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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가 집을 나갔다. 식탁에 오빠가 편지를 남겨두었다. 편지에는 딱 한 줄 적혀 있었다.


  ‘달에서 초대장이 왔어. 갔다 올게.’


  집은 물론이고 동네에서도 난리가 났다. 동네에서 손에 꼽히는 S대 합격자가 가출을 했다니. 엄마, 아빠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던 그 오빠가 가출이라니. 이야기를 들은 처음엔 다들 믿기 어렵다는 기색들이었지만, 마트에서든 사우나에서든 회사에서든 짙게 어둠이 깔린 부모님의 표정을 보고 납득하는 분위기였다.


  9살의 나는 갔다 온다던 오빠가 집에 오지 않아 부모님께 늘 물었었다.


  “오빠 언제 와요?”


  부모님께서는 다른 물음엔 다 답을 해주셨지만, 이 질문만큼은 답을 피하셨다.


  답답해진 나는 오빠를 찾으러 가기로 했다. 부모님이 계실 때는 컴퓨터를 못 썼기에, 나는 부모님이 안 계시는 날이면 집에 일찍 돌아와 달에 가는 법을 검색해보았다.


  - 닐 암스트롱은 1969년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갔습니다.

  닐 암스트롱? 힘이 센 사람인가? 달에 가려면 힘이 세야 하는 걸까? 오빠는 되게 빌빌대는데. 아폴로 11호는 또 뭐람. 말인가? 로봇인가?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어 글을 클릭해봤다. 우주를 찍은 사진과 수많은 각주로 가득한 글을 보니 정신이 아찔해졌다.

  글을 끄고, 다른 글을 찾아보았다.


  - 닐 암스트롱은 정말 달에 갔을까? 달 착륙 음모론

  음모론?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더 알아봤지만 어린 나이의 나로서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는 것들로 가득했다. 검색에 지루함을 느낄 무렵 도어락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다. 나는 빨리 일어나 컴퓨터와 연결된 멀티탭 전원을 껐다 켰고, 방으로 달려가 교과서를 폈다. 다행히 어머니께는 들키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부모님께서는 시험을 보면 꼭 성적표와 시험지를 들고 오라 나에게 늘 말씀하셨다. 나는 계속 백 점을 맞았고, 그때마다 대답은 거의 비슷했다.


  “백 점이야? 잘했어.”

  백 점이 아닌 때에는 맞았었다.


  나중에, 머리가 6년만큼 더 커진 후에야 대충 달에 가는 법을 알게 되었다. 우주비행사라는 직업을 가져야 달에 갈 수 있다고 한다. 이상했다. 우리 오빠는 천문학부도, 지구환경공학부도 아닌, 경영학부였다. 심지어 신입생이었다. 나는 대학의 한자가 뭔지도 몰랐지만, 경영이라는 것이 우주에 가는 것이 아닌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근데 오빠는 어떻게 우주비행사가 될 수 있었을까?


  경영학부 신입생이 달에 갈 수 있나요? 인터넷에 검색해보았다. 검색 결과는 없었다.


  “백 점이지? 그래.”


  중학교에 들어가자, 성적표를 들고 왔을 때의 부모님의 답변은 내가 공부하는 것처럼 의무가 된 것 같았다.


  오빠는 10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다들 오빠는 죽었다고들 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달이 얼마나 좋길래, 오빠는 돌아올 생각을 않는 걸까? 열심히 궁리해봐도, 갔다 온다던 오빠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언제였는지는 모르겠다. 어머니께서 나를 때리셨다. 괜찮았다. 오빠도 100점을 못 받아오는 날이었으면 매번 맞았다. 나도 100점 맞지 못했으니, 오빠의 몫만큼 해야 하는 건 당연했다.


  “응? 그 놈은, 이거보다, 더, 힘든 것도, 꾹 참고, 했는데, 너는, 왜, 이 모양이니?”


  회초리를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불규칙한 음절로 끊는 것이, 타령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의 타령은 늘 공부가 주제였다. 한 문제라도 틀린 게 있으면 그 열 배를 맞았다.


  “이번이 벌써 4번째야. 부족한 게 있으면 말을 하라니까? 다 해줄 테니까?”


  다 해줄 테니까― 이 말은 엄마의 18번이었다. 바보같이 이 말을 믿고 언젠가,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뭐, 어머니께서는 철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머리를 한 대 쥐어박으셨다. 그 기억은 선명히 뇌리에 새겨져 있었다.


  “어휴…… 그래, 그놈보다 네가 나은 건 있다. 이렇게 과학 공부하면 좋잖아. 왜 그놈은, 문과에 가겠다고 그 고집을 피우고, 집을 나갔는지…… 어휴.”


  가끔 이렇게 어머니께서는 때리는 걸 멈추고, 내가 알지 못하는 오빠의 모습을 말해줄 때가 있었다. 그 모습은 절대 변하지 않았고, “문과에 가겠다고 그 고집을 피우고, 집을 나”간 모습이었다.


  “그놈처럼 머리는 좋아서 다행이야, 그래도.”


  그렇게 말하며 어머니께서는 회초리를 한 번 더 휘두르셨다.


  어머니께 맞다 보면 가끔은 오빠를 원망하기도 했다. 오빠가 있었다면 나 대신 욕을 먹었을 텐데. 이기적인 마음임을 알았지만, 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먹어지는 것이었다. 이럴 때마다 나는 침대에 얼굴을 묻고 소리 죽여 울었다.


  오빠는 나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었다. 오빠가 부모님께 맞는 날이면, 밖에서 들리는 부스럼이 마치 먹잇감을 찾는 사자처럼 으르렁댔다. 그 사이로 오빠가 방문을 닫는 소리가 나면, 나는 오빠 방으로 달려가 오빠의 이불 속으로 훌쩍 들어갔다. 나름 오빠를 위로하기 위해 그랬다.


  내가 들어올 때마다 당황하던 오빠의 꼴을 보는 것이 매번 우스워 자주 낄낄대곤 했다. 오빠가 책상에서 나머지 공부를 하는 걸 보다 보면, 나도 어느새 잠이 들었다. 가끔 악몽을 꾸는 날이면, 따스한 오빠의 손이 떨리는 내 등을 어루만져주곤 했었다. 그리고 언제든, 자고 일어나면 오빠는 없었다.


  “돈이 전부야. 응? 의대를 가야 된다니까.”


  거실에서 맞을 만큼 맞고, 방으로 돌아왔다. 열려 있는 창문 틈으로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바람― 공기의 흐름이기도 하고, 동사 ‘바라다’의 어간에 명사 파생 접사 ‘-ㅁ’이 붙은 형태이기도 한 단어.


  불현듯 오빠가 편지를 남긴 이유가 궁금해졌다. 오빠는 왜 달에 간다고 우리에게 알렸을까? 달에 갈 거면, 그냥 조용히 짐을 싸서 집을 떠나면 될 일이었다. 오빠는 자신이 달에 간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리고 싶었던 걸까? 왜?


  창문을 활짝 열어, 이마 위로 반짝이는 달을 보았다. 순간적으로 점멸된 백색광이 눈을 에워쌌다. 나는 손으로 시야를 가리고, 손가락 사이를 살짝 벌려 바깥을 보았다. 까맸다. 머쓱해진 나는 손을 치웠다. 평소와 똑같은 창문 밖이었다. 괜히 허탈해져 몸을 침대에 뉘었다. 머리맡에 네모난 모서리가 느껴졌다. 어젯밤에 보다가 덮은 영어 단어장인가 싶어 몸을 들었다. 그것은 편지였다. 빨간 스티커가 중앙에 붙어 있는 편지. 나는 본능적으로 편지를 뜯었다.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달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나에게도, 오빠가 받았던 초대장이 온 것 같았다.

 

  #

  나는 달에 가지 않았다.


  그날 이후에도 달은 아름다웠다.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위로 소복이 쌓인 달빛을 마주하는 건 즐거웠다. 그럼 왜 달의 초대를 받지 않았느냐고, 그야,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으니까.


  우리가 보는 달의 표면은 항상 똑같다고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가 보던 면만 보게 된다. 태양-지구-달의 상대적인 위치에 따라 모양만 달라질 뿐이다. 그 사실을 지구과학 선생님께 들은 후로, 나는 달을 믿을 수 없었다. 달은 나에게 좋아하기도 싫어하기도 애매한 애증의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럴 무렵,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친구가 내 오빠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오빠 이야기는 가급적 하고 싶지 않았지만, 하도 보챘기에 나는 간략하게나마 달에 간 오빠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소설 같다며 재밌게 들었다.


  그 다음 날, 친구가 자기가 그려 온 그림을 한 번 봐보랬다.


  “이게 뭐야?”

  “달의 뒷면, 어때? 예쁘지?”


  그림 속에는 하얀 달이 있었다. 하얀 달에 언제 농지개간을 한 건지, 곳곳에 형형색색의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한 줄기 강은 달의 표면을 관통한다. 지구에서 물을 대어오기라도 한 걸까?


  “너, 지금 고증 따지고 있지.”

  “……아니?”


  문득 그림 속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거친 표면 위에서 누군가는 뛰어 놀고, 누군가는 열심히 꽃에 물을 준다. 


  “달의 뒷면은 말이지, 상상하는 거야. 여기 말야, 여기에서는 달토끼가 떡방아를 찧고 있지 않을까?”


  나는 그녀의 말을 따라, 한 번 달에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봤다.


  “그러면, 여기에서는 달토끼들이 인간 정벌을 위해 살상 무기를 개발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넌 낭만이 없구나?”

  “그런가?”

  “이 이과 놈.”


  달의 뒷면에 저런 세계가 있다면, 나도 가보고 싶다. 하지만 이곳에는 우리 세계만의 불확정성이 있다. 모든 것이 확률로 결정되는, 미시세계의 불확정성과는 결이 다르다.


  가령 80%의 확률로 백만 원을 얻고 20%의 확률로 십만 원을 얻는 선택, 100%의 확률로 80만 원을 얻는 선택, 총 두 개의 선택이 있다고 해보자. 두 선택 중 기대치는 전자가 높은데, 우리는 주로 후자를 선택한다. 돈을 예시로 들어서 안 와닿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것이 우리 세계의 불확정성이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나는 오빠와 달랐다. 오빠는 달의 모든 것을 사랑했지만, 나는 달의 앞면만을 사랑했다. 이 점을 깨닫자 한편으론 대체 오빠를 끌어당긴, 그 희멀건 놈의 정체는 무엇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나도 그놈 혹은 년은 볼 수 있다면, 나도 오빠처럼 매료당할 수 있을까?


  다만 뭐가 되었든 간에, 나는 달에게서 초대장을 받았었다. 그 사실조차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친구가 날 위해…… 인지는 내 생각일 뿐이지만, 암튼 말도 해줬겠다, 나는 수능을 마치고 일주일 후, 부모님에게 독립하겠다고 말했다. 오빠처럼 해볼까 고민도 해봤지만, 나중에 내가 지금의 오빠와 같은 취급을 받는다면 많이 슬플 것 같아 그만두었다.


  부모님은 불같이 말렸다. 뭔 독립이냐. 어차피 그 성적으로는 근처에 있는 의대 쓸 거 아니겠느냐. 집에서 살고 학교 다녀라. 이 레파토리도, 내가 보지 못했던 오빠의 모습처럼 19년간 바뀌질 않았다.


  “오빠가 왜 집을 나갔는지 아세요?”

  “그놈 얘기가 여기서 왜 나와? 그리고, 그게 이거랑 뭔 상관인데.”


  역정을 내는 부모님을 보니, 괜히 없던 정도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오빠가, 왜 굳이 편지까지 써가며 ‘나 나가요’ 했는지 아시냐구요.”


  문득, 4년 전에 보았던 초대장이 떠올랐다.


  “그놈 얘기를 왜 하냐니까? 너 멍청이 아니잖아.”

  “말해줘요? 자기가 나가면서, 자기 같은 동생을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 남긴 거예요.”


  부모님은 아무 말도 안 했다. 나는 이왕 입을 연 김에 더 말하기로 했다.


  “오빠는 그 진심을, 편지에 담았는데, 하긴, 홧김에 찢어버리셨으니 알 리가 없죠.”


  오빠가 편지를 남긴 이유는 단순했다. 나에게, 그리고 부모님에게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으니까. 나한테는 걱정하지 말라고, 오빠 나중에 다시 온다고, 되지도 않는 안심을 만들어 줬다. 부모님한테는 이런 짓 다시는 하지 말라고, 충고한 것이다. 갓 성인이 된 20살의 오빠가.


  물론 이것은 나의 생각일 뿐이었지만, 무엇이든 나의 생각이 가장 중요한 법이었다.


  “너…… 부모한테 말버릇이 이게 뭐냐.”

  “부모님이 이러니까 그러죠. 매일같이 공부시키고, 100점 못 맞아오면 두들겨 맞고, 그러니 예절 교육은 밥 말아 먹는 게 당연하죠.”


  오빠는 이러기 싫어서 편지라도 썼을지 모르겠다. 그 착한 사람은 원래 그랬지. 원래 바보같이 다 맞아주고, 내 앞에선 울지도 않고.


  “이 말은 욕 아니니까, 끝까지 들어보세요. 시험 100점? 의대? 물론 중요하죠. 없으면 당신들 같은 삶을 살아야 하니까. 근데, 당신들 삶이 그렇게 불행해요? 왜……”

  “너 나가. 그냥 꺼져버려!!”


  더 얘기하고 싶었지만, 원하던 대답도 들었겠다, 그만두기로 했다.


  “네. 감사합니다. 대신 찾지 마세요. 의사 되면 용돈은 꼬박꼬박 챙겨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이걸 원했던 거 맞죠?”


  방에 이미 싸두었던 짐을 챙기고, 집을 나왔다. 집 밖으로 캐리어를 들고 와 처음 들이마신 공기는 뭐랄까,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사실 부모님께, 이렇게까지 말할 생각은 없었다. 부모님 생각도 일리는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 세상은 돈이 전부였다. 하지만 돈으로 세상을 살 수는 없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고, 선택을 했어야 했다. 부모님에게 이것을 말하고, 함께 으쌰으쌰 하며 여생을 보내든지, 아님 이렇게 뛰쳐나오든지.


  부모님에게 신물이 날대로 났던 난 이렇게 말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빌어먹을 불확정성 때문에, 그들에게 여지를 줬다간 난 돌고 돌아 그들과 결국 같이 살았을 테니까. 그래서 후회는 하지 않았다.


  돈은 충분히 있었다. 이미 수능 전에 온라인 과외를 몇 번 했었다. 대학생인 척 신분을 숨기고 꽤 짭짤한 수익을 남겼었기에, 그 돈으로 보증금과 월세를 마련해 합격할 대학 근처에 원룸을 잡았다. 아직 수능 성적표도 나오지 않았던 때지만, 그때의 나에겐 확신이 있었다. 좌우지간 수능을 잘 봤을 거란, 그런 확신.


  결과는 내 예상과 동떨어지지 않았고, 나는 우리 집과 멀리 떨어진 학교의 의과대학에 합격했다. 첫 학기 등록금은 모아뒀던 돈으로 해결했고, 이후는 학기 동안 과외를 겸하면서 어떻게, 어떻게 해결했다. 힘들었지만, 나름대로 보람은 있었다. 가르쳤던 학생 하나가 나랑 같은 학교, 같은 과에 오니 기분이 얼떨떨하기도 했다.


  연인도 생겼다. 처음엔 사귈 맘이 별로 없었지만, 그가 하도 들이대다 보니 사귀게 되었다. 분명 ‘난 연락 자주 못 해.’라고 말했으니, 뒷감당은 그의 몫이었다.


  다만 사귀는 기간이 1년, 2년 늘어날수록, 나도 그를 찾기 시작했다. ‘뭐해?’라는 그 상투적인 메시지를 내가 먼저 보내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없는 시간 쪼개서 카페 가고 영화관 가고, 가끔은 돈 팍팍 써서 어디 여행도 가고…… 그와 많이 만날수록, 삶에 활기가 도는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되는 건 당연했다. 제대로 된 친구라곤 고등학교 때 그 미술 친구 말고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가끔 그를 만나 교수가 어쨌네, 저쨌네 하는 시시한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되게 신선한 일이었으니.


  언제였나, 연인이 갑자기 약속을 깨 심통이 났었는데, 마침 고등학교 때 그 미술 친구가 생각났다. 나는 부리나케 수소문해 미술 친구를 찾았고, 연락이 닿은 그녀는 나를 자신의 집에 초대했다.


  소식은 끊긴 지 오래였지만 친구는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미술 친구는 유명한 미대에 합격해, 최근에는 소소하게나마 자기 작품전도 열었다는 것 같다.


  “우와. 대단하다.”

  “대단하긴, 네가 더 대단하지. 그 공부를 어떻게 버텨. 너도 참 독하다, 독해.”


  솔직히, 깜짝 놀랐다. 내가 이런 말을 듣는구나. 들을 자격이 되는구나. 이런 말을 해준 사람이 주위에 아무도 없어서 그랬던 걸까. 괜히 눈물이 났다.


  “야, 야, 우냐? 왜?”

  “아니야. 눈에 먼지가 들어갔네.”

  “얘는 나이를 먹으니까 더 귀여워진 거 같네.”

  “무슨 말이야, 그게?”

  “장난이야. 그래서, 뭐 마실래?”


  그녀는 냉장고에서 무언가를 꺼내고 있었다.


  “뭘?” 

  “술 말이야. 술. 이런 날에는 술이지. 특별한 손님이 오셨는데.”

  “나 술 마셔본 적이 없어서……”

  “헐, 진짜? 왜?”

  “글쎄. 별로 생각이 없어서?”

  "과팅이나, 모임 안 나가봤어?"

  "시간이 없었거든……"


  친구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젓다가, 이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안 되겠다. 이 언니가 알려줄게!”

  “너 나랑 동갑이잖아.”

  “말이 그렇다는 거지. 너, 낭만이 없는 건 여전하네?”

  “그럴지도 모르겠다.”


  맞는 말인 것 같아 슬쩍 웃었다. 그녀는 가만히 내 눈을 응시했고, 곧 거대한 병들을 양손 가득 들고 와 테이블에 두었다.


  친구가 안주를 좀 준비하겠다고 요리하는 동안, 나는 생전 처음 보는 것들을 한 번 이리저리 탐미해봤다. 시중에서 파는 음료들도 있었고, 딱 봐도 술같이 생긴 게 더 많았다. 그런 병들을 만져보기도, 툭툭 때려보기도, 몰래 병뚜껑을 따서 냄새를 맡아보기도 했다. 지독했다. 한 번 몰래 마셔보기까지 생각했던 나는 바로 뚜껑을 덮었다. 이런 걸 마신다고?


  그녀가 양손에 감자튀김과 나쵸 더미, 그리고 디핑 소스 몇 개를 들고 왔다. 난 이런 게 취향이었다. 그녀가 가져온 것들을 먹으며 나는 감탄했다.


  “우와, 너 요리 잘한다.”

  “……나쵸는 그냥 과자 뜯은 거야.”


  머쓱해진 분위기를 타, 친구는 여러 가지 칵테일을 나에게 만들어 주었다. 진 토닉, 데킬라 어쩌구, 에스프레소 뭐였더라…… 어려운 술 이름들을 잔뜩 말해주긴 했는데, 술 때문인지 기억에 남은 건 몇 개 없었다. 그래도 생각만큼 맛이 없진 않았다. 대부분은 술인지 모를 정도로 되게 달고, 음료수 같은 것들이었다.


  오랜만에 만나 대화가 자주 끊기면 어떡할까, 걱정했었는데 의외로 우리는 죽이 잘 맞았다.


  “네가 나를 먼저 찾을 줄은 몰랐는데.”

  “나도.”

  “너, 많이 바뀌었다? 남친이라도 생겼어?”

  “헐, 어떻게 알았어?”

  “감이야. 예술가의 감.”

  “그런 게 있어?”

  “아이 참,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그렇구나.”

  “너는 사람이 예뻐서, 있을 거 같았어.”

  “그게 무슨 말이야?”

  “칭찬이지. 의대는 다닐 만해? 무슨 느낌이야?”

  “그냥, 꾸준한 거 같아. 힘들고, 힘들고, 힘들고.”

  “그래, 그렇겠지. 쉬운 일이 어디 있겠냐.”

  “너는 어때?”

  “나? 나는 뭐, 그냥. 매일 그림이나 그리지. 안 그려지면 어디 가서 슬쩍 눕고.”

  “풋, 그게 뭐야.”

  “진짠데?”


  알량한 얘기를 주고받으며, 밤은 달빛에 젖듯이 무르익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시다 보니, 나나 친구나 둘 다 술에 취해 자기 몸도 못 가눌 정도가 되었다.


  이제 가봐야겠다고 하니, 친구는 굳이 날 배웅해주겠단다. 나는 그녀가 편히 쉬길 바라 거절했지만, 계속 어린 애처럼 칭얼대는 바람에 포기했다.


  “너는 예나, 지금이나…… 다른 게 엄는 거 같다?”

  “응? 머가.”

  “그때 오빠 얘기도, 내가 마랄 때까지, 물어봤자나…….”

  “뭔 소릴 하는 거야?”

  “핏, 아니다.”


  혀가 계속 꼬여도 말은 계속 나왔다. 이런 게 술인가?


  서로서로 지탱하며, 우스꽝스러운 꼴로 택시를 기다렸다. 친구가 균형을 잃으면 나도 같이 휘청거리고, 겨우 균형을 잡으면 친구가 내 얼굴을 보고선 헤쭉 웃었다. 평소였다면 왜 웃냐고 물었겠지만, 이번엔 나도 덩달아 웃었다.


  “아, 마따. 물어보고 싶은 게 이썼는데.”


  택시가 하도 안 와 투덜대고 있을 무렵, 친구가 나에게 물어봤다.


  “응? 머얼?”

  “너, 그, 누구냐, 그, 딸! 그래, 달. 달 어떻게 됐어.”

  “머어?”

  “달 어떻게 됐냐고오오!!”

  “달? 달은 저어기 있지?”


  나는 하늘을 가리켰다. 친구는 고개를 홱홱 저었다.


  “저 달 말고오! 네, 네 그 뭐냐…… 그, 있자나…… 오빠야?”

  “아~ 오빠야, 오빠야……”


  오빠를 되게 오랜만에 부르는 것 같았다. 마음 한 편이 울컥했고, 마음에 있는 말들이 입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오빠야…… 나 이찌? 나 진~짜 열심히 살고 이따…… 지짜…… 엄빠도 쌩 까고, 혼자 살라고…… 응. 그래서…… 죽어라 공부하고…… 오빠 보고 시퍼도 꾸욱, 참고…… 열심히 산다…… 근데 오빠야는 언제 오나…… 달 갔따 온다매, 가따 온다매애애!!”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그 이후로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어딘가에 머리를 부딪쳐 그대로 쓰러진 나를, 미술 친구가 마침 택시를 타고 근처 병원에 데려다줬다고 한다. 눈을 떠보니 친구의 집이었다. 나는 너무 부끄럽고 미안해 미술 친구에게 연신 사과를 했다. 그녀는 괜찮다고, 담에 또 보자고 했다.


  근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하필 이날의 추태를, 연인의 친구가 본 모양이다. 그래서 그 친구가 이 일을 연인에게 알리고, 연인은 내가 오빠라는 사람과 바람을 피운다고 오해를 하게 되었다. 나는 오해를 풀기 위해 오빠의 이야기부터 부모님 이야기까지, 전부 하게 되었다.


  굳이 부모님 얘기는 안 해도 됐지만, 그만큼 나는 그에게 절박했다. 그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좋은 사람은 다시 못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사정을 전부 들은 그는 나를 이해해줬고, 우리 사이는 더욱더 돈독해졌다.


  그 무렵 오빠 생각이 많이 났다. 여전히 공부할 건 많고, 교수는 옆에서 칭얼댔지만, 오빠가 살고 있을 달의 모습을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몽글몽글해지고 곧 따스해졌다.


  그렇게 남들과 다르지 않은, 아니― 얼추 비슷한 내가 국시에 합격하던 날, 부모님 두 분 다 돌아가셨다. 마트에서 집에 돌아오던 길에 사고가 나, 즉사하셨다고 한다.


  이 사실을 전화기로 듣자 뭐랄까,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이런 건 처음이었다. 집을 나올 때만 해도 부모님이 어떻게 되든지 괜찮을 것 같았다. 의외로 나에게 자식의 정이라는 것이 남아 있었나 보다.


  엄마와 아빠의 가족 분들에게 두 분의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연락을 돌렸다. 다들 사정이 녹록지 않으신 것 같아, 빈소 없이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화장은 이틀 뒤에 하기로 했다.


  오빠가 없었기에 모든 부담을 내가 져야 했다. 이따금씩, 어렸을 시절 오빠를 무심코 원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럴 때면 나는 픽 웃고, 부모님의 영정 사진을 바라봤다.


  대학교 입학 이후, 몇 번 용돈을 보내드린 것 말고는 부모님과 교류가 없었다. 근데 갑자기 들려온 소식이, ‘돌아가셨다’라니. 허탈하고 괜히 아쉬운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의대의 꿈을 심어준 사람들인데.


  그리고는 오빠 생각이 났다. 오빠는 이 일을 모를 텐데, 달으로 어떻게 편지를 보낼 수 있을까? 달에서는 우리에게 초대장도 보낼 수 있지만, 우리는 달에게 편지조차 보낼 수 없다.


  오빠는 이런 달의 모습을 알고 있었을까? 알아도 갔던 걸까? 아니면, 가서 깨달았을까? 돌아올 방법이 없기에, 그곳에 계속 머무르는 걸까? 질문해도 돌아오는 것은 한숨뿐이었다.


  그렇지만, 돌아오는 것이 한숨뿐이었기에 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 갑자기 ‘도와줘’라고 적힌 오빠의 편지가 온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오빠는 희멀건 달과 짝짜꿍하며 잘 살 것이다. 달에서도 잘 못 살면, 달에 간 이유가 없으니까.


  장례를 마치고 나니, 지내던 기간과는 다르게 의외로 남는 것이 없었다. 그리움, 미안함 같은 것도 없고, 화낼 일 같은 것도 없었다. 다만 입관식 진행 중 지도사분께서 말씀하실 때 눈물을 조금 흘렸었다. 화장을 마치고, 납골당에 봉안함을 안치한 후부터 매년 기일엔 그곳에 들려 두 분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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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나는 어찌어찌 의사가 되어, 괜찮은 수입을 벌어 살고 있다. 예의 그 연인과 평범한 가정을 꾸려 무난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가끔 오빠 생각이 나면 편지지를 한 장 꺼낸다. 창문을 열어 하늘 높이 일렁이는 달을 바라본다. 한 방울, 두 방울, 생각은 검은 잉크가 되어 종이 위에 점을 찍는다. 첫 문장조차 고르지 못한 채, 달맞이꽃이 피던 그 계절을 회상한다.


  오빠, 잘 지내?


  겨우 한 문장을 쓰고, 편지지를 구겼다. 어느새 거실에는 남편과 자식이 와서 하하 호호 떠들고 있었다. 나는 서재 문을 열고 거실로 나섰다.


  순간이지만 어렴풋이, 달빛이 밝았다. 어라, 달이 왜 여기에…… 나는 당황해 그 자리에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순간, 달의 옆에서 아들의 얼굴이 나왔다.


  “와하하! 깜짝 놀랐지?”


  평소처럼 밝게 웃는 아들을 보니 정신이 들었다. 아들은 플래시를 들고, 내 얼굴에 비췄던 일이었다.


  “그런 장난 하면 못 써요.”


  옆에서 남편이 아들을 나무랐다. 어떻게, 놀란 나보다 더 당황하는 것 같다. 나는 태연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머, 멋진 손전등이네. 이게 뭐야?”


  아들은 속사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내일 학교에서 동굴 체험을 하러 가는데, 선생님이 손전등은 꼭 하나 사 오라고 해서, 아빠랑 같이 사러 갔는데, 옆에 있는 장난감이 너무 멋있었는데, 아빠가 안 사줬다나 뭐라나.


  “미안해. 당신이 이렇게 놀랄 줄은……”


  왁왁하는 아들의 목소리 사이로 남편이 속삭였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나는 편히 웃어 보였다. 정말 괜찮았다. 오빠가 보던 달을, 이제야 나도 본 것 같으니까.


  오빠에게 보내지 못한 편지는 서재 한구석에 차곡차곡 쌓인다. 이런 날이면 오빠가 바라봤던 달의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하얗게 빛나는 보름달이었을까? 은연히 밝은 그믐달이었을까? 아무것도 비치지 않은 삭이었을까? 아님, 이 모든 게 아니었을까? 정답을 찾을 수 없는 상상의 바다를 헤매다 보면, 오빠의 얼굴조차 희미해진다.


  깨진 조각을 하나씩 맞추고, 마지막 조각을 끼워 넣는 순간이면 나는 이런 고민을 했다.


  오빠는, 날 기억하고 있을까?


  지구에서는 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으니까, 달에서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달에는 지구에 있는 것보다 훨씬 성능 좋은 망원경이 있을 수도 있다. 저 달의 뒷면에는, 달에 간 사람들이 지구에 있는 우리를 그리워해 우리를 볼 수 있는 방법을 매일같이 연구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있다. 내가 오빠를 추억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