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 김민수는 7월 19일, 자택 근처 편의점에서 들깨라면을 500원에 샀습니다. 이는 명백한 특혜가 분명합니다."

검사의 엄숙한 톤이 재판장을 울렸다. 그의 뒤로는 피고 김민수에 분노한 방청객들이 아우성이었다.

"피고 김민수는 ZS25 한빛동점에서 들깨라면을 500원에 각 30개를 산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재판장님, 이건 명백한 특혜입니다. 피고 김민수는 그의 사회적 지위를 이용하여 들깨라면을 500원에 산 것이 틀림없습니다!"

방청객들이 자신에 찬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피고 김민수에게 욕을 퍼부었다. 일부는 방청객석을 넘어 피고에게 들이대려고까지 하였다. 이를 본 판사가 그들을 멈춰세웠다.

"모두 정숙하십시오. 여기는 신성한 재판장입니다."


방청객석에서의 소란이 끝나자 변호사가 변호했다.

"판사님, 피고 김민수는 현직 도의원입니다. 그러나 그는 절대 권력형 비리를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ZS25 한빛동점에서 들깨라면 15개입을 보고 싸다는 생각에 2묶음을 충동구매한 것에 불과합니다."

"판사님, 아닙니다! 피고 김민수가 편의점에 가기 직전만 해도 편의점은 들깨라면을 팔고 있지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피고 김민수가 편의점에 간 시각은 오전 8시입니다. 피고가 오기 전에 아예 편의점을 열지 않았다는 겁니다!"

검사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게 특혜의 증거입니다. 도의원이 오자마자 편의점을 연다? 이건 명백한 증거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변호사님의 말은 틀렸습니다. 해당 편의점은 정확히 오전 7시 58분에 문을 열었습니다. 도의원이 오자마자 편의점이 정상 시각보다 2분 전에 문을 열었다? 이게 특혜가 아니면 뭐겠습니까?"

"2분 전에 열었다고 그게 뭐 특혜입니까? 알바의 기분탓 아니겠습니까?"

"아닙니다. 사건을 다시 브리핑하겠습니다. 현직 도의원인 피고 김민수는 라면을 사기 위해 7시 50분 경 ZS25 한빛동점에 도착했습니다. 이후 5분 뒤 담배를 피던 편의점 알바생이 들어왔고, 도의원과 알바생이 대화를 나눈 후 정확히 7시 58분 경 편의점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렇게 피고 김민수는 들깨라면을 개당 500원에 구매한 것입니다."

"그게 대체 뭐가 문제입니까?"

"여기서부터가 문제입니다. 피고 김민수가 오자마자 아르바이트생이 담배를 껐다는 것입니다. 도의원이 오자마자 담배를 끈다? 이건 분명 피고와 알바생의 유착관계를 드러냄에 틀림없습니다.

피고 김민수가 가슴을 치며 답답해했다.

"그건 그냥 손님이라서 그런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녹취록에 유착 관계가 정확히 드러나있습니다."


검사가 녹취록을 꺼내 작동시켰다. 온 방청객들이 이에 집중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안녕하십니까,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이거 살게요."

"예, 계산 됐고요 15000원입니다."

"네, 그럼 수고하세요."

"즐거운 시간 되십쇼."

-


피고 김민수는 굉장히 어이없어해했다. 그러나 검사는 대체 뭘 믿고 있는지 신기할 정도로 신념이 확고했다.

"알바생이 피고에게 한 첫번째 말이 무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였습니다. 이는 알바생이 피고에게 기존부터 불공정한 특혜를 주었다는 증거입니다. 또 피고는 '수고하세요'라고 알바생에게 말하였습니다. 이는 분명 이 둘이 유착관계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아니, 이게 무슨 증거입니까? 수고하세요는 그냥 일 잘하라는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사회의 최상층에 있는 정치인이 사회 밑바닥의 알바생에게 '수고하세요'라고 하는 게 말이 된다고 보십니까? 이는 친밀한 유착관계가 아닌 이상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이는 손님과 알바생의 대화로 봐야 합니다. 그리고 들깨라면이 500원이었던 건 세일행사 때문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제가 증인을 모셔왔습니다."

"누굽니까?"

"오뚝이 그룹의 마케팅부 부장입니다!"


재판장의 문이 열리며 오뚝이 그룹 식품개발부의 박철식 부장이 들어왔다. 재판장의 모두가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박철식 부장이 뭐가 뭔지 얼떨떨해하며 증인석에 앉자마자 검사가 증인 신문을 시작했다.

"증인 박철식은 오뚝이 그룹의 마케팅부 부장이 맞습니까?"

"네? 저 식품개발부 부장인데요?"

"증인, 대답을 똑바로 하십쇼. 마케팅부 부장이 맞습니까?"

"아니요, 저 식품개발부라니까요?"

"증인, 지금같이 거짓 증언을 하면 위증죄로 처벌받으실 수 있습니다. 똑바로 대답하십쇼. 마케팅부의 부장이 맞습니까?"

"아니, 갑자기 사람 하나 잡아와서 이게 뭐하는 겁니까?"

"피고가 답하지 않으니 일단 이 질문은 넘어가겠습니다. 다음 질문입니다. 증인 박철식은 들깨라면을 세일행사한 적이 있습니까?"

"세일행사요? 그건 제 소관이 아닙니다."

"증인, 대답 회피하지 마십쇼. 들깨라면이 최근에 세일한 적이 있습니까?"

"그건 마케팅부에 물어보시는 게..."

"증인, 자꾸 그러시면 법정에서 퇴출시킬 수 있습니다. 자꾸 대답을 뭉개시니 다시 질문을 하겠습니다. 증인은 들깨라면을 세일한 적이 있습니까?"

"저는 세일 안 하죠. 마케팅부가 하죠."

"좋습니다. 그 말은 오뚝이 그룹이 들깨라면을 세일한 적이 없다는 뜻이군요."

"아니, 제 말은..."

"잘 들었습니다. 판사님, 이 증언을 증거로 채택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니, 나 식품개발부라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리고 출근하는 놈 지하철역에서 갑자기 납치해서 여기까ㅈ...읍읍!"

증인을 데려온 사람들이 증인을 데리고 나갔다. 증인이 발버둥을 쳤으나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아무래도 다들 미친 것 같아요."

피고 김민수가 변호사에게 소곤거렸다. 그러자 변호사가 말했다.

"피고 님이 범죄를 저지른 건 확실하지만 제가 어떻게든 쉴드를 치겠습니다."

"아, 아니 이게 무슨..."

피고 김민수가 내면의 가장 중심에서부터 솟구쳐 올라오는 억울함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 마음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이를 판사가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럼 최후변론을 하겠습니다."

판사가 빠르게 진행을 시켰다. 이에 검사가 최후변론을 시작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 김민수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ZS25 한빛동점에서 세일을 가장해 들깨라면을 개당 500원에 총 30개를 샀습니다. 이는 여러 증거들이 뒷받침해줍니다. 판사님, 잘 생각해주십시오. 피고는 분명 권력형 비리를 저질렀습니다."

검사의 이 말에 변호사가 반박했다.

"아닙니다. 피고 김민수는 그저 억울할 뿐입니다. 이 모든 사건은 분명 알바생의 음모가 틀림없습니다. 알바생이 왜 굳이 2분 전에 문을 열었겠습니까? 이는 분명 여당의 정치공세에 불과합니다."

'변호사야 갑자기 왜 변론이 이상한 방향으로 틀어지냐.'

피고 김민수가 속으로 변호사를 잘못 골랐다며 분개했다. 변호사가 이어말했다.

"또 알바생이 밖에서 담배를 피고 있었잖습니까? 이는 여당의 정치적 공세의 수신호가 분명합니다. 왜 굳이 손님을 보자마자 담배를 꺼뜨렸겠습니까?

존경하는 재판장님, 잘 생각해보십시오. 이 모든 것은 여당의 치밀한 조작임에 틀임없습니다."


판사가 검사와 변호사의 말을 모두 듣고 판결을 내렸다. 분위기는 매우 엄숙했다.

"피고 김민수는 자신의 도의원이라는 권력을 이용하여 ZS25 한빛동점에서 들깨라면을 500원에 구입했다. 이에 직권남용죄를 적용한다.

또 피고 김민수는 신성한 재판장에서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는 전세계의 탈모인에 대한 심각한 인신모욕이며, 또 위험한 물건에 해당하는 머리카락을 법정에 흩뜨린 것은 신성한 재판장을 더럽히고 지나가는 사람이 밟고 넘어지게 하기 위함으로밖에 볼 수 없다.

이에 직권남용죄 2년, 명예훼손 징역 6개월, 특수공무집행방해죄 3년, 살인미수죄 15년과 괘씸죄 100년을 적용하여 총 징역 117년 6개월을 선고한다.

그러나 피고 김민수가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가 높았다는 점을 감안하여 음주감경을 적용하여 집행유예 5년 징역 3년을 선고한다."



피고 김민수는 그날 절실히 깨달았다. 이 나라는 미쳐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변호사가 그딴 변호로 콧대가 아주 높아졌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