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xus Luxury Sedan


토요타 산하 프리미엄 브랜드인 렉서스에서 1989년 부터 생산한 후륜구동/4륜구동 대형 플래그십 세단. LS의 의미는 위에 상단에서 보듯 Luxury Sedan의 줄임말이다. 직역하자면 그냥 고급 승용차.


브랜드명 렉서스의 의미는 1980년대 방영된 미국의 TV 드라마 '다이너스티'에서 배우 조안 콜린스의 극중 이름인 '알렉시스'에서 따온 것이었다. Alexis에서 앞글자 A를 빼 Lexis로 바꾸었고 얼마 뒤 Lexus로 수정되었다. 즉, 뜻보다는 발음과 막연하게 고급스러운 이미지 때문에 브랜드명으로 선정된 것. 사실 렉서스는 마케터들이 극찬하는 브랜드명 중 하나이다. 짧고 간결하면서도 지향하는 럭셔리한 이미지를 잘 나타낸다는 평이다.


배경--렉서스 탄생일화

때는 1970년대. 당시 세계는 오일쇼크로 인하여 기름값이 미친듯이 폭등하였다. 특히나 그중에서 자동차 산업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는데 당시 크고 기름을 많이 먹는 미국차들이 시장에서 점차 외면을 받기 시작한다.


대표적으로 포드 머스탱 2~3세대 또한 이러한 오일쇼크의 희생자중 하나이다.



한편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울상을 짓는것에 반해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환한 미소를 띄었는데, 그 이유는 띄어난 품질과 연비, 높은 신뢰성, 잘 고장나지 않는 내구성으로 일본차의 특성상 일본산 자동차의 인기가 나날이 높아져 가면서 북미 시장 진출 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기 때문이다.


특히나 불가능이라 생각했던 캘리포니아 대기규제법인 머스키법을 혼다 시빅이 가볍게 통과하면서 자연스레 일본차의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한다.



미국 젊은이들이 싸고 경제력 있는 일본차를 구입하고 이들이 다음 차를 구입할 시기엔 늘어난 소득에 맞추어 같은 브랜드의 조금 더 큰 차를 구입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러한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 토요타는 일본 내수 시장에서 팔던 크레스타 까지 미국 시장에 내놓아 제품군을 확장시켰다.



이렇게 일본 자동차 회사는 미국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는데 성공하나 문제는 그 "편견과 이미지"였다. 아무래도 작고 싸다는건 좋게 말하면 경제력 있고 가성비가 좋지만, 나쁘게 말하자면 '싸구려' ,'하층민이나 타고 다니는 차' 라는 인식이 퍼지게 된다.



이러한 인식을 탈피하고자 도요타는 자기 나름의 고급차인 "크라운"을 내놓으려 했으나 그래봤자 미국 시장에서 저가 소형차나 만드는 회사라는 인식을 탈피 할수 없었고, 무엇보다 '크라운'은 미국 고급차를 공략하기엔 쓸데없이 장식이 많고 크기도 작은편 이었다. 애초에 크라운은 일본 기준에선 고급차 였으나 미국 기준으론 소형차였다.


거기다 "도요타"라는 브랜드 명이 아무래도 프리미엄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러한 상황을 안타깝게 여긴 당시 도요타 회장이었던 "도요타 에이지"는 세계 최고의 자동차 회사가 되기 위해선 프리미엄 자동차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983년 8월 도요타 에이지 회장은 비밀 회의를 연다. 이 회의의 안건은 "우리가 세계 최고에 도전할수 있는 최고의 자동차를 만들수 있나?"라는 것이었다.


그가 제시한 조건은 무한 투자, 무한 기간, 무한 목표였다. 그렇게 세상에 없던 새로운 플래그십을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 Circle F가 시작된다.


하지만 Circle F는 시작부터 앞날이 매우 불투명 하였다. 아무리 오일쇼크로 인해 경제력 있는 차가 인기 있다고 한들, 고급차의 수요는 여전하였고 이러한 고급차들의 주 고객은 당연히 미국 상류층 이었다. 당시 미국에서 인기 있는 고급차는 자국의 링컨,캐딜락이 잡고 있었고, 혹은 벤츠, BMW, 아우 같은 유럽산 고급차들이 차지 하고 있었다.


링컨이나 캐딜락 은 말할것도 없고 벤츠는 오래전부터 고급차 이미지를 잡고 있었고 BMW는 운동 성능이 좋은차 라는 이미지가 매우 강했다. 이러한 틈바구니 속에 일본의 고급차를 성공적으로 런칭 시키려는 도요타 의 고민은 막연함 그 자체였다. 따라서 미국 시장에 맞는 고급차를 개발하기 위해서 현지의 "럭셔리" 현상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Circle F는 백지 상태부터 시작하였다. 당시 도요타의 디자이너들과 엔지니어들은 직접 미국 캘리포니아로 날아가 쇼핑물,스포츠 센터, 고급 레스토랑들을 방문하여 미국 상류층이 자동차를 어떻게 생각 하는지, 그들이 자동차를 어떻게 모는지, 최대의 안락함과 최고의 분위기를 주기 위해 얼마 만큼의 실내 공간이 필요한지 등의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그들의 생활을 직접 보고, 관찰하고 경험 하였다.



이로써 새로운 플래그십을 위한 방향성은 뚜렷해졌다. 그건 다음과 같았는데,


1.럭셔리 차에 어울리는 품위와 감성을 지킬것., 

2.최고의 품질을 실현 할것.

3.높은 중고차 가격을 유지할 것.

4.우수한 성능을 보유해야 할것.

5.최고 수준의 안전도를 갖출것.


이러한 방향성으로 도요타는 완전히 새로운 플래그십을 위한 긴 여정을 시작한다.



도요타는 4000명의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무수한 아이디어 스케치,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450대의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엔지니어들은 성능과 엔진 소음을 잡기 위해 프로펠러 샤프트를 고장력강으로 개선하여 운전 시 소음을 줄이며, 리세일 밸류가 고급차 수요자의 '구매 동기'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새로운 고급차가 수명 증가로 인한 상태 변화를 막기 위해 중고 S클래스와 E클래스, LS 400 프로토타입 모델을 직접 비교하였다.



특히나 혹한기의 스웨덴 부터, 지구상 최고의 폭염을 자랑하는 미국 데스밸리 까지 270만 Km에 이르는 테스트 주행 까지 하여, 시간과 노출로 인한 손상으로 판단하고 차체 표면 노화의 방지를 위해 크롬 도금 두께를 늘리고 도색을 6번이나 하며, 햇빛으로 인한 손상을 줄이는 코팅된 리어글라스를 개발하는둥, 모든 성능 항목에서 기존의 최고를 넘어서야 했다.




그렇게 이러한 길고 거친 여정을 끝으로, 1989년 1월 디트로이트와 LA모터쇼 에서 렉서스 LS 400이 세상에 공개된다.



렉서스 LS 1세대(1989~1995)

렉서스 LS의 탄생은 당시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를 경악하게 하였다. 도요타가 프리미엄 브랜드를 런칭하겠다고 발표하자 포춘지는 "도요타가 고급차를 내놓는건 맥도날드가 고급 스테이크를 내놓는것과 같은 이치" 라고 폄하 하였지만 이러한 폄하를 비웃듯 렉서스 LS는 거의 모든면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였다.



이러한 완성도는 기존 일본차의 이미지를 탈피하는데 충분하였다. 경쟁차들이 2톤 가까운 무게들을 뽐내는데 반해, 1.6톤의 가벼운 무게임에도 왠만한 라이벌들보다 더 좋은 승차감과 정숙성으로 세계의 자동차 기술자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이러한 LS의 웬만한 유럽차를 능가하는 정숙성과 외장의 조립 정밀도는 당시 벤츠와 BMW등의 전통 고급차 회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하지만 평론가들에게는 하나같이 지적을 받은 단점이 존재했는데, 다름아닌 오로지 승차감에만 치중한 관계로 고급차라면 마땅히 지녀야할 주행 안정감과 긴급 회피기동의 성능이 도가 지나치게 떨어졌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고급차임 에도 불과하고 최악의 뒷자석 승차감을 선사하는 전륜 구동을 채택한 캐딜락 드 빌 보다도 떨어지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정작 주력 소비층이었던 미국 소비자들은 이러한 문제를 개의치 않아 했다. 이유는 어차피 경찰의 과속 단속이 삼엄하기 이를데가 없는 미국이라, 고속도로 통행속도인 75마일정도(약 시속 120km/h정도)에서만 거동이 딱히 특출나게 이상하지만 않으면 사람들이 별 개의치 않았던 것.


평론가들의 평가와 일반인들의 평가가 갈리는건 이때 당시도 여전하였나 보다.



아무튼 미국 상류층의 모습을 반영한 렉서스 LS는 미국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출시 첫해 약 1만 1,600대를 판매하여 대중차 제조사로서 고급차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케이스가 되었다.





특히나 웬만한 도요타 차량에는 없는 4.0L V8 엔진은 250 마력이라는 부족함 없는 출력을 내어 제로백 8.5를 달성하였다.


 무엇보다 자체 개발한 TEMS 전자제어 서스펜션과 전자제어 에어 서스펜션은 탑승자에게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주었다. 이는 렉서스가 기존 도요타 차량과 차별화를 두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특히 이 전자제어 에서 서스펜션은 벤츠 S클래스 W220에 적용될 정도로 높은 완성도와 안정감을 주었다.




하지만 역사상 위대한 발명품들이 과거 수많은 실패와 어려움을 겪었듯이 1989년 생산한 LS400 또한 각종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이중 무려 8000대나 리콜해야 할 상황 까지 오게된다.


하지만 렉서스는 이러한 위기를 기회 삼아 소비자들에게 더욱 좋은 이미지를 부여하기로 마음먹고 렉서스는 해당 차량을 보유하고 있는 고객이 어디있든 그곳으로 달려가 수리와 리콜을 해주었으며, 세차는 물론이고 고급유 까지 다 채워서 고객한테 다시 전달해 주면서 고객 만족도를 높여 나가면서 상황을 해쳐 나갔다. 



다음편...

렉서스: LS 1세대의 성공에 힘입어 저희는 LS 2세대를 출시 하였습니다.


소비자: 이건 그냥 LS 1세대 잖아? 2세대는 어디 있음?


렉서스: 이게 2세대 인데요??


소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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