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의 앞발과 뒷발이 모두 하얗기 때문에 손발이 모두 짝짝이 컬러링. 그 외에는 메지로 목장의 승부복 패턴을 따르고 있다. 


명문 메지로 목장의 1987년생은 GI마를 셋이나 배출하는 풍성한 아웃풋이었다.


이 셋중 제일 성골이라면 단연 메지로 라이언이다. 메지로 목장에서 나고 자라 테루미츠輝光란 아명을 받고 1990년 클래식에서 목장의 퍼스트로 푸쉬를 받았지만


사츠키상 3착, 더비 2착, 킷카상 3착의 아쉬운 석패를 거듭하고, 아리마 기념에서는 맥퀸을 빼면서까지 우승을 노리게 했지만 오구리 캡을 잡지 못하며 2착. 결국 이듬해 타카라즈카 기념에 이르러서야 겨우 GI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메지로 목장 승부복의 라이언. 소매가 청록-백의 세로줄무늬)


가장 화려한 기록을 낸 메지로 맥퀸은 진골. 메지로 목장 본가가 아닌 요시다 타카시 목장에 예탁되어 있던 메지로 오로라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메지로 목장에서 87년생들에게 지어주던 테루輝가 붙은 돌림자 아명도 받지 못했고, 마주 명의도 메지로 목장이 아닌 메지로 상사였다.



(메지로 상사 승부복의 맥퀸. 소매는 청록 단색)




그리고 3강 중 마지막. 라이언과 마찬가지로 메지로 목장 본가 출신이지만 취급은 저 둘에 비하면 6두품 이하였던 경주마가 이번에 소개할 메지로 파머다.





'미국의 유명인물'을 테마로 이름지어진 메지로의 1987년생 중 원래 제일 유망주 첫손으로 꼽히던 말은 칼 루이스의 이름을 받은 메지로 루이스였다.

다만 이 친구는 육성중에 사고로 허리를 다쳐 나가리가 되고, 그 다음으로 꼽히던 말이 바로 테루미츠...이후에 놀란 라이언의 이름을 받아 메지로 라이언으로 불리게 되는 말, 그리고 오로라의 62(=쇼와 62년생)로만 불리다가 이후 스티브 맥퀸의 이름을 받아 메지로 맥퀸으로 불리게 되는 말, 이 둘이 유망주 2,3위를 다투고 있었다.


그 외에도 메지로 목장에서 태어나 테루미네輝峰란 아명으로 불렸으며, 이후에 아놀드 파머의 이름을 받아 메지로 파머로 불리게 되는 말은...그렇게 눈에 띄는 말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현역시절 4전 1승으로 400만 이하조차 뚫지 못한 메지로 판타지. 아버지는 교토 신문배를 제패했지만 8대경주(그레이드제 도입 이전의 클래식 5경주, 춘추 천황상, 아리마 기념)와는 인연이 없던 도주마 메지로 이글. 메지로 순혈이라면 순혈이지만 천황상마 메지로 티탄의 아들인 맥퀸이나 천황상/아리마 기념을 따낸 앰버 샤다이의 아들인 라이언에 비하면 매우 수수해 보이는 혈통이었다. 혈통뿐 아니라 겉보기로도 유년기엔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고, 심지어 데뷔 후에도 그랬다.


구 3세(현 2세) 8월에 오오쿠보 마사아키 조교사에게 맡겨진 메지로 파머는 하코다테에서 시바타 마사토를 태워 신마전을 치르고 2착을 기록한다. 2주 뒤 다시 신마전에 나서서 또 2착, 또 2주 뒤에 기수를 타모기 히로마사로 바꾸고서야 겨우 미승리 딱지를 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2주만에 오픈 경주인 코스모스상(하코다테 잔디 1700m)에 나서서 연승, 오픈 등급으로 올라갔는데...이후 그의 성장 곡선을 봤을 때는 오히려 이렇게 이르게 오픈으로 올라간게 독이었다. 너무 이르게 강한 상대들과 마주친 결과 이어진 오픈 두경주에서 9착과 8착으로 완패해 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왼쪽 뒷다리에 골절이 발견되면서 장기 휴양을 끊게 된 것은 덤.


골절의 상처가 아물고 복귀한 시점은 1990년 6월. 그 시점에서 메지로 라이언은 사츠키상과 더비를 연달아 아쉽게 놓치고 가을의 킷카상을 기약하고 있었지만, 그런 이야기는 준오픈따리로 강등된 파머와는 별세계의 이야기. 기본적으로 목이 높은 주법에다가 툭하면 기수의 제어를 무시하고 앞으로 끄는 버릇(=掛かり. 게임에서 자주 보는 그 디버프)까지 생겨 버린 메지로 파머는 좀처럼 승리를 추가하지 못하고 패배 전적을 착실하게 쌓아가고 있었다. 복귀 후 5전을 치르고는 또 골절되면서 다시 장기 휴양.


2차 복귀는 1991년 3월. 복귀전에서도 12착 대패를 하자 진영에서는 '평지에서는 가망이 없는 것 같다'면서 장애물 경마로 전향을 고려, 점프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수득상금이 깎여나가자 등급도 계속 강등, 500만 이하 클래스까지 내려가 있던 1991년 4월 28일. 오오쿠보 조교사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500만따리인 파머를 천황상·春(GI, 교토 잔디 3200m)에 내보냈고,






평소처럼 앞으로 끌면서 도주하다 당연히 장렬하게 침몰했다.

동기인 맥퀸은 이 경주에서 우승하며 3대 천황상 제패라는 위업을 달성하고 있었고, 누구도 파머를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라이언도 4착에 그친 판에 13착인 파머에게 눈길을 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이 천상계의 레이스를 경험한 것이 파머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이후 삿포로에서 상승세를 달린다. 500만 이하 조건전이지만 2착에 들어오며 간만에 마권 안에 들어오더니, 2주 뒤 다시 출전해 12연패의 사슬을 끊고 1년 9개월만에 첫 승리를 거둔다. 내친김에 핸디캡 중상인 삿포로 기념(GIII, 삿포로 잔디 2000m)에 격상 출전한다. 최고 부담중량보다 6.5kg나 가벼운 51kg의 부담중량을 달고 출전,







머리만 까딱까딱하는 듯한 높은 자세로 용케 달리면서 승리를 거두고 첫 중상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렇게 해서 커리어에 순풍을 타냐 하면



전혀 아니었다. 이후의 3전을 6-5-7착으로 다시 범주한것. 그중 세번째인 교토 대상전에서는 우승마 메지로 맥퀸과 무려 20마신 가까이 차이가 나는 압도적인 패배. 앞으로 끄는 버릇을 여전히 못 고치고 제어에 어려움을 겪자, 이번엔 정말로 장애물 경마로 전향시킨다.






(메지로 파머의 장애물 경주 데뷔전. 말딸 고증글 쓰면서 장애물 경주 링크하는건 이번이 처음이다)


데뷔전에서 6마신차 승리를 거두며 이대로 장애물에서 활로를 찾을 것 같았던 메지로 파머. 그러나 2전째에서 2착으로 입상한 뒤 돌연 평지로 돌아오는 결정이 내려진다.


오오쿠보 조교사가 회상하기로 경주를 마치고 돌아온 메지로 파머의 다리에 허연 것이 보였다고 한다. 알고 보니 장애물에 칠해놓은 흰 페인트가 묻었던 것.



장애물을 이렇게 낮게 넘고 있었으니 다리를 부딪히는것은 필연, 거기에 착지 후의 자세도 불안정하다.



'이대로 가다간 어쨌든 중상까지 이겼던 말을 송장 치우는 수가 생긴다'


그렇게 고작 장애물에서 2전을 뛰고 평지 경주로 돌아온 메지로 파머. 평지에서 가망이 없다고 장애물로 보냈는데, 거기서도 위험해서 빠꾸를 맞은 이 말, 과연 무슨 가망이 있을까 싶었는데...놀랍게도 여기서부터 파머는 달라진다.


점프 연습을 하면서 후구(엉덩이부터 뒷다리까지)의 근육이 강화되고 마체 전체의 볼륨이 달라진데다가, 장애물 경주의 특성상 질주하다 장애물 앞에서는 감속하고 점프를 대비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노빠꾸로 달리기만 하던 메지로 파머가 완급의 개념을 깨달은 것.


거기다 평지 복귀 후 2전째인 1992 천황상·春에서부터 운명의 파트너를 만나면서 마생의 전환점이 찾아온다. 바로 새로운 주전 기수 야마다 타이세이. 당시 21세의 4년차 기수. 커리어 내내 연간 25승을 넘은 적이 한번도 없는 기수였지만, 메지로 파머에게는 볼트와 너트처럼 정확하게 맞물리는 상대였다. 끄는 버릇으로는 더한 말을 몰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파머 정도는 '생각보다는 덜 끄는데?' 하고 넘길 정도였고, 고삐는 거의 허벅지에 놓을 정도로 길게 늘여잡는 대신 자신의 하체 힘으로 경주마를 통제 하는 독특한 테크닉을 갖고 있었는데, 이게 기가막히게 파머에게 맞는 방법이었다.


콤비를 이루고 처음 나선 경주는 다름아닌 TM 대결의 천황상. 여기서 메지로 파머는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하며 도주하고 7착. 1펄롱 랩타임이 11초대와 13초대를 왔다갔다하는 이 터프한 레이스에서 줄곧 앞에서 도주하고도 7착이라도 했다는 것부터가 이미 장애물 낙제따리의 힘은 아니었고, 야마다도 이 경주에서 졌지만 감을 잡았다고 회고한다. 감 잡았음을 입증하듯이 54kg이라는 가벼운 부담중량으로 나선 니가타 대상전을 4마신차로 도주 승리, 확연히 달라졌음을 알렸다.


그리고 다음 경주는 타카라즈카 기념(GI, 한신 잔디 2200m). 원래는 TM 대결 2차전이 벌어질 경주였지만 테이오는 경주 직후 골절, 맥퀸은 타카라즈카 기념을 앞두고 골절되면서 나란히 전선을 이탈, 상위 2강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맥빠지는 상황이었다. 맥퀸을 믿고 있던 키타노 미야 여사는 엄청나게 실망했는지 목장 스태프들의 단체 응원 투어를 취소, 경주 당일 메지로의 관계자는 단 한명, 메지로 상사 사장 키타노 토시오만이 한신 경마장에 나가 있었다.


메지로 파머의 단승 인기는 당일 13마리중 9번째. 오히려 이 인기 낮음은 파머와 야마다에게 도움이 되었다. 인기 높은 도주마라면 마크나 경합이 붙으면서 페이스를 망치기 쉽지만, 인기낮은 노마크의 도주라면 그럴 걱정은 상대적으로 덜했기 때문. 야마다가 신경 쓰는건 얼마나 기분좋게 달리게 하는가, 그리고


게이트가 열리기도 전에 문짝에 대가리를 들이박는 버릇이 있는 파머를 막기 위해 출발 직전까지 파머의 고개를 옆으로 돌려놓는 일이었다. 게이트가 열리는 순간, 야마다는 정확한 타이밍으로 파머의 고개를 똑바로 잡았고, 파머는 헤딩하지 않고 안전하게 전속력으로 튀어나갈 수 있었다.


레이스 초반을 이끌고 나간건 당연히 메지로 파머, 그리고 여기서 처음 마주친 영혼의 짝 다이타쿠 헬리오스였다. 둘이 사이좋게 도주하며 하이페이스로 끌고 나갔지만 인기 1위 카미노 크레세를 비롯한 후발 주자들은 저 둘의 악명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레이스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헬리오스는 4코너에서 퍼졌지만 파머는 다리가 죽지 않았다. 그대로 직선에서 한번 더 뻗으며 그대로 강행, 모두의 예상을 깨고 우승한 것. 메지로 파머에게도, 야마다에게도 첫 GI 타이틀이었다.

...다만 메지로 관계자는 딱 한명만 온 탓에, GI 기념 촬영치고는 너무나도 단촐한 사진이 역사에 남게 되었다.


단숨에 오픈마, 오픈마에서 다시 GI마로 올라선 메지로 파머. 이대로 일류의 길을 걷게 되는가...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여름을 나고 복귀전으로 택한 교토 대상전(GII, 교토 잔디 2400m)에선 톱 핸디캡인 59kg을 달고 나온 여파가 있었는지 4코너에서부터 퍼지며 9착.

그리고 그 다음 경주가 바로 천황상·秋였다. 다이타쿠 헬리오스와 두번째로 만난 메지로 파머는 이 경주에서 완전히 삘이 꽂혔는지 둘만의 폭주를 감행한다. 야마다가 타고 있었다면 좀 말릴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하필 이 경주는 대타로 후지타 신지가 타고 있었다. 후지타는 은퇴까지 통산 1918승을 거두는 1급 기수지만, 이때의 후지타는 데뷔 2년차 짬찌였고, 가뜩이나 까다로운 메지로 파머 상대로는 슈퍼 짬찌였다는게 문제였다. 통제 불능의 파머와 헬리오스의 폭주에 인기 1위인 테이오마저 격동되어 휩쓸렸고,



테이오 7착

헬리오스 8착

그리고 메지로 파머 18두 중 17착.


사이좋게 공멸하며 경마팬들의 머릿속에 바보 콤비로 각인되어버렸다. '테이오의 레이스를 망쳤다'는 비난은 덤.


이렇게 하다보니 아리마 기념(GI, 나카야마 잔디 2500m)에 출전했을때, 메지로 파머의 단승인기는 당일 출전한 16두 중 15번째. 상반기 그랑프리 호스가 하반기 그랑프리에서 GI 미승리마들보다도 신용이 안가는 상태였다는 것. 그리고 레이스가 시작되자 당연하다는 듯 튀어나가는 메지로 파머와 다이타쿠 헬리오스를 보며 관객이든 기수들이든


'천황상 때처럼 또 시작이군'


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했다. 저러다 4코너에서, 늦어도 직선에서 퍼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모두가 편안하게 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 둘, 이상하게 3코너를 앞두는 상황에서 오히려 발이 빨라졌다. 1300m 지점에서부터 4펄롱(800m)을 계속 펄롱당 11초대로 끊은것. 재팬 컵을 이기고 온 테이오가 이상하게 후미에 있고, 테이오를 신경쓰느라 다른 유력주자들이 섣불리 시동을 걸지 못하는 사이 앞의 둘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자 분위기가 점점 동요, 3코너를 돌아 4코너를 향해 가고 있는데도 15마신 차이 이상이 나고 있자 캐스터의


"빨리 쫓아가지 않으면!"


이라는 실황이 지켜보는 모두의 심정이었다.


400m를 남기고 다이타쿠 헬리오스가 먼저 지치기 시작했지만 메지로 파머의 다리는 아직 죽지 않았다. 직선에 들어선 시점에서 남은 거리는 겨우 310m. 직선을 반쯤 지나자 헬리오스가 완전히 퍼지고, 그 양옆으로 레거시 월드와 나이스 네이처가 무섭게 추격해 왔다. 나이스 네이처는 고질적인 스퍼트 부족이 발목을 잡았고 레거시 월드가 거의 코앞까지 쫓아왔지만





코 차이로 메지로 파머의 우승. 타카라즈카 기념 우승을 뽀록 취급받고 있던 말이 역대 네번째로 춘추 그랑프리를 제패하는 순간이었다. 장애물로 전향했다 빠꾸맞고 다시 돌아온 노답 취급이었던 경주마가 동기 라이언도 맥퀸도 갖지 못한 훈장을 달게 된 것. 단승 49.4배. 복승 315.5배의 대파란.


이렇게 GI 2승의 관록이 붙었음에도 여전히 뽀록이라는 시선이 많았는지, 이듬해 복귀전이었던 한신 대상전(GII, 한신 잔디 3000m)에서도 인기 1위를 차지하지는 못했다. 나이스 네이처와 타케노 벨벳의 뒤를 잇는 인기 3위.





그러나 뽀록만으로는 춘추 그랑프리를 제패할 수 없다. 호흡이 딱딱 맞는 인마 콤비는 직선에서 달라붙는 나이스 네이처를 한번 더 힘을 내면서 떨쳐내고 승리, 3천미터를 훌륭하게 도주해냈다. 전개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거둔 승리.


이어진 천황상·春에서는 3연패에 도전하는 메지로 맥퀸, 그리고 라이스 샤워라는 정통파 스테이어 둘에 밀려 인기 3위였지만, 이번에도 고고하게 도주하고는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둘에 이은 3착으로 버티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메지로 파머의 전성기였다.


이미 7세(현 기준 6세)인 메지로 파머는 타카라즈카 기념을 기점으로 하향곡선을 긋기 시작, 1993년의 남은 기간동안 5전을 치러 모두 게시판 이하라는 부진에 빠졌다. 그러나 은퇴가 결정되고 마지막으로 치른 1994년 닛케이 신춘배(GII, 나카야마 잔디 2500m)에서 60.5kg의 톱 핸디캡을 지고 선전, 무슈 셰클의 뒤를 이은 2착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고는 은퇴하게 된다.


통산 38전 9승. 이 중 장애물 경주 2전 1승. 통산 상금 5억 3674만 2200엔.

GI 2승, GII 1승, GIII 2승. 춘추 그랑프리 제패.

이정도의 실적을 가진 말이 장애물에서 복귀한 후로는 한번도 인기 1위에 올라본적이 없다는 것도 특기 사항.

완벽한 엘리트였던 맥퀸과 라이언과는 다른 부침이 반복되는 커리어 속에서도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메지로 목장 최고의 개성파.


은퇴 후에는 애로우 스터드에서 씨수말 생활을 시작했지만, 장애물 경주인 교토 하이 점프 우승마 메지로 라이덴 정도가 그나마 눈에 띄는 정도로 자마의 성적은 부진했고, 2002년에 씨수말을 은퇴하고 공로마로 여생을 보냈다.


2006년, 그리고 2010년에는 하코다테 경마장에서 팬들에게 모습을 보이는 행사를 가졌는데,



더워서 짜증이 났는지 대단한 얼굴을 보여주기도 했다(출처 : http://www.mejiro-press.info/special/2010/02/index.html).


메지로 목장이 해산한 후에도 그 후신인 레이크 빌라 팜에서 공로마로 계속 여생을 보내다 2012년 4월 7일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향년 25세.


출처 : 우마무스메 캐릭터 소개 72 - 메지로 파머(メジロパーマー) - 우마무스메 갤러리 (dcinsi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