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전생을 믿습니까.

 

어째선지 매우 몽롱한 정신을 깨우는 맑은 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그 목소리에 어두웠던 정신이 돌아오고 꿈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나 자유롭게 움직이는 몸,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그 묘한 느낌에 그는 속으로 의아함을 느끼면서 눈을 뜨고 주변을 살펴보며 머릿속에서 울린 목소리의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사방이 캄캄하고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여긴 어디지?”

 

그의 질문에 쥐 죽은 듯이 조용해져 대답하지 않는 그 목소리의 주인이 있을 만한 칠흑 건너편을 노려보며 그는 다시 한 번 외쳤다.

 

여기가 어디냐, 꿈속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면 둘 중 하나겠네. 내가 돌아버렸거나 미쳐버렸거나.”

 

당신은 전생을 믿습니까.

 

그의 질문은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이 그 목소리는 그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의도를 알 수 없는 얘기만을 반복했다.

 

아니 그러니까, 전생이고 뭐고 여기가 어디냐니까.”

 

ㅡ당신은 전생을 믿습니까.

 

아니 여기가 어디냐고. 헛소리는 그만하고 내 질문에 대답해.”

 

ㅡ당신은 전생을…….

 

…….”

 

몇 분을 그렇게 씨름한 후에야 그는 그 목소리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래, 믿는다! 믿어! 이제 만족했냐? 그렇다면 이젠 내 질문에 대답 좀 해주지? 여긴 어디냐니까. 꿈속은 아닌 것 같고. 아니, 여기가 어딘지 말하면 지구가 멸망하기라도 하냐. 뭐 그렇게 뜸 들여? 이제 좀 말해줘 봐. 여기가 어디고 너는 누구며, 나에게 무슨 용건인지.”

 

이곳은 사후 어디로 갈지 선택 할 수 있는 망자의 기로. 동화로, 혹은 전설, 신화의 형태로, 혹은 음유시인들의 노래 속에서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이들.

세계의 질서를 위해 죽어서는 안 되는 자들에게만 특별히 주어지는 전생의 기회입니다.

이곳에서 당신은 당신과 같은 이유로 이곳을 방문하게 된 이들이 다시금 새로운 삶을 받고 가게 되는 세계로 보내지게 됩니다.

그것이 오른쪽에 보이는 빛의 기둥. 하지만, 만약 당신이 전생하지 않고 그대로 눈을 감기를 원한다면 왼쪽에 있는 빛으로 이동해주시길.

 

다시 한 번 맑은 목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고, 그와 동시에 그는 자신의 머릿속을 무언가가 훑고 지나간 묘한 느낌을 받았다.

무언가가 자신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깊은 한구석 어딘가를 살펴본 느낌. 그 감촉에 눈을 감았다 뜨기를 몇 번. 그는 그 알 수 없는 목소리에게 다시 대답했다.

 

내가 죽었다고? 아니 뭐, 평범한 꿈이라곤 일절 생각하지 않았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조금 뜬금없는 소리 아니냐? 난데없이 내가 죽었다고, 그런 나를 전생시켜주겠다고 말하니 뭐라 반응해야 할지.”

 

한숨을 깊게 내뱉으며 그 목소리의 말에 대꾸하던 그는 이내 어깨를 으쓱이며 어이가 없다는 말투로 목소리가 들려온 것 같은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꿈은 아닌 것 같다고 내가 확정 지었다만. 네가 한 그 소리는 너무나도 현실성이 없는 말 그대로 꿈같은 소리인데. 아니, 니 말이 사실이라고 치고. 그렇다면 애초에 내가 죽었다는 건 어떻게 알 수 있는데?”

 

누가 들어도 어이가 없을법한 이 상황에 오히려 그는 우스워서 헛웃음을 터트리고 방금 들려온 그 목소리에게 다시 질문했다. 그러자 그의 말을 들은 그 목소리는 잠깐의 정적 후에 그의 말에 대답해주었다.

 

자기 자신이. 그러니까 당신 본인이 이 말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 그건 상관이 없습니다.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우리는 당신을 전생시켜 줄 수 있다는 것뿐.

그저 당신의 선택을 존중해 줄 것입니다. 당신이 세상에. 당신이 전생해서 가게 될 그 세계에 흥미가 있다면. 오른쪽에 있는 빛의 기둥으로 이동해주시길.

 

우리에게는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맑았던 그 목소리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기라도 하듯이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무거운 정적 속에 그는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수상쩍기 그지없는 그 목소리가 한 말들을 그대로 믿고 있기에는 시비를 걸만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

곰곰이 생각을 거듭하던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자신에게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해댄 목소리에게 다시금 질문하였다.

 

그래, 그렇다면 내가 죽었다고 치고. 세계의 질서를 위해서 내가 죽지 말아야 한다니? 그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나는 세계의 질서를 위해서 한 일이 딱히 없는 것 같은데 말이야. 같잖은 영웅 심리를 자극하려는 거면 일단 보기 좋게 니가 실패했다고 말해줄 수도 있을 것 같군.”

 

그의 새로운 질문이 자신에게 돌아오자, 그의 대답을 기다리듯 조용했던 목소리는 다시금 입을 열어 그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었다.

 

세상에는 신이라는 존재를 섬기는 자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개 중에서는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서 믿는 척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진심 어린 신앙심으로 정성을 다해 자신이 믿는 신을 섬기는 자들도 있겠지요.

 

, 그거 같은 경우는 나도 나에게서 돈이나 명예를 얻기 위해서 축복을 달라고 섬기는 척하는 놈들도 많았으니까. 그래도 차라리 그런 놈들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었지. 과학 같은 게 발달하면서 나를 포함한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놈들도 미친 듯이 늘어났으니까 말이야.”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그렇게 대답하자 다시금 어둠 저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들이 신을 섬기는 마음이 진실한 것인지, 거짓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섬긴다는 마음 그 자체. 거짓된 마음으로 섬기든, 진실한 마음으로 섬기든, 그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힘이 되어, 세계의 질서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힘이 나옵니다.

 

?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힘이라니, 그런 게 나오는 줄은 몰랐네. 원체 관심이 없다 보니.”

 

인간이 가진 신앙심이 커지면 커질수록, 마계를 감싸고 있는 결계의 힘은 강해지고, 그 결과. 신을 대행해서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부정한 존재들을 전부 봉인시킬 수 있는 용사라는 존재들도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것참 다행이네, 그런데 그게 왜 내가 세상의 질서를 위해 죽으면 안 되는 존재인 건……. 잠깐만. 내가. 정확히는 나를 포함한 신이 존재하기에. 다시 말해서 살아있기 때문에 인간들의 신앙심이 커진 거라면. 그 반대인 지금 같은 상황이면.”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침묵하던 그 목소리는 이내 침통에 빠진 한 말투로 그에게 말하였다.

 

지금 세상은 큰 전란의 시대에 다가서고 있습니다. 신이라 불리는 존재들의 연이은 죽음으로 인해 약해진 결계를 찢고 인간들이 익스마르짐이라 부르는 마족들이 세계의 절반. 어쩌면 세계의 대부분을 차지하였으며, 그로 인해 각 대륙은 생존을 위한 끊이지 않는 전쟁으로 슬픔에 잠겨있습니다.

 

그녀에게 전해들은 지상의 소식에 잠시 할 말을 잃은 것처럼 보이던 그를 관찰하듯 조용해진 목소리는 약간의 정적 뒤에 다시금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이 정도면 당신의 물음에 대답이 되었겠지요. 투전승불. 그렇기에 당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천지일월의 기운을 머금은 위대한 존재여.

 

말을 마친 것처럼 보이는 그 목소리는 이번에는 정말로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지 부디, 현명한 판단을. 이라는 말과 함께 다시금 조용해졌다.

반면, 그 목소리를 통해서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한 번에 너무 많이 전해들은 투전승불은 그 자리에 앉아 생각에 깊게 잠겼다.

그마저 생각에 잠기자, 칠흑밖에 없는 그 공간은 견디기 힘든 정적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난 투전승불은 이내 씩 웃더니 망설임 없이 오른쪽에 보이는 빛의 기둥으로 향해 걸어갔다.

 

,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면 내가 안 가는 것도 말이 안 되지. 오랜만에 제대로 한탕 해먹겠구만? 좋아, 전생 당해주도록 하지.”

 

천계의 최대 문제아. 투전승불이시여. 당신은 우마왕과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사망하였고, 그 때문에 당신이 가지고 있던 신의 영혼이 깨지면서 신의 능력을 대부분 소실했습니다.

 

그 목소리의 말을 듣고 눈을 크게 뜬 투전승불은 이내, 다시금 씨익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역시 당신 말은 못 믿겠다니까? , 그렇다고 해도 지금 이렇게 상황이 됐으니 믿을 수밖에 없겠지. 그보다, 나를 포함한 다른 녀석들도 내려갔다며? 그것도 사실이야?”

 

당신을 포함하여 빛의 기사 루. 득도한 선녀 천선낭랑 등. 많은 수의 신들이 저 세상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들은, 무너져가는 나라의 왕이 되어 나라를 일으켜 세울 준비를 하고 있거나, 은거하여. 자신의 주변에 존재하는 익스마르짐들을 처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든지, 그것은 당신의 자유이며, 우리가 해주고 싶은 말은. 이 혼란을 어떻게 해서든지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야. 듣기만 해도 매우 힘들 것 같군. 그러면 당신들은 왜 가만히 있는 건데?”

 

우리는 때가 되면 당신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며, 또한 당신들과 모든 힘을 합쳐 익스마르짐들을 처리해나갈 것입니다.

 

확실하게 지원해준다는 말이 없이 모호하게 흘려버리는 그 목소리에 흥이 깨졌다는 듯이 흥. 소리를 내며 콧방귀를 뀌던 투전승불은 이내 오른쪽에 있는 빛기둥으로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

 

그것보다 영혼이 깨졌다는 건 약간 신경 쓰이는 소리인데. 영혼이 깨졌으면 전생 같은 것도 못 하는 거 아니야? 그런데 어떻게 나를 전생시킨다는 거지?”

 

영혼이 깨졌다는 것은, 당신의 영격이 낮아졌다는 말. 영혼 그 자체가 소실된 것이 아니기에, 전생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잃어버린 것들은 방금 말했던 대로, 신으로서 사용할 수 있었던 신의 능력들. 그것들 모두에게서 최대한의 힘을 이끌어 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듣기만 해도 뼈저리게 아픈 소리네. 그런데, 이런 내가 뭐라도 할 수 있을까?”

 

영격이 낮아졌다 한들, 당신의 신체 능력이 소실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힘들지 않은 상대는 큰 어려움 없이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그동안 다른 존재들을 관찰해오며 알게 된 것들.

 

허 참. 아까는 그런 걸 잘 못 느꼈는데 말이야. 너 점점 자꾸 말투가 니가 나보다 위에 있는 위대하신 존재라는 것처럼 말하듯이 들리는데. 그건 내 착각이길 바라지.”

 

그 목소리는 그의 마지막 말에 대해서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그저 적막만이 감도는 그 공간에서 투전승불은 질렸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 말은 이렇게 했어도 정작 지금은 네 말마따나 내 영혼이 박살 난 상태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내가 너한테 나대지는 못하지만 말이야.”

 

신의 영혼은 당신의 몸에서 깨져나갔을 때 그 상태로 그 특유의 모양과 빛깔. 속성을 가지고 보석처럼 변해 세상 여러 곳에 흩어져있으며, 그것을 찾아서 흡수할 때마다 당신의 깨진 영혼들이 복구될 것입니다.

 

…….그걸 니가. 아 맞다, 아까 우리라고 했지? 너희들이 어떻게 알고 있는 건데. 갈수록 수상해지네. 이거?”

 

빛이 나는 기둥에 발을 옮기려면 찰나, 들려온 목소리에 투전승불은 걸음을 멈추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가득 메운 칠흑을 둘러보며 따지듯 말하였다.

 

솔직하게 말해 봐. 니들은 도대체 뭐 하는 놈들인지.”

 

이번에도 그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대답하지 않는 그 목소리의 반응에 투전승불은 다시금 한숨을 푹 쉬었다. 허리에 손을 올리고 가볍게 칠흑 그 건너편 어딘가를 노려보던 그는 이내, 다시금 빛기둥으로 다가가며 이야기하였다.

 

뒤가 구리기는 하다만, 본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까 뭐, 별수 없지. 나중에 알아서 나타나 주신다니까 그때까지 기다리도록 하겠다.”

 

말을 마칠 즈음에 그는 빛기둥 안으로 전부 들어갔고, 그와 동시에 내내 조용하던 그 목소리가 다시금 그에게 들려왔다.

 

우리가 누군지. 무엇을 하는 존재들인지는 지금의 당신에게는 가르쳐 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가려는 세계의 혼란이 사라지기를. 그리고 다시금 질서가 맞춰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노라고. 그를 위해서 우리는 원래 세계에서 당신을 포함해 죽어버린 다른 신들을 이곳으로 다시 불러온 것이라고.

 

? 이봐, 잠시만. 원래 세계라니?”

 

그 순간, 눈부신 빛이 번쩍거리며 어둠뿐인 공간을 깨부수었다. 방금까지 맑게 들리던 그 목소리는 점점 잡신호가 낀 듯이 그의 의식 속에서 지직거리며 들리지 않게 되었고 부서진 공간은 점점 다시 쌓여 일그러진 빛을 만들어내었다. 이내, 검은색에서 하얀색으로 바뀐 그 공간은 서서히 하나하나 색을 띠더니 그가 살아생전 처음 보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잡신호 낀 기분 나쁜 소리가 귀에서 사라지고 차츰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이름 모를 어떤 새의 사랑스러운 울음소리가 그의 귀를 채우기 시작했고, 그 목소리가 말한 전생이라는 것이 끝났을 즈음에 시야에 들어온 주변의 모습은 방금까지 아무것도 없던 공허한 칠흑 속이 아닌, 큰 성곽으로 주변이 완벽하게 방어되고 있는, 인기척이 많이 느껴지는 성의 성문 앞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변화에 투전승불이 당황하고 있을 때쯤, 마지막으로 그의 머릿속에서 한마디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당신들을 믿고 있습니다. 부디 혼란으로 가득한 이 세계를 바로잡아 주시길.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정말로 그 목소리는 투전승불의 의식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고, 그의 귀에는 방금 들렸던 새소리, 바람 소리와 함께 성곽 안,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듣고서야 투전승불은 한숨을 푸욱 내쉬며 중얼거렸다.

 

허어, 그래서 나보고 지금 멸망 직전의 세계를 어떻게든 다른 놈들과 손잡고 멸망하지 않도록 지켜달라는거지?

 

평화롭기 그지없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와 그거에 섞여 들려오는 새들의 울음소리를 듣고는 쓴웃음을 지으며 투전승불은 한마디 덧붙였다.

 

나 원 참, 말로는 더럽게 겁 많이 주더니, 이거야 원. 세상의 멸망이 얼마 남지 않은 세상이 아니라, 태평성대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신세기 세상 같잖아?”







요 며칠 여기 채널 분위기 보는데 글리젠이 거의 죽은 것 같길래 그냥 구독 해제하고 쓰고있던 소설 올리지 말까 생각하다가 그냥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