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솔직히 여태껏 살면서 버리거나 중고로 판 물건은 진짜 수도 없이 많지만


아무래도 사용기간이 오래 된 물건들은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음


내가 버렸던 오래된 책상은 진짜 존나 오래된 책상이었는데


옛날에 아버지가 젊은 시절에 샀다가 내가 초딩 들어갈때쯤에 내 방 따로 만들어주면서 쓰라고 줬던 책상이었음


서랍장도 딸린 나름 큰 책상이었고 스탠드도 있는데 스탠드 플러그가 110V용 11자 플러그였음ㅋㅋ


아무튼 오래되다보니 책상 한쪽 면에는 초딩때 낙엽이나 꽃잎 같은걸 뭐 압축 코팅해서 붙이는거 있었는데 (이름이 뭔지 생각안남) 그런것도 붙어있었고 어릴때 했던 여러 낙서도 있었는데


거기서 책도 읽고 공부도 하고 나중엔 노트북 사서 올려놓고 쓰다가 어느 순간 서랍장이랑 뭐 안쓰는거 올려놓는 용도로만 쓰게 됨


그러다가 VR에 입문하고 나니까 방이 너무 좁아서 넓혀야 할 필요성이 생겼음


플레이공간이 대충 2x1.5미터 정도 나왔던거 같은데


보니까 그 책상이랑 안쓰는거 여러개 갖다버리고 컴퓨터책상을 한쪽 구석으로 몰아넣고 하면 2x2미터 이상 나와서 결국 방 가구배치를 바꾸기로 하고 며칠동안 작업해서 책상 갖다버리고 가구 재배치함


그게 내가 인덱스 받기 직전이었던거 같으니 벌써 2년 6개월도 더 지났음


근데 진짜 아직도 가끔가다 그 책상이 생각나고 솔직히 가끔 아깝다는 생각도 들음


안 쓰는 책상을 버린 거 자체는 잘 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내가 찍어놓은 옛날 사진들 보다 보면 쓰던 물건들 사용기 리뷰 올리거나 중고로 팔거나 할 때 찍어놓은 사진들이 있어서 "아 이때 이걸 썼었지" 하는 생각이 나곤 하는데


그 책상은 딱히 사진도 안 찍어놓은 거 같더라


버리기 전에 사진을 찍어놨어야 했는데..


근데 사진보다도 더 좋은게 바로 3D 스캔인데


예전에 갤에서도 몇번 본 적 있고 여기 가현챈에서도 본거같은데, 물체나 공간을 3D 스캔하고 이를 VR 속에 재현할 수 있는 기술들이 있는 걸로 알고 있음


좀전에 가만히 혼자 여러가지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내 방을 VR 공간 속에 구현해놓고 내가 옛날에 쓰던 그 책상도 3D 스캔을 해 놨다면


비록 현실에서는 없지만 VR 공간 속에는 옛날 어느 순간의 내 방 풍경과 가구들을 그대로 구현해서 구경해볼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 생각을 하니까 더더욱 아까운 생각이 들음


솔직히 뭔가를 버리거나 재배치하거나 할 때는, 하는 순간엔 굉장히 시원하고 기분 좋은 생각이 드는데


나중에 어느 순간 가끔 그리울 때가 있음


내 생각엔, 이건 그 물건 자체가 그립다기보단(물론 그것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 "시절"이 그리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듬


오래된 물건일수록, 그 물건에 담긴 "시절"의 기억 또한 같이 존재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리운거임.


저 책상 같은 경우 내 "초등학교 시절" 부터 쭉 담겨 있었던 물건이니만큼 그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그 물건에 대한 그리움으로 묻어나는 게 아닐까 싶음


그리고 이를 달랠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이 지금까지는 사진이었던 거고.


앞으로 3D 스캔 기술이 보편화되면 누구나 특정 시간의 특정 공간을 스캔해서 VR 속에서 둘러볼 수 있고, 그러면서 그 "시절"을 함께 떠올리는 걸 넘어서 그 시절 속으로 다시 가 보는 경험을 할 수 있을듯.


길거리 스캔 같은것도 있던데, 확실히 한 동네에서 오래 살다 보니 어릴적에 봤던 건물들 대부분이 재건축하느라 사라져 있음.


가끔씩 그 건물 자리에 있던 옛날 건물이 생각나면서 그리울 때도 있는데, 내 동네가 이미 스캔이 되어 있었다면 "특정 날짜의 특정 거리 모습"이라고 해서 둘러볼 수도 있었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