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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물리던 톱니바퀴가 빠져버린 것처럼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맥없이 바람 빠지는 소리가 가느다랗게 뽑혀 나오더니, 이내 노인은 거친 기침을 몰아 내뱉었다. 칼칼한 기침이 목에 걸린 듯, 노인은 괴로운 표정으로 한참을 컥컥거렸다. 그의 목에 눌어붙은 가래처럼 언제 먹었는지도 모를 음식물찌꺼기가 찌그러진 양은냄비에 흉측하게 말라붙어있었고, 울어버린 바닥재와 벽에 검버섯처럼 잔뜩 피어난 곰팡이들이 병든 그처럼 함께 늙어가고 있었다. 공중을 부유하던 먼지들은 어둠에 짓눌려 방바닥에 웅크린 채 굴러 다녔고, 한줌의 햇빛도 사치인 이 공간에서 세월에 바래버린 노인의 머리카락만이 유일하게 희었다. 이 작은 방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건 노인 혼자뿐이었다. 부고를 알리는 신문지 속의 글자들도 죽었고, 오래된 달력과 멈춰버린 시계속의 시간도 죽었다. 가끔씩 그의 공간 위를 지나가는 지하철이 노인을 찾아오는 유일한 손이었다. 덜컹거리며 스쳐 지나가는 지하철 소리에 노인의 기침소리도 묻혀, 자신도 죽어버렸나 하는 착각에 들기도 하는 그였다. 하지만 노인의 옆에 놓인 흑백사진과 그의 목숨을 바쳐 얻은 천에 매달린 금속덩어리가 아직 그가 살아 있다고 말해주었다. 벽에 곡선을 그리며 걸려 있는 붉은 천조각이 마치 차가운 비소를 짓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지하철 첫차가 피로를 실고 노인의 머리 위에서 지나가자, 노인은 리어카를 이끌고 밖으로 향했다. 기력이 거의 남아 있지 않는 그였지만, 최선을 다해 발버둥 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었다. 그가 군에 있으면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이었다. 총구는 강한 자 약한 자를 가려 향하지 않는다는 것.
 오래된 배가 출항하듯, 노인은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리어카를 끌었다. 좌우로 요동치는 리어카는 꼭 폭풍우에 휩쓸린 종이배 같은 모양새였다. 운이 좋게도 거리에 플라스틱 페트병들과 비닐이 많이 쌓여 있었다. 노인은 마치 태평양을 떠다니고 있는 거대한 플라스틱 산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는 쓰레기들을 리어카에 실으면서 대충 무게를 어림잡아보았다. 못해도 삼천 원은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힘없는 고동소리가 울려퍼졌다. 어제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그였다. 그의 배에 길게 남은 흉터처럼, 굶주림은 지워지지 않고 짙게 흔적을 남겼다. 그의 근육도, 시력도, 관절도, 모두 지워져 가고 흐릿해져 가는데 굶주림의 고통만큼은 가면 갈수록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 같았다.

 

 어쩌죠, 저희 더 이상 플라스틱은 받지 않는데. 비닐도 가지고 오셨어요? 저희 비닐도 더 이상 안 받아요. 뉴스도 안보고 사셨나…. 텅 빈 플라스틱 페트병이 리어카에서 낭자하게 굴러 떨어졌다. 이거 여기서는 못 받아요. 정 팔고 싶으시다면 저 멀리 큰 고물상까지 가셔야 해요. 이제 플라스틱 팔아도 인건비도 안 나오는데…. 돌아가세요. 고물상의 철문이 거친 소리를 내며 닫혔다. 노인은 한참을 굳게 닫힌 철문 앞에 서 있다 쓰레기가 잔뜩 쌓인 리어카를 끌고 길거리로 향했다. 노인은 말없이 리어카를 끌었다. 주웠던 것을 다시 내다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페트병들이 눈치 없이 리어카 위에서 와르르 와르르 투닥거렸다. 노인은 한참을 길거리에서 표류하다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노인은 근처 식수대로가 물로 주린 배를 채웠다. 배가 꾸르륵거리며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배는 불러오는데 쓰린 굶주림은 가시지 않았다. 물이 목구멍에 차오를 때까지 노인은 연거푸 물을 마셨다. 이윽고 노인은 처진 배를 이끌고 비틀거리며 리어카 옆의 벤치에 주저앉았다. 축 늘어진 노인의 모습은 영락없이 폐선 같았다. 녹슨 못과 같은 오래된 기억들을 삼키며 침몰하는 낡은 배의 모습.

 노인은 그 자리에서 한참을 가라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