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yan(생명공학자)의 의식보존술이 성공한 해를 AY(after yan) 0년으로 샌다.


인류를 알파/베타/감마/델타/입실론으로 분류한다.


시스템에 도움이 될 확률이 높은 이들은 알파에 가깝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입실론에 가깝다.


인류에 도움이 되는 사람은 리저렉션을 통해 몸을 재부여한다.


베타 이상의 계급부터 리저렉션이 가능하다.


새로 의식이 창조된 이들은 기본적으론 입실론 계급이다.


새로 의식이 창조된 이들은 계급은 같으나 능력치는 다르다.


계급 간의 이동은 "기본적으론" 자유다.


소마는 최고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 마약.


얀붕 = AY 이전의 인간, 인류계급론 창시자

얀순 = AY 1516년, 입실론 계급


1.

때는 A.Y(After Yan) 1516년,


공교롭게도 구 서력기원 체계에서 모어의 유토피아가 출판된 날,


연합세계정부 대한민국지부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발생실에서


손으로 헤아릴 수 없는 n번째 리저렉션(resurrection, 부활)이 이루어졌다.


n은 불완전한 유리수 따위가 아닌, 정직한 정수, 그것도 양의 정수다.


이번엔 연약한 몸을 받았구나 생각하며 몸을 훑어보며 상념에 잠겨본다.


왜 일까- 하고.


아마도 저번의 몸에서 플레이 도중에 상대방의 목을


졸라 죽인 게 문제였나 생각해보면,


그건 아닐 것이다. 그녀는 적어도 비재생인구집합에 속하지 않았으니까.


2.

입실론 발생실로 향하던 도중 델타 계급으로 추정되는 사내가 인사를 한다.


델타 계급의 인사 따위 받는 알파계급이 어딨겠냐만은,


내가 그 인사를 지나쳐버린다면, 더 이상 알파계급의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달아버리고 만다.


그러면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지저분한 양심이


고개를 들어 그 인사를 받으라고 재촉한다.


그러므로, 나는 그에게 손을 흔든다.


악수를 하고 한다.


그는 인사를 받아줘서 기뻐하는 걸까,


아니면 돌아가서 추가포상으로 받을 소마를 그의


오래된 파트너와 즐기며 관계를 할 생각에 신난 것일까.


나는 알 수 없다.


3.

입실론 발생실에서 출하를 기다리는 것들을 보자니,


이번에도 기하학적 아름다움, 신체적 우월성을 가진 입실론 계급만 보이지,


감흥을 줄 만한 그런 스테이터스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전처럼 너무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기엔 피폐해져,


이번에는 나도 애를 키워볼까 생각하고, 하나 달라고 했다.


이름이 얀순? 나랑 이름이 비슷하네...


4.

"얀붕! 나 배고파!"


하고 있는 소리를 듣자니 벌써 아침이 왔구나...


"얀순아 배고프면 먼저 먹으면 되잖아...


아직 학교가기 까지 한참 남았다고..."


"싫어! 나는 꼭 얀붕이랑 먹어야 돼!"


"전에 얀붕이 추천해준 책에는 


'식사를 단순하게 영양소 보급이라고 보긴 힘들다'


라고 적혀져 있었어! 이 말은 같이 있는 그 순간이 중요하다는 거


아니겠어?"


한마디를 안 지네 한마디를...


"그래 같이 먹자..."


5.


"네가 이제 초등학교 졸업시험 볼 때가 되었나?"


문득 저녁식사 도중에 궁금해져 물었다.


"맞아.. 오늘이 금요일이니까... 3일 뒤면 보겠네"


"왜 이리 말에 힘이 없어? 뭔 일 있었어?"


"그건 아니고... 아니야 밥이나 먹자."


"얀순아 힘든 일이 있으면 어떡하라고 했지?"


"소마를-"


"그래야지 입실론이라면"


욱하고 말을 자르고 만다.


일순간에 식탁이 조용해졌다.


"소마제도 안건 공동발의자가 누구지 얀순아?"


"얀붕이 너..."


"그래 내가 발의했지, 거기에 적혀있던 최초 의도가 뭐였어?"


"SSRI나 비정형 우울증 치료제로 해결할 수 없던 만성적 우울증 해결과


성적 불만족에 대한 해결이요..."


"맞아 그런 목적으로 시작되었어. 하지만 너희 입실론 계급을 보라고,


시도 때도 없이 그걸 쓴단 말이야. yan은 그걸 바라지 않았어...


입실론 계급을 벗어나고 싶으면 소마에 휘둘리면 안된다는 거


너도 알잖아?"


"죄송해요 저는 그저..."


"됐어 낯 간지럽게 존댓말 쓰지 말고."


"나도 네가 그런 의도로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거 알아.


단지 과거 일이 생각나서 욱했네. 미안해 얀순아."


"아니야 괜히 내가 소마 얘기를 꺼내서...


나는 입실론 계급은 나한테 질릴까봐 너무 겁나.


성장촉진제를 맞고서 젊음이 바스러질때까지 창녀로 쓰여도,


나는 기꺼이- 아니 무엇을 바쳐서라도 그러고 싶어"


학교에서 배웠단 말이야, 너의 위대함을.


내가 이렇게 반말해도 될 사람이 아니라는걸.


모두가 너의 업적을 칭송한다는 걸.


너한테 어떻게든 접근해보려는 창녀들이 그렇게나 많다는 걸.


그럼에도 묵묵히 일이랑 나만을 봐주는 걸...


그리고 나는 너를 사.. 사.."


으아앙하고 우는 그녀를 향해 팔을 벌리자


그녀가 도도도 달려와 품에 안긴다.


품에 안겨 훌쩍이는 그녀의 머리를 쓰담으니


몸이 점차 덜 흔들린다.


"나는 네가 생각하는 거 만큼 위대한 사람이 아니야.


여자랑 안 하는 건 단순히 저번의 인생에서


맨날 침대에서 뒹굴어서 그런 거고,


일에만 몰두하는 게 아니라 저번의 인생에서 안 한 일을


몰아서 하는 거야."


"그, 그러면 나를 봐주는 건 왜...?"


"글쎄, 잘 모르겠어.


너보다 더 예쁜 사람은 발에 채이도록 많아.


내가 만나는 사람 중에 네가 제일 멍청해.


그렇다고 네가 창녀로서의 재목이냐? 그것도 아니야.


뭐 하나 쓸모가 있냐고 물으면 전혀 없다고.


그럼에도 나는 너를 많이 아껴.


역사서에 나온 '애완동물' 따위 마냥 여기지 않아."


"그 의미로, 이미 사장된 문화 하나를 알려줄께."


"사장된 문화?"


"그래, '뽀뽀'라고 하는 건데, 이게 왜 입실론사이에서


사라졌는지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입술을 볼이나 이마에 맞추는 거야.


'소마없이' "


"소마없이?"


"그래 소마없이"


그대로 자그만한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춘다.


5.

쪽하고 그의 입술이 내 볼에서 떨어진 순간


나는 학교에서 보여줬던 어느 성교육 시간의 영상보다도


가장 야한 일을 하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확- 하고 뜨거워지는 얼굴이 그에게 보이면 어떡할까


고민하던 와중에 그의 얼굴에 미소, 그래 저건 분명한


미소임이 틀림없다.


"나도 해봐도 돼 얀붕아?"


"그래 해봐"


고개를 돌리는 그를 향해 다가가 볼에 입을 맞춘다.


쪽- 하고 입술을 땔 때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다.


영원히 그 순간이 지속되었으면 하지만,


그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기에...


"얀붕아"


"또 왜 ㅋㅋ"


"이거 나랑만 해야 돼?


다른 건 몰라도 이건 나랑만 해야 돼?


약속해줘. 제발 약속해줘..."


흐흐흐하고 웃는 그가 거절할까봐 두려웠다.


입실론 계급이 가진 한계를 깨달아버렸을때 보다


훨씬 더 무서웠다.


다행히도-


"그럼 내가 누구랑 이걸 하겠니"


라는 대답을 듣고 아래가 축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6.

어쩌면 얀순이라면 내가 비틀어버린 이세계를 끝내주진 않을까


순간 설레는 마음이 들었지만... 이렇게 세상 모르게 웃고 있는 그녀가


어떻게 이걸 바꿀까 생각을 하니 헛웃음만 나온다.


그래도 희망을 걸어보고자, 진심을 전해야...


"얀순아 네가 만약에 졸업시험에서 델타계급으로 바뀌면


조그만 소원하나 들어줄께.


어차피 감마 계급은 보통은 신체적 조건이 좋은 사람들이 가니까..."


"정말정말! 진짜지?"


"그래..."


7.

'얀톡! 얀톡!'


휴대폰을 들어서 내용을 확인하니까,


'귀하의 자녀에 대한 졸업시험 결과입니...'


같은 문구가 보였다.


궁금함을 꾹 참고 그녀가 오길 기다린다.


8.

달그락달그락 식기가 적막을 채우는 마당에 


내가 먼저 입을 땐다.


"얀순아 결과 나왔어..."


"봤어?"


"아니 아직 안 봤어 너랑 같이 보려고"


"같이 보자 지금"


일어서서 ypad를 가져와 다시 앉는다.


"어디보자. 귀하의 종합성적분포는 다음과 같으며...


따라서 AI의 판단은 얀순님의 계급은 졸업시험 다음날


0시 부터 베타계급입니다?!"


"진짜? 진짜 베타야?"


"여기 봐봐 진짜야"


그녀는 울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훌쩍인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이제는 놓아주어야 할 때가


왔나 생각하던 도중-


"이래도 내가 안 똑똑해?


책에서 보니까 역사에 남을 만한 위인들이


입실론에서 베타로 배정받는다는데..."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근래에 입실론에서


베타로 나온 사람이 아시아에서 몇 명이나 있었던가?


"내가 널 너무 과소평가 했네. 미안.


그래서 소원이 뭐야? 해줄 수 있는 거만 해줘 ㅋㅋ"


"음... 내 처녀를 가져가달라면 해줄꺼야?"


"어? 너 실습 안 했어?"


"안했어... 나는 그런 천박한 입실론들과는 다르고 싶다고...


나한텐 너밖에 없어. 입실론 매트릭스에서 벗어나게 해준


너에게 모든 걸 다 해주고픈 마음이라고!"


"미안... 그래도 너랑은 아직 거부감이 있어서 당장은 힘들 꺼 같아.


그 대신에 네가 처음 뽀뽀하고 잔 날에 말했던 


'매일밤 뽀뽀하고 껴안고 자기' 정도로 퉁치면 안될까?"


"나는 구시대 사람이라서 법적 성인이 아니면 조금 그렇거든...


그때까지 아무하고도 안 할 테니까 그때하는건 어때?"


"좋아! 지금 한 번 뽀뽀 받아볼까~?"


볼이 침범벅 되도록 뽀뽀하니 그녀의 입고리가 귀에 걸린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9.

베타 계급은 학자계급으로서 연구결과를 보여야 할 의무가 있다.


대학교에 진급할 수 있는 계급이기도 하다.


리저렉션해당 계급이기도 하고 신체를 갈아끼울 수 있는 계급이기도 하면서


감마/델타/입실론 계급과는 다른 비정규과정 교육을 받는다.


달리 말하면, 안락사를 요청하지 않는 이상 그녀는 이제 나랑 같은


시간선에 존재한단 소리다. 기뻐해야 할까.


10.

"얀붕아! 15분 뒤면 나도 법적 성인이야!"


"너 어차피 베타계급 받은 순간 제약 없지 않냐?"


"그거 말고! 기억 안나?"


"아"


단발마가 튀어나온다. 그랬었지 하기로.


제일 전망 좋은 알파계급 숙소 안방에


달빛이 드리운다.


(달빛은 인공적으로 나온다. 진짜가 아니다.)


창백한 은빛만이 가득 찬 이 방에


내 앞에 있는 그녀의 나신의 절반만이


달빛을 받고, 절반은 어둡다. 그래서 더 고혹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성적인 흥분을 담보하진 않는다.


"얀순아 입으로 해줄래?"


그래도, '남녀노소', '내키면 아무나하고' 하는 건데,


뭐 어떤가? 라고 생각한 내가 밉다.


"왜 안 서지...? 너가 소마중독일리는 없고...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어?"


죽은 눈으로 중얼거리는 그녀를 일으켜세우고


옆에 뉘인다.


"미안해 내가 지금 너무 우울해서 그런 거 같아.


미약한 사죄의 표시로 이거라도 받아줄래?"


하고 처음으로 한 그녀의 키스는 소마를 동반하지 않았다.


순간, 그녀의 죽은 눈이 되살아났고, 동그래졌다.


"소마가 왜 없어?"


"불쾌했어? 미안해..."


"아니 불쾌하다긴 보단 배가 욱씬거려서...


연구목적으로 소마를 복용했을 때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어.


그거랑 다르게 잊었던 원초적 느낌이 깨어나는 느낌이랄까..."


말을 끝내는 동시에 프랜치키스를 갈기는 그녀.


BY(before yan) 시절 자료라도 찾아본걸까.


체구만큼 크고 두툼한 혀가 내 입을 들어와


정말 오랜만의 '올바른' 키스를 한 것만 같았다.


그리고, 하반신에 피가 쏠리는 느낌과 동시에-


"섰네?


나 초등학교, 대학교에서 한 번도 안 했어.


내 모든 건 네 꺼잖아?


내일은 연차 써야겠네 어차피 못 갈테니까"


11.

나보단 본인 스케줄을 걱정하지...


나는 이미 닳고 닳은 사람이지만 그녀는 아니다.


처음 30분은 열심히 하더만, 이후 3시간 30분은


침 질질 흘리면서 눈을 까뒤집는 그녀의 얼굴만이


보였다. 이런 반응을 본지 참으로 오래되지 않았나


회상하니 또 하반신이 피가 쏠리는 느낌이다.


"으으..."


"일어났어? 너 오늘 쉰다고 학교에 연락 넣어놨어"


"고마워... 얀붕아 키스해줘 키스..."


풀린 눈의 그녀와의 버드키스는


이미 속이 다 썩어버린 나무임을 잊게 해주었다.


이 순간들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12.

나는 그녀가 인류계급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좋겠다.


자유의 섬 일본이나 제주도로 가서 자연출산도 하고...


정작 그럴 생각은 본인에겐 전혀 없어보이지만


13.

"얀붕아 내가 쓴 졸업논문이 다 상위권에 있어!"


"인사보다 그게 중요하니 ㅋㅋ"


"당연하지! 나는 대단하니까! 칭찬해줘!"


"너는 애도 아니고 참... 이리와봐"


다 큰 성인이 어렸을 때 습관을 못 버리고


뛰어나오는 모습이 아직도 귀엽다.


"고개 숙여봐"


바닥에는 소마없는 침이 뚝뚝 떨어진다.


멀리서 위이잉하며 로봇청소기가 달려오길래


어쩔 수 없이 떨어졌다.


"푸하아... 잘했어


제목들을 알려줄 수 있니?"


"하나는 '인류계급론의 재해석' 그리고 하나는


'성적 쾌락에 대한 경험만을 제거하는 개량된 의식보존술 과정'이야"


"다 좋은데 나는 네가 알파계급 신청서를 적을 까봐 겁나


2개 다 유명해서 들어봤지. 그게 너인 줄은 몰랐지만."


"왜 내가 알파계급이 되면 안되는데?


나는 너를 닮고 싶어. 나는 네가 길러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도 하기 싫단 말야."


"알파계급에 오면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어.


시스템상으로 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만이 될 수 있기도 하고


나는 네가 언제든지 끝낼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


"설마 얀진 그 년 때문이야?"


순간 표정이 굳어진다.


잊고 싶었던 그 이름이 나왔기에.


"이번 생에는 만난 적 없어. 너 밖에 생각 안 했다고"


"전회차에선 그 년이 네 파트너, 아니 아내였잖아?"


"얀순아 아내라는 개념이 사라진지 언젠데 그래


너무 고문서를 많이 본거 아니야?"


"씨발 안 닥쳐? '손수' 음식을 해주고,


같이 출근하고, 잊혀진 문화를 둘이서만 즐겼다는 걸


아는 순간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기나 해?


사실 뽀뽀도 그 년이 알려준 문화였잖아!"


14.

연구목적으로는 이 시대의 중추인 얀붕의 행적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 정도의 인물이면 사생활 따위는 없기에, 쉽게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해서


그가 남긴 기록, 시스템이 남긴 기록을 보았더니, 모든 세계가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얀진의 대체품인가?


저렇게 풀어진 얼굴을 나와의 잠자리에서 보여준 적이 있었던가?


왜 나와의 추억들은 얀진의 흔적이 남아있는가?


수많은 갈고리만 내 머릿속을 휘젓고 다닌다.


그래도 괜찮았다.


마지막 자료를 보기 전까진.


'얀붕, 얀진의 낙태에 낙심하여 그녀를 관계 도중 목을 졸라 죽이고


자살해 n-1번째 삶을 마감해...'


자연출산? 자연출산? 자연출산?


자연출산, 이 네 어절에 내 마음은 무너졌다.


그래, 나 이전의 파트너, 아내 다 참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현재부터 미래까지 나의 것.


나는 그의 것이니까.


그러나 그가 나에게 아기를 갖자고 한 번도 하지 않은 것.


그것이 나를 미치게 한단 말이다.


아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아기 따위, 지금도 수많은 아기들이 인공배양, 인공성장 중이다.


정말로 나를 미치게 하는 것은. 단연코, 그가 날 '아내'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몇 번이고 스스로 부정해보았지만


'집안일이나 음식은 무조건 기계가'


'성행위는 무조건 소마없이'


'출산계획은 전혀 없음' 등과 같은 여러 정황들이


내 상황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 뿐이었다.


어째서 나에겐 얀진보다 못한 기대를 거는가?


이대로면 그는 결국 나에게 지루함을 느끼고 떠나는가?


내가 다른 사람과 잔다고 그는 질투심을 느낄까?


수많은 파생된 갈고리는 날 괴롭게 하고 결국 그에게


컨펌을 받아야 이 지옥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15.

"왜 아기를 갖자고 안 한거야...?"


"..."


"입실론이었던 내 몸이 맘에 안 들어서 그래?


몸은 바꾸면 되잖아...


유전자는 조작하면 되잖아...


육아? 내가 할께...


얀진하곤 다 했으면서 나하곤 안하는 건데 왜!!!"


"너를 아껴서..."


"거짓말거짓말거짓말!"


"제발 진실을 말해줘,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만을"


"사실 못 잊었어, 얀진을. 그렇다고 네가 싫은 건 아니야."


"얀진은 막 도구처럼 다루고, 성욕을 배출할 유기물 정도로 여기면서


나는 애지중지하는 너를 난 못 받아드리겠단 말야.


왜 나한텐 그렇게 안 해주는 건데?"


"미안. 못하겠어 진짜로. 너가 싫어서가 아니라니까."


16.

그를 가지기 위해 못할 건 없어.


얼마가 걸리더라도


무엇을 포기하더라도 난 가져야만 해.


"얀붕아 부탁하나만 들어줄래...?"


"내 목을 졸라줘. 최대한 세게.


얼굴이 파래져도, 숨을 쉬지 않아도, 괜찮아."


"..."


"안해주면, 의식소멸을 요청할꺼야.


네가 도망갈까 두려움에 떨 바엔 그냥 안식에 들래."


사실 거짓말이다. 


그가 내 곁에 없다는 것 하나만으로 너무 겁이 나고


끝없는 심연 속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지만,


여기서 확인해야 한다. 그의 진심을.


"그게 네 선택이야?"


"응"


"안 바뀔 거 같아?"


"응"


"네 선택을 존중할께, 사랑해"


그가 내 몸을 침대로 이끌고 눕힌다.


천천히 내 옷가지를 벗기고, 내 몸 위에 올라탄다.


볼에 가벼운 뽀뽀, 쪽하고 입술을 땐다.


"사랑해. 언제까지나."


그의 작은 손이 내 목을 조른다.


숨이 점점 막히고 머리가 몽롱해진다.


이와 같은 쾌락은 처음이 아닌가?


그의 얼굴에서 물방울이 자꾸자꾸 맺힌다.


그게 톡하고 떨어져서 피부에 닿는데


그렇게 오싹오싹할 수가 없다.


아, 나는 제일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당신이 만든 피라미드의 캡스톤은 얀진이 아닐꺼야,


아니어야만 해. 이제 그 자린, 내 꺼야.


17.

비우발적이고 직접적인 살인의 과정은 처음이다.


아마도 그녀는 이걸 알고 요청한 거겠지.


부들거리면서, 내 팔을 붙잡은 그 두 손에 왜 힘이 없는 건지


이유를 알고 싶지 않았다.


어떤 밤에서도 볼 수 없던, 황홀한 두 빨간 눈동자가 나를 빨아드린다.


더욱 손아귀에 힘이 들어간다.


더욱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파란 얼굴의 그녀의 손이 내 팔에서 떨어진다.


눈도 게슴츠레하게 뜨고 있다.


멈춰버린 그녀의 심장을 맥을 짚어 확인한다.


그녀의 파래진 입술에 버드 키스,


이것은 내가 한 마리에 새가 되어 그녀의 새장에 들어가는 절차.


18.

딩동하고 벨이 울린다.


시체수거반이 왔나 보다.


식기 전의 시체에 대한 fetish 라도 있는 건지


참 빨리도 왔다.


한 번도 해본 적 없어 어색한 염습을 행한다.


왠지 그녀가 웃고 있는 기분이다.


어색한 동작을 보며 더 어색해 하는 그네들은 델타 계급이었나.


본 적이 없겠지 이런 건.


그녀가 나에게 '프로포즈'하려고 냅뒀던 옷을 입힌다.


힘이 없어서 그런지 잘 안 된다.


그녀의 옷이 자꾸만 젖는다.


내 옷이라고 안 젖는 게 아니다.


결국 흰색 보따리에 넣어져 갈 것을


무엇하러 닦고 입혔나, 아니 그렇기에


더 의미가 있겠지.


19.


그들이 떠나고 조용히 울려고 해본다.


정정. 


온갖 동네사람들이 다 들으라고


운다.


어느덧 그믐달이 뜬다.


얼마나 울었으면 그믐달이 뜰까.


그녀도 지독하다.


이렇게까지 나를 붙잡다니.


20.


그믐달은 아침해가 뜨기 전의 새벽에 잠깐 떴다가


아침해가 뜨면서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너의 사랑은 그믐달일까, 초승달일까.


우리의 미래는 낮일까 밤일까.


어느새 밖에는 무섭게도 일정한


아침해가 뜨는지, 쨍쨍 아침햇살이 내 볼을 


때리는지, 시체소각장 창살에 붙는 월훈.


21.


분명 정해진 날짜보다 훨씬 늦게 일어났다.


그는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다.


분명 누군가-


갑자기 경비원이 전화기를 건네준다.


"누구냐 너."


"몸은... 맘에 들어요?"


"내 발생을 멈출 수도 있었는데 왜 안 멈춘거지?"


넌 누구냐?"


"누굴 꺼 같아요?"


"서아

하윤

지안

서윤

하은

아린

하린

아윤

지우

수아...


누구야 너 누구야!!"


"나요? 난 일종의 학자죠. 당신처럼.


"전공은 얀붕이고, 얀붕학 학자. 김얀붕 권위자."


"김얀붕?"


"뭐 내가 중요하진 않아요. 그가 중요하지.


잘 생각해봐요. 인생을 통째로 보고 싶어하는 거에요.


학교 끝났으니까 이제 숙제를 할 차례인거잖아?


안 그래요?


명심해요.


입실론이든 알파든 물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에요."


"한 가지만 묻자."


얀붕한테 죽기 전에 최면 걸었지.


무슨 최면이야.


"얀붕이가 너 보고 싶어하겠다. 빨리 와."


뚝.


22.


얀순은 계급만 알파가 아닌 진짜 '알파피메일'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입실론은 알파가 되고 싶어 1편 fin.


2편은 1편도 쓰고 보니 영 아닌 거 같아 없을 예정이라 단편에 올림.


맛없는 단편 먹어줘서 고맙고 좋은 하루 보내