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어찌해도 고를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태어날 부모이며

어찌해도 피할수 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고귀한 피에서 따라오는 책임이다.

일찍이 왕의 이름을 가진 자는 많았지만, 그녀만큼 위대한 혈통은 이전에도 그리고 그 앞으로도 손에 꼽을 것이다


왕의 이름과 핏줄을 이어받은 자 

킹 헤일로




아버지는 2011년까지 국제레이팅 1위를 차지한 역사적인 명마 댄싱브레이브

어머니는 미국 G1 레이스 7승에 빛나는 굿바이 헤일로


역사에 길이남을 명마 댄싱 브레이브가 일본에 헐값에 팔려온 이유는 병 때문으로 그 자마들의 성적 또한 부진했기에 더 이상 유럽마와는 상성이 안되겠다는 의미에서 일본으로 팔려온 감이 있었다. 어찌되었건 일본에서 이어진 이 명문의 핏줄은 나쁘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고


킹 헤일로 또한 이 부계와 모계 양쪽 다 완벽한 혈통을 얻으면서 화제를 모으며 태어났다.

그 혈통을 보란듯이 뽐내며 킹헤일로는 신마전을 비롯하여 조건전 키기쿠상과 G3 스포츠배 스테이크스에서 1착을 얻어냈다.


위대한 혈통과 기대할만한 성적

하지만 관중들은 시들시들했다.

아무리 좋다고 한들 유럽과 미국말의 혈통- 더구나 너도나도 혈통의 다양성과 더 우수한 성적을 위해 외산마를 들여오는 추세

마루젠스키때부터 있어온 이야기였지만 국산 일본말의 우수한 성적을 보고싶다는 반골의 근성이 있었다는 것은 부정하지 못할것이다.


게다가  기수는 천재기수 후쿠나가 요이치의 아들이자 막 데뷔했던 후쿠나가 유이치

어쩔 수 없는 사정에 의해서 앉게된 자리였건만, 결과적으로 낙하산 인사처럼 앉게 된 천재기수의 아들과 로열핏줄의 명마는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주변에서 아니꼬워보이는 초호화 도련님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지 않아 킹헤일로에게는 새로운 라이벌들이 속속 등장한다



핏줄이라면 뒤지지 않는다. 

동일한 헤일로의 핏줄을 계승하는 선데이 사일런스와 일찍이 [슈퍼카]라고 불리던 마루젠스키의 피를 타고난 왕자

이후 [일본총대장]의 이름을 얻게되는 스페셜위크


마루젠스키의 재래, 갈색털의 괴물 등으로 불리며 기대를 모은 그래스원더


일본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석패하고 싶었던 마주의 집결체, [괴조] 엘 콘도르 파사



누구하나 뒤떨어질것 없는 라이벌들이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이 시대를 말하여 사람들은 황금세대라고 말하게된다.







사츠키상의 전초전이라고 볼수 있는 G2 야요이상부터 연말 G1 아리마 기념까지

킹헤일로는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려고 대회에 나섰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심지어 더비에서 후쿠나가 기수는 긴장한 나머지 레이스 시작부터 킹헤일로에게 스퍼트 사인을 걸며 킹헤일로를 도주마로 운용했고

경기를 뜻하지 않는 오버페이스로 만드는 프로답지 못한 실수를 저질러버린것도 컸다.

킹 헤일로의 성적은 참패의 14착.. 경주마로써도 기수로써도 커리어에 큰 흠이 갈 성적이었다.


"천재의 아들은 천재가 아니었다."

"명마의 아들또한 명마는 아니다"


클래식 시즌이 끝날무렵, 세간의 평가는 차갑게 식어있었으며, 킹헤일로의 신경질적이고 깔끔떠는 성격이 시너지를 일으켜

그저 건방진 도련님으로 밀려나버렸다.




클래식 시즌은 끝났다.

짊어진 기대를 배신당하고 자신의 책무조차 다하지 못한 경주마를 보며 킹헤일로의 진영은 어떻게든 이 말을 이기게 하고 싶다고 판단

댄싱브레이브와 굿바이 헤일로의 그 파워풀함과 스태미나를 미뤄두고 어떻게든 킹헤일로의 기질에 맞는 거리를 찾는데 진력한다.


그렇게 찾아나선 적정 거리-

기록만을 보면 가장 속도 순위가 좋았던 것은 킷카상이었지만 (등수를 제외하고, 펄롱당 주파시간을 계측시)

킹 헤일로의 결벽증과 주변 환경에 휘둘리기 쉬운 성격을 생각하면 점점 거리를 좁혀나가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진영은

그 다음해 1600~1800m 의 마일거리에서 킹헤일로를 데리고 1착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것은 G1을 위한 전초전, 왕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는 G1 에서 우승할 필요가 있었으며

어느정도의 거리를 파악한 킹헤일로 진영은 그다지 거리 차이가 나지 않는 야스다기념, 그리고 타카라즈카 기념에 출주한다

그러나 결과는 11착, 8착

이미 다른 라이벌들과는 다른세계로 떨어진 진흙밭의 마생


진영은 어떻게든 킹헤일로를 이기게 해주고자 천황상과 마일 챔피언십에도 출주하지만 우승을 놓치고 말았다.



다음해 동기의 라이벌들이 부상이나 휴식을 쉬고있는동안, 그러나 점점 조바심이 날 무렵 

이대로 성적이 계속된다면 안된다는 생각이 든 진영은 킹헤일로를 더트에 내보냈지만

모래가 묻는것을 싫어한 킹헤일로가 폭주하였고 13착으로 떨어졌다.


세간의 평가도 싸늘해질뿐

어떻게든 이기려고 발악하는 꼬맹이 정도의 인식


그러나 킹헤일로의 진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기고 싶었다'

어떻게든 이 말은 '좋은 경주마' 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었다.


그런 고집속에 출주한 단거리 G1 타카마츠노미야 기념

물론 무턱대고 출주한것은 아니었다.

앞서 말했듯 환경에 영향을 받기 쉬웠던 킹 헤일로라도 마일이하, 특히 단거리라면 그런 환경에 영향을 받기 전에 경주를 끝내 버릴수 있다.

무엇보다 당시의 날씨는 흐린 날씨로 마장 상태는 나쁘지 않았지만 수분을 머금은 땅이 발굽을 파고들어 평소보다 더욱 스태미나가 필요한 싸움...

본래부터 중거리마의 핏줄인 킹 헤일로라면 그러나 무리없이 소화 할 수 있는 스태미나를 가지고 있다.

아버지 댄싱브레이브 또한 스태미나가 아니라 파워와 근성으로 버티면서 중장거리를 소화하던 타입


경마에 절대는 없지만 그 절대에 가깝게 만드는 것이 마주와 조교사. 그리고 기수의 몫이리라

이러한 연구 끝에 출천한 타카마츠노미야 기념




https://youtu.be/nv5vbAoHECs




조금이라도 있으면 소나기가 쏟아질것 같은 봄날의 변덕스런 날씨

진흙이 튀어오르는 가운데 70초의 가장 빠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중계에서 1:07초 까지 중계진은 킹헤일로를 한번도 말하지 않았다.

4번인기임에도 불구하고 "또 도련님의 변덕이겠지" 싶은 세간의 생각은 어쩔수 없었을 것이리라.

그렇지만 누구보다 이기고 싶었던 것은 킹 헤일로 또한 마찬가지


"역시 킹헤일로가 뛰어나온다! 킹헤일로인가! 킹헤일로가 쓸어버렸다!

무서운 뒷심! 킹헤일로가 쓸어버렸다! 마침내 G1을 손에 넣는다!"

(이 부분은 우마무스메 특수실황으로도 구현되어있다)


카메라를 돌리자 사카구치 조교사는 눈물을 터뜨리고 있었다.


이제 사람들의 눈동자에는 그저 툴툴대던 도련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조교사가, 기수가 보아왔던 어떻게해서든 승리를 맛보고 싶었던

모든 영광을 뺏기더라도, 진흙탕을 굴러서라도, 10번의 패배를 넘어 승리에 집착했던 불굴의 상징이 그곳에 있었다.






이후 기세를 몰아 몇번 더 출주를 했지만 역시 경주마로써의 전성기는 지난 상태

동기들을 따라 은퇴하여 종마생활에 전념하게 된다.


종마생활에서도 G1 1승만의 성적으로는 높은 가격을 책정받지 못했지만 그 혈통은 어디가지 않았기에 많은 인기를 누렸다.

그 덕분인지 중상경주에서 활약하는 후세를 만들어서 최근의 경마에서도 많은 즐거움을 주는 말


말딸에서는 항상 킹을 응원하면서 그를 지지하는 공주


카와카미 프린세스가 그의 직계

위대한 아버지의 혈통을 증명하듯 오크스와 추화상을 얻어낸 말괄량이 공주님

그외엔 로렐 게레이로 아버지와 같이 단거리에 강력함을 보이면서 스프린터즈S 와 타카마츠노미야기념을 석권


한계층 건너뛰면



이번 타카마츠노미야 기념에서도 필자가 응원했던 딥본드, 애칭 뿌보쿤


https://arca.live/b/umamusume4/53256031

여기에서 다루었던 홍콩 스프린트에서 낙마사고 여파에 휘말려 현재 복귀는 커녕 회복이 가능할까도 불투명한 픽시나이트

(G1 스프린터즈S 우승)


2착에 그치긴 했지만 22년 사츠키상과 일본더비에서 무서운 실력을 보여준 클래식의 유력주자. 이퀴녹스

(키타산 직계)


또 2착에 그치긴했지만 22년 오카상 2착 워터나빌레라도 킹헤일로의 핏줄을 계승 중..

오크스는 13착.. 역시 2400m는 길긴 길다..





사족이지만 2018년 5월 27일

킹헤일로의 기수였던 후쿠나가 유이치는 와그네리안에 기승하여 약 20년만에 더비에 우승했다

와그네리안의 성적은 야요이상과 사츠키상 패배, 킹헤일로와 같은 전적을 남겨서 또 이색적


물론 타카마츠노미야 기념에서 기승한건 시바타 기수였지만, 후쿠나가 기수는 자신이 좀 더 능숙하게 잘 했다면, 혹은 뭔가의 조언을 했다면 더 좋은 경험을 서로에게 줄수 있었을거라고 줄곧 자책했었던듯


그 당시 타카마츠노미야 기념에서 그 또한 2착의 디바인 라이트에 타고있었지만 "여태 내가 타고있었던 말이었는데 어째서 지금까지 1착을 선물해주지 못했을까" , 2착을 했기에 분한마음도 있지만 미안한 마음도 있다는 듯 복잡한 마음으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킹헤일로의 은퇴날에 바로 마굿간에 가서 사카구지 조련사와 같이 이야기했다는 남다른 애정도 보였다


다른 이야기로는 19년 3월 19일

킹 헤일로는 과거의 파트너가 케묵은 앙금을 털어내고 더비에 우승한것에 마음을 놓았는지 노환으로 24세 당근별로 돌아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주에 열렸던 타카마츠노미야 기념

후쿠나가 기수는 미스터 멜로디에 타서 우승했다

착순은 3-4-7 (사-요-나) (잘있거라)- 13 (킹헤일로)(당시 킹헤일로의 번호)






갠적으로 킹헤일로를 가장 잘 표현했다고 생각하는 일러스트



위 와그네리안의 이야기

미숙하던 시절의 미숙했던 파트너가 성장하여 더비를 우승하는 것을 보는 킹헤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