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은 전투를 모두 끝마치고 며칠 뒤인 어느날, 자기만의 공간으로 돌아와 혼자의 시간을 가졌다. 임금님께서 특별히 적에게서 뺏어온 땅의 일부를 사유지로 가져도 된다고 말씀하였기에 전장에 나선 병사들에게 땅의 분배를 모두 끝마쳤고, 뒤이어 뒤풀이 잔치까지 마친 상태였다.

 
장군은 어쩐지 기분이 어두워 보이던 부하를 한 명 떠올렸다. 그 부하는 누가봐도 무척 시무룩하고 무기력해보였기에 고민을 들어줄 필요를 느꼈다. 마침 장군과 인연이 있었던 사이였기에 장군은 그 부하를 불러오기로 했다.
 
 
"장군님의 명령이다. 즉시 장군님과의 만남을 준비하도록."
장군이 보낸 심부름꾼이 명령하는 목소리에 군기가 가득했다. 부하는 방구석에서 몸을 일으키며 옷을 가다듬고는 밖으로 나와 심부름꾼을 따라갔다.
 
"장군님, 명령하신대로 데리고 왔사옵니다."
장군은 지루하던 차에 잘됐다는 듯이 부하를 맞이했다. 그리고 상 맞은 편에 앉게 하고는 말했다.
 
"내가 자네를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네가 고민이 있어보여서, 혹시 내가 들어줄 수 있을까 해서이다. 부담갖지 말고 이야기해보거라. 내가 다 들어줄테니."
 
부하는 마침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을 간절히 원했던지라 바로 받아들였다.
 
"사실은, 그... 전쟁이 끝나고 말입니다. 그때 제가 가장 친하게 지내던 동료와 싸우고 말았습니다."
"무슨 일로 싸웠길래 그러느냐?"
"장군님께서 저희에게 하사하신 것들 중에 있잖습니까. 그 중에서 하나 남은 다리를 제가 먹어버렸는데, 제 동료가 그걸 왜 네가 먹느냐는 문제로 따졌습니다. 저는 저대로 합리화를 했고 동료는 동료대로 분노해서 말다툼하다가 결국 이렇게 관계가 틀어지고 말았습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장군이 하사한 돌다리를 둘이서 분배하는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뒷풀이 잔치에서 하나 남은 닭다리를 누가 먹을까 눈치를 보다가 그 부하가 냅다 먹어버렸는데 그걸로 싸움이 난 것이다.
 
그러나 장군은 오해를 해서 이렇게 생각했다.
'아, 내가 하사한 돌다리를 분배하다가 싸움이 났구나. 마침 그게 마지막 돌다리라 그렇게 됐겠지. 거기가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기도 하고.'
 
심각하게 상황을 잘못 이해한 채 장군이 대화를 이어갔다.
"그랬구나. 심히 안타까운 일이로다. 내가 다리를 하나 더 줬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을."
"아, 아닙니다. 다리는 그거면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혹시... 사과할 생각은 있느냐?"
"네, 물론이지요. 하지만 용기가 잘 나지 않아서 마음같이 잘 되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사과하려는 계획이 있느냐?"
"그게, 제가 하나 고민해 본 것이 있긴 합니다만..."
"괜찮다. 말끝을 흐리지 말고 한 번 말해보거라."
"알겠습니다. 계획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마음이 안 나서 그렇지...... 계획은 이렇습니다. 닭 한 마리를 들고 그 친구의 집에 가는 겁니다. 그래서 그 친구가 닭 한 마리를 다 먹는 동안 저는 옆에서 지켜보고만 있는 겁니다. 이러면 다리를 먹은 죗값은 치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장군이 생각했다.
'아니, 아이디어는 참신한데 그 돌다리의 값어치가 얼마인데 닭 한 마리로 퉁치려하는 거냐.'
 
부하가 이어서 말했다.
"... 그러면 사과는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잠깐. 그 다리 하나의 가치가 겨우 닭 한 마리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러면 얼마로..."
"200마리로도 모자랄걸."
"이.. 이.. 이백마리...!"
 
200마리! 부하가 속으로 경악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미안한 마음이 몰려들었다. 내 죄가 그 정도씩이였구나. 그 친구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러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그 다리는 어떻게 했느냐?"
장군이 돌다리의 근황을 궁금해하며 물었다.
 
"어떻게 하다니요. 당연히 땅에 묻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장군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그걸 땅에 묻어버리다니, 너 정말 제정신이냐!"
"죄.. 죄송합니다! 그러면 다음부터는 잘게 부숴서 비료로 삼겠습니다!"
"그게 더 이상하잖느냐! 그 귀한걸 부셔서 밭에 뿌릴 생각을 하다니. 그리고, 애초에 그게 되긴 하느냐?"
"그러면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장군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다리가 있는 목적이 무엇인지 아느냐?"
"무엇입니까?"
"다리는, 다른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라고 있는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다리의 가치가 살아나는 것이다."
"그걸 밟고 지나가요?!"
"당연한 걸 왜 묻고 그러냐."
 
부하는 아주 놀랐다. 닭다리는 그렇게 쓰는 거였구나. 이제부터 명심해야지.
 
"아, 그리고 사과할거면 더 제대로 하는 방법이 있다."
"그게 무엇입니까?"
"바로 천에 미안하다는 문구를 크게 써놓고 다리에 매달아놓는 것이다."
"지.. 진짜 그렇게 하면 효과적입니까?"
"믿어보세. 당연히 그럴걸세."
"가, 감사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부하와 장군이 마지막으로 끝인사를 나누며 대화를 마쳤다. 방에서 나온 부하는 곧바로 마음을 굳게 잡고 시장으로 향했다.
 
 
==에필로그==
오늘따라 얘가 좀 정신이 나간 것 같다. 하나 남은 닭다리를 먹은 것을 놓고 싸운 것을 사과하는 것까지는 좋다. 나도 사과할 참이었으니까.
 
그런데 이건 정도가 너무 심하다. 닭을 200마리나 가져와서 네가 다 먹을 때까지 자신은 먹지 않고 지켜만 보고 있을테니 잘먹으라는 인간이 세상에 누가 또 있겠는가. 오히려 이쪽이 부담스러울 지경이다.
 
심지어 거기서 끝이 아니다. 겨우겨우 먹어치운 닭에서 고른 닭뼈들 중에서 닭다리들을 모아 정성껏 이쪽벽에서 저쪽벽으로 가지런히 늘여놓아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게까지 한다. 그것도 그냥 늘여놓는게 아니고  '하나 남은 닭다리를 먼저먹어 죄송합니다'라고 쓰인 천을 매달아 정성껏 늘여놓는다. 이쯤되면 대체 뭘 원하는 건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나중에 머리를 다치지는 않았는지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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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 소설은 단편 코미디 <전갈이 왔다는 전갈>의 후속작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코미디를 계속 투고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