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구는 성큼 내 병실 문 앞에 섰다. 그리곤 바로 문손잡이를 돌리며 철재문을 부드럽게 활짝 열었다. 성급한 놈임에 틀림없다. 문의 회전과 함께 몸과 머리가 동시에 방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전기충전기를 목에 대었다. 거구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앞으로 쏠리는 몸의 관성력에 따라 얼굴쪽을 바닥을 향하게 쓰러졌다. 

엎어져 있는 거구의 넓은 어깨쭉지 밑 양 거드랑이에 손을 넣어 방안으로 잡아당겼다. 나도 내 힘의 크기를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쉽게 그를 움직일 수 있었다. 병실문을 닫고 거구의 팔을 묶을 수 있는 소재를 찾기 시작했다. 

나를 묶었던 밧줄을 재활용하면 되었으나 그것을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밧줄이 손상되지 않도록 내 몸에서 잘 풀어내야 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각 손목을 동그랗게 둘러싼 밧줄은 그 교차지점으로 이어진 줄을 손목 방향으로 밀면 지름이 좁혀지면서 풀리지 않게 되는 반면, 어깨쪽으로 힘을 주어밀면 지름이 늘어나서 벗겨질 수 있는 것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왼 손목의 밧줄을 벗겨내 침대 위로 올라놓았다. 

거구에 대한 전기 충격은 지속력이 길지 않았다. 거구가 꿈틀거리며 일어남과 동시에 나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내 눈은 날카로웠다. 주먹은 그 동선이 충분히 예측되었다. 또 무척 느렸다. 나는 아주 자연스럽다는 듯이 그 주먹을 피하면서 그의 복부를 가격했다. 그는 다시금 힘없이 고꾸라졌다. 넘어진 자에게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다시 그의 목에 전기충격을 주었다. 나는 서둘러 그의 각 손목을 등 뒤로 해서 밧줄로 조여맨 뒤 똑딱이 단추로 소리나게 했다. 두 손목은 풀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오래 기다릴 수 없어 거구의 뺨을 손바닥으로 쳤다. 

"이 봐, 일어나라구."

병 주고 약 주는 격이다. 키 큰 뚱보의 의식이 들어왔다. 

"내 말 잘 들어.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다시 전기충격기 맛을 봐야 할 테니까. 뭐 좀 묻겠다. 내 입원 경위에 관한 자료를 알고 싶는데 병원 사무실에 있겠지?"
"그래."
"그럼 나를 병원 사무실로 안내해라."

나는 거구와 함께 병실을 나왔다. 잠시 고개를 돌려 병실 문의 눈높이 부근에 써진 이름을 확인했다. 이상원? 아마도 내 이름일 것이다. 하지만 익숙치 않다. 순간 내 기억이 다시 돌아올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다.  

나는 거구를 앞세워 병원 사무실 쪽으로 갔다. 병실 복도의 맨 끝에는 강화유리로 된 출입통제 현관이 있었다. 일반병동 또는 사무실 영역과 정신병동을 구분하는 자동문이다. 오른쪽에는 비밀번호 입력이나 지문인식이 가능한 장치가 있었고, 거구는 그곳에서 머뭇거렸다. 나는 비밀번호를 거구에게 물어 절차대로 입력했다. 유리문은 쓱 열였다. 
병원은 내가 예상했던 정도의 소규모였다. 약간의 불법적인 감금을 쉽게 할 수 있는 수준의 병원이라고 할까? 병원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게 수면제를 투약했던 놈과 거구, 이 둘이 어제 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병실을 관리하는 숙직을 맡은 것 같았다.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지만 정상적인 근무시간은 대략 9시일 테고 그 때까지는 대략 1시간 남짓 남았을 것이다. 

나는 서둘러 앞서 가는 거구 등에 손가락을 찔러가며 바삐 병원 사무실 앞으로 도착했다. 사무실은 대략 40제곱미터 정도 되었고 사무용 책상과 소파, 사물함이 있었다. 사무용 책상 위 컴퓨터는 켜진 상태였다. 사물함에 붙여진 명찰에는 짐작컨대 환자의 성명이 기재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굳이 거구에게 혹독하고 싶지 않았다. 거구한테는 소파에 편안히 앉으라고 했다. 

"내 이름이 이상원인가?"
"맞다."

"내 자료 화일은 어디에 있나?"
"사무용 책상의 오른쪽 서랍에 있다. 서랍을 열면 라벨에 이름이 쓰여져 있으니 찾기 어렵진 않을 게다." 

나는 무엇보다 나를 이 병원에 입원시킨 자가 누구인지가 가장 궁금했다. 그리고 그를 통하면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테지. 하지만 이곳에서 한가하게 서류철을 뒤적일 여유는 없을 것이다. 

"저 사물함에는 환자가 입원할 때 입고온 옷과 개인용품이 들어있나?"
"그렇다." 
"나는 이곳을 나갈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곳에서 충분히 벗어날 때까지 네가 어떤 짓도 하지 않아야 하니까 네 발못을 묶어야겠다. 그래도 되겠지?" 

거구는 아무런 대답도 없다. 나는 그것을 마지못한 찬성으로 이해해서 거구의 두 발목을 묶은 뒤 내 이름이 적힌 사물함을 열었다. 청바지, 내의, 셔츠, 봄이나 가을용 점퍼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마도 내가 정리해서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가지런함은 내 성격이 아닐 것이므로. 옷을 입은 후 청바지와 점퍼의 주머니를 뒤졌다. 약간 두툼한 지갑과 휴대폰이 있었고,  지갑 안에는 운전면허증, 신용카드와 약간의 지폐가 들어있었다. 도망을 치든 감금자를 추적하든 이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자, 나는 갈 테니까. 다른 사람이 출근할 때까지 그냥 편안히 있으라구. 자 안녕."

거구는 내 인사가 못마땅한지 잘 가라는 말도 없다. 하지만 내 자신이 비교적 인사성이 바른 청년일 것으로 보이니 기분이 좋다. 또 아주 잔혹한 놈도 아닐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