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읏차~!”
“수고하셨어요, 아오 씨. 생각보다 짐이 꽤 많군요.”
서드 씨는 내 침실로 짐을 옮기는 것을 도와주셨다. 짐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상자 하나는 꽉 채울 양이었다. 나는 상자를 옮겨두고 이내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후~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아뇨… 뭐, 휴엔 씨에게 할 얘기가 있어서 온 김에…”
“휴엔이요? 목욕탕 쪽에 있을 거예요. 놀길래 목욕탕 청소라도 시키고 있었죠.”
“알겠습니다. 그쪽으로 가보도록 하죠.”
이내 그는 문을 열고 침실 밖으로 나갔다. 분위기는 무섭지만 성격은 너무도 친절했기에 기사단 치고는 그에게는 조금 편하게 대할 수 있었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으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내가 전혀 볼일 없을 줄 알았던 고급스러운 천장, 그리고 그만큼 고급스러운 침대, 방. 모든 것이 생소했다. 이런 곳에서 살 수 있게 될지도 몰랐고, 그 일 하나로 이런 곳에서 살게 될지도 몰랐다. 물론 그 일은 상당히 어려웠지만 우리는 운 좋게도 한 일 만큼 제대로 보상을 해 주는 의뢰주를 만난 것이다.
“아오~ 짐은 어떻게… 와우.”
류가 내 방에 들어왔다. 나는 노크도 없이 덜컥 들어온 것을 보고 화가 났지만, 방을 어지럽힐 순 없었기에 침착하게 그에게 이야기했다.
“음… 노크는 하고 들어오지?”
“앗, 미안해~! 도장이 있길래 몸 좀 움직이자고 하려 했는데~”
도장? 아, 확실히 입구로 들어오기 전에 왼쪽에 작은 건물 하나가 보이기는 했지. 이렇게 넓은 저택에서 그런 것까지 만든 거면 얼마나 많은 돈을 들인 거야? 이 저택에 이렇게 돈을 들여 놓고서, 그걸 우리에게 준 서드 씨도 어떻게 보면 괴짜였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며 손베개를 하며 그를 보았다. 그러고 보니 누구를 부를 생각인 거지? 할 생각은 없었지만, 누구를 부를 생각인지 궁금해졌다.
“다른 사람 찾아. 조금 힘들어… 근데 누구랑 하려고?”
“아, 레아가 같이할 거 같긴 한데… 휴엔은? 휴엔도 데리고 오라던데.”
휴엔은 또 왜 이렇게 인기가 많아… 나는 그를 무시하고 방을 둘러보았다. 진짜 방도 넓구나. 가구도 고급스럽고… 나는 그가 손을 모으며 물어보자 거절하기는 어려웠기에 나는 이내 한숨을 쉬며 그에게 대답해 주었다.
“목욕탕. 아 그러고 보니 서드 씨도 휴엔을 찾으시던데 가는 길에 만나면 같이 가~”
“그래. 한번 제대로 움직이는 거지 뭐~ 하하하하!”
밝은 웃음 소리와 함께 류가 방에서 나갔다. 나는 신발을 벗고 침대에 편하게 드러누웠다. 의뢰로 나가는 건 내일이었지…? 그러면 아직 시간도 있으니 낮잠 자는 정도야 괜찮겠지… 아 맞다! 나는 상자 속에서 전에 옷장에서 꺼냈던 검은 도색 된 단검을 꺼내어 침대 옆의 선반에 올려두었다. 그래… 이제 됐네. 좀 자야지…
────────────────────────────────────────
“아흐… 졸려라.”
“휴엔 씨?”
서드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뒤로 돌아보자 그의 모습이 보였다. 회색 꽁지머리의 사내. 그는 나에게 다가왔다. 그의 붉은 눈동자는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는 확고한 신념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그런 착각을 한 것이겠지. 그러고 보니 할 말이 있다고 하셨던가? 시간도 늦어졌으니까 슬슬 들어야 하겠지. 나는 가능한 밝은 얼굴로 그를 마주했다.
“네. 무슨 일이세요. 서드 씨?”
“다름이 아니라 이곳에 올 때도 말씀드렸던 일에 대한 겁니다만…”
“네네. 말씀하세요. 무슨 일이죠?”
그는 뜸을 들이며 말하기를
“의뢰 금액이 변할 것 같습니다.”
“네…??”
그의 말에 순간 억장이 무너질 뻔했지만 이내 내가 생각한, 의뢰비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무엇보다 좋아할 말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의뢰비가… 증가할 것 같습니다. 테빅 세이버 길드에서 어젯 밤 먼저 진입을 했습니다만… 길드 마스터와 그 외의 측근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중상이라는 전보가 왔습니다.”
테빅 세이버?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누구더라?? 내가 한참을 고민했다.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애초에 내가 다른 헌터와 접점이 있었던가? 아! 그 쓰레기들, 자기들 사냥감을 노린다고 난리를 쳤던 그 쓰레기들이구나.
“음… 그런데도 그 길드는 잡아 오지 못했다는 거죠?”
“네. 맞습니다. 정확히는 의뢰비의 증가라기보다는 수배 금액이 증가한 것입니다만…”
수배 금액의 증가가 그렇게 큰일인가? 어차피 똑같을 텐데. 나는 의자를 꺼내어 앉았다. 물론, 그에게도 의자를 꺼내주면서.
“뭐… 이거 가지고 취소할 거 같았으면 애초에 받지도 않았어요. 수배 금액이 증가한 거만 해도 감지덕지죠. 그래서… 얼마나 올랐죠?”
“수배자는 원래 960 아크의 수배범이었습니다만… 1,310 아크까지 증가했더군요. 의뢰비 포함 총 1,470 아크입니다.”
나는 눈이 방긋 떠졌다. 오른 것은 240 아크! 꽤 짭짤하겠군. 나는 이내 웃는 표정으로 그와 대화를 이어갔다. 그런 나의 표정과는 반대로 그의 표정은 심각했다.
“해방자가 아닌… 비해방자에게 이런 현상금이 걸린 건 전대미문입니다. 내일 그를 체포하러 가신다고 하시던데…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아뇨~ 괜찮아요~ 어차피 비해방자인데요. 뭘~”
내가 그 말을 끝마친 순간 그의 얼굴에 그늘이 기울며 그는 나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이내 그는 손으로 붉은 눈을 가리고 한숨을 쉬며 나를 보고 입을 열었다.
“하아… 생각보다… 냉철하지 못하시군요. 뭐… 그런 용기는 좋습니다만…”
“뭐… 그게 그렇게 큰 일은 아니잖아요? 그 정도로 오른다고 녀석이 엄청 세지는 것도 아니고…”
그는 이내 나를 바라보았다. 이내 그는 자신의 머리를 뒤로 넘기며 이야기했다.
“꽤… 심각한 사안이죠. 비해방자 중에 이런 수준의 수배범은 처음이니까요. 테빅 세이버는 꽤 큰 길드입니다. 길드장이 어떻건… 길드원은 50명이 넘어가니까요.”
“아… 그런가요?”
길드장이 어떻건. 즉, 그 개자식은 서드씨에게도 이런 평가라는 거군. 나는 묘하게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본인은 기사단장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난리를 치는데, 정작 그 기사단장에게 밑바닥에 가까운 평가라는 뜻이다. 실소가 나올 뻔했다. 그 자식이 열 받아 하는 꼴을 생각하니 너무 기분 좋았다. 당장 면전에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지만, 나는 웃음을 참으며 그와 이야기를 이어갔다.
“네, 꽤나 큰 길드죠. 그곳의 해방자 길드원 30명을, 혼자서 상대했다고 합니다.”
“음… 해방 횟수는요?”
“대부분 1차 해방자입니다. 길드장과 그 측근만 2차 해방자더군요.”
서드 씨, 제가 장담하죠. 그 녀석들 전부 고기 방패로 쓰였을 겁니다. 예전의 탈주 기사 건에도 그랬거든요. 그 건에서 죽은 녀석들만 2~30명은 넘을겁니다. 그 정도면 그냥 인력 낭비라고요.
“전하려고 하셨던건 그게 다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경고의 의미에서죠. 그럼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죠.”
“아… 네! 그럼 바래다…”
“아뇨, 아뇨, 저 혼자 가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하하하하하!”
이내 그는 창문을 열고는 그대로 뛰어내렸다. 나는 매우 놀라서 그가 뛰어내린 곳을 보았다. 그는 아픈 기색도 없이 다리를 털고 일어나 입구를 향해 달려갔다.
“와우…”
“휴엔~ 어딨어~!”
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금방 목욕탕 문을 열고 들어 와 내 옆으로 왔다. 내가 창문 밖을 보고 있자 녀석은 나를 왼손으로 막더니 내게 웃으며 말했다.
“어허… 그 나이에 허튼 선택을 하면 안 되지.”
“개소리하지 말고… 저거나 봐…”
“응? 뭔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서드 씨를 가리켰다. 서드 씨는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치타 같은 속도로 달리는 그 모습은, 어떻게 보면 진풍경이었다. 녀석은 보고도 이해하지 못했는지 별로 놀란 표정이 아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설명하기 위해서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서… 방금 여기서 떨어졌어… 저 사람.”
그러자 녀석은 서드 씨가 달리는 모습을 보고는 경악한 듯했다. 그는 정원을 넘어 정장을 입은 채로 달렸음에도, 전혀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는 포즈였다. 저게… 대체 어떻게 가능한 거지? 저 사람의 능력이 달리기와 관련이라도 있는 건가? 대체 어떻게 저런 속도로 달리는 거지!?
“어… 거의 안 보이는데?”
“저 사람은 대체 뭐야…!?”
그의 모습은 쏜살같이 달려가 입구에 도착하였다. 나는 그것을 보고 어이가 없어서 멍해졌다. 류도 나와 마찬가지인지, 나와 류는 멍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
보다시피... 서드는 꽤 괴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