 복구 지원」이라는 명제가 걸린 특별한 레이스


레이스의 출마여부를 결정하는 입장인 이이즈카 조교사에게 있어


머리가 아픈 선택이었다


타카라즈카 기념은 2200m


라이스 샤워에게는 명백하게 부족한 거리


원래라면 출마를 하더라도 우승의 가능성이 없는 레이스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우선 타카라즈카 기념은 정량전


라이스 샤워는 56kg을 짊어지고 뛰게 될 것이고, 이는 지금까지 무거운 근량으로 고생을 해왔던 라이스 샤워에게는 큰 매력이었다


거기에 코스 또한 라이스 샤워가 가장 잘 달리는 교토의 요도


이길 수 있을지는 차치하고서도, 좋은 내용의 레이스는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라이스 샤워도 이제 곧 6살이다


앞으로 몇 번을 더 뛸 수 있을지 모른다


휴양을 시킨다면 젊을 때와는 다르게 몸을 다시 만들 때까지 훨씬 더 시간이 필요해질지 모른다


혹은 다시는 잔디밭으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뛸 수 있는 몸이 만들어져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뛰게 해주고 싶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이이즈카는 타카라즈카 기념 출마를 결심했다





그런 와중 라이스 샤워의 은퇴식에 관한 이야기도 구체적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골절은 이미 회복했지만 언젠가는 그 날이 온다


그때까지 씨수말로서의 길을 어떻게든 확보해 주고 싶다


하지만 천황상 봄에서의 2번의 우승도 라이스 샤워가 받는 씨수말로서의 평가를 뒤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역시 아무리 해보아도 3000m라는 초장거리 전용말이라는 특징이 발목을 붙잡았다


물론 단순히 씨수말이 되는 것 뿐이라면 아무 수말이나 가능한 일이다


일본 경종마 등록 협회에 등록 절차만 하면 끝이다


문제는 오히려 그가 씨수말로서 들어갈 장소였다


라이스 샤워라면 유토피아 목장에서 생활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의미가 없다


어느정도 신디케이트를 만들지 않으면 파종 제안은 오지 않는데다


혈통이 가까운 유토피아의 암말들과 교배하는 것도 안될 일이다


결과적으로 경비가 쓸모 없어질 뿐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모계를 중심으로 한 생산목장에는 씨수말을 두지 않는게 통례이다


중요한건 단순히 말을 살려두기만 하는게 아니다


그 자손을 되도록 많이 만드는 것이다


그런 라이스 샤워에게 한가지 낭보가 도착했다


은퇴후는 씨수말로서 생활할 수 있도록 JRA가 전면적으로 서포트 해주겠다는 이야기였다




JRA는 그 산하에 수많은 씨수말들을 관리하고 그들을 일반 시장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생산목장에 공급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 목적은 이익 추구가 아닌 경마계 시스템의 건전한 유지


그를 위해 단순히 돈이 될 만한 씨수말이 아닌 향후에 경마계에 필요할 씨수말을 우선적으로 생각한다


JRA에는 꽤 많은 수입산 수말이 있지만 현재 일본에도 만연한 노던 댄서계열은 피하고 있던 상태


피의 활성화를 위해 인기가 없더라도 일본에는 적은 혈통의 씨수말을 의욕적으로 수입해 왔었다


그 JRA가 라이스 샤워의 씨수말로서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앞으로의 일본 경마계를 번영시키기 위해


만약 이득이 전혀 되지 않는다고 해도 라이스 샤워가 가진 스테이어의 피는 귀중히 보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야기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타카라즈카 기념이 열리는 것은 6월 4일


그 2일 뒤인 6월 6일에 JRA의 전문가가 최종확인을 위해 라이스 샤워를 보러 오기로 합의를 보았다


이걸로 라이스 샤워의 노후는 보장되었다


언제 은퇴 하더라도 씨수말로서 자손을 남기며 평온한 노후를 즐길 수 있다


라이스 샤워에게 매료된 사람이라면 그가 언제까지고, 조금이라도 더 달려줬으면 하겠지만


라이스 샤워는 기계가 아니다


단지 6살의 서러브레드일 뿐이다


이미 경주마로서의 피크는 지난지 오래


2번이나 당한 골절로 다리가 불안한 말이기도 하다


어차피 할 은퇴라면 박수칠 때 떠나게 해주고 싶다


라이스 샤워는 그 때를 위해 지금까지 몇 번이고 스스로의 한계를 넘으며 싸워왔다


라이스 샤워가 처음으로 주인공이 되어 교토의 타카라즈카 기념을 뛴다


그 다음은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이번 경기가 마지막 레이스가 될 확률도 적지 않다


팬 투표 1위로 마생 처음으로 주인공이 된 라이스 샤워


은퇴후의 생활까지 보장된 그에게


지금까지 길고 긴 고통스럽고 힘든 싸움을 거쳐온 그에게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가능성을 만들어온 그에게


미래를 향한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라이스 샤워는 자신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레이스에 출마하게 되었다









6월 4일


후쿠야 노보루는 도쿄 역에서 쿠리바야시 오너 부부를 찾고 있었다


교토에서 큰 레이스가 있는 날이면 언제나 여기서 합류한 뒤 신칸센을 타고 현지로 간다


하지만 이 날은 어째서인지 서로 엇갈린 모양이었다


발차 시간이 다가오는 상황


그는 시간을 몇 번이나 확인하며 초조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결국 포기하고 신칸센에 몸을 실은 후쿠야


무슨 일이 생기신걸까…


후쿠야는 가슴 속에 남은 찝찝한 불안감을 안은 채 혼자 교토로 향했다




카와시마 후미오는 언제나처럼 라이스 샤워에게 말을 걸었다


「라이스, 좋은 아침. 오늘은 레이스가 있으니까 힘내자꾸나」


혹시 오늘이 마지막 레이스가 될 지도 모른다


카와시마는 목까지 올라온 그 말을 삼키고 마음속에 담아두었다


알고 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길게 라이스와 함께 있고 싶다


지금의 카와시마에게 라이스 샤워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제일 먼저 카와시마는 라이스의 다리를 확인했다


4일 전의 훈련에서 라이스는 발굽을 아파했었다


그게 신경쓰였던 것이다


하지만 눈에 띄는 부상은 없다


레이스에 영향은 미치지 않을 것 같았다


카와시마는 라이스의 뺨을 쓰다듬었다


「너는 참 대단하구나. 인기 투표에서 1등이라니, 명마야, 명마…」


라이스가 드물게도 카와시마의 손길에 응석부리는 듯한 행동을 했다


레이스 당일은 언제나 기백을 품고 있는 탓에 카와시마 구무원에게도 마음을 닫던 라이스였지만


그런 라이스가 응석을 부렸다


라이스가


무언가를 말하고자 한다


불안한 눈빛으로


언제까지고 카와시마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이즈카 코우지는 조교사실에 있었다


다른 조교사 동료들이 애마의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사이 그는 혼자 멍하니 라이스 샤워에 대한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훈련은 결코 순조롭다 할 수 없었다


라이스 샤워는 천황상의 피로가 언제까지고 사라지질 않았다


그래도 레이스에 나가는 이상 할 수 있는건 모두 다 했다


마무리 훈련 때의 움직임도, 기록을 보면 평범하기만 했다


너무 급하게 조정을 한 감이 없지않았다


하지만 라이스 샤워는 평범한 말이 아니다


그 어떤 불리함도 뒤집을 수 있는 기적의 말이다


이 날 교토 경마장은 약간 무거운 상태


하지만 이 2주간 3개의 레코드 타임이 나올 정도로 땅은 단단해져 있는 상태


그게 라이스 샤워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이질 않는다


라이스 샤워와 만난 이후로 언제나 이래왔다


이이즈카는 작년 12월에 62살이 되었다


그 대부분을 말과 함께 보내온 인생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라이스 샤워와 함께한 5년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 충실한 시간이었다


그 정도의 명마는 좀처럼 만날 수 없다


조교사를 하고 있어도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그 정도의 말인 라이스 샤워가 있어주었기에 조교사로서의 지금의 자신이 있다


그 라이스 샤워가 곧 은퇴라니…


외로워지겠군…


하지만 은퇴한 후 라이스 샤워는 씨수말이 된다


매년 많은 망아지를 낳아줄 터이다


운이 좋다면 그 중의 한 마리 정도는 인연이 닿게 될지도 모른다


어떤 망아지가 태어날까


그 망아지와 자신이 다시 한번 영광의 잔디밭을 질주할 수 있다면…


상상만으로도 멋진 일이었다





스타트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자, 슬슬 가볼까, 라이스. 손님들이 모두 널 기다리고 있다고」


카와시마는 라이스 샤워를 끌고 패독을 향했다


전날의 비가 그쳐 맑게 갠 요도의 하늘은 눈부시기까지 했다


후쿠야는 그 모습을 스탠드의 마주석에서 보고 있었다


옆에는 한발 늦게 교토에 도착한 오너 부부의 모습


어쩐지 무거운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라이스 샤워는 언제나처럼 얌전히 패독을 돌았다


기백을 드러내지 않는 말이다


다른 말들처럼 흥분에 찬 투레질을 하거나 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 날은 어딘가 이상했다


침착함을 넘어, 투쟁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 침착하네요, 어딘가 평상시와는 다른것같은…」


그 말에 이쿠코 부인이 작게 끄덕였다


패독을 걷던 라이스 샤워의 위에 마토바가 올라탔다


언제나보다 라이스의 등이 작게 보였다


조여져있다기 보다 홀쭉해져 있다는 인상이었다


마토바는 그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역시 기백이 느껴지지 않았다


기합이 전혀 들어가있지 않다


어떻게 된 일이니, 라이스. 너는 그런 말이 아니었잖아


패독을 나와 경마장으로 향한다


스탠드 앞에서 카와시마는 고삐를 놓았다


라이스가


카와시마의 손을 떠난다


마토바와 카와시마는 가볍게 인사를 마친다


그때 라이스가


잠깐 카와시마의 얼굴은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라이스의 멀어지는 뒷보습을 보고는 카와시마가 발길을 돌렸다





모두가 유토피아 목장의 사무소에 모여있었다


쿠보, 타케다, 타카하시, 키야마 거기에 분원 목장의 타츠다나 다이토우 목장에서 일손을 돕기 위해 파견된 여성 구무원까지


라이스 샤워가 달리는 날은 그들에게 있어 특별한 날이다


2착으로 들어온 더비 이래, 목장의 모두가 TV 앞에 옹기종기 모여 라이스 샤워의 레이스를 관전하는 것이 항례가 되었다


라이스 샤워는 천황상에서 복귀했다


그리고 오늘, 팬들의 꿈을 싣고 달리는 제36회 타카라즈카 기념에서


「우리의 검은 망아지」가 처음으로 주연 자리를 꿰차고 무대에 올라간다


이 레이스의 전망, 그리고 각각의 추억 이야기가 이곳 저곳에서 들려온다


쿠보도, 타케다도, 라이스가 씨수말이 될거란 것을 알고있었다


은퇴가 가까워졌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렇게 모두가 TV 앞에 모여 레이스를 관전하는 날도 오늘이 마지막일지 모른다


수말은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이상,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라이스 샤워는 씨수말이 되어도 다른 목장에서 지낼 것이다


유토피아 목장으로는 돌아오지 않는다


라이스 샤워의 망아지를 자신의 손으로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이,


쿠보에게도, 타케다에도 쓸쓸하게만 느껴졌다





화면에서 라이스 샤워가 준비 운동을 하고 있었다


다이토우 목장의 구무원들은 그 광경을 목장의 휴게실에 놓인 TV로 보고 있었다


그 안에는 처음으로 라이스 샤워의 위에 타고 달려본 히라코, 마지막 담당 구무원이 되었던 야마모토의 모습도 있었다


야마모토는 대학을 졸업한 구무원이라는 드문 경력의 소유자


동물, 그 중에서도 특히 말이 너무나 좋아 이 길로 빠져들었다


처음으로 담당한 것이 골절 후 유토피아 목장에서 돌아왔던 라이스 샤워였다


모두가 말하던 것 처럼 정말 굉장한 말인지는 아직 그에겐 알 수 없었다


그저 사랑스럽고 귀여운 말


그런 인상이었다


그 라이스 샤워가 천황상에서 우승했다


그리고 오늘 타카라즈카 기념에서는 인기 투표 1위에 뽑혀 주연이 되었다


야마모토에게 라이스 샤워는 언제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어주는 존재였다





이제 곧 레이스가 시작된다


카와시마는 구무원실을 나와 스탠드의 그늘에서 혼자 라이스의 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레이스를 앞에 두고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은 언제나 똑같다


될 수 있으면 이겨줬으면 한다


하지만 그것은 카와시마에게 있어 언제나 2번째의 바람


그가 가장 원하는 것은


부디 마지막까지 무사히 달려주기만 하거라


그리고 건강한 모습으로


내게 돌아와줬으면 한다


이 4년은 정말 길면서도 짧은 시간이었다


생각해보면 카와시마는 언제나 라이스 샤워의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늘진 곳에서 카와시마는


언제나처럼 라이스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팡파레가 울려퍼진다


마토바와 라이스 샤워는 천천히 16번 게이트로 향했다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여기에 오기까지 둘에게는 차마 말로 다 설명하기 힘들 정도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수많은 갈등이 있었고


영광이 있었으며


좌절이 있었고


언제나 새로운 발견이 있었다


처음 라이스의 등에 탔을 때는 그 재능을 꿰뚫어 보지 못했었다


더비에서 2착으로 들어간 다음에야 비로소 라이스가 특별한 말이라는걸 깨달았다


미호노 부르봉을 쓰러트린 킷카상에서는 승리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메지로 맥퀸과 싸운 첫 천황상에서는 그 기백에 눌려 두려움과 존경심을 느낀 적도 있었다


길고


힘든 시간이었다


몇 번이나 진흙탕을 굴러야 했다


그리고 이번 봄


2번째 천황상 봄에서


둘은 확실한 기적의 빛을 보았다


둘은 언제나 운명을 함께하며 달려왔다


그들이 써내려간 수많은 드라마도 이제 곧 막을 내리게 될 것이리라


아까부터 라이스가 마토바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싶어한다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도 언제나의 라이스 샤워 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무슨일이야, 라이스. 힘내라고. 오늘은 너, 처음으로 받은 주인공 자리라니까」


이기지 못해도 좋다


그런걸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모두가 알고있다


이기지 못하는걸 알고 있으면서도 네가 뛰는 모습을 보고싶어하는거다


적어도 부끄러운 모습은 보여주지 말아야지


오늘의 너는


영웅이니까


남은 시간은 이제 얼마 없다


출마하는 말들이 차례로 게이트에 들어오고 있다


함성이 울려 퍼진다


라이스 샤워의 힘찬 심장소리가


마토바의 귀를 스쳐 지나간다


오늘의 이 함성은, 모두 너와 나를 위한거야


계원이 게이트 앞을 비켜선다


「가자고, 파트너」


습기로 가득찬 대기를 게이트의 메마른 금속음이 때리듯이 울려 퍼진다


둘은 마지막 골을 향해


영광의 요도 잔디길을 박차고 나아갔다








――――――암전――――――








그곳에는 그가 있었다


고통을 참아내면서도 스스로 일어나기 위해 애쓰다 결국 쓰러지는 그의 모습이 있었다


그곳에는 그도 있었다


파트너의 죽음을 믿지 못해 타박상을 입은 몸으로 뛰쳐나가려는 남자의 모습이 있었다


그곳에는 그가 있었다


파트너를 잃은 남자를 무겁고도 상냥한 목소리로 제지하는, 아끼던 애마를 잃은 남자의 모습이 있었다


그곳에는 그가 남았다


그는 자신이 마음으로 낳은 자식의 고삐를 끌어안은 채로 멈추지 않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곳에는 그들이 있었다


어느 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눈물을 쏟는 남자들의 모습이 있었다


그곳에는 우리가 있었다


1995년 6월 4일 교토 경마장


그곳에서 한 명마에게 일어난 비극


그리고 프라이드 높고 머리가 좋았으며 누구보다도 투쟁심이 강했던 작은 몸집의 검은 말


지금 여기 있는 우리는


영광의 전설을 각인시키기 위해 달려온 한 명마의 장절한 삶을


계속해서 기억해 나갈 것이다







라이스 샤워 -    25전 6승 그중 23전이 중상 레이스, G1 3회 우승


        킷카상, 천황상 봄에서 신기록 갱신 우승


        당대 최강마, 미호노 부르봉의 무패3관과 메지로 맥퀸의 천황상 3연패를 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