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말 시리즈 2탄이다.










암말도 최정상에서 경쟁할 수 있다.

말붕이들도 여러 사례들을 알고 있을것이다.



더군다나 그런 재능 넘치는 암말이 애교까지 많으면 금상첨화 일것이다.



그런데 그 성격에 장난치기까지 좋아하면 기수는 피를 보기 마련이다.

순수 악 정도는 아니겠지만 한라(Halla)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정말 다른 방향으로 기수를 ㅈ되게 만드는게 가능하다.


솔직히 전에 고루시는 머리도 좋고 피지컬도 좋은데 승마에서 대성하지 않았을까 란 글을 보면서,

이미 고인물 판이기도 하거니와 그 성격이면 기수 여럿 죽였다고 생각한다.




일단 한라의 품종은 당시엔 스탠다드브레드였다.

근데 빈마인 헬레네의 부마가 서러브레드(순수 서러브레드인지도 모름)라 지금은 헤센 호스라는 것으로 분류된다.


아무튼 미국에서 대성했던 혈통의 스탠다드브레드인 오버스트와 출신 모를 트로터 헬레네 사이에서

1945년 독일 다름슈타트에 위치한 구스타프 비어링(Gustav Vierling)의 오버필드 목장에서 소넨글란츠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나중에 딸이 헬라로 바꾸자고 했는데 조카가 발음을 못하니 한라로 또 개명했다.


한라의 탄생은 좀 비범했는데 헬레네가 헬라를 임신했을 당시 게름슈타트에 영길리의 폭격이 가해졌다(게름슈타트 폭격)

약 13000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동물들도 마찬가지였는데, 헬레네는 크룹(둔부와 꼬리의 경계부분)에 화상을 입은거 외엔 별 상처도 없었다.


구스타브는 저런 상황에서 살아남았으니 분명 비범한 말일 꺼라고 기대했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단지 저딴 전쟁통을 태교로 삼았으니 성격이 절대 평범하지 않았을 뿐.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하니스 경마를 하기엔 점프력이 아까워서 장애물 경마로 갔다.

그런데 당시 연습 중인 한라를 눈여겨본 독일 승마협회 관계자가 그 속도와 체력을 몇년만 써먹기 아까우니 종합마술로 초빙해오고

종합마술 연습을 지켜본 승마대표팀 관계자가 이 체격이면 장애물 비월 씹어먹겠네? 이러고 장애물 비월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1951년까지 농장이랑 대표팀을 왔다 갔다 하는 생활을 하게된다.

정확힌 그 재능에 반해 탔던 기수들이 평범치 않은 성격으로 GG치고 내리는게 반복되다 보니 대표팀에서도 천덕꾸러기가 되어있었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고 했던가? 재능있는 말을 왜 사람들이 포기했던걸까?

한라는 젊은 기수 한스 귄터 윙클러(Hans Günter Winkler, 1926~2018)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1955년의 사진이다)

정확힌 구스타프가 마지막으로 한라를 맡아달라 부탁했고, 대표팀에선 한스가 직접보고 결정하라 보낸거긴 했다.


일단 한스의 집안은 대대로 말을 조교하는 조교사 겸 승마강사를 업으로 삼아왔는데,

아버지가 2차대전에 독일군에 징집되어 전사했고 한스 본인 역시 소년병으로 징집되어 대공포 보조병으로 배치되었다.

하지만 폭격으로 집이 무너졌고 자신까지 죽으면 어머니를 책임질 사람이 없던고로 탈영을 하다 다행히? 미국군에게 포로로 잡혔다.



이 인연덕인지 모르지만 당시 한동안 미국군의 승마강사 겸 말 관리사가 되어 돈을 벌었는데,

한스는 당시 군인이던 아이젠하워의 말도 관리하고 있었고 나름 친분을 맺었다.

그 덕에 양자제의까지 받았지만 한스는 어머니를 혼자 둘 수 없다며 그 제안을 거절했고 서로의 앞날을 빌며 해어졌다.

(나중에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때 한스는 아저씨 출세했네 정도였다고 한다. 아이젠하워 역시 한스의 성공에 비슷한 감상이었다고.)




(1949년의 사진. 오른쪽으로 오리엔트를 타고있다.)

짬짬히 일하면서 1948년에 휜펠트에서 열린 대회에서 우승했고, 이 대회를 시작으로 소위말하는 상금사냥을 하며 가계에 보태다가

1949년에 대표팀에서 제대로 배워볼 생각이 없냐는 전화를 받고 테스트에 합격해 승마 대표팀에 들어와서 낮에는 기수로서 배우고 저녁에는 인부로서 일했다.

(월급이 짜다고 일 달라고 해서 오후에 일했다)





아무튼 그런 와중에 기차를 타고 한라를 보러갔는데 목장에 없었다.

한스가 물어보니 구스타브는 한스를 데리고 기차역으로 갔다.


한스가 목격한 것은 기차 선로위를 뛰어넘으며 놀고 있던 한라였다. 마을 사람들도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마을 명물이 되있었다.

그리고 한스와 구스타브를 발견하곤 그 주위를 빙빙돌다가 다시 기차선로를 뛰어넘으며 놀았다.

한스는 걱정스러웠지만 놀랍게도 딱 기차가 오기 10분 전에 한라는 목장으로 돌아갔다.


일단 한스가 보기에 한라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피지컬과 지능 그리고 애교쟁이라 다른 말과 사람, 동물들에게도 너 나랑 칭구칭구 거리는 말이었다.

장난끼가 너무 심해서 마주인 구스타브와 빈마인 헬레네까지 피하게 만드는 것만 빼면.


한라를 직접 본 한스는 한라를 타기로 결정했다.

구스타브의 부탁도 있었지만 기수로서의 자신의 실력은 충분하니 정상에 오르기 위해선 실력있는 말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당시 한라의 애교에 마음을 빼았겼다고 한다.





(1955년 한라와 그녀의 기수 한스.)


한스역시 처음엔 굉장히 고생을 했는데 끈기와 인내심으로 한라가 기수를 상당히 좋아하지만 독점하기 좋아하고 질투심 많은 성격임을 파악했다.

만약 오리엔트를 타면 그날은 태워주지도 않고 혹은 오리엔트에게 신경질을 부렸다. 반대로 다른 기수가 자신을 타는것도 싫어했다.

그 덕에 당시 일반적 관행이던 1인당 말 2마리를 포기하고 왠만해선 한라만으로 대회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그 덕인지 모르지만 한스와 한라는 서로의 능력을 한계까지 끌어낼 수 있었다.

1952년의 독일 챔피언십 우승을 시작으로 크고 작은 대회들을 휩쓸기 시작했다.

55년까지 독일 챔피언십을 우승하니 한동안 참가자제 부탁까지 받았고,

54년 월드 챔피언쉽에서 우승하고 함부르크 더비를 비롯한 장애물 비월 대회에서 입상까지 했다.


이런 불세출의 업적으로 한스와 한라는 많은 관심을 받았다.

특히 팬들과 기자들은 한라를 천재라고 불렀는데, 정작 한스를 비롯한 이 말의 정체를 아는 기수들은 이렇게 불렀다.

장난꾸러기(Lausbub) 혹은 IZ 즉 미친 염소(Irrer Ziege).


..........................나중엔 천재와 미친염소의 혼합물이라고 좀 나은 별명으로 불렀긴하는데 기행들을 들어보면 그럴만하다.

사람을 걷어차거나 낙마시키거나 물진 않았다. 오히려 애교를 잘부렸다.


근데 그것과 별개로 진짜 사람에게 장난치기를 너무 좋아했다.






한스가 타고 있지 않을땐 갑자기 두발로 선다거나, 일부러 쓰러졌다가 일어나거나 다리를 저는 척을 하는건 기본이고,

한스가 탔을땐 천천히 걷다가 갑자기 뛰어오른다거나 급가속을 하다 멈추거나 연못이 있으면 뛰어들기숲속에 두고 도망치기 등 

여러 장난을 쳐대곤 했다.


나중에 마장마술 기수들까지 불렀는데도 그냥 얘가 장난끼가 많은거임 판정을 받았고,

그렇다고 진짜 다칠수도 있으니 맨날 의사를 불러왔다 '님 양치기 소년 이야기 모르심?'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래도 한스는 어이구 우리 이쁜 한라 이러고 우둥부둥 해줬다고 한다.

이 성격으로 본인이 어떤 피를 보게 될지 모른채로...





1956년

멜버른 하계올림픽.


정작 승마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치뤄졌다.

호주는 저때부터 동물과의 전쟁에서 연전연패중이다 보니 방역이 당시기준으로도 빡빡했다.

(그러고도 지금까지 패배중이다)


그덕에 승마는 따로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개최되었다.





(맨 왼쪽이 한스와 한라)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한스는 그 무엇도 겁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많은 말과 기수들이 한라와 한스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으니까.


누가 그러던가?

진정한 적은 내부에 있고, 선의 있는 트롤러 만큼 무서운것도 없다고.






시작하자마자 한라는 긴장때문인지 아니면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모른다.

혹은 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억울하게 부상입고 죽어야했던 종합마술의 군마들이 남긴 저주일지 모르겠다.


한스와 연습해온 속도가 아닌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한스의 자세가 흐트러졌고 자세를 수습하기도 전에 한라는 평소보다 더 높이 점프를 했다.




그 결과 한스는 잠시 체공을 해야했고,

한라의 등에 착지가 아닌 부딪혀야 했다.


다들 결과는 예상되겠지?





그렇다.

하반신에 무지막지한 고통이 밀려왔다.

한스는 이때 누군가가 자신의 허벅지와 허리에 단검을 박은것과 같이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인터뷰했다.

이후 진통제를 맞았음에도 고통은 계속되었다.


정황상 허벅지 근육은 파열되었다.

근데 여기서 포기하면 5년간 해온 일들이 모든게 물거품이 되지 않은가?


한스는 이미 상남자가 아닐수도 있었지만, 적어도 상남자 답게 블랙커피에 모르핀을 타마시는 초강수를 두고 한라의 등에 탔다.

(현재 이렇게 하면 부상투혼이고 뭐고 바로 도핑으로 잡혀가니 따라하지 말아라)


이제 한스는 그저 최소한의 지시를 내리는 악세사리가 되었다.

모든것은 한라에게 달렸다.







그리고 한라는 진짜 그걸 해냈다.


자신의 파트너는 이미 고통속에 정줄놓은 악세사리에 지나지 않았지만,

1라운드에 한스가 정신줄을 부여잡고 지시한 넘을 장애물의 순서와 타이밍을 외웠다.


(비록 본인의 장난으로 그렇게 된)한스의 부상투혼한라가 이어받아 자신에 대한 신뢰에 보답했다.






그런데 글로 쓰면 멋져보이지?


한라가 한번 뛸때마다 한스는 창백한 얼굴로 신음을 흘렸고,

안장에 고정되있지 못하고, 고삐도 겨우 잡은채로 앞뒤로 흔들리고 있었다.


진짜 악세사리 그 자체였다.






어찌되었든 장애물 비월 개인과 단체 양쪽의 금메달을 수상받았다.

그렇다 11세의 암말 한라의 능력은 진짜였다.





그리고 금메달의 기쁨을 누릴세도 없이 끝나고 바로 병원가야 했다. 스스로 못내려서 사람들이 내려줬고 의식을 잃었다.

다행히 심영은 면했는데, 허벅지 근육 파열, 골반 골절, 탈장 삼종세트였다 우와.

근데 정작 기자들과 기수들이 볼때 한라는 웃고 있었다는데 기분탓이겠지....






아무튼 다행히 뼈깍는 노력으로 1년만에 재활하고 다시 대회에 나갔다.

사람들은 한라를 타지 말라고 했는데 그래도 착한 말이라고 한라를 다시 탔다.






아 물론 한라는 1의 반성도 없이 얄짤없이 한스에게 장난쳤다.

애초에 말에게 잘못을 인지시키려면 3초내에 혼내야 하는데 그러지도 않았고 본인의 실수라고 넘긴것도 있었다.







어찌되었든 이 두 콤비는 아헨과 비스바덴 로마 등등의 네이션스 컵을 우승하고,

다시 독일 챔피언십도 우승는등 승승장구했다.






1960년

로마 하계올림픽.


마장마술에선 압생트와 필라토브가 명성을 드높히고 있었다면

이곳은 한라의 마지막 은퇴경기였다.






그리고 여기서도 장난쳤다. 다행히 한스의 대응으로 무사고로 끝나긴 했다.


그 덕에 개인 수상은 실패했으나 장애물 비월 단체 금메달이었다.

마지막 은퇴경기에서 가장 많은 금메달을 딴 암말이 되었다.


비범한 출생에 걸맞는 비범한 업적이다.






(한라의 첫 자마 핼리. 참고로 저 핼리는 한스를 깨물며 그 성격이 유전됨을 증명했다.)

은퇴하고 구스타브의 목장에서 브두드메어 즉 씨암말로 활약했다.


비록 8마리의 자마들은 처음본 핼리를 포함해서 한라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활약을 했다. 특히 핼리는 그중에서도 으뜸이었다.

그리고 딸들과 손녀들이 활약한 덕에 홀슈타인 중 코르데 라 브뤼에르 계통은 부계로는 베이 로널드지만 모계로는 한라의 피가 흐르고 있다.






어찌되었든

1979년 34세의 나이로 천수를 누리고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한스도 그리고 사람들도 더 이상 이 장난꾸러기의 애교를 볼 수 없다.


하지만 현재 독일 승마협회가 있는 거리엔 한라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고, 그녀의 동상에 세워져 있다.

또한 그녀의 이름은 독일의 말들은 더이상 사용할 수 없다.


비록 더 이상 볼 수 없더라도 사람들은 이 사랑스러운 암말의 애교를 잊지 못할것이다.






ps. 사실 시상식을 빨리 끝냈으면 문제는 없었는데....



개인 시상식 말고도 단체 시상식이 있었고,




위닝 런도 해야 했는데....





거기에 스웨덴이 국빈이랍시고 영길리 여왕님까지 불러서 인사까지 해야했다.

원래 할 필요 없었는데 여왕님이 괜시리 나서서 칭찬해준답시고 한스는 쌩지옥을 더 길게 경험해야 했다.

따지고보면 영길리가 한라를 죽일뻔 했는데 이번엔 기수인 한스까지 죽일뻔 했다.






ps.2 그래도 한스 정도면 나은 편이었다.






이미 순수한 악의 화신에게 선량한 스위스 기수 한명이 자신의 믿음을 시험받고 있었거든.

얜 광증을 감안해도 애교없는 악의 100%라 실드가 불가능하니까 한스 1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