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린 한줌의 빛조차 닿지 못하는 바다의 밑바닥. 짙푸른 어둠이 나를 무겁게 짓누른다. 이 심해의 위로 향하면 무엇이 있을까. 나는 가끔 이 수면 위가 궁금해. 하지만 왜인지 떠오르지도 못하고 침전하지도 못하는 플랑크톤처럼, 나는 부유하기만 한다.

 

 물 아지랑이가 흐트러지듯 반짝이는 햇살이 커튼 뒤로 스며들었다. 물속에서 방금 나온 것처럼, 나는 땀에 젖은 채 꿈에서 깨어난다. 깨어날 시간이네. 누군가에게 묻는지 모를 말들을 중얼거리고 나는 이부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보통 커피를 내리거나 쌀뜨물을 내리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들과 달리, 나는 구석에 있는 사료봉투부터 집어 든다. 나는 내 방에 놓여있는 어항 외벽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려본다. 어항 속 문어는 이번에 또 어디로 숨어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호기심이 많은 문어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장식물 사이로 숨어들어가곤 했다. 키워주는 주인과 교감할 줄 모르는 내향적인 문어. 나와 봐. 나는 어항 외벽을 두들긴다. 겁먹은 걸까. 문어는 나오지 않는다. 고요히 멈춰버린 것 같은 공간에서 전자시계 속 초침만 깜빡거렸다. 문어와 나 사이의 얇고 투명한 간극에 내 모습만 비춰 일렁였다.

 

 사회부적응자. 사람들이 나를 지칭하는 명사였다. 그러니깐 ‘다른 생물들과는 달리, 이 생태계에서 살아가기 적합하지 못합니다.’ 라는 의미가 함축된 6글자였다. 내게 사회는 마치 바위도 해초도 없는 드넓은 바다 속 모래밭 같았다. 서로가 서로를 드러내는. 숨을 곳 없이 매끈하게 발가벗겨지는 곳. 당신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학교는 어디를 다니셨습니까, 당신의 위치는 어느 정도 입니까. 하며 여과 없이 투명하게 트이는 바닷물 같은. SNS에 자신을 소개하는 한 줄의 글을 꾸미기 위해 사람들은 바쁘게 손을 놀리곤 했다. 이런 생태계에선 살아갈 수 없어. 아무데도 숨을 곳이 없는 걸? 사람들을 따라 SNS 계정을 만드는 내 손끝에서 쓸데없는 생각이 부풀어 오른다. 풍선처럼. 마치 문어풍선처럼. 주변 모든 것을 흉내 내는 흉내문어처럼.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 평범하게 생존하기 위해서 흉내를 내며 살아간다. 바다 어딘가에 사는 흉내문어처럼, 거울처럼 세상을 그대로 따라가며 숨어든다. 사람들이 일어나는 시간에 똑같이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오르는 버스에 오르고, 사람들이 카드를 찍으면 나도 똑같이 버스카드를 찍는다. 출퇴근도. 부장님의 실없는 농담에 억지로 웃음을 터트리는 사람들처럼. 같이 따라 웃음을 터트린다.

 평범한 사람들의 언어에는 이해할 수 없는 몇 가지 패턴들이 있었다. 장난이야 뒤엔 조금의 사실이 담겨있었고, 모르겠어 뒤에는 어느 정도 알고 있음이, 관심없어 뒤에는 감정이 조금 스며있었다. 거짓과 진실 사이에서 사람들은 오묘한 줄다리기를 했고, 그것은 곧 관계의 느슨함과 팽팽함을 조율하는 일이었다. 느슨하면 흐무러져 내리고, 팽팽하면 곧장 끊어져 버리는.

 

 축축하고 흐물흐물 거리잖아. 내게 악수를 청하고 뒤돌아서는 사람들의 얼굴에 떠오르는 표정들이었다. 제 주제에 8개나 되는 다리를 가진, 그래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사람. 아, 오늘도 두렵고 무섭구나. 나는 본능적으로 먹물을 내뿜는다. 주변이 새까맣게 변할 때까지. 캄캄한 어둠이 내리깔릴 때까지. 마치 여린 빛조차 닿지 못하는 심해처럼. 나는 도망친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세상으로 도망쳐 달아난다.

 나는 내 방 바닥에서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있다. 유리창에는 투명한 햇볕이 스며들어 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어항에서 문어를 찾아본다. 오늘도 문어는 보이지 않는다. 며칠 동안 물을 채워 넣지 않아서인지 어항 수심이 점점 낮아지고 있었다. 아니, 이미 어항은 밑바닥까지 메말라 있었다. 사실 문어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흉내 내다 보니 그 문어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걸. 깊은 심해 속에서 사는 문어는 수면 위로 향하려고 하면 줄어드는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터져버린다. 아무리 위로 향하고 싶어도 태생이 그랬다. 두둥실 떠오르다 추락하는 풍선처럼.

 

 누군가 자동차를 건드렸는지 도난방지 경보가 울린다. 거친 소음이 집안 창문을 거세게 두들긴다. 마치 내게 나와 보라고 소리치는 것 같다. 나갈 수 없는 걸. 나는 중얼거리며 창문에 커튼을 친다. 짙은 어둠이 들어선다. 나는 내가 내뱉은 말을 되네인다. 나갈 수 없는 걸. 빛이 없는 이곳. 나는 오늘도 심해 속에 매달린 채, 좁은 세계를 천천히 떠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