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매미로의 환생을 권함 에피소드에서 모티브를 얻었음을 미리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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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뜨니 넓은 설원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본다. 이번에 한 건 크게 해서 사람들하고 술을 먹다가… 화장실로 향했고… 그리고 거기서 내 세 번째 의뢰인한테 뒤통수를 맞고 기절했지. 이런 썩을. 조심스럽게 땅을 짚고 일어난 나는 그것이 진짜 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푹신푹신한 것이, 양털 같기도 했다. 이것도 잘하면 팔아먹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양털을 뜯어보려고 하려는 순간, 뒤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세요. 당황한 내가 뜯어내려던 바닥을 꾹꾹 밟아 다지는 동안, 내게 말을 건 사람은 웃으며 나를 안내했다. 이곳으로. 정장차림의 사내는, 사무적이면서도 얼굴에 친절함이 가시지 않는 묘한 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에서 저 사람이 가장 높은 직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임을 눈치 챈 나는, 그대로 거울이 되어 사내의 행동을 따라하기 시작한다. 사람은 자기 자신과 비슷한 부류를 좋아하기 마련이니깐. 나는 영업용 미소를 띄우며 사내에게 말했다. 혹시, 저는 죽은 건가요? 사내가 짧게 대답한다. 그렇습니다. 그럼 저는 이제 뭘 해야 하는 건가요? 의외로 나의 빠른 전개에 당황했는지, 사내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의외의 질문을 하시네요. 뭐, 됐습니다. 금방 적응하신 듯 하니 바로 이해하시겠죠. 저는 고객님의 환생을 준비해드리는 직원입니다. 나는 곧바로 사내의 말을 끊고 말한다. 저는 이번에도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복수해야할 사람이 있어가지고요. 아, 그리고 한국은 제외해주시고요. 두 번 다시 그런 불 반도에서 태어나고 싶지는 않거든요. 당황한 사내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한다. 진도가 너무 빠르시네요. 아쉽게도 고객님은 전생에 선행을 적게 하셔서 사람으로 태어나기는 힘드실 것 같습니다. 사내의 말에 나는 순식간에 불친절해진다. 뭐야,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제가 얼마나 착하게 살았는데.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사내가 내게 컴퓨터 모니터를 들이밀며 말한다. 고객님 같은 분들이 꽤 있어서, 저희가 이렇게 데이터를 마련해놓습니다. 거짓말 1361회, 부정행위 36회, 어후. 쓰레기 무단투기 660회…. 더 말씀해 드릴까요? 어느새 다시 얌전해진 나는 고개를 절레 절레 젓는다. 허허, 그것 참. 그런 것 까지 언제 기록해 두셨대. 사내가 씩 웃으며 말한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환생 후 또 얼마나 착실하게 살았는지를 가지고 다시 재심사를 보니까요. 어디보자. 고객님의 기록으로는 일단 벌레 목록 정도만 추천해드릴 수 있겠네요. 나는 화들짝 놀라며 말한다. 네? 벌레요? 사내가 사무적으로 대답한다. 네. 벌레요. 우선 목록을 좀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적잖은 충격을 받은 나는 잠시 멍하니 앉아 있는다. 아무리 그래도 벌레는…. 두꺼운 책자를 가지고 온 사내가 책장을 넘기면서 곰곰이 목록을 살핀다. 음… 개미는 어떠신가요? 개미로 열심히 일하신 다음 환생하시면 후에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으실 겁니다. 나는 더듬거리며 말한다. 열심히 노동만 하는 것은 조금…. 그렇다면 파리는 어떠십니까? 나름 자유롭게 비행도 할 수 있고, 쓰레기장 주위에서 태어난다면 나름 안락하게 사실 수 있으실 겁니다. 나는 소스라치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파리는 좀 더러울 것 같습니다…. 더러운 것은 질색이라… 그렇다면 모기는 어떠십니까? 그런… 남의 피를 빨아먹는 것 때문에 후에 평가가 좋지 않을 것 같은데요. 순간 사내의 표정이 무표정해진다. 워낙 친절을 얼굴에 머금은 사람이라, 어쩐지 무표정만으로도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하루살이는 어떠신지요? 나는 되묻는다. 하루살이요? 사내가 책자를 덮으며 말한다. 네. 하루살이요. 요즘 꽤 인기 있는 환생경로죠. 왜 하루살이가 인기가 많은지 아십니까? 나는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말했듯이 환생 후의 평가로 다시 재심사를 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하루살이는 그에 부합하는 환생입니다. 하루만 살 수 있으니 남에게 피해를 입힐 경우도 적고, 하루 동안 자유롭게 비행한 다음 이곳에 찾아와 좋은 평가로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는 경우가 많죠. 하루살이의 사체는 다른 곤충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니 그것도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고요. 나는 책상을 내리치며 말했다. 하루살이로 결정하겠습니다!

 

 계약서에 서명을 하는 나를 보며 사내가 물었다. 아까는 벌레엔 질색을 하시더니. 꽤나 고객님은 계산적이시네요. 전생에는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나는 머뭇거리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다고 둘러댄다. 계약서에 확인 도장을 찍은 사내는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환생이 결정되었습니다. 부디, 좋은 여정을 마치고 다시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게 꾸벅 고개를 숙이는 사내를 뒤로 하고 나는 다시 설원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하루빨리 하루살이의 인생을 마치고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흰 설원에 천천히 스며들어간다.

 

 멍청하긴. 환생은 단 한 번뿐이라고요. 남의 인생을 파탄 내버린 당신 같은 사람을,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게 해줄 줄 알았습니까? 사내가 마우스 휠을 드래그하며 중얼거린다. 거기에는 사기 52회가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