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군가를 불렀다. 시키지도 않았지만 모두가 그를 따라 불렀다. 그리고 군가가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교전이 시작되었다. 화염병이 날아들었다. 누군가 ‘불이다!’라고 외쳤다. 그 불 사이로 화려한 군복을 입고 총검을 붙인 갈색 머스킷을 든 적군들이 들어왔다. 화염을 뚫고 온 그 존재는 인간이 아닌 것 같았다. 하나둘 적탄에 스러졌다. 나와 함께 계단을 올라온 검병은 머리가 터져 죽었다. 소리를 질렀던 예비군은 눈을 부릅뜬 채 피거품을 뿜어대고 있었다. 다른 검병이 군가를 이어 부르며 울부짖으며 저항하다 고꾸라졌다. 미쳐 다 흘리지 못한 눈물이 피와 함께 섞여 흘러내렸다. 모든 것이 그림처럼 보였다. 어느 순간부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검을 들었다. 하지만 미처 휘두르지도 쏘지 못한 채 어깨의 격한 통증을 느끼며 쓰러졌다. 나는 그제서야, 거기에 이르러서야 종말이 왔다는 걸 실감했다. 수에즈에서 후퇴할 때도, 시청에서 후퇴할 때도, 오늘도 어쩌면 나는 모든게 끝나간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이 현실로 다가왔다. 적군은 성채 옥상에 자신들의 국기를 걸었다.
적군은 국기를 건 뒤 분노에 차 쓰러진 병사를 걷어차며 확인사살하고 있었다. 쓰러져 있던 나는 와인 한잔 더 마실걸 하고 생각했다. 눈을 질끔 감았지만, 나는 죽지 않았다. 적군 장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고함치자 적군 병사들은 물러나고 적군 군의관이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그렇게 살았다. 어깨를 천으로 감싸 맨 나는 정신이 돌아오자 다른 살아남은 자들과 함께 성채아래로 내려왔다. 대포들은 모두 터지고 불탄채 버려져 있었다. 방어선은 모두 무너져 있었고 우리 병사들이 내 팽겨져 있었다. 적군 장교가 다시 돌아다니며 항복을 촉구했다. 그것은 우리에겐 마치 장례식장의 울음소리 처럼 들렸다. 적군은 성채 계단 아래에서 우리에게 리버시엔 국기를 밟고 지나갈 것을 요구했다. 군가를 제창했던 우리는 저항이 무색하게 눈치를 보며 그 말을 들었다. 적군이 비웃었다. 나를 바라보던 기병의 눈이 생각났다.
근방의 리버시엔 군의 포로들은 모두 시청광장으로 모였다. 우리는 광장의 잔디밭에 정렬했다. 적군 장교가 소리를 지르고 리버시엔 출신인지 하는 부사관이 웅얼거렸다. 우리는 그곳에 한동안 앉아 있었다. 그 부사관이 그런 우리들에게 갑자기 종이를 들고 와 읽어 주었다.
“친애하는 리버시엔 군 용사 여러분, 자랑스러운 리버시엔 군 동지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너무나도 자랑스럽습니다. 우리는 조국을 수호하기 위하여 압도적인 적들을 맞아 용맹하게 싸웠습니다. 비록 중과부적으로 우리의 소임을 다하지 못했지만 리버시엔 군 용사 여러분의 분투는 영원히 기억 될 것입니다. 우리 사령부는 1752년 6월 17일을 기점으로 모든 전투행위를 중지할 것을 결정하였습니다.금일을 기점으로 모든 전투행위를 종결 할 것을 명령합니다. 대장 샤바브”
적군들은 그들의 편지를 통해 리버시엔어로 된 무언가를 동시에 보았다. 그들은 하늘을 향해 머스킷을 쏘아대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것을 듣고 몇 시간 만에 대장이 된 이 사람은 카이로에 같이 있었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나의 전쟁도 리버시엔의 전쟁도 모두 끝났다.
숨어있던 카이로 시민들은 하나 둘 그들의 은신처에서 나왔다. 거리는 일단 대충 치워졌다. 우리는 수용소로 향할 줄 알았지만, 어찌되었는지, 오류가 있었는지, 아니면 아무런 가치가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대로 카이로에 내버려졌다. 군복을 벗고 부서진 집으로 들어가 옷을 챙겨 입었다. 그러면서 군인으로 수용소로 끌려갈까 군화도 벗어버린 내 자신을 환멸했다. 한 적군 병사가 한 여성을 옷을 벗기고 끌고가고 여성은 악을 쓰며 울었지만 옆에 있는 리버시엔군 헌병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를 경멸했지만 그것은 동시에 자기 혐오이기도 했다. 그는 나에게 뭘 보냐고 소리치며 가버렸다. 나라는 사라졌다. 내가 리버시엔 백성 인지도 확실치 않았다. 이제 적국의 국민이 되는 것인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수에즈부터 짓이겨오던 두통이 심해졌다. 머리가 너무 아팠다. 패전한 조국의 군인으로서 세상에 내던져 졌다. 훈장도 위로도 감사도 치료도 없다. 머리가 아파왔다. 총으로 두들기는 것 같았다. 귀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것은 총탄소리 같기도 했고 말소리 같기도 했다. 죽어있는 기병이 웅얼거렸다. 왜 죽지 못했나. 나도 모르게 그의 물음에 답하며 입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렇게 머리를 부여잡고 아무도 없는 도로를 터벅터벅 걸었다. 바닥에는 적들의 승전선언문이 잔뜩 붙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