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한번도 웃어보지 못한 공주가 있었다. 

임금님은 공주를 웃게 하는 자를 부마로 삼겠다는 방을 곳곳에 붙였다. 


두 명의 아들을 둔 아버지는 장남에게 말했다.

"얘야, 기쁜 소식이다. 너라면 공주를 웃게 할 수 있을 거야. 어렸을 때부터 넌 항상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해낼 정도로 총명했잖아? 네 동생은 개미도 죽이지 못할 정도로 어리숙한 반면, 너는 항상 과감하게 행동을 하곤 했으니까 이번에도 틀림없이 성공할 수 있을 거야." 

"아버지, 남들이 공주를 웃게 하기 전에 빨리 왕궁으로 가야겠어요." 


그 때 둘째가 뛰어들어왔다.

"아버지, 저도 갈래요."

둘째는 태어날 때부터 형을 시샘했다. 언제나 형을 넘어서려고  노력했지만 형의 능력은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실수를 해 오히려 비웃음을 사기 일쑤였다. 

어쨌든 아버지는 기뻤다. 1번의 시도보다는 2번의 시도가 성공의 확률을 더욱 높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 잘 생각했다. 그렇지만 순서가 있으니까 꼭 형이 먼저 임금님을 뵙게 해야 한다." 


두 형제는 왕궁으로 갔다. 하지만 전국의 방방곳곳에서 모여든 많은 젊은이들이 서로 먼저 임금님을 뵙겠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혼잡했다.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니 왕궁 문 앞에는 조그만 책상이 놓여 있는데, 그 위에는 공책이 펼쳐져 있어 경쟁자들이 순서대로 자기 이름을 적고 있었다. 형제도 공책에다 각자의 이름을 적었다. 한참 기다려야 차례가 돌아올 참이었다. 옆에 앉은 신하가 왕궁에 들어가는 사람의 이름을 빨간 줄로 긋고 있었는데, 30여명이나 되는 사람이 남아 있었다. 

형이 신하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한 사람당 얼마 정도 시간이 걸리나요?"

"그거야 사람마다 다르지요. 어떤 사람은 3분만에 쫓겨나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10분이 넘게 걸리기도 하지요."

"그럼 대략 5-6분 정도 걸린다고 보면 되겠네요?"

"글쎄요. 대충 그렇게 계산할 수도 있겠지만...."


형은 함께 온 둘째에게 말했다. 

"아우야, 지금 너무 혼잡하다. 남은 사람이 대략 30명이니까 짧게 잡아 150분으로 본다면 2시간 정도 후에 와도 시간은 넉넉하겠지. 왕궁 주위를 산책했다가 오자꾸나."

"형, 그렇게 하죠. 어차피 산책을 하면서 공주를 웃기는 방법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자구요."


형제는 산책을 했다. 둘째가 첫째에게 묻는다.

"형은 어떻게 웃길 참이에요."

"아, 나는 물구나무 서기를 하다가 공주 앞에서 넘어질 거야. 너는 뭘 할 거냐?"

"저는 벽에 부딪혀서 넘어질 거라구요." 


두 사람은 왕궁을 한참 돌다가 근처 공원에서 쉬기로 했다. 두 시간이 거의 다 지나자 동생이 말했다.

"지금 가더라도 30분 이상을 더 기다려야 할 거에요. 제가 먼저 갔다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알아보고 올 게요. 

"아우야, 고맙다. 그럼 난 여기에 있을 게." 


둘째는 왕궁으로 가 책상 위 노트에 이름 적힌 것을 훑어보았다. 앗, 형제의 이름이 적힌 데에서 두번째 앞 사람의 이름이 빨간 줄로 그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형한테 갔다 오면 이미 늦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는 조금 기다렸다가 한 사람이 나오자 신하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서는 왕궁 안으로 들어갔다. 


왕궁의 정문에서 바로 보이는 뜰에는 왕과 공주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둘째는 뜰을 두르는 벽을 따라 가며 이마를 벽에 부딪혀 튕겨지면서 빙글빙글 돌았다. 조금 벽에서 떨어졌다고 생각되면 다시 벽 쪽으로 가서 부딪혀며 빙글빙글 돌곤 한다. 이 광경을 본 왕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둘째가 열 번이 넘게 벽에 부딪힌 채 빙글빙글 돌았지만 공주는 엄숙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둘째는 반듯하게 일어서서 왕에게 나아가며 말했다.

"제가 물구나무를 서는 재주가 있습니다. 멋있게 물구나무를 서는 모습을 봐 주세요." 

물구나무를 선 동생은 한 팔 한 팔 앞으로 움직였다. 하늘을 향한 발은 모였다가 벌어졌다, 굽혔다 펴졌다 하며 묘기를 부렸다. 이윽고 경쾌한 리듬을 타는 듯 팔과 다리의 움직임에 어울어지고 있다. 손바닥을 들어 땅을 짚으려는 찰라, 둘째는 소리쳤다. 

"앗, 개미다."

둘째의 손바닥은 개미가 있는 쪽을 피하려다가 그만 돌멩이가 있는 쪽으로 옮겨졌으나 팔이 너무 벌어져 몸의 균형을 잃고 말았다. 

동생이 선 물구나무는 허물어졌고, 팔이 쭉 미끌어지면서 얼굴이 땅에 닿게 되었다. 그러면서 두 다리는 꿍 지면으로 떨어졌다. 


그 광경을 본 공주는 큰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으로 웃음을 짓는 공주를 지켜보는 가운데 왕은 기분이 좋아 신하들을 불러 둘째를 부마로 책봉했다. 

동생은 왕에게 말했다. 


"임금님, 저는 부마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사실 저는 형과 함께 왔는데, 벽에 부딪히는 것은 제 생각이었고 물구나무를 서다가 넘어지는 것은 형의 생각이었습니다. 저보다는 형이 먼저 들어왔어야 하지만, 시간이 다급해서 제가 먼저 오게 되었습니다. 저의 죄를 용서해주옵소서."


왕은 신하에게 명하여 공원에서 쉬고 있는 형을 급히 불러오게 하였다. 형이 들어오자 임금이 물었다. 첫째는 동생과 있었던 일을 낱낱이 얘기했다. 


왕은 곰곰이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 

"나는 여전히 형이 아니라 동생을 부마로 삼을 것이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실행하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