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이 올 것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역시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느끼는 것은 다르다. 하얀 면사포. 물안개처럼 은은하게 깔리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지금 내 오른손을 잡고 카펫을 밟고 있는 소녀가 내 딸이라니. 이 위화감은 딸을 시집보내는 것이 여덟 번째 임에도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다.

 

   “어머니, 고마워요...”

 

   딸은 어느새 울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글쓰기에 뛰어난 감각이 있었던 아이였다. 나는 그것을 도와주려 최대한 애썼지만, 문학에 문외한인 내가 도와주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부딪히기도 많이 부딪히고 싸우기도 많이 싸웠던 여덟 번째 딸. 그 만큼 더 애착이 가는 딸이다. 나도 가슴 한 쪽이 아려오는 것을 느낀다. 첫째를 보냈을 때도 이렇게 힘들진 않았던 것 같은데.    우리 모녀는 주례를 맡고 있는 목사님 앞에 섰다. 그리고 딸 옆에는 믿음직한 신랑이 딸을 향해 미소를 짓고 있다. 딸 또한 언제 울었냐는 듯 신랑을 향해 웃어 보인다. 행복하겠구나, 둘은 어릴 때부터 서로를 많이 아껴주곤 했으니까.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신랑의 성품은 아마 딸 다음으로 내가 잘 알 것이다. 목사님이 목을 가다듬는다. 이젠 딸을 보내 주어야 할 시간이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킨다.

 

   “그럼. 주례를 시작하겠습니다.”

 

   목사님이 말하는 순간과 동시에 휴대전화가 요란스레 몸을 떨었다. 나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때고 뒤를 돌아보았다. 핸드폰을 보고 남편에게서 전화가 온 것을 확인한다. 나는 휴대폰을 집으려 일어섰다.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 허리가 뻐근하다. 머리를 만져본다. 역시 기름지다. 5일 동안 씻은 기억이 없다. 휴대폰을 열고 통화버튼을 누른다. 여보세요. 남편의 배려심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또 ‘그거’ 때문이겠지.

   “왜 전화했어.” 나는 귀찮다는 것이 일부러 티가 나게 말을 했다. 남편은 그런 말투가 약간 심기에 거슬린 듯 5초정도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먹은 듯, 여전히 목소리에는 배려심이 넘쳤다.

 

   “별일 없지 자기? 애는 어때?”

 

   결국 ‘그거’다. 일부러 배려심이 넘치는 듯한 말투도 다 ‘그거’를 위해서겠지. 그까짓 섹스의 결과물이 뭐가 중요하다고 저렇게 온갖 위선을 다 떠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나는 방 왼쪽 구석에 있는 침대로 눈을 돌린다. 침대 가운데에는 ‘그거’가 누워있다. ‘그거’를 거의 하루 종일 내버려 두었는데도 다행히 아무런 이상의 징조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거’가 우는 소리라도 들리면 분명 남편은 온갖 잔소리를 내게 늘어놓겠지. 모성애라던가. 혈육의 정이라든가. 부모 된 도리라든가 해서. 결국 자신이 나와 위치를 바꿀 생각은 없고 말이다.

 

   “잘 보고 있어.”

 

   “정말?” 남편의 목소리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지난번 깜박하고 기저귀를 갈아주지 않은 일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 때 아이 방에서 풍기는 고약한 냄새보다도 ‘그거’의 짓무른 엉덩이를 남편은 걱정했다. 결국 똥을 싸지른 것은 ‘그거’이고 남편에게 귀뺨대기를 맞은 것은 나였다.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예전엔 나만 있으면 된다고 지루할 정도로 말해놓고.

 

   “내가 무슨 애야? 쟤는 내가 낳았어. 내 애라구. 내가 알아서 해, 그렇게 신경 쓰이면 당신이 집에서 있든가 하란 말이야! 말만 걱정하는 듯이 하지 말고! 넌 무슨 자원봉사센터랑 결혼하고 싶었냐?”

 

   “당신이 그러고도 부모야? 그러고도 부모냐고!”

 

   나는 휴대폰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휴대폰에서 커버와 배터리가 빠져나와 바닥에 뒹군다. 나는 ‘그거’를 노려본다. 이 상황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곤히 잠을 자는 ‘그거’를. 하지만 ‘그거’ 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그거’는 다른 ‘그거’들도 하는 일을 그저 똑같이 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그거’를 이렇게 보게 만든 것도 다 남편 때문이다. 잘못된 것은 나와 ‘그거’가 아닌, 남편이다. 남편만 달라질 수 있다면 이 모든 게 다 괜찮아 질 텐데. 이대로 배터리가 떨어져 나간 채로 핸드폰을 두고 싶다. 하지만 남편이 돌아온 뒤 할 언행을 생각하면 재빨리 배터리를 끼고 전원을 키는 것이 상책이다. 나는 커버와 배터리를 주워서 핸드폰에 끼워넣었다. 그리고 전원을 켰다. 배터리가 떨어져 나간 사이 남편에게 와있는 세 통의 부재중 전화와 다섯 통의 문자. 나는 그것을 보지 않기로 했다. 나는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어느새 결혼식은 끝이 나있었다. 여덟 번째 딸의 결혼식을 보지도 못하다니. 나는 남편을 다시 한번 원망했다. 하지만 그럴 여유 없이 아홉 번째 딸을 키워야 한다. 나는 게임의 첫 번째 화면으로 가서 새로 시작하기를 눌렀다. 아이의 외모를 고르고, 성격을 고르고, 특기를 고르고, 성향을 고른다. 마지막으로 이름을 짓는다. 이것이 게임 안에서의 출산이다. 번거롭게 수정이 될 때까지 섹스를 할 필요도 없고, 열 달 동안이나 몸가짐을 조심히 할 필요도 없고, 못 생긴 아이가 나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성격이 나쁜 것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아이의 특기를 내가 잘 알고 있기에 딸이 방황하는 일 또한 없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는 딸보다도 딸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얼마나 편리하고 효과적인 육아인지.

   대부분의 게임 속 아이는 열 살부터 시작한다. 따라서 말도 못하고 자기 할일 제대로 못하는 영유아기는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밥은 식비만 주면 알아서 해결하고, 용변은 보는 것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화는 절대 내지 않는다. 일도 잘해서 돈도 잘 벌어오고, 공부는 시키는 것마다 성과가 금방금방 드러난다. 이번 아이는 무용을 가르칠 예정이다. 인터넷에 올라온 요령을 보고 아이를 키우고 있기 때문에. 절대 아이가 무용에서 실패할 일은 없다. 아이는 무조건 무용계의 최고가 될 것이다.

   ‘그거’가 울기 시작했다. 약간 고약한 냄새가 풍긴다. 나는 기저귀와 물티슈를 들고 ‘그거’를 향해 다가간다. 가져온 것을 서랍장 위에 올려놓고 ‘그거’의 허리에 손을 넣어 기저귀를 뺀다. 고약한 냄새가 팍 올라온다. 하루 종일 동안 아무것도 안 먹였는데 쌀 것도 있나. 나는 얼굴을 찌푸린다. 무엇인가 내 셔츠위로 툭툭 떨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뭉쳐있던 똥이 어느새 넓게 퍼져 흐르는 것을 본다. 먹은 것이 없기 때문인지 묽은 똥을 싼 것이다. 그것은 내 셔츠뿐이 아니라 장판에, 그리고 바닥에 펼쳐놓은 책에도, 먹다 남은 과자에도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기저귀를 열린 창문 밖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재빨리 옷을 벗어 바닥에 있는 것들에 묻은 똥을 닦았다. 그리고 나는 셔츠를 쓰레기통 안에 처박았다. 씨이발. 나는 욕을 하고서 ‘그거’에게 그냥 기저귀를 채웠다. 원래 물티슈로 한 번 엉덩이를 닦아준 뒤 기저귀를 채워야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현실의 아이는 왜 이렇게 불편한거야? 게임에서처럼 예쁜 아이를 낳아서 행복한 일만 있을 줄 알았는데. 게임보다 못한 새끼. 나는 ‘그거’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러자 ‘그거’는 작게 신음을 내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나는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무용 정기대회 시즌을 알리는 편지가 날아왔다. 사 년 동안 쌓아온 아이의 결실을 드디어 보여줄 차례다. 딸이 벌어온 돈으로 최고급 발레복을 샀다. 그러고도 꽤 돈이 남아 나는 아이와 간만에 레스토랑에 갔다. 딸의 심정을 물어보자 딸은 떨린다고 하면서 수줍게 웃었다. 그 모습은 또 어찌나 예쁜지. 인터넷에 따르면 아마 딸은 삼 등 정도를 할 것이다. 삼 위라서 조금 아쉬운 마음은 있지만 확실한 것은 이년 뒤에는 분명 정기대회에서 일등을 할 것이라는 것. 이 나라에서 무용의 최정상에 설 거라는 것이다. 나는 딸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에 대해 만족할 것이다. 힘내라 딸. 시간은 이제 개막식 시간이 되고 딸은 떨리는 마음을 감출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다. 나는 출전자들이 모이는 대기실에 딸을 들여보냈다. 하얀 피부에 컬이 들어간 금발의 소녀가 내 딸을 째려본다. 내 딸 또한 그 소녀를 째려본다. 라이벌인 탓이겠지. 나는 뿌듯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딸의 등을 팡팡 두드려주고는 대기실에서 나왔다. 이젠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나는 미리 사놓은 VIP티켓을 진행요원에게 내밀었다. 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아니지만, 딸의 모습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자리다. 딸이 얼마나 긴장하고 있을까. 나 또한 심호흡을 한다.

   또 다시 휴대폰이 몸을 떨었다. 휴대폰이 몸을 떰과 동시에 ‘그거’ 또한 울기 시작했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전화를 건 것은 역시 남편이었다. 나는 ‘그거’가 울음을 그치면 받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거’는 전화가 네 번이 걸려왔음에도 울음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작정하고 우는 건가? 다행히도 다섯 번째 전화가 끊겼을 때 ‘그거’는 울음을 그쳤다. 이제는 남편의 전화를 받아야 할 때이다. 남편의 전화가 또 다시 오고 내가 통화버튼을 눌렀을 때. ‘그거’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아까전의 침묵은 힘을 모으기 위함이었던 모양인지, 울음소리는 아까전보다 더 크고 처량했다. 나는 남편의 전화를 끊었다. ‘그거’의 울음소리를 들었으니 그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는 뻔했다. 끊자마자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휴대폰을 서랍장 위에 올려놓고 ‘그거’가 우는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적어도 똥은 아니다. 그렇다면 하루 종일 굶긴 것이 지금 ‘그거’가 우는 유일한 원인일 것이다. 그것 밖에 없었다. 나는 거실을 지나 부엌에 가서 커피포트에 물을 넣어 끓이기 시작했다. 분유 가루가 어디있더라. 나는 싱크대에 달린 서랍장을 열어젖히고 쌓여있는 물건들을 다 밖으로 꺼냈다. 한 시라도 아이의 울음을 멈추는 것이 급선무이다. 그래야 남편한테 전화를 걸 수 있을 것이고, 나는 편한 마음으로 아이의 무용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아아, 나의 아홉 번째 아이. 분유 가루를 찾을 때 즈음 커피포트의 물은 끓고 있었다. 나는 거기에 찬물을 조금 넣어 온도를 맞춘 뒤 젖병에 가루를 들이붓고 물을 넣어 젖병을 흔들었다. 가루를 많이 넣은 탓인지 아직 녹지 않은 가루가 가득하지만, 먹이면 그만이다.  나는 젖병을 들고 ‘그거’에게 접근했다. 아직 휴대폰은 울리고 있었다. 젖꼭지 부분을 ‘그거’의 입에 가져다 댄다. 하지만 울기만 할 뿐, 입에 전혀 넣지 않았다. 나는 젖병의 뚜껑을 열고, ‘그거’의 입을 벌렸다. 그리고 ‘그거’의 입에 분유를 부으려고 할 때, ‘그거’는 왼손으로 젖병을 쳤다. 나는 젖병을 손에서 떨어뜨렸다. 젖병은 침대 위로 떨어지고, 분유가 흘러나와 침대를 적셨다. 분유의 노란 빛이 침대를 잔뜩 물들이고 있었다. 적신다. 적신다. 나는 모니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모니터를 ‘그거’의 머리를 향해 내리찍었다. 아이의 두개골이 함몰되고. 이내 갈라지기 시작했다. 빨간 피가 잠깐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빨간 피는 벽지에, 그리고 천장에, 그리고 침대와 모니터에 모습을 드러냈다.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몸도 한번 내려 찍어보고, 팔도 한번 내려 찍어보고, 다리도 한번 내려 찍어봤다. ‘그거’는 비틀린 채 분유와 함께 침대를 적시는 중이었다. 적신다. 적신다. ‘그거’는 이제 조용할 것이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잔소리 같은 것은 들리지 않았다.

 

   “여보. 보여줄게 있어. 있지. 우리 아이가 지금 가장 멋있는 일을 하고 있어. 응. 진짜야. 오늘은 일찍 퇴근해. 아이에게 있어서 중요한 날이니까. 응. 응. 사랑해 여보. 보면 깜짝 놀랄거야. 히히. 우리 이렇게 대화하는 것도 되게 오랜만이다 그치. 난 응원하고 있을 태니까 늦지 않게만 와. 응. 알겠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