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친 부재하신 사이게임즈가 떡밥 안풀어서 굶어 뒤지기 직전인 이 갤에 인공호흡이라도 할 겸

처음 써서 제일 부실했던 오구리캡 이야기나 보강해 볼란다.


사회에 붐을 일으킬 정도의 아이돌 호스는 그냥 강하다는 것만으론 되지 못한다.

1. 강하면서 이야깃거리가 되는 배경 스토리가 있고,

2. 그걸 언론이 적당히 마사지를 해 주고,

3. 대중이 그 이야기에 호응을 해야 하며

4. 거기에 더해 필생의 라이벌이 있다면 더 좋다.


1번만 있었던 말은 메지로 맥퀸이 되는거고, 2번이 극에 달했다가 지자마자 언론이 내버렸는데 3번이 먹힌 케이스가 하이세이코. 4번이 없는데도 1,2,3이 다 있었던 케이스가 딥 임팩트..?

오구리캡은 저 네 요소를 다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라이벌을 극복하니까 또 다른 라이벌이 나타나는 식으로.

88년에 중앙 이적후 클래식에 나갈수 없자 이른바 뒷길의 중상 루트를  따라 경주에 여섯번 출전, 중앙의 샌님들을 사정없이 여섯번이나 줘팸한 오구리캡. 그 와중에 마이니치배에서 줘팼던 야에노무테키가 사츠키 상에서 우승하면서

'오구리캡이 나가기만 했으면 틀림없이 삼관마가 되었을 것이다' '88년의 클래식 조는 오구리캡보다 한수 아래다'라는 말들이 나돌 정도였어. 그 와중에 처음으로 출전하게 된 GI은 추계 고마 GI 3연전의 첫 관문인 10월의 천황상(秋). 거기서 중앙에 올라온 이후 처음으로 라이벌이라 할 만한 상대를 마주하게 돼. 


중앙 최강의 말. '하얀 번개' 타마모 크로스(タマモクロス). 공교롭게도 이 말도 회색이라 당시 이 둘이 마주친 천황상을 '회색말 정상 결전'이라 불렀어.


이 말도 사연이 있는데, 경영난에 시달리던 목장이 아버지 1대 하얀 번개 시비 크로스와 똑 닮았던 이 말에 모든 희망을 걸고 채권자의 빚독촉을 버티고 있었지만 데뷔후 기대를 저버리고 연패 행진을 거듭했는데, 상금 400만 이하 경주에서 승리를 거둔후 갑자기 내보낸 GII 경주에서 승리한 후 기대대로 천황상(春)과 다카라즈카 기념을 제패하며 중앙 최강으로 떠올랐지만 그땐 이미 목장은 파산하고 다른데로 팔려간 어미말도 스트레스로 폐사, 목장주는 자취를 감췄다는 그런 이야기.


아무튼 GI 2승을 포함 중앙 경마 7연승 중이던 당대 최강 타마모 크로스와, 지방에서 올라와 중앙 경마 6연승중이던 오구리캡, 언론의 호들갑과 그로 인해 유입된 라이트 팬들(오구리 걸즈라고 불리던 여성 팬들도 포함)의 덕인지 천황상 당일 인기 1위는 오구리캡, 2위가 타마모 크로스였다.


게이트가 열리고 일제히 출발 후, 오구리캡에 기승한 카와치 히로시 기수는 평소처럼 마군의 중단에 말을 몰아간 후 주위를 둘러봤어. 오구리캡과 비슷하게 선입이나 추입으로 가는 타마모 크로스가 어디에 있나 확인하려는 거였는데, 안보여서 '더 뒤에 있나?' 하고 뒤를 봤는데도 안 보이는 거야. 그제서야 앞을 봤는데 저 멀리 두번째 위치에 있는 회색 말을 발견한 순간,


'아 시발 당했다...'


라고 탄식했다고. 그동안 오구리캡이 보여준 막판 끝걸음을 인상깊게 지켜본 미나이 카츠미 기수가 장기 휴식후 복귀 첫 경주인 타마모 크로스가 비슷한 위치에서 맞대결을 하면 질 확률이 높다고 판단, 평소와는 다르게 선행으로 나가는 도박수를 걸었고, 거기에 완전히 당한 거지. 하이페이스로 전개된 경주의 영향까지 더해 오구리캡의 추격은 평소보다 무뎠고 1 1/4마신 차로 타마모 크로스의 승리. 오구리캡의 연승 행진은 6에서 멈췄고, 타마모 크로스는 사상 첫 천황상 춘추 연패, 중앙 8연승의 위업을 달성하는 순간이었어.


좀더 짙은 회색이 오구리캡. 흰색에 가까운 쪽이 타마모 크로스. 서러브레드는 돌연번이가 아닌 이상 백마가 없고 회색말이 나이먹으면서 점점 하얀 털이 많아진다.


오구리캡 진영은 한달 후의 재팬 컵 출전을 고민하다 타마모 크로스가 나선다는 소리에 주저없이 복수를 위해 출전을 결정. 여기서 회색말 정상결전 2차전이 벌어진다. 세간의 관심은 두 마리의 회색말에, 유럽의 명마 토니 빈까지 총 3두 중 누가 이길까에 쏠려 있었고, 천황상의 여파로 인기 1위는 타마모 크로스의 몫. 이번엔 타마모 크로스는 평소처럼 후위에서, 오구리캡은 3,4번째에서 레이스를 전개했고, 4코너를 돌아 직선으로 나오면서 타마모 크로스가 먼저 치고 나왔지만...





인기 9위로 전혀 마크되지 않아 몸싸움 없이 체력을 보존하고 있던 미국의 페이 더 버틀러가 타마모 크로스를 앞질러 나오면서 깜짝 우승, 타마모 크로스의 연승은 여기서 끝났고, 오구리캡은 3위에 그쳤다.


오구리캡 진영은 재팬 컵 후 단단히 골이 나 있었어. 그것도 그럴게 한창 끗발 올라가다 2번 연속으로 우승을 놓친 것도 그렇고, 그 두번 다 타마모 크로스를 앞지르지 못했던 게 컸지. 거기다 타마모 크로스는 바로 다음 경주인 아리마 기념을 끝으로 은퇴, 종마 생활을 한다고 발표한 상황이라 저 경주에서도 이기지 못한다면 그 이후에 아무리 잘해봐야


'오구리캡은 결국 타마모 크로스보다 한수 아래였던 말'


이란 낙인이 남을 판이니. 88년 아리마 기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우승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주전 기수였던 카와치의 기승에도 불신이 가기 시작했지. 천황상처럼 기습당하거나, 재팬 컵때처럼 페이스 조절에 문제가 생긴다면...? 결국 아리마 기념을 앞두고 진영이 내린 결정은 기수 교체였고, 관동 최고의 기수 오카베 유키오에게 기승을 요청해 '이번 딱 한번뿐이다'라는 조건부로 승낙을 얻어냈다.


반면 타마모 크로스는 아리마 기념을 앞두고 조교의 상태가 안 좋아서 마지막까지 출전 여부를 고심했지만, 두번이나 패배했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도전을 표명하는 오구리캡을 회피하면 일본 최강의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 출전을 결정해.


히로히토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쇼와 최후의 GI 레이스라는 상징성까지 붙은 아리마 기념. 게이트가 열리자 이번에도 천황상 때와 똑같은 양상으로 경주가 진행되었다. 다만 둘의 역할이 완전히 바뀌었다는게 유일한 차이점이었고, 타마모 크로스의 추격은 오구리캡을 따라잡기엔 딱 반마신이 부족했다.




이 경주를 통해 오구리캡은 중앙 이적 이후 처음 맞이한 벽을 드디어 넘는데 성공. 최강 회색마의 지위를 넘겨받고 헤이세이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9년엔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되는 라이벌을 맞이하게 되는데...(계속)


 노년기의 타마모 크로스. 2003년에 사망.



출처 : 오구리캡 이야기 외전 : 운명의 라이벌(1) - 타마모 크로스 - 우마무스메 갤러리 (dcinsi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