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는 승부복이랑 아예 컬러링이 다른데? 하고 한참 궁금해 했었는데... 


...가면 라이더 BLACK. 이놈들 하여튼 가면 라이더 엄청 좋아한다...

애니에선 차세대 애들이라 유녀로 나오지만, 이 말. 사실은 체고는 무려 174cm, 체중은 전성기에 542kg을 찍었다. GI 최고 체중 우승 기록으로는 히시 아케보노에 이어 랭킹 2위. 대단히 묵직한 체중이지만 키도 다른 말들보다 한뼘은 족히 커서 뚱뚱하기보단 장대한, 혹은 잘 짜인 패션 모델의 인상을 주는 말이었다.




2015년 10월 25일 교토 경마장.

킷카상이 끝나고 승리 인터뷰의 시간. 보통은 기수만 올라오지만 이날은 보기 드물게 기수 인터뷰 다음에 마주가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마주의 이름은 키타지마 사부로(北島三郎). 전설적인 엔카 가수이자 배우로, 홍백가합전에 1963년부터 2013년까지 1986년 단 한번만 빼고 통산 50회 출장이라는 역대 공동 1위 기록을 갖고 있는 거물 중의 거물. 그러나 마주 생활 53년째, 길게 해 왔지만 GI 타이틀 획득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우승에 대한 감회를 간단히 이야기한 후 "GI을 이기면 현장에서 노래하겠다"고 했던 공약을 본인의 히트곡 '마츠리'를 즉석에서 개사하며 실천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fzK5-KZjg

"마츠리다, 마츠리다, 마츠리다, 키타산 마츠리..."



키타지마 사부로를 경마장에서 노래부르게 만든 경주마.

마주인생 53년째, 170번째 소유마의 이름은 키타산 블랙이었다.




키타산 블랙은 2012년 3월 10일 히다카쵸의 야나가와 목장에서 슈가 하트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블랙 타이드. 다름아닌 딥 임팩트의 한살 위 형으로, 2004년 스프링 스테이크스 우승이 커리어 최고인 경주마였으나 아버지 선데이 사일런스, 어머니 윈드 인 허 헤어라는 딥 임팩트와 완벽히 일치하는 혈통 때문에 중소 목장에서 딥 임팩트의 대체 씨수말로 수요가 있던 씨수말이었다.

어머니 슈가 하트는 사쿠라 바쿠신 오의 딸. 데뷔 전에 부상으로 1전도 치르지 못하고 그대로 번식에 진입한 암말로, 5대 이내에 선데이 사일런스가 없는 고색창연한 혈통.



당세때는 아무래도 좀 가느다란 인상이라 주인을 찾는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고, 오죽하면 야나가와 목장이 지분 절반을 부담하는 형태로 공동 마주가 되는 것도 고려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연이 닿은것이 키타지마 사부로. 야나가와 목장의 선대 목장장과 과거 공동으로 목장 경영을 했었던 키타지마가 그때의 인연을 바탕으로 이 말을 사겠다고 손을 내민 것이었다.


키타지마가 선택한 이유는 '얼굴이 두번째로 나랑 비슷하다' '눈도 얼굴도 미남이라 반했다'는 인상비평적인 이유였다. 거래 가격은 공식적으로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절대 1000만엔은 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 이름은 정말 간단하게도 키타지마 사부로에서 한글자씩 따온 관명 키타산(北+三)에 아버지 블랙 타이드에서 따와서 블랙. 키타산 블랙으로 정해졌다. 한국으로 치면 설운도 블랙이나 송대관 블랙 같은 어감이라, 한창 전성기를 달릴때도 '이름만큼은 명마답지 않다'는 악플이 종종 달리곤 했다.


1세가 되자 예상 외로 다리가 길어지고 얄썅해지면서 마체 밸런스가 깨질까 전전긍긍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2013년 11월 12일부터 히다카 경종마공동육성공사로 이동해 육성을 시작하자 보기좋게 달라졌다. 데뷔 후 키타산 블랙을 담당하게 될 시미즈 히사시 조교사의 요청대로 '후구가 느슨하니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육성할 것'을 방침으로 삼아 1년이란 시간을 들인 결과, 다리만 길고 가느다랗던 마체는 어느 새 체고는 무려 6cm가 더 자라 170cm, 체중은 480kg에 육박하는 장대한 마체가 되어 있었다. 2014년 11월 16일, 릿토의 시미즈 히사시 마방에 들어와 최종 조교에 들어간 키타산 블랙은 데뷔 시점엔 이미 510kg의 대형마였다.


데뷔전은 3세가 된 2015년 1월 31일. 도쿄 3세 신마전. 잔디 1800m. 원래는 릿토 소속이고 마체가 크다 보니 코스가 널찍한 교토를 고려했지만 마주의 집이 도쿄 쪽이라는 걸 고려해 변경한 선택이었다. 기수는 고토 히로키.



https://www.youtube.com/watch?v=Pt8nqEOcQfc

도쿄 특유의 긴 직선에서 좋은 스퍼트를 보여주며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2차전인 3세 500만 이하(잔디, 2000m)도 도쿄였다. 이날 교토에서 기승 예정인 고토 대신 앉힌 기수는 꽃미남(이범호 같은 의미로) 기수로 유명한 키타무라 히로시.



https://www.youtube.com/watch?v=4-TH7RIMmcE

단승 인기 9번째의 초저평가였지만 결과는 대도주하던 마이네르 포르투스를 200m 남기고 추월, 후속을3마신 차로 떨쳐내는 완승. 눈썰미 좋은 말박이들은 이 시점에서 '이놈, 보통이 아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닷새 후, 고토 히로키의 자살 소식이 뉴스란을 장식했고, 고토의 첫 기승은 그대로 마지막 기승이 되고 말았다)


한달 후 3차전은 사츠키상 트라이얼인 스프링 스테이크스(GII, 나카야마 잔디 1800m). 선데이 레이싱 소속의 딥 임팩트 자마 리얼 스틸이 1번 인기, 2세 챔피언 다논 플라티나가 2번 인기인 가운데 키타산 블랙은 단승 인기 5번째, 12.3배. 2차전과 비슷하게 타케덴 타이거가 대도주하는 가운데 2번째 위치를 잡은 키타산 블랙은 4코너에서 선두로 일찌감치 진출, 



https://www.youtube.com/watch?v=wjZUvz7sTfM

리얼 스틸의 맹렬한 추격을 목차로 떨구고 승리, 3전 3승에 첫 중상 제패를 달성한다.



여기서 진영은 선택의 기로에 직면한다. 애초에 워낙 커다란 말이라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하고 클래식 등록을 하지 않았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단숨에 사츠키상 출전권을 따낸것. 클래식은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추가등록을 하려면 만만치 않은 금액인 200만엔을 추가 납부해야 한다. 그리고 애마가 드디어 클래식에 나갈수 있다는 생각에 환희한 키타지마는 과감하게 200만엔을 지르고 사츠키 상 출전을 결정했다.


그러나 봄철 클래식의 주인공은 키타산 블랙이 아니었다. 사츠키상(GI, 나카야마 잔디 2000m)에서는 키타무라가 기승 정지를 먹어 탈 수 없게 되자 하마나카 스구루를 대타로 태워 출전, 이전처럼 2번째 위치에서 진행에 4코너에서 직선으로 나올때 한순간 선두에 섰지만 



https://www.youtube.com/watch?v=URpEnjbJL48

4코너에서 드리프트 코너링을 하고도 직선에서 정신나간 추입을 선보인 듀라멘테가 사츠키상을 차지했다. 키타산 블랙은 리얼 스틸에게도 밀려 3착.


일본 더비에서는 다시 키타무라가 돌아와 다시금 2번째 위치에서 경마를 진행했지만, 1000m 58.8이라는 페이스가 문제였는지 직선에서 전혀 저항하지 못하고 침몰하며 14착으로 대패했고,



https://www.youtube.com/watch?v=RmkgUz1S4Yk

듀라멘테가 일본 더비 레코드를 갱신하며 2관마에 등극했다. 



이때만 해도 듀라멘테가 개선문상으로 가느냐, 삼관을 달성하러 킷카상으로 가느냐의 이야기가 흥했지만, 방목중 골절이 발견되면서 전치 6개월을 끊게 되었고, 삼관 중 마지막인 킷카상의 향방은 돌연 오리무중으로 빠졌고, 봄철에 물을 먹었던 클래식 유력 주자들은 킷카상을 향해 적극적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여름을 나고 복귀전을 세인트 라이트 기념(GII, 나카야마 잔디 2200m)으로 잡은 키타산 블랙의 상태는 생각보다 빠르게 올라오지 않았다. 체중이 더 불어 레이스 당일엔 532kg. 조교만으로 상태 회복이 안되어 우승을 노린다기보단 킷카상을 앞두고 실전 감각을 올린다는 마음으로 내보냈는데,



https://www.youtube.com/watch?v=c2ONvMae4m4

걱정과는 다르게 승리하며 결과를 내 주었다. 더불어 이 승리 후의 조교에선 상태가 일변, 대단한 향상을 보이면서 진영에서 '이번엔 진짜 해 볼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만들었다고.


하지만 세인트 라이트 기념 우승마가 킷카상을 제패하지 못한지 어언 30년. 당연히 주목은 관서 쪽 트라이얼인 고베 신문배 조에 더 쏠려 있었다. 그 중에서도 봄철부터의 경쟁상대인 리얼 스틸, 그리고 그 리얼 스틸을 깨버리고 고베 신문배를 차지한 리어 팔이 있었다. 2020년 현재진행형으로 전설을 찍는 번식암말 크리소프레이즈(대표자마 : 마리아라이트, 크리솔라이트, 크리소베릴)가 젠노 롭 로이와의 사이에서 낳은 말로, 더트에서 잔디로 전향한지 단 2경기만에 킷카상 유력 후보로 등극한 신데렐라였다.


그리하여 킷카상 당일 키타산 블랙의 단승 인기는 5번째. 세인트 라이트 기념에서 7착을 거둔 사토노 라젠보다도 떨어지는 순위였다. 이 저평가에는 외조부가 다름아닌 사쿠라 바쿠신 오라는 것도 한몫했다. 유전이 정말 잘되는 일본산 스프린터의 특성이 3000m에서 불안 요소가 될 것이라는 수군거림.


레이스는 펄롱타임 11초대와 13초 후반대를 왔다갔다하며 마군이 늘어났다 줄었다 출렁거리는 어려운 전개. 반대편 직선에서부터 기합이 들어간 리얼 스틸과 리어 팔과는 대조적으로 키타산 블랙은 키타무라의 지시대로 얌전히 위치를 고수하며 레이스를 진행했고, 그 차이가 결과를 좌우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XqdQzCfuAk

인에서 뻗어나와 리어 팔을 제끼고 선두를 잡고, 추격해오는 리얼 스틸을 목 차이로 제치고 승리. 클래식 제패의 영광을 안았다. 530kg으로 역대 최고 체중의 킷카상 우승 기록을 갱신한 것은 덤.



이때의 우승과 키타지마의 열창이 뉴스를 타면서 경마판 안팎에서 인지도가 급격히 늘었고, 이 해의 아리마 기념(GI, 나카야마 잔디 2500m)에 팬 투표 3위로 선출되었다. 키타무라가 낙마해 무릎을 다치면서 대타로 맞이한 기수는 요코야마 노리히로. 너구리 요코야마답게 키타산 블랙 커리어 처음으로 선두에서 도주하는 전개를 가져간다.



https://www.youtube.com/watch?v=DFpRiYVBhIs

은퇴전을 맞은 골드 쉽이 전성기때처럼 반대편 직선에서 감아올리며 관중들을 들뜨게 했던 이 레이스는 골드 액터의 승리. 전반 62.4초의 슬로우 페이스로 달리며 인코스 최단거리에서 버티기를 노렸던 키타산 블랙은 골드 액터와 사운즈 오브 어스에게 추월을 허용하며 3착. 아쉽지만 킷카상 우승이 우연은 아니라는 실력을 드러낸 결과였다.



3세 시즌을 마치고 4세시즌인 2016년. 복귀전은 오사카배(GII, 한신 잔디 2000m)였다. 중요한 건 이 경주부터 기수가 타케 유타카로 변경되었다는 것. 물론 키타무라 히로시가 장기 부상을 끊고 있었지만 이 개최 주간부터 복귀했다는 걸 감안하면 부상만이 이유는 아니었을 것이다. 키타무라의 기승을 중개하는 에이전트가 사석에서 키타산 블랙의 실력을 폄하하고, 그걸 전해들은 키타지마가 격노했다는 썰이 나돌았지만 썰은 어디까지나 썰. 뒷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개인 마주의 로망같은 존재인 타케 유타카에게 기승 의뢰가 갔고, 의뢰를 승낙한 타케 유타카는 이후 키타산 블랙의 은퇴까지 콤비를 유지하게 된다.




말년에 꿀 떨어지자 환희하는 타케 유타카 


타케 유타카는 요코야마가 가능성을 보여준 도주 전개를 바로 오사카배에서부터 써먹기 시작했다. 5번 인기의 저평가였지만 선두에서 61.1초의 슬로 페이스 전개로 이길 뻔 했지만 앰비셔스에게 목차이로 아깝게 졌다. 그러나 진짜 목표는 다음 차례인 천황상·春(GI, 교토 잔디 3200m).


장거리에 강하다는 인상 덕에 아리마 기념 우승마인 골드 액터의 뒤를 이은 인기 2위로 꼽힌 키타산 블랙은 1번 게이트의 이점을 활용해 아무런 방해 없이 선두에 서서 레이스를 끌고 갔다. 전반 1000m 61.8, 중반 1000m 61.7초의 배분 잘된 슬로 페이스. 완전히 자기 페이스로 가져갔고 직선에서도 버틸 힘이 있었는데, 거대한 키타산 블랙을 바람막이 삼아 달라붙어 기회를 노리고 있던 카렌 미로틱이 복병이었다. 골드 액터와 토호 자칼을 떨쳐낸건 좋았지만 카렌 미로틱이 튀어나오면서 일순간 키타산 블랙을 앞서는데 성공한 것. 



https://www.youtube.com/watch?v=8H1PaAYxACM

그러나 키타산 블랙의 근성이 발동했는지 재차 가속, 거의 비슷하게 골을 통과했고, 사진 판독 결과 4cm 차이로 키타산 블랙의 승리였다. GI 2승째.



이어진 레이스는 상반기 그랑프리인 타카라즈카 기념(GI, 한신 2200m). 작년 클래식 2관마 듀라멘테의 국내 복귀전이기도 했다. 두바이 시마 클래식에서 편자가 빠지는 불운에 포스트폰드에게 2착 패배한 듀라멘테는 3개월만의 복귀전에서 명예 회복을 노리고 있었고, 키타산 블랙 진영도 클래식 위너, 그리고 GI 2승마의 자존심을 걸고 리벤지를 노리고 있었다. 단승 인기는 듀라멘테 1.9배, 키타산 블랙 5배. 앰비셔스 9.1배 순.


3번 게이트에서 출발해 유유히 선두를 잡은건 똑같았지만, 이번엔 전반 59.1초라는 초중(稍重)마장임을 감안하면 빠른 페이스. 놀랍게도 직선에서도 걸음이 죽지 않으며 이대로 선두를 지켜내는가 싶었지만...



https://www.youtube.com/watch?v=AOaU-osZlug

골문의 바로 앞에서 리어 팔의 누나 마리아라이트와 듀라멘테에게 따라잡히면서 정말 아쉬운 3착을 기록한다. 그리고 듀라멘테는 경주 직후 좌전지 파행 진단이 나왔고, 곧이어 경주능력 상실이 발표되며 그대로 은퇴, 아쉽게도 키타산 블랙이 듀라멘테에게 복수할 기회는 영영 사라졌다.


(현장에서 최초로 본 GI 레이스였는데, 듀라멘테가 골을 통과하자마자 갑자기 자세가 순간 확 낮아지더니 곧 데무로가 하마해서 '이거 뭔일 났구만' 생각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여름을 난 뒤 돌아온 복귀전은 교토 대상전(GII, 교토 잔디 2400m). '사부쨩(키타지마의 애칭)의 말'이란 것 때문에 현역마중 일반인 대상의 인지도는 진작에 최고 수준이었지만, 놀랍게도 단승 인기 1위를 차지한건 커리어 14전째인 이번이 처음이었다. 작년 중거리 GI 2승에 빛난 러블리 데이, 사상 최강의 2승마이자 2착 전문가 사운즈 오브 어스를 제치고 1.8배라는 압도적 인기. 아마도 그것은 그동안 전개가 느슨한 덕을 본다, 게이트 운이 좋았다 등으로 알게 모르게 받던 저평가를 지난 타카라즈카에서 '졌지만 강한 경마를 했다'로 뒤집은 것이 컸으리라. 



https://www.youtube.com/watch?v=hkivQE8YXw8

그리고 그 첫 단승 1위에 보답하듯 보란듯이 승리를 거둔다. 도주뿐만이 아니라 예전처럼 선행으로도 상황에 따라 위치를 바꿀 수 있다는걸 보여준 것도 좋은 수확.


그리고 이어진 대망의 재팬 컵(GI, 도쿄 2400m). 단승 3.8배의 인기 1위. 그리고 도주마에게 가장 좋은 1번 게이트. 그리고 천황상때보다 느린 슬로우 도주. 중반을 기계적으로 12초 중반으로 쪼개는 페이스 배분, 그리고



https://www.youtube.com/watch?v=51YzfORD-Dw

키타산 블랙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완벽한 도주 승리였다. 같은 멤버로 10번을 다시해도 결과는 똑같을 거라고 하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 사운즈 오브 어스와 슈발 그랑의 추격은 2마신 반 차이로 닿지 않았다. 느리다 싶어서 먼저 경합을 시도한 원 앤드 온리는 직선에서 붕괴, 골드 액터와 리얼 스틸은 직선에서 추진력이 부족했다.


선행조에서 경합을 시도하면 시도한 쪽이 먼저 무너지고, 선입이나 추입을 하려니까 닿지 않는다. 뭐 어떻게 하란 얘긴가? 유럽처럼 팀플레이를 해서 하나를 버리는 패로 쓰지 않는 이상은 불가능한 공략 상대였고, 그래서였는지 이 다음의 아리마 기념에서 뒷말이 나오는 전개가 등장한다.



말티즈 아포지가 대도주를 해서 두번째 위치에 선 키타산 블랙이었지만, 선행형으로도 되는 말이었으니 여기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반대편 직선에서 3코너까지. 사토노 다이아몬드가 먼저 키타산 블랙의 후방에 한번 달라붙다가 떨어지더니, 바로 사토노 노블레스가 바톤 터치하듯이 이어서 밖에서 키타산 블랙을 넘어서려는 듯하는 모습을 보인 것. 타케 유타카는 경주후 인터뷰에서 '위치 선정은 예상대로였지만 사토노 노블레스에게 쪼여서 격동되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였다. 그게 암시하는건 한가지였다. 일본에서는 금지된 사토미 소유마들의 팀플레이.



https://www.youtube.com/watch?v=d2xubD37OIg


판단은 보는 사람의 몫. 당시에도 '노골적이다'라는 반응도 있었고 '지고서 변명 추해요 아재' 하는 반응도 있었고. 진담일지 추한 변명일지는 다음해의 퍼포먼스에 달렸다.


2017년. 5세의 키타산 블랙은 총 6전을 치르고, 그 6전은 모두 GI이었다. 일본에서 열리는 모든 중장거리 GI에 개근한 것. 90년대라면 당연한 행보지만, 이미 시대는 노던 팜 산하의 클럽법인이 지배하는 시대. 자사 훈련 시설에서 극한까지 폼을 끌어올려 트라이얼따위는 없이 바로 본 레이스에 투입하고, 그나마도 최대한 갈라먹기 위해 출전마들을 최대한 다른 레이스에 쪼개서 내보내는 시대. 누구는 두바이에, 누구는 홍콩에 보내놓고 그 외만 국내 GI에 내보내는 시대. 노골적인 비즈니스 행보에 진저리를 치는 매니아들 입장에선 스페셜 위크나 TM 오페라 오처럼 90년대 냄새를 풍기며 모든 왕도 GI에 개근하고, 릿토의 언덕길 코스를 하루에 세번씩 오르며 미호노 부르봉을 연상하게 하는 키타산 블랙을 좋아할 수 밖에 없었고, 일반인들도 그 '사부쨩의 말'이 일본에서 가장 잘 나가는 경주마라는 데 순수하게 환호했다. 그렇게 2017년의 일본 경마는 완전히 키타산 블랙을 중심축으로 돌아가게 된다. 덤으로 모든 경주에서 키타산 블랙의 단승 인기는 항상 1위였다.


초전은 이 해부터 GI으로 승격되는 오사카배였다. 승격 첫해라는 것도 있고 참전한 중거리마의 층위가 묘하게 얇은 인상도 있었지만 전년 더비마 마카히키, 전년 홍콩 바즈에서 하이랜드 릴을 격침시킨 사토노 크라운,  전년 오사카배(GII지만)에서 키타산 블랙을 잡았던 앰비셔스 등 어느정도 구색은 갖춘 상태였다. 


경주 흐름은 말티즈 아포지가 나온 경주가 그렇듯 그의 대도주. 그러나 1000m 통과 타임은 59.6초였고, 저 뒤 3번째에서 위치를 잡고 있던 키타산 블랙 기준으로는 평균 그 자체였다. 3코너에서부터 추격을 시작, 4코너를 탈출하기도 전에 선두에 섰고,



https://www.youtube.com/watch?v=3vnoiwfnxAA

그대로 스테파노스와 야마카츠 에이스의 추격을 흘려내며 GI으로서의 오사카배 초대 챔피언이 된다.


2차전은 천황상·春. 한신 대상전을 잡고 온 사토노 다이아몬드와의 양강 구도가 두드러진 가운데 치러진 레이스는 3200m라는 장거리를 감안했을때 지나치게 가혹한 흐름으로 흘러갔다. 야마카츠 라이덴의 1000m 58.3초의 정신나간 도주로 시작, 1400m 지점까지 펄롱타임 11초대를 계속 찍어대는 하이페이스. 5착인 알버트까지 2006년 딥 임팩트의 레이스 레코드를 깨는 이 레이스의 승자는



https://www.youtube.com/watch?v=GV80fNXE2ng

3분 12초 5. 종전 기록을 0.9초나 당긴 키타산 블랙의 승리였다. 초 하이페이스에서도 레이스 전체를 압도하는 힘. GI 5승째, 사상 4번째 천황상·春 연패.


국내 최강의 품격을 뽐내는 키타산 블랙을 향해 개선문상 도전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작년에 넘어져 경추를 다치고 몸이 불편한 키타지마가 비행기를 타고 보러 갈수 있겠냐는 얘기도 있었지만, 이미 키타산 블랙은 개인의 말이라기엔 존재감이 너무 커져 있었고, 진영은 타카라즈카 기념을 제패하고 프랑스 원정을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천황상의 가혹한 페이스는 상위 입상마들을 확실히 갉아먹었고, 키타산 블랙도 예외는 아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E0cgb4fRBs


위치도 전개도 평소였지만 직선에서는 이해할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9착으로 패퇴했다. 육체적인 부상은 없었고, 타케 유타카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런 것은 처음. 경마는 어렵네요'라는 애매한 답변뿐. 우승마는 오사카배 때는 키타산 블랙의 뒤만 봐야 했던 사토노 크라운이었다. 


이 경주 직후 키타산 블랙의 프랑스 원정 계획 취소가 발표되었고, 여름 방목에 들어갔다.



가을 시즌이 다가오자 키타산 블랙은 천황상·秋, 재팬 컵, 아리마 기념의 GI 3연전을 치르고 은퇴한다는 계획이 발표되었다. 첫 경주인 천황상·秋는 천황상·春과는 정반대의 방법으로 전설을 쓰게 된다. 


천황상 당일은 태풍 란이 열도를 직격한 지난주 킷카상과 마찬가지로 이번엔 태풍 사올라가 상륙하면서 비바람은 몰아치고 마장 상태는 논두렁 그 이하인 최악의 조건. 여기에 키타산 블랙은 스타트 직전에 게이트에 머리를 박으면서 커리어 내내 한번도 없었던 최악의 늦발을 하고 만다.



익숙한 도주나 선행은 불가능, 어쩔수 없이 후방에서 레이스를 시작하게 된 타케 유타카는 무리하게 선두에 끌어올리지 않고 정말 야금야금 위치를 올려간다. 관중들이 

'어, 언제 저기까지?'

라고 생각할 정도로 4코너에선 이미 4~5번째에 갖다 대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운명의 직선. 다른 말들이 진흙탕인 인코스를 피해 멀리 아웃으로 돌아나오는 가운데 타케 유타카는 홀로 최단거리인 인코스를 선택했고, 이것이 승부를 갈랐다. 키타산 블랙의 파워를 믿고 거리 단축에 승부를 걸었고, 긴 직선을 달리면서 점점 좋은 쪽의 마장을 찾아 바깥으로 비스듬히 나왔고, 추격해오는 사토노 크라운은 오른채찍을 맞으며 역으로 인으로 들어왔다. 



https://www.youtube.com/watch?v=gXhefaNFCxc

승부는 목 차이. 키타산 블랙의 승리였다. 사상 2번째 천황상 3승째. GI 6승째.

그리고 천황상·春역사상 가장 빠른 기록을 낸 말이 천황상·秋 역사상 가장 느린 기록(2분 8초 3)으로 우승했다는 진기록은 덤.


이 격전의 승리로 인해 안티들의 단골 멘트였던 '응~게이트빨~' '응~슬로우 선행빨~' 하는 소리는 일거에 씻겨나갔다. 봄철엔 고속 승부에서 완승. 그리고 가을엔 스타트 불리를 딛고 악천후를 뚫고 승리.



진흙과 비바람도 그의 웅자를 가리지는 못했다.


재팬 컵과 아리마 기념까지 모두 제패하면 JRA 최초로 잔디 GI 8승에 도전할 수 있었으나, 아쉽게도 재팬 컵에서는 편자가 빠지는 악재를 만나며 막판의 발이 무뎌졌고, 슈발 그랑과 2017년 더비 우승마 레이 데 오로에게 잡히면서 아쉬운 3착을 거뒀다.


그리고 은퇴전인 아리마 기념. 2번이라는 좋은 게이트 번호를 받은 키타산 블랙은 맨 앞에서 레이스를 이끌어 갔다. 전반 1000m는 61초 6이라는 도주의 황금 패턴. 거기에 작년 재팬 컵을 연상시키듯 슬로우 도주인데도 경합을 시도한 샤케트라와 야마카츠 에이스는 직선에서 침몰하고, 선입과 추입조는 미처 발이 닿지 못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B7kg35-A-4

퀸즈 링과 1마신 반 차이. 은퇴길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승리였다. 위닝 런에서는 관중들이 키타산을 외치며 오래간만에 말의 이름을 연호하는 풍경을 연출했다.


통산 20전 12승, GI 7승. 상금 18억 7864만 3000엔(TM 오페라 오를 제치고 당시 JRA 1위).

2016, 2017 2년 연속 JRA 연도 대표마 및 최우수 4세 이상 수말.



https://www.youtube.com/watch?v=smIUaGMq9ys

근 2년간 일본 경마계를 북돋은 공으로 아리마 기념 당일에 은퇴 세레모니가 화려하게 치러졌으며

이 자리에는 이전 주전이었던 키타무라도 참가. 오너인 키타지마 사부로는 키타산 블랙에게 헌정하는 신곡 엔카 '고마워 키타산 블랙'을 현장에서 발표했고, 단체로 핫피까지 차려입고 마츠리를 열창했다.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최고의 무대에서 개근하며 활약한 키타산 블랙은 이후 샤다이 스탤리온 스테이션에 씨수말로 들어가, 초년도 교배료 500만엔으로 시작, 2018년 130두, 2019년 110두, 2020년 92두와 교배하고 있다. 2021년 교배료는 수태 조건으로 300만엔. 2021년에 데뷔하는 첫 자마의 활약에 따라 이후 씨수말로의 판도가 결정될 예정이다. 


샤다이 스탤리온 스테이션 2018년 전시회에서의 키타산 블랙. 키타지마 사부로와 타케 유타카가 같이 참석했다. 


출처 : 우마무스메 캐릭터 소개 70 - 키타산 블랙(キタサンブラック) - 우마무스메 갤러리 (dcinsi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