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나무가 서느렇게 얼크러진 결정의 새하얀 꽃을 피워내는, 그런 계절이었다.  

 

*

  암막 커튼 같은 눈꺼풀을 걷어내고, 시든 배추처럼 병 들것 같이 내리쬐는 햇볕을 조금 훔쳐내고 나면, 머리카락이 부스스한 아침이라고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눈을 비비며 몸에 둘둘 쌓인 이불을 벗겨낸다. 겹겹이 쌓인 이불이 마치 양파껍질 같다. 형형색색 풀어낸 이불을 한쪽으로 밀어두고, 몸에 달라붙어 있는 티셔츠를 손으로 때어낸다. 말라붙은 식은땀 위로 냉기가 서린다. 장판에서 발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겨울을 실감하며 나는 닫힌 욕실 문을 연다. 벼락 치는 듯 깨진 흰 타일 위로 흐릿한 백열전구가 타오른다. 마치 꺼지지 않는 낮을 살아가는 남극의 백야 같은 모습이다. 찬물이 몸에 닿자 나는 몸을 움츠린다. 한여름에도 전혀 적응이 안 되는 찬물 샤워인데. 나는 몸을 떨며 눈을 감는다.  

 

  장롱 속 반듯하게 개어진 동복에서는 오래된 옷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났다. 하복이 빨래를 하기엔 편했는데. 한동안은 버텼지만, 더 이상 하복만 입고 다니기엔 날이 꽤 추워진 터였다. 이미 오랫동안 빨래를 모아둔 바구니에서는 자릿내가 쿰쿰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와이셔츠를 입으며, 미처 지우지 못한 누렇게 목 때 낀 깃을 보이지 않게 최대한 안으로 밀어 넣는다. 성에 핀 창을 손바닥으로 밀어내니, 하늘 위로 거먹구름이 흰 구름 사이로 층층이 짙은 그을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곧 눈을 쏟아낼 거라고 으름장을 놓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나는 눈앞까지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늘어난 머리끈으로 정리한 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향했다.

 

  학교 정문을 통과하자마자, 나는 신발도 갈아 신지 않고 바로 학교 층계를 올랐다. 집에서부터 실내화를 신고 등교하기 때문에 선도부에게 걸릴 일은 없었다. 나는 교실로 들어가기 전, 교무실 앞을 서성인다. 잠긴 교실 문을 열기 위한 열쇠를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교무실에 볼 일은 없었지만, 나는 머뭇거리다 몸을 기울여 교무실 입구에 몸을 기대섰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계단 저편에서 구두 또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학교에서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다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기에, 나는 구겨 신은 실내화를 바로 고쳐 신고 계단을 향해 걸어갔다. 모퉁이를 돌아서자, 물결치는 가을향기가 가득 번져왔다. 갈색 웨이브 펌 머리카락을 찰랑이며, 손에는 언제나 커피 한잔을 쥐고 등교하시는 지현 선생님이었다. 반가움도 잠시, 내가 인사를 할까 말까 머뭇거리는 사이. 선생님이 내게 먼저 인사를 걸어왔다. 그 특유의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안녕 예지야, 일찍 등교했네?”

  으레 그래왔듯, 선생님은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을 걸어오셨다.

  “머리카락이 축축한데… 감기 들라. 몸은 좀 괜찮니?”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니’ 라는 질문에 ‘괜찮지 않아요’ 라고 대답하는 것은 가슴 속 먹먹하게 막힌 어떤 것을 밀어내야 하는 힘이 필요했기에, 괜찮다 반응하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괜찮지 않다 보다는 괜찮다는 것이 문제가 덜 있어 보이는 것 같았으니깐. 괜찮다고 말하는 순간만큼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불편함을 깔끔하게 지워버릴 수 있었다. ‘괜찮지 않아’ 가 만들어내는 동정어린 눈빛이 싫기도 했었지만, ‘괜찮아’ 라는 단어가 훅하고 잡아끄는 인력에 잡혀 올라간 입 꼬리가, 순간적으로 굳은 표정에 떨리는 한 가닥의 미소를 만들어내는 것이. 어쩐지 나는 좋다고 생각했다. 비록 경직된 내 표정이 인위적인 거짓이라 하더라도, 억지로 잡아끌려진 내 표정을 보고도 온화한 미소를 짓는 선생님만을 바라보고 있으면. 정말. 내 모든 것들이 괜찮아진 기분이 들었다.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한, 아픈 곳을 정확히 짚어내는 것 같은 따뜻한 체온 섞인 환한 빛이 내 몸 구석구석을 꿰뚫듯 헤집을 때. 가슴 언저리에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사춘기의 푸른 멍울의 아릿한 상처를 대신 어루만져주는 것 같았으니깐. 지현 선생님은 그런 사람이었다. 내 아픈 상처를 누구보다 잘 짚을 줄 아는 사람. 처음으로 사람의 체온이 따뜻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사람.  

 

 

*

  80년생이었던 어머니는 나를 낳자마자 떠났다고 했다. 나는 감히 얼굴도 모르는 내 어머니를 이해한다고 말한다. 내 아비라는 작자가 이 모양일줄 알았더라면, 딱 한번이라도 우리 아버지란 가족들이 어떤 사람인줄 알았다면. 나는 내 탯줄을 스스로 잘라서라도 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아비는 주정뱅이였다. 몸도 마음도 약한 사람이었던 아버지가 의지할 곳은 투명에 가까운 초록빛 소주병밖에 없어, 밥 대신 술에 인생을 말아 드셨다. 방치된 냉장고 속 쉰 김치 같은 부취를 울분과 함께 자주 내뱉던 아버지는, 덩치에 걸맞지 않게 자주 주먹을 휘두르셨다. 아마 이웃들은 자신들 주위에 가정폭력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을 것이다. 고함소리, 비명소리, 물건이 산산조각 나는 드라마 속 불우가정의 울림이 우리 집에선 새어 나가지 않았으니깐.  

 

  아버지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집에 들어오시면, 학교에서 부모님 보여드리라며 나눠주던 가정통신문 속 가정폭력에 대한 내용과 달리. 아버지는 조용히 앙다문 입으로 내 방문을 열었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퍽 웃었을지도 모른다. 그 모습은 마치 해장용 바지락 국물 속, 다 익지 못한 조개의 모습 같았으니 말이다. 속이 다 썩어문드러져 익어도 입을 벌리지 못하는, 허울뿐인 껍데기를 가진 조개.

  아버지는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방안에 있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다. 순간, 내 뺨을 내리갈겼다. 잠깐 놀란 내가 숨을 참는 짧은 신음의 호흡을 제외하면, 뺨 때리는 소리 말곤 그 어느 소리도 집안에서 울려 퍼지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하라고 알려주지 않았지만, 그게 가장 자연스러운 행위인 듯. 아버지와 나는 서로 침묵했고, 나는 아버지를 노려봤고, 아버지는 나를 때렸다.

  왜 그랬던 걸까. 저항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을까. 내가 이 집안을 벗어나봐야 결국 세상의 손바닥 안이라는 것을 나는 너무 일찍 깨친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 한번은 아버지가 나를 때리려 방 안으로 들어오실 때, 거실에 놓여 있는 도자기를 건든 적이 있었다. 가문대대로 전해져 내려온다는 가보인지 뭔지 하는 거였다. 아버지는 떨어지는 도자기를 붙잡기 위해 몸을 던졌고, 그대로 거실장판에 굴러 넘어졌다. 눈살이 절로 찡그려질 정도로, 둔탁하고 요란하게 굴러 넘어지는 소리였다. 아버지는 놀란 듯. 술이 다 깬 표정으로 가슴팍엔 도자기를 올려둔 채,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랬다.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우리의 분수를 알기에 함부로 집안 살림을 박살내지 않는 사람. 그래서 유일하게 자신보다 아래인 자식에게 응어리진 자신의 분노를 표현했던 남자. 아버지에게 나는 집안 물건보다 못한 존재였다.  

 

  그랬던 아버지가 어느 날 죽었다. 새벽쯤 술에 취한 채로 자동차 뺑소니를 당해 그렇게 갑작스레 세상을 뜨셨다 했다. 아버지의 인생만큼 보잘 것 없는 죽음이었다. 아버지는 유서 대신, 사망자 신고 기간 초과 과태료 청구서를 우체통에 남길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었던 사람이었으니깐.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혼란스러울만한데, 나는 이상하리만큼 평온했다. 아버지의 크기만큼 자리 잡은 작은 분향소에서, 몇 찾아오지 않는 조문객을 맞으며 나는 다소곳 아버지의 영정 앞에 앉아있었다. 며칠 뒤, 소식을 들은 사촌들이 난데없이 오열하며 아버지의 분향소를 찾아왔다. 내게 사촌이 있었다는 사실을 망각했을 정도로 생전엔 단 한번도 보지 못했던 사촌들이었다. 그리고 저마다 ‘얼마나 상심이 크더냐’ 나 ‘마음고생 많았겠구나’  하는 따위의 형식적인 말을 섞어왔고, 곧이어 서로 얼굴로 모르던 외가 친가 가릴 것 없이 내 행방에 대한 거친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점점 높아지는 목소리들이 장례식장의 분위기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나는 침착한 표정으로 쏟아지는 그 두 언어 사이에 끼어 있었다. 정말 내 안위가 걱정되어서 그런 논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금방 알았다. 아버지도 나도 모를, 보험이 들어 있었다는 것을 마침 사촌들이 찾아오기 전에 보험회사로부터 전해 들어 익히 알고 있는 상태였다. 술이나 퍼먹던 아버지가 보험금을 낼 돈은 어떻게 가지고 있었는지 좀 의문이었지만, 통장 잔고가 어디로 줄줄 새어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가계에 무지했던 아버지였기에.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나는 떠들고 있는 사촌을 향해 담담하게 소리쳤다.

  “시끄러워요, 전 자취할거에요.”

  내가 그렇게 큰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렇게 또렷한 발음으로 내 주장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그때 나는 처음 알았다. 아버지처럼 나도 딱딱한 외피 속에 혀를 숨겨 넣은,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조개인줄 알았으니까. 그때 내가 어떤 자세와 태도로 사촌들을 향해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에게 놀란 내 얼굴을 보며, 다들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던 것은 선명하게 기억났다.  

 

 

*

  한기 섞인 공기가 폐포 구석구석으로 스며든다. 뜨거운 태양도 겨울의 한기에 빠르게 식어가는 오후, 하교시간이다. 나는 스쳐지나가는 공기 속에 한층 더 짙은 흰 한숨을 만들어낸다. 잔뜩 들이마신 날카로운 찬 공기에 목이 저미다. 하늘은 여전히 짙은 회색을 띄고 있다. 평화의 상징이던 흰 비둘기도 회색빛 도시공해에 물들어 먼지처럼 바닥을 굴러다니는, 그런 길거리다.

  집으로 향하는 걸음, 어디선가 고양이가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가만히 서서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근원을 찾아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가게 담장 아래. 푸른 잎을 다 떨어트린 조형정원의 마른 풀숲에 새끼고양이가 웅크려 있다. 검은 바탕에 흰 얼룩인지, 흰 바탕에 검은 얼룩인지 알 수 없는 무늬를 가진 모습이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핀다. 멀리서 경계하고 있는 어미의 모습이 보인다. 공포심이 가득한 눈빛과 함께 빳빳하게 털을 곤두세우고 있다. 나는 슬쩍 새끼고양이에게서 멀어진다. 아직 어린 새끼고양이가 겁도 없이 나에게 다가온다. 어미 고양이가 하악거리며 나를 위협한다. 왜인지, 위협적이지만 여린 사랑 섞인. 내가 알아차릴 수 없는 어떤 감정이 뒤섞여있다. 새끼고양이가 나를 바라본다. 아직 상처 난 감정위에 손을 포개보지 못한, 어떤 순한 눈망울이 일렁인다. 어리고, 연약한 그 작은 생명체에 어떤 감정이 가슴에 화하게 밀려온다. 나는 무심결에 손을 뻗어 새끼고양이를 쓰다듬는다. 아직 세상을 덜 겪어본 보송보송하고 축축한 털이다. 손가락 사이로 느껴지는 차갑고 서늘한, 불 댄 듯 뜨겁게 달아오르는 그 감촉에 놀라 나는 손을 뗀다. 영문을 모르는 새끼고양이는 계속해서 야옹거렸다.  

 

 

*

  지현 선생님은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는 것을 잘했다. 내가 말하는 그것이 무슨 말이던, 내가 하는 이야기를 고개를 끄덕이며 묵묵히 경청해주시곤 하셨다. 제멋대로 참견하며 끼어들기를 좋아하는, 문제가 있으면 어떻게든 고치려드는 다른 선생님들과는 다르게 말이다. 지현 선생님은 공감과 소통사이를 적절하게 조율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너무 팽팽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늘어지지 않는 감정선의 현을 그려내 아름답게 연주할 수 있는 사람. 그러니 이야기 도중의 긴 침묵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잘 아신 것이겠지. 선생님과 상담을 할 때, 나는 자주 할 말을 잊어버리곤 했다. 입 밖으로 내기 힘든 그런 사실들이 있기 마련이니깐.

 

  선생님은 따로 조언이라든가, 해결책을 직접 제시해 주시지는 않으셨다. 오히려 그렇게 묵묵하고 뜨뜻미지근하게 반응해주는 것이 나는 좋았다. 어떻게 반응을 하더라도 내 문제를 당장 없애버린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깐. 그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그렇게 내 이야기를 다 풀어내고 나면, 지현 선생님은 내 손바닥을 조용히 어루만지다 먹을 것을 손바닥 위에 건네주시곤 했다.

  “단 게 일시적으로나마 기분을 좋게 해준데.”

  배시시 웃으며 어루만지듯 내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쓰다듬는 선생님. 내 손바닥 위에는 언제나 막대사탕이 놓여있었다. 바스락거리는 비닐로 정교하게 감싸져 있는 진달래 분홍빛의 딸기 맛 사탕은. 세상 모든 향기와 행복을 둥글게 함축해 놓은 것 같아서, 그 사탕을 입 안에서 녹여갈 때면 그 모든 것이 아련히 가슴에 퍼져가는 것 같았다. 그것은 이국에서 불어오는 낯선 바람과도 같아, 입안에서 번져가는 그 낯선 감각에 나는. 왠지 그때만큼은 내가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었는데, 지현 선생님이. 그랬던 지현 선생님이. 오늘 떠난다고 하셨다.

  “몇 년 동안 정이 많이 들어 선생님도 슬프지만, 아쉽게도 그렇게 되었어요.”

  아쉬움에 아아아 하며 늘어지는 함성을 지르는 아이들과 달리, 나는 멍한 표정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어째서? 도대체 왜? 나중에 인연이 되면 또 보자는 말을 남기며 선생님은 교실 문을 열고 나가셨다. 선생님은 아무런 미련도 남지 않는 듯, 담담한 걸음으로 교무실을 향하셨다. 나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쳐다보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선생님을 쫓아갔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교무실로 들어가는 선생님의 치맛자락을 잡아당겼다. 선생님은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 표정에, 나는 선생님께 말하려고 했던 말문이 막혀버린다. 우물거리는 나를 제쳐두고 무슨 일이냐고 물어오는, 옆에 서 있는 수학선생님에게 지현 선생님은 웃으며 말한다. 별일 아니라고, 학생이 궁금한 게 있는 것 같다고 대답한다.

 

  내가 아는 익숙한 표정이다.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한, 그 특유의 온화한 미소.

 

  나는 고개를 떨어뜨리며 치맛자락을 붙잡은 손에 힘을 푼다. 그랬다. 선생님은 원래 모든 사람에게 친절했던 사람이었다. 원래부터 환한 미소를 품은 사람. 아무리 화가 나도 얼굴에서 친절이 가시지 않는 사람. 그래서 선생님과 학생들 모두가 사랑했던 사람. 선생님이 구겨진 치마를 정리하며 내게 말한다.

 

  “…예지야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면 선생님 가 봐도 될까?”  

 

 

*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리지 않았던 눈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듯, 온 세상에 휘몰아치는 폭설이었다. 나는 멍하니 학교정문에서 내리는 눈을 바라보다 우산을 펼쳐들고 집으로 향한다. 소복하게 쌓인 눈 위의 발자국이 선명하다. 익숙한 길거리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픽하면 끊어져 버릴 것 같은 가냘픈 소리다. 우산을 슬쩍 들춰보니 전에 봤었던 새끼고양이가 어미 없이 홀로 울부짖고 있다. 나를 주변을 둘러본다. 어디에도 어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어미를 찾는 듯, 새끼고양이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퍼져나간다. 나는 새끼고양이에게 다가가려다 멈칫한다.

 

  내 착각일지 모른다. 사실 어미를 찾는 울음소리가 아닌, 나를 향한 원망일지도 모른다. 예전에 얼핏 본 다큐멘터리의 내용이 떠오른다. 밤비 신드롬. 외국의 생태공원에서 야생의 새끼사슴이 홀로 있는 것을 보고, 그 새끼사슴에게 관광객이 먹이를 줬다가 결국 새끼사슴이 죽음에 이렀던 일. 미약하지만 새끼 몸에 짙게 밴 사람의 냄새는 새끼 동물의 정체성을 흩뜨려 놓는다. 부모를 잃은 새끼 동물은, 그렇게 홀로 죽어간다. 그 작은 손길이. 동정어린 어설픈 사랑이. 어린 동물들을 고립시켜 버린다.

  눈이 더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거친 눈보라에 나는 우산으로 내 앞을 가린다. 하얗게, 새하얗게 번져 내리는 눈길에 고양이의 울음소리도 흰색으로 묻혀버리는 것 같다. 나는 다시 우산을 들춰 고양이를 찾아보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고양이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욕실로 달려 들어간다. 얼어붙은 교복을 내던지고 그대로 물을 틀어 온몸을 씻어낸다. 몸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냉기 섞인 찬물 때문에 몸이 떨리는 것이 아니었다. 화끈거리는 찬 기운에 대인 온몸의 감각이 흐릿해져간다.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에 물때인지 성에 인지 모를 것들이 한데 엉겨있다. 나는 온몸에 비누칠을 한다. 안 닿는 곳 없이 온몸에 미끌미끌한 점액이 물들어 간다. 나는 몸을 벅벅 문지른다. 아무리 씻어내도, 씻어내려 해도 머리카락에 뒤얽혀있는 무언가가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부엌으로 가서 가위를 집어 든다. 거실장판에 물 자국이 뚝뚝 동심원을 그린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가위를 곧장 머리카락에 가져다 댄다. 서늘한 가위의 흰빛이 검은색 머리카락에 걸린다. 나는 바로 그것을 잘라낸다.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카락이 후드득 떨어진다. 그것은 마치 얼음을 긁어내는 소리 같기도, 앙다문 이를 가는 소리 같기도 하다. 목에 맞닿은 가위 날에, 온몸이 소스라칠 정도로 오싹함이 밀려온다. 나는 가위를 떨어트린다. 물 자국 위로 긴 머리카락이 정신없이 어질러져 있다. 온몸이 털 범벅이다. 짐승의 털인지 사람의 털인지 알 수 없다. 부엌 위에 덜컹거리며 파르르 떨리는 유리창 뒤로 눈보라가 성글게 흩날리고 있다.  

 

*

  눈을 뜨니 흐릿한 동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감기에 걸린 듯 온몸이 타오르듯 뜨거웠다. 나는 몸을 일으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본다. 시퍼런 멍처럼 아릿한 지치보라빛이 집안에 번져갔다. 머리 위로 창백한 하늘의 모습이 보였다. 어떤 불안의 향기가 온 몸에 짙게 배어있다. 장판 위의 머리카락들은 얼어붙었는지 흰빛으로 허옇게 세어있었다. 나는 손가락 끝으로 내 머리카락을 더듬는다. 듬성듬성 불규칙한 결이 손끝을 스쳐 지나간다. 지금이 몇 시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는 욕실에 너저분하게 던져있는 교복을 주워든다. 얼어붙은 교복위에 눈 결정이 선명하게 살아있다. 나는 교복을 그대로 갈아입는다. 와이셔츠 깃에 누렇게 낀 때도 새하얗게 얼어있다.

 

  왜인지, 교복이 차갑지 않았다.  

 

  익숙한 길목에 검은색 반점 위로 희끗한 눈이 잔뜩 쌓여 있었다. 눈 속에 새끼고양이가 묻혀있다. 왜 어제는 보이지 않았는지 모를 정도로 흰 눈 위에 선명하게 얼룩덜룩한 검은 반점이 번져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교회 외벽의 유리창은 밝게 빛나고 있고,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가게 앞의 쌓인 눈을 치우고, 마을버스가 사람을 실어 나르는. 어제와 다름없는 나날이었다. 너무나. 너무나 평범한. 너무 평범해서 평온할 정도의 고요한 아침이었다. 나는 더듬거리면서 고양이를 훑는다. 고양이의 온몸에 조붓이 새하얀 눈꽃이 피어났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긴 낮잠을 자는 것 같은 모습이다. 긴 한낮의 꿈이라도 꾸는 듯, 새끼고양이는 안온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나는 말없이 눈석임물 섞인 흙을 퍼내 고양이에게 덮어준다. 눈 때문에 얼룩덜룩한 흙이 봉긋 솟는다. 왜인지 스치는 가슴 멍울이 아리다.  

 

  하늘에서 눈송이가 떨어진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검은 동공에 눈결정의 또렷한 초점이 새겨진다. 두 눈꽃이 피어났다. 차갑고, 서늘한. 그 화하게 퍼져나가는 하얀 눈꽃이 눈 속에서 사라지면서 시선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나는 눈을 질끈 감는다. 눈물이, 뺨을 타고 뜨겁게 흐른다. 나는 다시 몸을 일으켜서 학교로 향한다. 선명하게 찍힌 발자국들이 눈송이에 덮여 흐릿하게 사라져간다. 점점 눈이 세차게 떨어졌다. 짧게 잘린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나는 그 속으로 스며들어 간다. 머리카락이, 가방이, 교복이 희게 사위어 간다. 온 세상이 밝게 빛나는 흰 속으로 덮여 들어가는, 이질적이도록 하얀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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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부족한 작품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군가에게 소설을 보여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인터넷 상에 업로드 해봅니다.

청소년 문학상에서 여러 번 낙방한 학생입니다.

누군가의 손에 잡혀보지 못한 부끄러운 작품입니다.

여러 번 실패를 겪다 보니 저에게 재능이 없다는 것을 이제야 새삼 깨닫네요.

슬슬 이제 다 그만 둘까 생각하던 와중에 우연히 이 게시판에 들어오게 되어, 그냥 누군가에게 한 번이라도 보여주고 그만 두자는 생각에 올려봅니다. 

그동안 열심히 써왔는데, 손에 아무 것도 잡히는 것이 없다는 게 많이 아리네요.

날씨가 춥습니다. 다들 몸조리 잘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 번 부족한 작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