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 지하철 1호선 노선도



음, 먼저 여러분들이 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광주 도시철도는 오직 1호선 한 개의 라인만이 존재합니다. 2호선은 수천 개의 핵 미사일이 광주 상공을 가르던 2013년 당시 한창 공사 계획이 추진 중에 있었는데요, 글쎄, 앞으로도 영원히 미개통 상태로 남게 될 것 같군요. 다행히도 지상에 위치한 역사는 기점과 종점역인 평동역, 녹동역뿐이었기에 제가 이렇게 여러분께 광주 메트로의 역사를 설명해드릴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요?



어쨌든 악마의 버섯구름이 전 세계에 피어오르던 날, 광주 역시 모든 것을 녹여버릴 방사능 불길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미사일 요격 시스템은 대한민국의 심장이나 다름없는 서울 및 수도권에 집중되었고, 어찌저찌 남은 시스템들도 제 2의 수도인 부산을 방어하는 데에 사용되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무방비 상태의 광주 시내에는 수없이 많은 무자비한 탄도 미사일이 내리꽂혔죠.



그날이 어땠냐고요? 말도 마세요. 거리는 그야말로 생지옥이 되었습니다. 번화가인 충장로를 화려하게 빛내주던 간판과 높은 빌딩들은 모두 뜨거운 열기에 손쓸 틈도 없이 녹아내렸고, 사람들은 번쩍이는 버섯구름에 휘말려 그대로 가루가 되었습니다. 운 좋게 폭심지를 피한 사람들도 얼마 안 가 초고농도의 단기 피폭 증세로 쓰러져 갔죠. 폭탄들이 그대로 내리꽂힌 탓에 인간이 수십 수백 년에 걸쳐 열심히 쌓아온 삶의 흔적들은 순식간에 한 줌의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송정역 부근에서 주둔하던 공군들의 전투기는 낡아빠진 전시용마저도 모두 현역으로 차출되어 불안하게 털털거리며 하늘을 날아다녔고, 그러다 간간이 격추된 전투기의 파편이 떨어져 사람들을 덮치기도 했습니다. 물론 송정 방면에는 주한미군의 군부대도 있다는 사실은 알고 계시겠죠. 그러니까 한때는 있었다고요. 노란 머리의 군인들은 장갑차와 탱크들을 잔뜩 끌고 나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무전기에 다급하게 지껄여 댔지만, 그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모든 건 여기까지라는 사실을요.



그리고 20년이 흐른 2033년 지금, 빛바랜 광주의 지상에서는 멀쩡한 건물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나마 메트로에서 멀어져 도시 외곽 쪽으로 나가 본다면 모를까... 하지만 그렇게 무모한 짓 따위에 자신의 목숨을 버릴 피커는 없겠죠. 아마 서울의 지상에는 멀쩡한 건물이 많을 겁니다. 건물이 멀쩡하다는 말은 그만큼 온전히 보존된 기자재나 생필품들도 많다는 것일 테고, 서울 메트로 주민들은 그만큼 편안한 삶을 영위하고 있을 겁니다. 음, 63빌딩이란 게 있었다고 들어보긴 했는데, 개인적인 소망이지만 죽기 전에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러니까 무너지지 않았다면요.



다른 지역에 생존자가 있는지는 어떻게 아느냐고요? 어... 다른 지역 메트로에도 사람들은 살아있을 거에요. 교신이 닿을 뻔 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걸요. 게다가 서울 지하철은 부동의 세계 1위니까요.



잠깐 말이 샜군요. 어쨌든, 모든 종류의 재앙이 그렇듯이 이 대재앙에서도 살아남은 극소수의 럭키 가이들이 존재합니다. 이건 제가 이 글을 쓰고 있을 수 있는 이유기도 합니다. 정말 운이 좋다는 말 이외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사람들은 바로 그 시각에 저마다 자기만의 이유로 바쁜 삶을 헤쳐나가기 위해 광주 시민들의 든든한 발이 되어주던 메트로에 탑승하고 있었습니다. 틀림없이 원자 경보가 쉴 새 없이 울려댔을 거고, 떨리는 목소리로 지침을 읽어 나가는 역무원의 안내 방송을 들으며 수많은 시민들이 지하철 역사로 몰려들어왔습니다.



5개의 역이 위치한, 광주에서 제일 큰 행정구역인 광산구 쪽에서는 광주공항 이용자들 대부분이 공항역 등으로 대피했고, 8개의 역이 위치한 서구 주민들도 김대중컨벤션센터 등지에서 대피했으며, 7개의 역이 위치한 동구 주민들 역시 금남로 방면에서 대피해 왔습니다. 하지만 광주 남구와 제가 살고 있던 북구에는 지하철이 다니지 않았다는 사실은 유감스럽기 짝이 없네요.



아무튼 얼마 후 폭격이 시작되자 아직도 꾸역꾸역 들어오려는 사람들을 무참히 갈아버리며 개폐문이 차단되었습니다. 다행히도 메트로 역사 위에 직격한 탄은 없었고, 사태가 끝나갈 즈음 약 1천여 명의 사람들이 고요히 돌아가는 환풍기 소리 속에 불안한 심정으로 항상 소지하던 자서전을 성경처럼 꼭 품에 안고 간간이 멀리서 떨어지는 폭발음을 들으며 가슴을 졸였습니다. 그리고 메트로 밖에서 처절하게 방폭문을 두들겨 대던 사람들의 울부짖음까지 그쳐갈 때쯤, 마침내 사람들은 한때 역장이란 지위를 가졌던 자들을 제 1대 대표로 선출합니다.



지하에서의 삶이 시작된 거죠.



이때부터 시작된 나날들은 결코 편안한 시간이 아니었다는 건 누구보다 당신이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지상의 사정을 알아보고 싶어했습니다. 선발대로 뽑힌 용감한 시민 대여섯 명이 조심스럽게 개폐문을 열고 몇 벌 남아있지 않던 방호복을 입고 나갔습니다. 사람들은 이들이 돌아와서 광주는 다시 안전해졌다고, 이제 원래의 삶으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해주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선발대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사흘이 다 지나갈 때쯤 사람들의 관심은 거의 다 사그라들어 있었죠. 하지만 나흘째 되는 날, 선발대 중 가장 건장한 청년 한 명이 복귀에 성공합니다. 다 타서 끔찍한 꼴이 되어버린 방호복을 입고 말이죠. 청년은 메트로로 들어오자마자 한 마디를 내뱉었습니다.



지상은 지옥이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그 말을 전한 청년은 고개를 철로에 처박고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역무실에 보관된 해묵은 가이거 계수기로 청년의 몸을 계측해 보자 계수기의 바늘은 곧바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으며 삑삑거렸습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알 만큼 나이가 든 사람들은 절망하며 주저앉았고, 가이거 계수기가 뭔지, 그리고 저 소음이 무얼 뜻하는 건지 모르는 아이들은 부모의 손을 잡고 그들이 저건 우리가 다시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게 된다는 뜻이란다, 같은 말을 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 후로 수 개월 간은 아수라장의 연속이었습니다. 처음 몇 주간은 경찰과 역무원의 통제 하에 질서를 지키던 사람들은 점점 메트로에서 식량과 생필품들이 떨어져 가는 상황에 질려버렸고, 이 와중에 도시철도 관계자와 공무원들이 담합하여 홍어를 빼돌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결국 그, 하나의 용기를 들고 일어난 폭동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이 폭동은 메트로 최초의 민주주의 운동으로 기록됩니다.



어쨌든 폭동은 금세 진압됩니다만, 결국 고위 공직자들은 모두에게 평등한 배급을 약속하기에 이릅니다. 이맘때 즈음 최초의 피커가 등장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점차 모험심 넘치는 자들이 피커로 지원하면서 사람들은 제한적으로나마 지상의 물건들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 상술했듯이 지상은 거의 대파된 탓에 그렇게 건질 만한 건 없었지만요.



이후 2개의 지상역을 제한 18개의 역은 생존이라는 기치 아래 동맹을 맺고 몇 년간 지하 생활을 잘 헤쳐 나갔습니다. 이때가 2020년이었고, 사람들은 어느 땐가부터 메트로 양 끝에서 이상하게 생긴 짐승들의 목격담이 공공연하게 나돈다는 사실을 눈치챘습니다. 처음에는 소문을 부인하던 수뇌부들도 결국 거세지는 항의에 소규모의 수색대를 꾸려 문제의 '양 끝' 에 세워진 지상 역사를 조사합니다.



결과는 좋지 못했습니다. 심각한 방사능 피폭에서 뒤틀리고 망가진 유전자를 대가로 살아남은 짐승들은 인간보다 아주 빠르게 진화했고, 녹동역과 평동역에서 선발대원들은 전멸하고 말았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군인들은 개조된 화염방사기를 이용해 대대적으로 역을 청소했고, 돌연변이들의 보금자리를 말소하는 데 성공합니다. 뭐, 하지만 그렇다고 짐승들의 씨를 말릴 수야 없지 않았겠어요? 이후 10여 년이 지나가는 동안 점점 더 포악하고 다양한 종류의 돌연변이들이 메트로 주민들의 목숨을 위협해 왔지만, 우리의 가슴에 투지가 존재하는 한 광주가 끝장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적어도 2년 전까지는 그랬죠. 조잡한 수제 필터는 산둥반도의 부서진 원전에서, 폭파되지 않고 꽂힌 불발탄에서 마를 줄 모르고 흘러나오는 방사능의 양을 따라가지 못했고, 군인들이 가져온 탄약과 화기들도 점차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핵겨울이 찾아온 이후 수북이 내린 방사능 눈이 쌓여 있다 녹아내려 서너 개의 역이 수몰되었고 난민들을 받아들이느라 모든 역은 늘어난 입에 골머리를 썩었습니다. 물론 주변 수 km 내의 지상은 깨끗이 탐사된 지 오래였죠.



결국 각 역의 지도자들은 이대로는 미래가 보이지 않자 결전을 선언합니다. 바로 광주를 떠나 다른 도시로, 적어도 필터가 언제 떨어질까 하는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떠나 보자는 계획을 세운 것이랍니다. 이 대담하고도 멋져 보이는 계획은 곧장 전 메트로에 퍼져 나갔고, 시민들은 처음에는 웅성거리다가도 곧 이 계획의 타당성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2031년의 겨울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조차도 불투명한 상황이었거든요.



이건 시가지에서 시가지로 건너가는 정도의 일이 아니라, 엄청나게 위험하고 또 엄청나게 어려운 일임이 틀림없었습니다. 안 그런가요? 이러저러한 이유와 준비 따위로 계획이 발표된 지 2년이 흐르고, 마침내 시간은 현재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오늘 새벽, 지금 광주 사람들은 전무후무한 미션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커다란 도약이 될지, 의미없는 몸부림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겠지요. 어쩌면 지상으로 나가자마자 돌연변이 익룡 떼에게 모두 갈기갈기 찢겨나갈지도 모릅니다. 중간에 눈보라를 만나 모두 굶어 죽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라도 생존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삶이란 것 아니겠어요?



우리는 끝끝내 광주를 떠나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들 조금을 남겨두었습니다. 이분들만으로는 거대한 메트로 전체를 운영하기는 벅찰 수도 있겠지만, 주민들은 혹시 자신들이 실패하더라도 이들은 살아남아 메트로의 멸망이라는 결말을 막아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혹여 먼 훗날 외지인 여러분이 이 죽은 도시를 발견하고, 메트로까지 들어와서, 제가 살던 이 역까지 찾아와 이 편지를 읽게 되신다면, 한때는 이곳에도 오랫동안 사람이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세요.



오래된 생각입니다.



2033년 5월 18일, OO역에서.




- 녹슬고 낡아빠진, 사람이 사라진 지 오래된 듯한 광주 메트로의 모 역에서 삼성동맹 소속 초장거리 특파부대원 A가 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