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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적에 우리 할멈은 자장가 대신 옛날 이야기로 내 단잠을 불러들이곤 했었다.

"아주아주, 오랜 옛날의 이야기란다."

그 이야기는 언제나 진부하고 뻔했다. 악인은 의로운 자들에게 무너진다는 교훈이 담겨있었지.

"이런이런, 우리 이쁜 똥강아지 눈에 불만이 그득하니 서려있구나? 왜? 이 할미 이야기가 질리기라도 한게야? 그럼 이건 어떠냐?"

그리고 어느 날이었을까? 할멈은 내게 옛날 이야기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시겠다고 말했어.

"이 할미가 소싯적에는 말이다. 꽤나 잘나가는 마법, 아니 영매사였단다....."

[하늘에는 신이 있었고 땅에는 신의 아이들인 인간이 있었다. 그리고 땅 너머에는 망자들이 있었다. 인간은 땅에서는 신의 사랑과 축복을 받았으나 망자가 되어서는 미움과 저주를 받아 더 이상 땅 위를 거닐 수가 없었다. 

자신들을 품어주던 따사로운 햇살은 날카로운 창살이 되어 폐부를 깊숙히 찔렀고, 생명의 원천이 되었던 물은 시리고 차가운 독약이 되었다. 

망자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불과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을 사랑했던 모든 것들에게 미움을 받아야했으니까.

신은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만들었을까? 고민 끝에 마침내, 망자들은 한 가지의 이유를 생각해낼 수 있었다.

신이 인간을 사랑했던 건 인간이 신의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이 망자를 미워하는 건 망자가 더 이상 신의 아이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망자는 누구의 아이들일까? 망자들은 그 물음의 해답을 땅 너머에서 찾았다.

"이제야 너희들의 안식을 찾아왔구나."

땅 너머 어둡고 습한 그 어딘가에서 망자들은 자신들의 신을 만났고 서러운 맘을 토해내며 인간들의 신을 욕해대기 시작했다.

"아아, 그의 이름은 신이 아니라 <생명>이란다. 나에게서 얼마동안만 너희들을 뺏어갈 수 있었지."

생명, 그때부터 망자들은 생명을 가장 증오하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모든 것, 숨 쉬는 모든 것을 향해 이를 갈며 분노했다. 그럼에도 안식은 자신의 아이들이 된 망자들을 다독였다. 

아직은 때가 오지 않았으며 언젠가 땅과 땅너머를 이어줄 새로운 자녀들이 태어날 때에 이 모든 것을 이룰 날이 올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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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너네 할머니가 땅과 땅 너머를 이어주는 사람이었다고?"

놀란듯 입을 크게 벌린 사내가 이야기를 멈춘 여인을 재촉했다. 처음 들을 때만 하더라도 여인의 깊게 패인 가슴골을 힐끔 거리던 그의 눈동자는 어느새 반쯤 풀려 있었다.

"글쎄? 영매사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확실한건..."

씨익. 여인의 입꼬리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렸다. 매혹적인 눈웃음이 사내에게 꽂히자 그가 움찔거렸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귀에 입술을 가까이 가져가 속삭였다.

"내가 땅 너머의 사람이라는 것 정도?"

그 말을 들음과 동시에 의식을 잃은 듯 사내의 몸이 뒤로 고꾸라졌다. 여인은 이미 이런 일에 익숙한 것처럼 쓰러진 사내의 몸 위로 내려앉았다.

"생명은 안식하기 위한 좋은 먹잇감이지. 오늘은 네가 내 먹잇감이고"

씨익. 여인이 웃으며 입을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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