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찍이 책을 가까이 하여,  《맹자孟子》와 《대학大學》, 《국가론國家論》과《수사학修辭學》등을 15세 이전에 이미 깨우쳤다. 이에 집안 어른들은 나의 능력을 크게 칭찬하며, "이 아이는 크게 될 것이오" 하였다. 이때까지는 성적도 우수하였으므로 주위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그러나 고등학교(高等學校)는 달랐다. 언어(言語) 외(外)의 과목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고, 주변 사람들의 높았던 기대는 곧 깊은 실망으로 바뀌었다. 날로 우울해졌고 이내 나의 존재에 대해 회의감을 품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난 자가 최생(崔生)이었다.

 

최생은 매사에 당당하였다. 그런 모습을 나는 본받고 싶었다. 그래서 어찌 그렇게 당당하냐고 물었더니,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할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그에게는 확고한 철학이 있었고, 그에 따라 행동하였다. 그는 사회의 틀에 얽매이기 싫어하였고 자유를 추구하였지만, 자신이 스스로 정한 도덕과 법규에 엄격히 따랐기 때문에 항상 품행이 반듯하고 성실하였다. 즉 방종(放縱)이 아닌 자율(自律)을 실천한 것이다. 그는 사소한 것일지라도 옳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행하여, 지나친 원칙주의자로 보이기도 하였다. 

학교 앞에 그 폭이 열다섯 자도 되지 않아 보이는 횡단보도(橫斷步道)가 있었는데, 청신호(靑信號)가 켜지는 주기가 매우 길었다. 아침에는 사람도 많고 차량도 많아 다들 신호를 지켰지만, 저녁에는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지라 신호를 지키는 자가 드물었다. 허지만 최생은 항상 그 신호를 지켰고, 이 때문에 벗들과 하교(下校)할 때 홀로 뒤쳐지기도 하였다. 나중에 뛰어오는 최생에게 벗들이 "그 의미도 없는 신호를 왜 지키는가"하고 물으면, 그는 웃으며 대답하였다. "마땅히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또 최생은 거짓을 최대의 악(惡)으로 여겼다. 그는 정치(政治)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높으신 분들이 민중을 속였음이 드러날 때면 분을 참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을 붙잡고 울분을 토하였다. 최생은 당연히 스스로도 거짓말을 하지 못하였다. 대학(大學)에 입학하기 위한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에도, 모든 것을 사실 그대로만 쓰려 하였다. 이에 글쓰기를 도와주던 교사(敎師)께서 "어느 정도의 꾸밈은 필요하다"며 이러이러하게 쓰라고 일러 주고 또 직접 수정하기도 하였지만, 최생은 다시 자신이 만족할 때 까지 사실대로 수정하여 제출하였다. 하지만 모 대학에서 요구한 하나의 문항은, 최생의 학교생활 내용만으로는 답할 수 없었다. 이에 하는 수 없이 꾸며서 써 내었지만, 최생은 "이것은 떳떳하지 못한 것이며, 설사 이 서류가 통과되더라도 나는 응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최생은 입시를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 하였지만, 성적은 최상위권이었다. 그는 공부를 성적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배움이 좋아서 하는 것이었다. 《논어論語》의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學而時習之不亦悅乎)"라는 구절 그대로였다. 주변에서는 그에게 의원(醫員)이 되라고 권하였지만, 그는 과학자가 꿈이었다. 최생은 풀벌레를 연구하고자 하였다. 한번은 나와 함께 길을 가다가 갑자기 어디론가 뛰어가길래, "무슨 일인가?" 하였더니, "저기에 '청띠신선나비'가 앉았네."하고는 열심히 그 나비를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그는 주변에서 보이는 모든 동식물의 이름을 다 알고 있었다.

 

최생은 이 나라에서 최고라 불리는 대학교에 입학할 자격이 되고도 남았다. 수능(修能)이라 불리는 대학입학시험에서 만점(滿點)으로 당당히 장원(壯元)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그는 다른 대학을 선택하였다. 곤충 연구소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최생은 자신의 꿈을 좇아 지금도 그 연구소에서 연구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미리견(美利堅)이라는 나라로 가서, 해외의 학자들과도 교류하고 있다.

 

아, 최생이여! 그대는 참으로 크게 될 사람이로다. 세상의 굴레를 벗어던졌으나,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여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도다. 모두가 가는 편한 길을 버리고 꿈을 좇아 가시밭길을 걸으니, 몸에는 고통이 있어도 그 마음은 실로 행복하리라. 그대의 삶은 후세에 전하여 만인의 본보기가 되기에 충분하므로 이 글을 써서 남기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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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후기: 원래는 <민옹전>이나 <예덕선생전>, <광문자전> 같은 느낌으로 쓰려는 것이었으나...아아 연암 선생은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나 따라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 수필채널에 올려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100% 사실만은 아니기에 소설채널에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