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토센 조던에 이어서 갸루가 되어버렸지만 기본 고증 포인트는 일치한다. 흰 귀가리개, 청-황의 승부복 패턴.


애니에선 알아듣기 힘든 갸루 언어를 쓰는데, 이게 기수와의 의사소통 문제를 꺼낸 거라면 그건 그거대로 대단한 이야기다...





인기 1위로 팔리면 배당률을 읽은 것마냥 반드시 진다. 그뿐만 아니라 이 말이 고마가 된 이후로 출전한 중상에서는 인기 1위로 팔린 말이 단 한번도 승리한 적이 없다.


예시장에서 난장판을 벌이는 날은 정작 레이스에선 강하고, 예시장에서 얌전하면 거꾸로 레이스를 조진다.


질때는 입을 벌리고 씨익 쪼개면서직선에서 화려하게 침몰하는데 이길때는 도주나 강선행을 하다가도 거기서 재차 가속해 멋지게 승리한다.


셋중 하나만 해도 대단한데 셋을 다 하고 있던 강렬한 개성파.


이번에 소개할 말은 '레이스에 폭풍을 부르는 사나이', '배당률을/신문을 읽는 말'(인기말로 지목되면 절대 안 이기니까), '웃으며 달리는 말', '다이이치 루비를 사랑한 말', '바보 콤비' 등의 별명을 갖고 있는 다이타쿠 헬리오스다.




다이타쿠 헬리오스는 '다이타쿠'의 관명으로 알려진 나카무라 마사이치가 매입해 시미즈 목장에 예탁중이던 번식암말 네버 이치방의 여덟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비젠 니시키. 다름아닌 심볼리 루돌프의 무패 삼관 도전에서 최대의 적수였던 상대. 거리의 문제로 더비에서 패배하고 가을엔 마일 챔피언쉽을 노리다 전초전인 스완 스테이크스에서 부상, 경주마의 생명이 끊겼던 불운의 경주마이기도 하다.


어릴때의 다이타쿠 헬리오스는 마체의 인상으로는 정확히 평균, 다만 몸과 심폐 기능은 튼튼하고 부상이나 질병과는 연이 없었다고 한다. 거기에 성품도 사나움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매우 조용한 아이였다는 이후의 커리어를 생각하면 전혀 믿어지지 않는 증언이 뒤따라온다. 릿토의 우메다 야스오 마방에 들어왔을때도 조용하고 손 안타는 말이라는건 여전했다. 어디까지나 경마와 얽히지 않았을때 한정이었다는게 문제.


다른 유명한 경주마들과 달리 다이타쿠 헬리오스의 데뷔는 이래저래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메다 조교사는 연간 평균 10승대, 개업후 10년 넘게 중상 미승리의 지극히 평범한 실적을 내는 조교사였고, 데뷔 때 고삐를 잡은 키시 시게히코는 1988년부터 기수 생활을 시작한 2년차 햇병아리.


1989년 10월 7일, 교토에서 이뤄진 데뷔전, 3세(現 2세) 신마전은 우승마와 3마신차 3착.

2차전은 2주 뒤 똑같이 교토에서 3세 신마전에 나서 2착.

그런데 3차전은 그 바로 다음주, 또다시 교토 3세 신마전이었다.

당시 룰로는 같은 개최기간이면 이론상으로는 얼마든지 반복해서 신마전에 나갈수 있지만, 그걸 실제로 하는것은 별문제. 이런 짧은 출주기간을 봤을때 진영에서도 그렇게 대단한 유망주로 생각했던것 같지는 않다.


이런 하찮은 취급에 빡쳤던건지, 이 3번째 신마전에서 다이타쿠 헬리오스는 완전히 돌아버렸다. 기수가 고삐를 당기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무조건 전방으로 내달리는 대도주를 해버린것. 어떻게든 제어하려다 절망한 키시는 이젠 나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통제를 포기했는데...


이겼다. 그것도 마일 경주에서 1분 36초 3이라는 호성적으로. 선두에서 달렸는데도 마지막 4F 기록은 출전마중 가장 빨랐다.


키시 시게히코 입장에선 절대 자랑스러운 승리는 아니었지만 승리는 승리. 이렇게 이기고도 힘이 남아돌았는지 다시 2주만에 데일리 컵 3세 스테이크스(GII, 1400m)에 나갔지만 4착. 이어서 400만 이하 조건인 사잔카상에 나갔다 도주로 승리해 2승째를 거두자 이번엔 바로 다음주에 열리는 한신 3세 스테이크스(GI, 1600m)에 내보내기로 결정해 버린다. 키시는 같은 경주 저스트 어 하드에 기승 약속이 걸려 있어 대타로 의뢰한 기수는 다름아닌 타케 유타카였다. 그리고 이 조합은 예상보다 좋은 결과를 낳는다.






평소처럼 선두에서 끌고 나가다가 직선에서도 그대로 강행해서 이기나...싶었는데, 마지막의 마지막에 코가네 타이후우에게 따라잡히며 머리차로 2착에 입상한것. 석달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경주 여섯번을 치르는 막굴리는 로테이션 속에서도 거둔 성과에 우메다 조교사도, 제자인 키시 시게히코도 눈을 비비고 그를 다시 평가하게 되었다.


다만 이 경주에서 키시가 타지 못했던 것은 스승인 우메다의 배려가 낳은 얄궃은 결과였다. 성적이 좋지 않은 자기 문하에서만 말을 타면 젊은 키시의 앞날이 막힌다고 생각해, 다른 마방에서 의뢰가 올 경우 우선적으로 그쪽을 타도록 배려를 해 주고 있었던 것. 사잔카상에서 승리할때 고삐를 잡은 것도 키시가 아닌 타지마 요시야스였다.


객관적으로 봐도 키시 시게히코는 나이에 비하면 분명히 잘 타는 기수였다. 데뷔년차에 갑자기 36승. 2년차인 1989년에는 엘리자베스 여왕배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단승 인기 20위로 꼴찌였던 샌드 피어리스를 우승시키는 대파란의 주인공이 되는 등 분전해, 관서의 외자 성을 가진 신진 기수 3강으로 꼽힐 정도였다.(1기 위의 타케 유타카武 豊, 동기인 오카 준이치로岡 潤一郎, 그리고 키시 시게히코岸 滋彦). 다만 문제는, 우메다 마방의 주전인 키시와 다이타쿠 헬리오스는 이상할 정도로 뭔가 합이 맞지 않았다는것. 이 묘한 어긋남이 앞으로 이 말의 커리어를 좌우하게 된다.


클래식 시즌인 1990년. 신잔 기념, 키사라기상, 스프링 스테이크스라는 클래식 도전자에 걸맞는 로테이션을 짠 다이타쿠 헬리오스는 신잔 기념에서는 2착으로 건투하지만, 거리가 마일을 넘어선 키사라기상과 스프링 스테이크스에서는 6착과 11착으로 점점 성적이 나빠졌다. 이에 우메다 조교사는 클래식 도전을 과감히 포기하고 적정 거리로 보이는 마일 이하의 단거리 전선에 전력하기로 결심했고, 이 선택은 적중한다.






크리스탈 컵(GIII, 나카야마 잔디 1200m)에서 2번째 포지션에서 진행하다 직선에서 스퍼트, 심볼리 가루다의 추격을 뿌리치고 완승을 거두더니, 59kg의 탑 핸디를 받은 아오이 스테이크스(오픈, 잔디 1400m)에서도 2착으로 버티고는 1착마의 실격으로 승격 우승, 2연승. 뉴질랜드 트로피(GII, 도쿄 1600m)에서는 드디어 단승 인기 1위에 오르며 기대를 모았으나, 전반 1000m 57.1초의 하이페이스에 제대로 말리면서 2착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데뷔 9개월간 12전을 뛴 다이타쿠 헬리오스는 여기서 방목, 처음으로 긴 휴식을 취하며 피로를 털어낸다.


복귀전은 1990년 11월의 마일 챔피언쉽(GI, 교토 잔디1600m). 사잔카상때 한번 합을 맞춰 본 타지마가 대타로 탔지만 18두 중 17착으로 참패(여기서 압도적인 단승 인기 1위였던 뱀부 메모리는 우승하지 못하고 2착에 머문다). 엉망으로 패한 복귀전이었지만 시리우스 스테이크스(오픈) 4착에 이어진 스프린터즈 스테이크스(GI, 나카야마 잔디 1200m)는 뱀부 메모리가 우승하는 사이 고마들을 상대로도 5착으로 건투하면서 단거리 쪽에서 분명 경쟁력이 있음을 어느 정도 증명했다.



다이타쿠 헬리오스가 그 잠재력을 제대로 꺼내기 시작한 것은 고마가 된 1991년부터였다. 하지만 그 잠재력을 꺼내면서 또다른 문제가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키시가 타지 않을 때만 승리하는 다이타쿠 헬리오스'


요도 단거리 스테이크스(오픈)에서의 4착으로 시작한 1991년. 두번째 경주는 마일러즈 컵이었다. 본래 한신에서 잔디 1600m로 치러지는 GII였지만, 이 해엔 개수 공사로 츄쿄로 옮겨져 치러졌고, 잔디 1600m 시행이 불가능한 특성상 1700m로 치러졌는데,





단거리 적성이라 생각되던 다이타쿠 헬리오스가 4번째 위치에서 레이스를 진행하다 4코너를 돌며 시원한 인코스 찌르기로 완벽한 압승을 거둔 것. 이것으로 봄철의 최대 목표는 야스다 기념(GI, 도쿄 잔디 1600m)으로 결정되었으나...


...다만 이 승리는 기승정지중이었던 키시 대신 타케 유타카가 함께한 승리였다.


마일러즈 컵의 퍼포먼스 덕에 인기 1위로 팔린 더비 경 챌린지(GIII, 1200m)에서부터는 다시 키시가 탔지만 그때까지의 선행형 위치선정을 까먹었다는 듯 선두로 나섰다가 보기좋게 4착. 이어진 케이오배 스프링 컵(GII, 도쿄 잔디 1400m)은 어떤 의미로는 도주만 아니었을뿐 그보다 더했다. 선행조 넷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전반 800m를 45.9초로 끊는 하이 페이스 속에서도 그것도 느리다는듯 앞으로 가려다 그걸 잡으려는 키시의 제어에 저항해 고개는 쳐들고 입은 벌린채로 헛심을 쓰다가 직선에서 발이 무뎌지며 6착. 단승 인기 1위였던 뱀부 메모리는 우승하지 못하고 4착. 우승마는


일본에서도 유명한 모계, 화려한 일족華麗なる一族의 계승자 다이이치 루비. 이 둘의 운명적인 첫만남은 여기가 시작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야스다 기념. 스프링 컵에서 패배했지만 GI 2승의 실적과 대무대의 경험을 높이 사서 뱀부 메모리가 압도적인 단승 인기 1위, 다이이치 루비가 2위. 그에 비하면 다이타쿠 헬리오스는 겨우 10위로 연초의 좋은 평가를 다 까먹고 있는 상태였지만 레이스가 시작되자 키시는 파트너의 반응에 놀라 자빠질 뻔 했다. 키시가 탄 이래 처음으로 흥분하지 않고 정확하게 제어에 응하고 있었던 것.


전반 800미터 45.8초의 하이페이스에서 선두권의 몰락은 필연. 심볼리 가루다, 유키노 선라이즈 등이 일제히 직선에서 침몰하는 가운데 5번째 포지션을 잡고 있던 다이타쿠 헬리오스가 맹렬히 달려나갔다. 그러나 불행히도, 파트너의 좋은 반응에 놀란 나머지 키시는 이날 레이스의 페이스가 스프링컵과 흡사한 하이페이스라는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적정 타이밍보다 아주 조금, 조금 빠르게 스퍼트를 걸었고, 그것이 화근이 되어 틈을 노리고 있던 추입조가 맹렬히 쫓아왔다. 다이이치 루비와 뱀부 메모리.






다이이치 루비에 앞을 내주고, 뱀부 메모리의 추격은 아슬아슬하게 떨쳐내며 2착. (이번에도 단승 인기 1위였던 뱀부 메모리는 우승하지 못했다). 정말로 아쉬운 결과지만, 다른 기수가 탔을때 앞으로 끌지 않고 위치를 제대로 잡았을때 보여주던 퍼포먼스는 우연이 아니었음을 키시 스스로도 확인했다.


'흥분하지만 않으면 GI에서도 통한다!'


하는 확신을 갖자마자 그 확신이 무색하게 CBC상(GII, 츄쿄 잔디 1200m)에서 이번엔 불량마장 속에서 달릴 마음을 전혀 내지 않으며 5착 패퇴. 키시의 주름살은 펴질 날이 없었다.



그리고 이어진 타카마츠노미야배(GII, 츄쿄 잔디 2000m). 그동안의 전적을 봤을 때 헬리오스에게는 좀 길다 싶은 거리도 있고 해서 8두 중 겨우 5번째 인기. 이 레이스의 주연은 어디까지나 타카마츠노미야배 모계 3대 제패(이토-하기노 탑 레이디)가 걸린 다이이치 루비였다. 출전 멤버의 면면을 봤을 때 3대 제패의 위업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여서 단승 배율 1.4배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 준비된 잔칫상을 엎은 것이 다름아닌 다이타쿠 헬리오스였다. 2번째 위치에서 달리다 3~4코너 사이에에서 일찌감치 선두로 부상, 뒤이어 시동을 건 다이이치 루비의 맹추격을 코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물리치고 야스다 기념의 패배를 되갚은것.


그리고 이 승리에도 키시는 전혀 기뻐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도 키시는 토와 루비에 타느라 다이타쿠 헬리오스는 대타로 온 노장 카요 타다시가 몰았기 때문이었다. 좀 이르다 싶어도 말의 반응이 있다면 그대로 가는게 좋다는 판단으로 흐름에 맡긴게 오히려 나은 결과를 부른 것. 키시가 탄 토와 루비는 7착으로 침몰했으니 이 대조적인 결과에 더욱 비참한 기분이었다.


22전 중

키시 기승 16전 3승. GIII 1승. GI 2착 1회. 승률0.187

그 외 기승 6전 3승(1승은 승격 우승). GII 2승. GI 2착 1회. 승률 0.500


애마의 승리에 환호하던 우메다 조교사도 애제자의 고뇌를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키시를 불러 선고한다.


"앞으로 헬리오스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태운다. 다른 사람이 탈 일은 없다"


사람좋게 다른 조교사 말에 타라며 언제든지 보내주던 스승의 한마디가 키시의 미혹을 떨쳐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가 타서 성적을 낸다!'


이제 머릿속에는 그 목표 하나뿐이었다.






3개월의 휴양 후 맞이한 복귀전은 마이니치 왕관(GII, 도쿄 잔디 1800m). 1990 타카라즈카 기념 우승마 오사이치 조지라던가, 프렉크라스니, 메지로 마시아스 같은 중거리의 강호가 모여 있던 이 경주에서 다이타쿠 헬리오스의 단승 인기는 다섯번째에 그쳤지만, 선두에 서서 하이페이스로 전개한 끝에 프렉크라스니에게 반마신 차이로 제껴지면서 2착에 입상했다. 천황상·秋의 참전을 염두에 두었으나 출전등록을 까먹는 실수로 목표를 마일 챔피언쉽으로 수정, 전초전인 스완 스테이크스(GII, 교토 1400m)에 나섰으나 이번에도 네오 플라자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선두 싸움을 하다 오버페이스, 직선에서 그대로 무너지며 9착을 기록한다(재회한 다이이치 루비는 단승 인기 1위의 기대를 배신하고 목차이 2착). 표면적으로는 휴양 전과 전혀 바뀐게 없는 모습이었다. 꽤 잘 싸울때도 있는데, 막상 돈을 걸라고 하면 불안감에 차마 걸지 못하게 되는 갬블러들의 골칫거리.



우메다와 키시 두 사제의 고민거리는 어떻게 하면 초반에 힘을 빼지 않고 원활하게 레이스를 끌고 가는가였다. 천성이 진지함 그 자체라 다른 말이 자기 앞에 있는 걸 못 봐주고, 선두에 서면 노빠꾸로 페이스를 올리려 드는 습성의 다이타쿠 헬리오스. 오버페이스로 달리면 후반에 퍼지는 건 필연이라 잡아 줘야 되는데, 고삐를 당기기만 하면 재갈 물기를 거부하고 입을 한껏 벌리고 달린다. 사정 모르는 관객들 입장에서는 이빨을 훤히 드러내고 달리는 모습을 보고 '웃으며 달리는 말'이라는 별명까지 얹어 줬지만, 실은 기수의 제어를 거부하는 악벽일 뿐. 오카베 유키오나 시바타 마사토 같은 관동의 베테랑들조차도


"스피드는 대단하다. 입만 안벌리면 완벽한데..."라고 할 정도.


대충 이렇게. 이빨까지 훤히 드러내는 만개 스마일로 보이지만, 이게 보였다는 건 그날 경주는 이미 조졌다는 소리.


이대로 놔두면 마일 챔피언쉽에서도 패배는 뻔한 일. 당장 쓸 수 있는 대책은 코굴레로 입을 못 벌리게 조이는 것 정도였다. 남은건 실전에서의 대응.



마일 챔피언쉽 당일의 인기는 스완 S에서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다이이치 루비가 압도적인 단승 인기 1위(1.8배)에 스완 S를 이긴 케이에스 미라클이 4.3배, 그 외는 모두 10배 이상이라는 쏠림현상. 다이타쿠 헬리오스는 단승 배율 11.8배로 명백히 퇴조를 보이는 뱀부 메모리보다도 처지는 인기 4위였다. 레이스가 시작되자 코굴레의 힘으로 입은 크게 벌리지 못하는 다이타쿠 헬리오스였지만, 입 벌리던 힘까지 끌어넣었는지 어마어마한 힘으로 고삐를 앞으로 끌기 시작했다. 전력을 다해서 고삐를 잡고 3번째의 위치에서 경마를 하던 키시였지만, 전반 800m 48초의 느슨한 페이스에서 언제까지나 참아 줄리가 없는 헬리오스. 3코너에 접어드는 시점에서 키시는 선택을 강요받았다. 빨라도 너무 빠른 시점이지만 여기서 승부를 걸어야 하는가? 후반에 퍼질 수도 있지만 더 이상 잡으면 헬리오스의 투지를 꺼뜨릴 수도 있다...키시의 선택은 거는 쪽이었다.


'천천히 올라가고, 천천히 내려가야' 한다는 교토의 3-4코너에서 이미 가속을 붙인 다이타쿠 헬리오스는 기대 이상으로 무시무시한 반응을 보였다. 단숨에 전방의 둘을 제치고 선두에 서더니, 4코너를 벗어나자마자 후속 마군과 단숨에 5마신 차이를 내며 앞으로 뻗어나갔다. 직선에 들어서서야 가속을 붙이기 시작한 다이이치 루비와 케이에스 미라클은 일순 허를 찔렸고,







결과는 2마신 반차의 완승. 골을 통과하며 키시는 순간적으로 과격한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그동안 속으로 쌓아두던 아쉬움과 굴욕을 일순에 떨쳐 버리는 승리.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기복이 심한 말이 유독 다이이치 루비와 붙을때는 멀쩡하게 강한 경주를 펼친다는(우승 2회, 2착 1회) 것 때문에 '헬리오스는 루비를 의식할때 진심을 내는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살이 붙어 퍼졌고 결국 요시다 미호가 우마나리 1펄롱 시어터에서 아예 둘의 연애 얘기를 그리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

https://news.netkeiba.com/?pid=column_view&cid=46460


(주연 헬리오스, 루비. 조연은 둘이 뛰는 레이스에 항상 한다리 끼고 있던 뱀부 메모리)


여기서 최우수 단거리마를 두고 다이이치 루비와 결착을 내려면 똑같이 스프린터즈 스테이크스(GI, 나카야마 잔디 1200m)로 가야 했지만, 다이타쿠 헬리오스는 일본 경마 최대의 축제 아리마 기념(GI, 나카야마 잔디 2500m)을 택하는 도전에 나섰다. 스프린터즈 스테이크스는 다이이치 루비가 보기좋게 승리하며 1991년 JRA 최우수 단거리마 수상을 확정지었지만, 다이타쿠 헬리오스도 트윈 터보가 만든 하이페이스에서 나름 버텨내며 5착으로 건투했다(덤으로 단승 인기 1위였던 메지로 맥퀸은 다이유우사쿠에게 덜미를 잡힌다).



그리고 1992년. 공사가 끝나 원래대로 한신 1600m로 치러지는 마일러즈 컵에 출전, 2연패를 노리는 다이타쿠 헬리오스는 탑 핸디캡인 60kg의 부담중량을 달고 출전, 다시금 다이이치 루비와 대전한다.




완벽한 포지션 선정 후 직선에서의 부스터. 신 호리스키와 5마신 차이가 나는 압승을 거두었다. 단승 인기 1위였던 다이이치 루비는 의외로 뻗지 못하면서 6착.


출발이 좋았던 다이타쿠 헬리오스는 이후 불완전 연소같은 봄 시즌을 보낸다. 케이오배 스프링 컵에서 4착. 본편인 야스다 기념은 야마닌 제퍼가 약진하는 가운데 6착. 그러나 헬리오스는 양반이라는 듯 루비의 퇴조는 더욱 더 심각했다. 헬리오스와 똑같은 로테이션을 달렸지만 케이오배 스프링 컵에서 5착, 야스다 기념은 15착. 전년과는 완전히 다른 말이 되어 버린 다이이치 루비는 야스다 기념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고, 라이벌(혹은 연인)을 떠나보낸 다이타쿠 헬리오스는 홀로 남아 타카라즈카 기념에도 참전했지만 선두와 12마신차의 5착으로 볼썽사나운 패배를 기록한 뒤, 방목에 들어가 1992년의 하반기를 준비했다.



복귀전인 마이니치 왕관은 레이스 전부터 여러모로 화려했다. 조교때는 초반에 폭주, 골을 한참 남겨두고 이미 푹 퍼지는 패턴을 반복하더니, 마이니치 왕관 당일 예시장에서는 역대급으로 날뛰지를 않나, 기어이 주로에 입장할때 안장위의 키시를 내던져버리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다행히 인마에 이상은 없어 그대로 출주는 했지만, 출전마 중 가장 실적이 좋은 말인 다이타쿠 헬리오스가 단승 인기 4번째에 그친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스타트부터 선두로 내달리는 모습을 보며 관객들이 예상대로 망했다고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도주하는 패턴이 많긴 했지만 그 결과는 항상 웃는 얼굴로 직선에서 침몰하는 패턴이고, 승리할 때는 어떻게든 3~4번째에서 위치를 고수하다가 빠른 타이밍에 승부를 거는게 패턴이었으니까.






그러나 이날은 직전까지의 거친 모습이 그대로 경주에서의 투지로 연결된 듯한 모습이었다. 노도와 같이 도주하면서도 끝까지 발걸음이 죽지 않은 채로(마지막 3F 11.9-11.5-12.0) 이쿠노 딕터스와 나이스 네이처의 추격을 물리치고 우승. 우승 타임은 1분 45초 6으로 사쿠라 유타카 오의 기록을 0.6초나 당기는 일본 레코드였다.


우메다와 키시는 이 놀라운 퍼포먼스에 헬리오스의 전성기는 작년이 아닌 바로 지금이라고 확신했고, 이어서 치를 천황상·秋에서도 200m의 거리 증가분을 감안해도 이 패턴으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봤다. 정신적으로도 성장한 다이타쿠 헬리오스라면 선두에서 도주해도 페이스를 잃고 폭주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이 철저하게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천황상에는 맨 앞에 서지 않으면 레이스를 할 수 없는 말이 또 한마리 있었다.


바로 1992년 타카라즈카 기념 우승마 메지로 파머. 헬리오스가 두고두고 뒤에 이름을 남기게 만든 또다른 운명의 상대였다.


출발과 함께 선두로 나서려던 다이타쿠 헬리오스와 키시 앞에 메지로 파머와 후지타 신지가 맞불을 놓은 것. 질 생각이 없는 양자의 경합은 파멸적인 도주 경쟁. 1000m 타임은 57.5초. 마이니치 왕관 때보다도 0.9초나 빠른 초가 몇겹은 붙을 하이페이스. 둘의 경쟁에서 먼저 나가떨어진건 메지로 파머였지만, 다이타쿠 헬리오스도 이미 연료가 고갈됐고, 직선에 접어들자 둘에게 격동되어 쫓아온 토우카이 테이오에게 순식간에 제껴졌다. 물론 테이오도 상정 이상의 오버페이스라 이후 마군 속으로 침몰, 천황상을 차지한 건 후방에서 대기하다 어부지리를 거둔 렛츠 고 타킨이었다.



I


GI 실적이 있는 두 마리가 사이좋게 자폭하며 단승 인기 1위였던 테이오까지 물귀신으로 데려간 덕에 '테이오를 방해하러 온 바보 콤비'의 오명을 쓰게 되는 어떤 의미로는 전설이 된 레이스였다.


다음 로테이션은 연패를 노리는 마일 챔피언쉽. 이번에는 메지로 파머가 없다. 하지만 천황상에서의 폭주가 관객들의 우려를 자아냈는지, 단승 인기는 중상 3승 포함 4연승으로 달려온 젊은 암말 신코 러블리에게 뒤쳐진 2위였다. 스타트부터 이쿠노 딕터스가 선두에 나서는 묘한 분위기로 시작했지만 상태가 좋을 때의 다이타쿠 헬리오스는 전개를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흐름에 맡기다 말의 투지가 임계점에 오면 억누르지 않고 그때부터 스퍼트를 거는 것. 그 시점이 얼마나 빠른가는 상관없다. 작년처럼 3코너를 돌아 내리막에서 발동이 걸린 다이타쿠 헬리오스는 거칠 것이 없었다.





작년의 리플레이가 아닌가 싶은 직선. 쫓아오는 상대가 다이이치 루비가 아니라 신코 러블리라는 것만이 다른 점이었다.

다이타쿠 헬리오스 마일 챔피언쉽 연패. 타임은 1분 33초 3으로 15년만에 레코드 갱신.


연내 은퇴를 표명하고 있던 다이타쿠 헬리오스의 마지막 경주는 스프린터즈 스테이크스일까, 아리마 기념일까. 1주 간격으로 열리는 두 경주에 모두 나갈 수는 없으니 이 중 하나를 고르겠지...하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었지만, 충격적이게도


'둘 다 뛴다'


는 발표가 나왔다. 당시 병상에 있던 마주 나카무라 씨가 'TV로 헬리오스를 보고 싶다'는 의사 표명을 해 그에 부응하기로 한것. 결과는 스프린터즈 S에서는 니시노 플라워에게 지면서 4착. 아리마 기념에서는 메지로 파머와 재회, 재차 미쳐버린 도주 경쟁을 벌이다 이번엔 먼저 나가떨어지면서 멋지게 12착 참패. 이 2연패를 끝으로 예정대로 은퇴한다. 마지막까지 그답다면 그다운 엔딩.


통산 35전 10승, 중상 7승, GI 2승. 호성적임에도 굉장히 다루기 어렵고 기복이 심한 말이라 조교사에게는 '끝까지 알수 없었던 말', 기수에게는 '솔직히 은퇴해서 안심'이라는 농반 진반의 소감을 들었던 다이타쿠 헬리오스는 총 2억 4천만엔의 신디케이트가 구성되어 히다카 경종마 농협 몬베츠 종마장에서 씨수말 생활을 시작한다. 레이스에 폭풍을 불러오던 현역 때의 명성이 워낙 대단해 담당 스태프가 대단히 쫄아 있었지만, 레이스라는 상황만 아니면 놀라울 정도로 내성적이고 조용한 말이라 오히려 맥이 풀렸다는 후문. 언젠가는 누워서 꼼짝않고 있길래 '돌연사했나?'하고 기겁해서 갔더니 누운채로 풀을 질겅질겅하고 있었다는 일화도.


다만 이 씨수말 생활도 순조로운 시작을 한 것은 아니라, 도통 암말에 관심이 보이지 않는 통에 '다이이치 루비가 아니면 관심이 없는 걸까?'하는 가십이 돌았지만, 11일이 지난 후에 겨우 종마 검정에 합격, 씨수말로 활동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좋은 혈통답게 토니 빈, 선데이 사일런스, 브라이언즈 타임같은 당대 일류들과만 교배하던 다이이치 루비와 맺어질 기회는 절대 오지 않았지만...


국내산 씨수말치고는 그럭저럭 견실한 성적을 냈지만, 견실을 넘어 특출한 성과를 내지 않으면 롱런이 불가능한 것이 이 바닥의 생리. 점차 교배수가 줄더니 8년차인 2000년에는 겨우 6마리만 교배하는 신세였다. 그러나 이 2000년에 헬리오스의 아들이 아버지의 대를 이어 경마계에 폭풍을 불러온다.


2000년 스프린터즈 스테이크스에는 국제 GI 2승의 아그네스 월드, 2연패를 노리는 블랙 호크, 춘추 스프린트 제패를 노리는 킹 헤일로 등 유수한 단거리 강자가 즐비했는데, 정작 이 경주에서 우승한 것은





단승 인기 꼴찌, 257.5배였던 다이타쿠 야마토였다. 4코너에서 일찌감치 선두에 서서 그대로 강행 승리. 아버지 다이타쿠 헬리오스를 연상케 하는 레이스로 역대급 파란을 일으킨 것.



이후 2008년에 씨수말을 은퇴한 다이타쿠 헬리오스는 말년에 씨수말 생활을 하던 아오모리현 야마우치 목장에서 그대로 공로마로 지내기로 결정했지만, 그해 12월에 사망했다. 향년 21세.


말년의 다이타쿠 헬리오스


출처 : 우마무스메 캐릭터 소개 71 - 다이타쿠 헬리오스(ダイタクヘリオス) - 우마무스메 갤러리 (dcinsi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