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캐릭터 41명이나 추가한다고 했을때 안나올리가 없다고 생각했고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

이시하라도 인터뷰 때마다 단골로 언급하던 말이니 어떻게든 나오지.



승부복이 마주복이 아니라 기수복인 지방 경마 출신이다보니 승부복을 디자인 모티브로 잡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유일하게 복장도 머리도 털색깔이 아닌 가면에서 따온 핑크색. 아마 다시 나오기 힘들 우마무스메 유일의 핑크머리.


일년전의 애니메이션 PV에도 출연했었고


첫 공식 코믹스에서도 주연으로 등장. 캐릭터 디자인 순으로 치면 꽤나 선배다.


하루우라라의 혈통 자체는 나쁘지 않다. 아버지는 마일의 제왕으로 불리며 88년에 타마모 크로스와 정상결전을 치렀던 닛포 테이오.

외조부도 일본에 나름 영향력을 미친 럭키 소버린이었다. 그러나 인간도 잘난 부모밑에 못난 자식 나오듯, 하루우라라는 그런 케이스였다.

몸은 데뷔때 겨우 397kg일 정도로 작지, 겁은 많지. 어딜 어떻게 봐도 경주마로는 가망이 없어 보이는 싹수 노란 모습.


생산자인 시노다 목장은 경매에 내놓았지만 사겠다는 사람은 당연히 없었고, 결국 팔지 못하고 목장이 소유한 채로 활로를 찾다

예탁료가 연간 130만엔 정도로 가장 싼, 그리고 지방 경마 중에서도 상금도 수준도 제일 낮은 고치 경마로 보내 데뷔시켰다.

하루우라라를 맡은 무네이시 조교사도 순전히 목장과의 의리로 떠맡았을 뿐인데

안장을 얹으려면 날뛰고, 뱃대를 묶으려면 주저앉고, 운동을 시키려면 두바퀴만에 질려서 멈춰 버리는 이 골칫덩이를 훈련시키는데 고생을 했다.


우여곡절끝에 98년 11월 데뷔전을 치렀지만 5마리중 5착 꼴찌. 그 이후로도 별반 볼만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연패를 거듭했다.

이겨서 상금을 버는 건 가당치도 않고, 들어오는 수익은 회당 6만엔이 들어오는 출주 수당뿐.

연간 20회 출주라는 가혹한 로테이션을 감당해야만 적자를 면하고

그렇지 못하면 용도폐기-말고기행이 되는 상황이었으나

불행중 다행인건지 딱 하나 갖고 있던 장점 - 고장이 나지 않는 몸 덕분에 꾸준히 출전할 수 있었다.

그렇게 2003년 봄까지 뛰고 목장측에선 은퇴후 승마 전환을 고려했지만 겁 많은 특성상 무리라고 판단하고 

마주 명의만을 변경한 채로 속행, 5월 말에 이미 87연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한편 이때 고치 경마는 찬바람을 넘어 존폐의 위기에 몰려 있었다.

버블 붕괴 이후로 지방 경마의 매출은 꾸준히 하향곡선을 그어, 2000년대에 들어선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문닫은 경마장만 일곱.

오랫동안 전국 매출 꼴찌였던 고치 경마도 하루하루가 파리 목숨인 와중에

고치 경마장에서 실황 중계 담당이었던 아나운서가 일터의 활로를 찾기 위해 고심하던중

연패중이던 하루우라라의 기록을 보고 미국의 100전 100패의 스타 Zippy Chippy를 연상,

비슷한 방법으로 홍보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주변에 이야기,

그것을 고치 신문의 기자가 사회면에 보도하자

마찬가지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던 고치현 경마조합의 홍보 담당이 그걸로 보도자료를 만들어 각종 언론사에 뿌렸다.

그렇게 해서 7월에 마이니치 신문의 보도를 시작으로 전국판 언론에서 연쇄적으로 보도가 시작되면서

공전의 하루우라라 붐이 일어난다. 


1차 경마 붐의 하이세이코 때도, 2차 경마 붐이 오구리 캡 때도 그렇지만, 시작은 언론이 띄워도 붐이 되는건 대중의 호응이 있어야 가능한것.

완전고용의 신화가 깨지고 정리해고의 바람에 몸서리치던 일본인들에게 지고 또 져도 꿋꿋하게 달리는 이 작은 경주마는 감정이입의 대상이 되었고

'패배자들의 별'로 불리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예를 들어



(절대로 당첨되지 않을) 하루우라라의 마권을 갖고 있으면 정리해고 대상자로도 당첨되지 않는다, 교통사고도 당하지 않는다 식의 부적 취급이라던가.

그외 에마나 사진이나 기타 굿즈들도 불티나게 팔려들었고, 고치 경마장에도 관객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매출액이 한 자릿수가 오르는 대호황.

기념비적인 100전째에는 하루우라라 100전 기념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예상대로 100연패를 기록하자 경주 후에 기념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어찌나 난리였던지 고이즈미 당시 총리도 국무회의중에 하루우라라의 패배 소식을 따로 보고 받았을 정도.


세간의 광풍과는 다르게 경마계 종사자, 특히 목장과 마방 당사자들은 냉소적인 반응이었는데, 우승열패의 법칙이 가장 잔혹하게 적용되는 곳에서

'이기게 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지는 것에 환호하고 이기지 않기를 바라기까지 하는 반응은 모독처럼 받아들여졌던것.

부진해서 상금을 벌지 못하는 말들이 최후에 어떤 말로를 맞게 되는지 잘 아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랬다.


인터뷰에서 질문을 받자 의례적으로 '기회가 되면 한번 타고 싶다'고 했다가 언론에서 난리가 나면서 정말로 타게 된 명기수 타케 유타카도

그 소동에 질려버려 대단히 짜증이 났던 모양이지만, 막상 현장에서 하루우라라를 보러 온 1만 3천의 관중 앞에선 심경이 변했다고.

그러면서도 '강한 말이 강하게 이기게 하는 법이야말로 경마의 진정한 재미다'라고 자신의 지론을 고수한 걸 보면

대를 이어 기수에 종사한 경마 집안 출신의 본심은 그쪽에 있었던듯 하다.


아무튼 이때 기적적으로 폐쇄 위기를 벗어나는걸 넘어 막대한 흑자를 기록했던 고치 경마장은

이때 벌어놓은 자금으로 붐이 꺼진 후에도 근근히 버티다 야간 경마 제도가 도입되면서 매출이 회복,

하루우라라 덕에 위기를 벗어났다고 해도 좋을 정도지만...정작 하루우라라의 뒤끝은 좋지 못했다.


말을 주제로 에세이를 쓰던 작가 안자이 미호코가 3대째 마주가 되면서 모든 말썽이 시작되었는데,

하루우라라를 인수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게 하루우라라 상표 취득과 고치 경마 쪽에 로열티 청구.


그리고 1승을 거두기 위해 토치기로 보내 훈련시키겠다며 종전처럼 고치에서 훈련시키겠다던 조교사와 대립,

말 수송차를 끌고와 경찰을 부르네 어쩌네 하며 반강제로 토치기로 보내더니

막상 토치기에서 '이정도면 고치 경마에선 분명 승리가 가능'할 정도로 훈련을 해 놓으니

갑자기 어디론가 데려가더니 복귀를 계속 지연시키다 복귀 시한 통보에 응답하지도 않아 경주마 등록을 말소시켜버렸다.


그 후엔 호스 테라피 클럽을 개업하면서 하루우라라를 여기에 쓰겠다고 한다던지,

딥 임팩트와 교배를 하겠다, 하지만 900만엔의 교배료는 없으니 모금을 하겠다는 등의 허황된 행동을 계속하다

어느 순간 하루우라라에 대한 모든 소식이 돌연 끊겨 버렸다. 어디에 있는지, 살아는 있는지조차 불명확해

관심만 빨아먹고는 말고기로 팔아버린게 아니냐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던 차...


한참이 흐른 2013년에 안자이가 치바의 마사 팜에 하루우라라를 예탁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이 인간은 끝까지 더티해서, 반년 넘게 예탁금을 지급하지 않고 떼먹었다가 자연스럽게 소유권이 소멸,

마사 팜에서 설립한 하루우라라 지원 모임의 도움으로 다행히 편안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

2015년 당시 근황. 현역 때나 은퇴 후나 여전히 느리다.



2017년 현재 21세. 인간 나이론 환갑을 넘었지만 아직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듯.


출처 : 우마무스메 캐릭터 소개 31 - 하루우라라(ハルウララ) - 우마무스메 갤러리 (dcinsi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